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형님! 고민 좀 그만하고 좀 먹읍시다!”
“그래, 알겠다.”
오늘은 악룡을 잡으러 가기 전 마지막 휴식날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최후의 만찬이 될 수도 있는 날이었다. 오늘만큼은 근심 걱정 모두 잊고 최선을 다해 즐기기로 했다.
“차라리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전력을 조금 올려놓고 가는 게 어떨까요?”
승률이 2할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굳이 지금 갈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든 단련해서 승률을 적어도 절반까지는 올려놓고 가는 게 옳았다.
“의미 없다.”
그러나 련의 답은 단호했다.
“어째서죠?”
옆에서 듣고 있던 김비서가 물었다. 그 역시 가족이 있는 몸이었다.
가족들의 평안한 미래를 위해 게이트 닫는 일에 동참하기는 했지만 결국 본인이 죽으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김비서 역시 낮은 확률에 불안해하고 있던 차였는데 련이 단호히 말하자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빠른 시간 동안 너희들을 최대한 성장시켜놨다. 지금부터는 급격한 성장은 없다고 봐야 해. 너희의 잠재력은 이미 모두 소모되었어.”
서준 일행은 반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 만에 급격히 강해졌다. 특히 모하메드가 얻은 시간은 더더욱 짧았다.
애초에 서준과 오세근 그리고 김비서보다 모하메드가 월등히 완성된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련이 말하고 있었다.
“잠재력이 모두 소모된 지금부터는 강해지기 위해선 깨달음이 필요하다. 깨달음이란 건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던데? 짐은 잠자고 나면 깨달아지던데? 진짠데?
‘닥쳐.’
별의 자랑을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정신비를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가 걸린 문제였다.
“깨달음이란 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시간을 투자했을 때 불쑥 찾아오는 법이다. 그 주기가 얼마나 될지,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지는 아무도 몰라. 단순히 밥을 먹다가도 떠오를 수도 있고 엄청난 고행 후에 떠오를 수도 있지.”
“어렵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되는 거 아닙니까?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보다는 가능성 있는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서준이 말했다. 지금의 승률은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낮았다. 물론 신비를 데려가게 된다면 또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창천 길드에 신비를 보낸 것은 신비가 치료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전투 후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살아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큰돈을 만지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를 전투로 보내게 몰아가고 있었다. 서준은 그것이 너무 싫었다.
“그게 언제가 될지 알고? 십 년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 같은 경우에도 마지막 깨달음이 육 년 전이었어.”
“…….”
지금껏 서준과 그 일행들은 아주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해서 강해지는 것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단계에 올라섰다. 지금 서준의 일행들은 게이트 너머의 군대에 들어가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준이었다.
예전처럼 말단에 머무르는 허접한 실력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오르는 계단은 이전의 계단처럼 쉽지 않았다.
앞으로의 계단은 너무 높아 암벽을 등반하듯 올라야 했다. 아니, 차라리 암벽 등반이 쉬웠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도 있을 테니까.
지금부터 오를 계단은 그다음 지점이 너무 높아 고개를 들어도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장애물도 없어서 손가락을 벽에 박아가며 올라가야 했다.
한 층계를 오르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 십 년이 지난 후에 잡아도 되면 그렇게 하고. 뭐 그런다고 해도 확률이 얼마나 오를지 모르겠지만.”
십 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그동안 게이트는 계속해서 열릴 테고 그러면 또 다른 희생자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대침공 때처럼 일제히 많은 괴수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건 서준의 힘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외통수였다. 아주 낮은, 실낱같은 확률을 잡던가 정신비를 데려가던가 이 두 가지 방법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결국 결론은 같다. 저 아이가 전투에 참여하는 게 싫은 거지?”
“네.”
“만약 네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해보자.”
련은 태블릿을 이용해 논문 하나를 찾아왔다. 어느새 현대 문물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이거 봐라. 게이트의 발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 아마 이제 곧 대침공이 또다시 일어날걸? 그렇게 되면 저 아이도 결국 피할 수 없이 전투에 참여하게 될 거야. 결국 결과는 똑같아. 일이 년 빨리 시작해서 한 번에 끝내느냐, 아니면 그 짧은 시간 도망치다가 수년 동안 고생하는가의 차이일 뿐이야.”
서준은 반박할 수 없었다. 련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게이트는 반년 전과 비교해보아도 몇 배는 더 많이 열렸다. 그동안 게이트 발생 주기를 보았을 때 앞으로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대침공 이상의 게이트가 열릴 것도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었다.
실제로 많은 국가기관이 그를 경고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서준은 그 전에 게이트를 닫아야만 했다.
지금껏 서준이 서두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심정은 잘 알아. 그런데 과보호가 오히려 악영향을 낳는 법이야.”
“만약 신비가 함께하게 된다면…….”
서준은 말을 하다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뒷이야기를 꺼내기가 두려웠다.
악룡 사냥에 신비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
“…….”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련은 서준이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할 수 있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준의 답을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신비가 함께하게 된다면……. 지켜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야.”
“그렇게 대단한 분이 왜 신비가 없으면 용을 못 잡으세요?”
“이놈이!”
“악!”
옆에서 듣고 있던 오세근이 촐랑대다가 또 한 대를 얻어맞았다. 중독이라도 된 걸까?
가끔 보면 오세근은 일부로 련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련에게 맞지 않으면 마치 하루가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용은 우습게 볼 수 있는 개체가 아니다. 비록 오랜 기간 봉인을 당해 상당히 약해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그래도 우습게 볼 수 없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신에 근접한 개체야.”
“알고 있습니다.”
용에 대한 신화는 지구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명했으니까. 비록 그 형태나 선악의 구분은 조금 달랐지만 아주 강력한 생명체인 것은 틀림없었다.
“나는 직접 본 적은 없고 내 할아버지께서 용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인가요?”
“그래, 내가 들고 다니는 이 검 역시 용의 송곳니로 만든 검이지.”
“진짜요?”
“그래, 그럼 차원 문의 흔적을 가를 수 있는 검이 흔한 검일 줄 알았냐?”
“저는 사부님의 능력인 줄 알았는데! 그냥 템빨이셨구나?”
“쯧쯧, 너는 줘도 못 해.”
“악!”
오세근이 또다시 옆에서 거들다가 한 대 얻어맞았다. 정말로 이쯤 되면 일부로 하는 게 아닐까 의심해봐야 했다.
재벌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을 텐데 왜 저리 모자란 놈이 되었을까……. 하며 서준은 오세근을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다.
“어쨌든, 할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도 강한 분이셨다. 그리고 그런 분이 용을 잡을 때 왼팔을 잃었고 부하들도 모두 잃었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께서는 은퇴하셨지.”
“그러면 지금 가봤자 못 이기는 거 아닌가요? 스승님보다 강한 분께서 그 정도였다면 2할이 아니라 불가능한 거 같은데요?”
“아니, 그때와 지금 세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
“뭐죠?”
련은 서두르지 말라고 답하며 먹태 하나를 집어 들어 질겅질겅 씹은 후 다시 말했다.
“첫째로 나에게는 이 검이 있다. 용의 송곳니로 만든 검이다. 용에게 타격을 주기에는 충분해. 이 검만 있으면 보잘것없는 나라도 생전 할아버지의 힘 이상을 낼 수 있어.”
와이번이나 드레이크 같은 아룡들의 신체를 이용한 무기들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그 무기 하나 얻은 것만으로 최상위 헌터가 된 헌터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용의 신체를 이용해 만든 무기였다. 당연히 엄청난 힘이 될 수 있었다.
“두 번째는요?”
“용이 봉인되어 있다는 점이지. 오랜 기간의 봉인으로 놈은 약해졌을 거다. 뿐만 아니라 봉인을 풀면서 무방비 상태의 놈에게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이점이지.”
이것은 서준 역시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동안 악룡을 상대할 날을 떠올리며 서준도 꾸준히 시뮬레이션을 해왔고 그때마다 서준은 봉인을 푸는 동시에 용을 기습하는 것으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럼 마지막은요? 두 가지 말고는 더 없는 거 같은데요?”
“너희들의 존재다.”
“네?”
서준은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말을 듣고 놀랐다. 련이 자신들을 이렇게 고평가해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쯧, 우쭐대지 말아라. 네놈이 용과 싸울 만큼 대단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면요?”
“할아버지의 부하들보다는 뛰어나다는 이야기지. 적어도 방해는 안 된다는 소리일 뿐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아니야.”
련이 저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서준은 기분이 좋았다. 어딘가 인정을 받는듯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련의 부하들 중 가장 약하던 놈과 맞먹는 것이 서준이었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이제는 기존의 부하들을 완전히 뛰어넘었다는 소리와도 같은 말이었다.
서준은 자신의 성장을 련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기분이 좋아 견딜 수가 없었다.
“고작 이 정도에 그렇게 우쭐대다니……. 아직 철이 덜 들었어.”
“철들면 죽는 법입니다.”
“그래서 결정은?”
“방법이 없잖아요. 신비를 데려가야죠, 뭐.”
“그래, 아이에게는 잘 말해두거라.”
“네.”
이야기가 끝날 무렵 호랑이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던 신비가 약국 안으로 들어왔다.
밥 먹고 놀래도 심심하다며 뛰어나갔었는데 이제는 배고픔을 참을 수 없는지 더 놀자는 호랑이들을 뒤로한 채 뛰어들어왔다.
신비를 설득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비는 좋다고 했다.
신비를 설득하는 것보다 위험한 일이라고 설명하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우리가 잡아야 할 것은 용이다. 텔레비전에서 쉽게 볼 수 있던 그런 약한 괴수들이 아니다.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다. 정말 위험한 일이다. 이렇게 설명해보았지만 그래도 신비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이네.
‘진짜 이놈 잡으면 게이트 닫을 수 있는 거 맞지?’
-그래, 내 기억만 돌아온다면……. 뭐든 알려주마. 게이트를 닫는 법이든 또 다른 게이트를 여는 법이든.
‘그건 싫은데?’
어느덧 하루가 흘렀다. 신비를 설득하고 난 후 모두 자신만의 루틴으로 컨디션 관리를 했다.
아침 해가 떠올랐고 악룡을 잡기 위한 원정대 모두 호랑이 약국 1층에 모였다.
“게이트 열어라.”
“네.”
서준이 게이트를 열었다. 재배지 섬으로 향하는 게이트였다. 유재학을 데리고 갈 필요가 있었기에 재배지 섬을 경유해야 했다.
“2차 포인트는 악룡 앞으로 설정해놨지? 시간 싸움이야. 아직 추적 마법이 풀리지 않았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알고 있습니다.”
련에게 걸린 추적 마법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유재학을 데리고 곧장 용 앞으로 튀어가 싸워야만 했다.
“가시죠.”
서준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게이트를 넘어왔다. 물론 마지막은 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