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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22화 (122/150)

122화.

“손님이 많군.”

갑작스레 열린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사람들을 본 유재학이 말했다.

근 일 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홀로 약초밭이나 가꾸고 있던 차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니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매우 반가웠다.

“어때요? 할만해요?”

“말도 마라.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만 계속 반복하느라 좀이 쑤셔 뒤지는 줄 알았다.”

“엄살 피지 마요. 여기 넓어서 하루가 부족했을 텐데?”

“이 새끼가 약 올리나?”

심심하긴 했을 거다. 서준이 지구에 있던 시간은 사흘, 그 시간 동안 서준은 단 일 초도 게이트를 열지 않았다.

유재학은 삼백 일의 시간 동안 이곳에 홀로 남아 아침에 일어나선 약초밭을 가꾸고 저녁에는 약초를 캐며 똑같은 하루를 살았다.

“그래서 이제 용 잡으러 가려고?”

“예, 급합니다. 설명할 시간 없어요. 바로 가야 해요.”

“그래 수고해라.”

유재학은 수고하라는 말을 남긴 채 열려있던 게이트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아무래도 용을 잡으러 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대로 게이트를 타고 지구로 넘어가 숨어 살 계획이었다.

용? 미친 짓이다. 유재학은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서 살아가며 수많은 괴수들을 접했다.

유재학 수준에서도 버겁거나 쳐다도 볼 수 없는 존재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용은 항상 정점이라 언급되는 존재였다. 실존하는지도 확실치 않은 전설로만 남겨진 존재였다.

유재학은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할 생각은 단 한 치도 없었다.

이것이 지난 일 년간 유재학이 약초밭을 갈며 정리한 생각이었고 그 계획을 그대로 실행했다.

“저런 미친 새끼가!”

유재학은 서준에게 말을 걸며 방심을 시켰고 그대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애당초 서준보다 한 수 위의 존재였다. 준비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방심한 사이에 달리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사고 가속을 사용 후 몸에 부담을 주어 달린다고 해도 이미 거리가 너무 벌어졌다. 잡는 건 불가능했다.

“커헉!”

그때였다. 유재학의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건.”

막 게이트에서 넘어온 련이 유재학의 목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아! 사부님, 넘어오셨습니까?”

련이 게이트에 발을 들이밀어 넘어오는 순간 유재학이 게이트 앞에 도달했고 갑작스레 달려든 유재학을 련이 반사적으로 잡아챈 것이다.

“으윽! 놔! 놔라!”

유재학이 발버둥 쳤지만 탈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서준의 손은 가볍게 뿌리칠 수 있었지만 련에게 통할 리 없었다.

유재학이 서준보다 한 수 위의 존재라고는 하지만 련은 유재학이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위에 있는 존재였다.

애초에 용 사냥의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던 존재였다. 용만큼은 못해도 거의 근접한 수준은 된다는 뜻이었다.

“네가 말한 놈이 이놈이냐?”

“네, 사부님.”

“으음……. 뭐, 쓸만하군. 이 정도면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겠어. 뭐. 꾀만 안 부린다면……. 쓸만하겠어.”

련에게 목을 잡힌 채 공중에 떠서 계속해서 발버둥 치는 유재학을 한 번 쳐다본 련은 그의 수준을 모두 파악해냈다.

“할아버지! 그만해요! 아저씨 아파 보여요!”

계속해서 버둥거리는 유재학이 불쌍했는지 정신비가 련을 말리고 나섰다.

유재학이 본인의 부모를 죽게 한 범인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신비의 눈에는 그저 불쌍한 아저씨가 련에게 붙잡혀 고통받는 것처럼 보였다.

“끄응, 그래 알겠다.”

어린아이가 부탁하니 련도 난감해졌는지 유재학을 서준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다시는 도망갈 생각을 못 하도록 검을 몇 번 휘둘러 게이트를 닫았다.

게이트의 흔적을 쫓아 지구까지 쫓아온 전적이 있던 만큼 이 정도는 코 후비듯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늦었다. 빨리 가자. 벌써 놈들은 내가 넘어왔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거야. 거리가 있으니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여유 부릴 시간도 없다.”

“네.”

련과 처음 마주한 곳과 용의 유적이 있는 곳은 서준의 걸음으로 이 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호랑이들을 번갈아 타며 최고 속도로 이동했을 때 이 주일이 걸렸다는 말이다. 서준의 전력 질주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그러나 련이 두려워할 정도의 집단이라면 그 시간을 월등히 줄일 수단을 갖고 있을 것이다.

서준처럼 차원 혹은 공간을 이동하는 기술이 있을 수도 있고 단순히 달리기가 빠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서준은 또다시 게이트를 열었다. 물론 이번 게이트의 목적지는 약국이 아니었다.

용의 유적 바로 앞이었다. 서준은 미리 게이트를 용의 유적 앞으로 지정해 두었다.

련이 이곳에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남들 다 쉴 때 홀로 넘어와서 용의 유적 앞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멍청하긴! 이 거리면 안 잡힌다!”

게이트를 보자마자 흥분한 유재학이 다시 달려갔다. 아무래도 약국으로 가는 게이트로 착각한 듯싶다.

련은 도발을 하며 도망가는 유재학을 미친놈 바라보듯 쳐다보다가 게이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애초에 지구로 넘어가는 게이트가 아니었기에 유재학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잘 있어라! 개새끼들아!”

유재학은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게이트를 넘어갔다. 백 살 먹은 노인이 저렇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백 년을 넘게 살아놓고 아직도 철이 안 들었네.”

“철들면 죽는다며?”

“그래도 백 살이 넘었으면 철들어야죠.”

“쯧쯧,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네.”

먼저 넘어간 유재학의 뒤를 따라서 서준의 일행이 하나둘씩 게이트를 넘었다.

그렇게 그들 모두 용의 유적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긴 또 어디야!”

유재학이 게이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심으로 지구로 가는 게이트라고 생각한 듯싶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아니란 걸 알았을 텐데 유재학에게는 이성을 지킬 정신력보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이 더욱 컸다.

백 년 넘게 유지하던 냉철함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왜? 또 도망가게?”

“아니다……. 돕겠다. 부디 끝나면 돌려 보내줘…….”

이젠 유재학도 모든 것을 포기했다. 물론 여기서 도망치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러나 유재학은 그 선택지는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기반은 모두 잃었다.

도망가봐야 숨어 살아야 했다. 물론 지구에서도 숨어 사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곳에는 현대문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작 말을 좀 듣지 그랬어요. 그럼 분위기 좋게좋게 갈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다. 이젠 시키는 대로 다 하마. 그래. 뭘 해야 하나?”

“따라오세요.”

서준의 안내를 따라 모두 용의 유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외길의 긴 통로가 나왔다.

벽과 천장에는 여러 가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서준은 예전에 본 적 있는 광경이었지만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신기한 듯이 벽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용의 유적이라……. 실제로 오는 건 처음이군.”

“사부님도 처음이세요?”

“그래.”

련 정도 되는 사람이면 용의 유적 정도는 몇 번 와봤을 것 같았는데 처음이라고 말하는 게 의외였다.

살아있는 용을 본 적 없을 뿐이지 용의 유적 같은 건 용이 죽어도 남아있었을 텐데…….

“의외네요.”

“뭐가?”

“사부님 정도 되면 이런 유적쯤 몇 번 와봤을 줄 알았죠.”

서준은 속에 담긴 말을 모두 털어냈다. 뭐,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었고 궁금한 건 바로 풀어야 저녁에 잘 때 고생하지 않는다.

“용의 유적에는 예언들이 많거든.”

“알아요, 저도 예언 보고 괴수들 잡으러 다니기 시작한 거니까요.”

“그런 물건을 위에서 남겨둘 리 없지. 자기들에게 해가 되는 건 모조리 치워버리는 놈들이야.”

“위요? 사부님에게 추적 마법 건 놈들 말하는 거예요?”

“그래.”

저 정도로 말하는 걸 보니 진짜 놈들에게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별의 아티팩트를 관리하던 것만 봐도 그렇다. 굳이 별의 영혼을 관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게 뭐든 수상쩍은 일이었다.

“여기가 남겨져 있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해라. 이런 곳에 설마 용의 유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걸 테지.”

“악룡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봉인된 악룡을 깨우는 것보다는 그냥 유적을 놔두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 걸 수도 있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악룡? 그놈들 손에 걸리면 뱀고기 신세 되는 것도 순식간이야.”

“그 정도예요?”

“그래.”

하긴 련이 두려워할 정도의 집단이었다. 하나하나의 수준이 어느 정돈지는 서준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집단의 힘은 련을 두려워할 정도는 된다는 이야기였다. 승산은 희박하지만 어찌 되었건 련은 악룡을 상대로 조금의 희망을 찾아내었다.

그렇다는 건 놈들도 악룡을 상대할 기량은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오십 년이 넘도록 이걸 찾아내지 못하는 게 믿어지지 않는군……. 이렇게 개활지에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그렇긴 해요. 입구 쪽에는 완전 개활지고 유적은 절벽에 완전히 멋들어지게 만들어져 있고. 뭔가 마법이라도 걸려있나?”

“음……. 그렇다면 이 아티팩트에 뭔가 있다는 소리겠지.”

서준은 별의 동상을 통해 이곳을 찾았다. 만약 별의 영혼이 이 유적을 지켜주고 있었다면 놈들이 찾아내지 못한 것도 말이 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놈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건……. 이해가 안 가는군. 용의 유적에 미친 놈들이라 유적만 전문적으로 찾는 놈들까지 키워낸 자식들인데.”

-그만큼 짐이 대단하다는 이야기지. 저 늙은 놈도 드디어 이 몸의 진가를 알아채는구나!

‘예예,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별의 자랑을 듣다 보니 어느덧 유적의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여전히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너머에서 악룡의 호흡 소리와 함께 숨결이 넘어왔다.

“구멍이 조금 더 커진 것 같기도…….”

서준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순간 구멍 속에서 악룡의 동공이 보였다.

그 동공을 마주한 순간 지난번처럼 서준은 몸이 굳었다.

“헉!”

그곳에 있는 모두가 숨을 토해냈다. 련을 제외하고는 모두 몸이 마비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련은 단지 조금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정신비의 앞을 가리고 섰다. 정신비는 아직 용의 압력을 견뎌낼 수준은 아니었다.

정신을 잃으려던 정신비를 련이 지켜줬다.

-오, 이번에는 그래도 정신을 잃지는 않았네?

‘그래, 나도 많이 성장했다고.’

지난번에는 정신을 잃어 별이 깨워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로 봉인을 풀고 악룡에게 씹어먹혔을 것이다.

그러나 서준도 그동안 꽤 성장했다. 물론 압박을 완전히 이겨내지 못해 몸이 마비된 것처럼 굳기는 했지만 곧 이겨낼 수 있었다.

[또……. 왔구나. 이번에는 나를 풀어줘야 할 것이야. 그렇지 않다면 내 꼭 너를 산 채로 씹어먹어 주마.]

유적 전체를 울리듯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을 곧바로 때리는 듯한 그런 음성이었다.

꼭 놈의 말을 들어 봉인을 풀어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서준은 의지를 모아 놈의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풀어주지. 기대하라고.”

그래, 이번에는 놈의 봉인을 풀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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