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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23화 (123/150)

123화.

“아그니.”

모하메드가 중얼거림과 동시에 모하메드의 옆에서 작은 게이트가 열렸다.

그때 모하메드의 손에는 채찍 모양의 물건이 들려 있었다. 별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였다.

다그닥, 다그닥 소리를 내며 게이트 너머에서 온몸이 새빨간 불길에 휩싸인 말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손으로 살짝 만지기만 해도 그대로 손이 잿더미가 될 것처럼 강렬한 불길이었다. 그러나 서준을 비롯한 일행들은 그 어떤 열기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마음을 편하게 하는 따스한 온기만이 느껴졌을 뿐이다.

“와! 실제로 보니까 대박이네, 이거 저 주면 안 돼요?”

“안 됩니다.”

오세근이 장난스레 졸라보았는데 모하메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좋은 불길이구나.”

“예, 같은 편이라고 인식하면 불의 온기가 닿는 곳에 여러 가지로 좋은 효과를 줍니다.”

“압박감이 사라진 것도 그런 이윤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느껴지는 불길은 실로 강렬했다. 강렬한 불꽃은 유적 안을 모두 제 영역으로 만들 정도로 화끈했다.

그러나 서준의 일행은 그 뜨거움을 기분 좋은 온기 정도로 느꼈고 덕분에 용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이대로 싸우기에는 뭐했는데 말이죠.”

“그러게, 나도 이건 예상 못 했군. 압박 속에 싸우는 걸 예상했었는데 승률을 좀 더 높게 잡아도 되겠어.”

“그럼 신비는 빠져도 된다는 소린가요?”

“어림도 없지.”

역시 어림도 없었다. 모든 전제는 정신비의 절대 치유 영역이 있기에 가능한 예상이었다.

그 절대적인 치유능력이 빠진다면 아그니를 포함해도 승률이 3할이 될까 말까였다.

[싸운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압박에서 벗어난 서준의 일행이 전투 전 긴장을 풀기 위해 농담을 주고받는 걸 들었는지 악룡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평상시에도 분노에 차 있었던 악룡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더욱 사나워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럼에도 서준 일행은 그 어떤 압박도 느낄 수 없었다. 아그니의 불꽃 덕분이었다.

“이제는 그냥 기분 좀 나쁘고 마네요.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어요.”

“방심하지 말거라. 이빨 빠진 놈이라도 용은 용이다.”

“작전은 그대로 가는 거죠?”

“작전이랄 것이 뭐 있나. 봉인 풀리는 동시에 가능한 공격 다 쏟아부으면 그만이지.”

[어리석구나. 아둔한 미물들이여. 한낱 미물에 불과한 네놈들이 감히 이 몸을 상대하시겠다?]

“이빨 빠져서 뭐라 하는지 잘 못 알아듣겠는데요? 발음 좀 똑바로 해봐요.”

[이놈이!]

오세근이 적절히 악룡을 도발하고 나섰다. 아무리 신에 근접한 존재라 할지라도 백 년 이상의 시간을 봉인당한 채 있었다.

정신이 무너지고 마음이 일그러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한때는 신의 대리인이라고 불리던 종족도 가벼운 도발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흥분하면 싸움에서 지는 법이다. 오세근의 도발은 급소에 정확한 일격을 찔러 넣은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봉인이 풀린 틈을 타 공격을 하겠다? 그것이 이 몸에게 통할 듯싶으냐? 미물들의 공격으로는 내 비닐에 그 어떤 작은 구멍도 낼 수 없음이라!]

몇 마디 주고받은 것을 들은 악룡이 작전을 알아챘다. 사실 어느 정도 머리만 있어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모든 정보를 입 밖으로 냈으니까. 정신이 무너졌다고 해도 용은 용이었다. 보통 머리 좋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서준의 일행은 개의치 않았다. 사실 들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이다.

봉인이 풀린 후 생기는 아주 작은 틈, 그 틈에 최대의 공격을 찔러 넣어 용을 상처입힌다.

이후 상처 입은 용을 상대로 싸운다. 어려울 것도 없는 작전이었고 상대편에서도 딱히 대처할 만할 방법이 없는 작전이었다.

봉인이 풀린 후에 생기는 경직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으니까.

그만큼 악룡에게 걸린 봉인은 강력한 것이었다.

“말이 기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할아버지가 상대했던 용은 그 무엇보다 위대했다고 하던데……. 이놈은 아직 덜 자랐나 보군.”

[어리석구나! 인간들이여! 목숨을 구걸해도 모자랄 판에 나를 도발하려 들다니! 내 봉인이 풀리면 네놈들을 모두 산 채로 씹어먹어 주마!]

“아, 했던 말 계속하니까 이젠 무섭지도 않네.”

도발이 한 번 통하기 시작하자 재미를 본 서준과 련이 계속해서 도발을 이어갔다.

이런 경험은 어디서 또 못 해볼 경험이었다. 살아생전 용을 도발하고 그게 먹히는 경험을 어디서 해보겠는가.

덕분에 아주 희박하지만 승률은 또 올라갔다.

“그럼 이제 장난은 그만하고 시작해보지. 봉인을 푸는 순간 모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을 해야 한다. 목표는 왼쪽 눈이다. 비늘로 덮여있지 않은 눈부터 앗아간 후 시작하자.”

“네!”

벽에 자그마하게 뚫린 구멍, 그곳에는 악룡의 왼쪽 눈동자가 위치해 있었다.

눈동자의 크기가 매우 커서 공격이 빗나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됐다.

벽에 뚫린 작은 구멍을 조금이라도 부순다면 봉인은 그대로 풀려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봉인의 여파로 잠시나마 경직되어 있는 악룡을 한 번에 공격하는 게 이번 작전의 시작점이었다.

그 이후에는 치열한 전투가 예상되어 있겠지만 한쪽 눈을 잃고 원근감을 잃은 동물을 상대하는 건 크게 두렵지 않았다.

비록 그 상대가 용이라고 하더라도 시야가 제한된 상대에게 지는 건 상상이 가질 않았다.

“신비야.”

“네.”

련이 신비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초록 불이 들어오면 모든 힘을 다해 기술을 발동시키면 된다.”

“네!”

“명심하거라, 초록 불이다.”

“네!”

신비에게는 환술을 걸기로 결정했다. 절대 치유 영역이 있다고는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상처는 치료하지 못한다.

아주 조금의 실수라도 한다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자리였다.

신비에게 또다시 죽음을 보게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신비는 단지 환술 속에서 온 힘을 다해 기술을 발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 시작하지.”

“네.”

련이 손바닥으로 신비의 눈을 쓸어내렸다. 신비는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제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환술에 걸려버리고 만 것이다.

“준비됐나?”

“네!”

서준은 오른쪽 주먹에 온갖 기운을 다 실었다. 생명력을 활성화해주는 녹색의 기운도, 본래 가지고 있던 검은색의 기운도 함께였다.

얼마 전까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열매를 먹고 난 후부터 이상하게 기운의 수발이 자유로워졌고 버퍼링 현상도 완전히 사라졌다.

훈련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해 삐걱거리던 움직임이 모두 사라졌고 이렇듯 두 가지 상극의 기운을 융합할 수 있게 되었다.

오세근과 김비서는 창을 두 손으로 붙잡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모하메드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들도 어느새 창술에 조예가 깊어졌다.

각자의 성격을 보여주듯 거칠고 부드러운 기운이 창대를 타고 창끝으로 밀려 올라갔다. 이젠 공격을 날리는 일만 남았다.

모하메드는 아그니의 위에 올라탔다. 왼손에는 아그니를 다스릴 수 있는 채찍을 오른손에는 기다란 창이 쥐어있었다.

마치 돌격을 하는 중세 기사처럼 자세를 취한 모하메드의 온몸에서 타오르듯이 불꽃이 치솟았다.

유재학은 오른손을 활짝 펴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유재학의 손바닥 위로 작은 고드름이 하나 피어올랐다.

고드름은 그 크기를 부풀려 올랐다가 압축되듯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자 어느덧 고드름은 그 어느 것보다 투명하지만 어느 것보다 날카롭고 단단한 하나의 바늘로 변모했다.

련은 조용히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그 어떤 준비 자세도 없었다. 팔도 아래로 내려놓아 검 끝이 바닥에 닿아있었다.

련의 몸 주위로는 그 어떤 기운의 일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간다.”

련이 벽에 난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잡아당겼다.

뚜둑, 뚜둑 소리를 내며 벽이 허물어져 내렸다. 벽에서 일렁거리던 보호막 역시 서서히 사라져갔다.

보호막 너머에 있던 놈의 눈동자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놈을 막아두었던 봉인이 풀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보호막이 사라졌다.

“지금이야!”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은 아그니 위에 올라탄 모하메드였다. 그 어떤 기사보다 용맹한 돌격을 자랑하며 모하메드는 달려나갔다.

그 뒤를 오세근과 김비서 그리고 서준이 뒤따랐다. 네 사람의 공격이 악룡의 동공에 정확히 들어갔다.

네 사람은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같은 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악룡이 괴로운지 소리를 질렀다.

아니, 공격이 괴로워서인지 봉인이 풀리는 것이 괴로워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악룡은 괴로워하고 있었다.

악룡의 눈동자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 네 사람의 최강의 일격이 한점에 쏟아졌는데도 아주 작은 균열에 그쳤다.

악룡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네 사람의 공격이 아닌 봉인의 여파가 괴로웠던 것이 확실했다.

물론 지금까지 걸린 시간은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슈욱! 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뒤따라 왔다. 소리의 앞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고 투명한 바늘이 있었다.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간 바늘이 악룡의 눈동자에 있던 균열을 정확히 뚫었다.

뒤이어서 세 마리의 호랑이가 달려들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악룡의 눈동자를 할퀴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이제야 악룡이 제대로 된 비명을 질렀다. 동공의 절반까지 들어간 바늘이 악룡의 왼쪽 눈을 안쪽에서부터 얼렸다.

그리고 곧바로 련의 찌르기가 악룡의 오른눈을 찔렀다. 왼눈은 건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공격 방향을 돌린 것이다.

이미 벽은 완전히 허물어져 악룡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악룡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얼굴이 사람 몸통만 했고 몸통의 길이는 5m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이 작은 몸에서 이런 위압감이라니!’

-그게 용이라는 생물이다!

서준은 곧바로 사고를 가속했다. 지금부터는 힘을 아낄 여유가 없었다. 동시에 모든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호랑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각자 자신의 모든 힘을 폭발시켰다. 지금부터 방심은 죽음이었다.

“아저씨?”

정신비는 홀로 남겨졌다. 눈앞에 서 있던 서준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함께하며 자신을 지켜줬던 호랑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어흥아? 캬앙아? 크릉아!”

호랑이들의 이름을 외쳐보았지만 그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순간 정신비는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트라우마가 도진 것일까? 엄마와 아빠가 죽어 홀로 남겨졌던 날이 떠올랐다.

갑작스레 폭발음이 울리고 귀에는 삐이 하는 이명 소리가 울렸던 날이었다.

주위의 건물은 모두 무너져 내렸고 엄마의 몸은 싸늘하게 식었다.

“흐윽, 흐극, 흑!”

정신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안 울기로 했어!”

하지만 정신비는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마치 눈물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듯 정신비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어?”

그곳에는 신호등이 하나 있었다. 빨간불이었다.

“신호등?”

그와 동시에 신호등이 내뿜는 빛은 청색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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