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아! 저희 내일부터 방학인 건 아시죠?”
“학원에도 방학이 있나요?”
“어린아이들이라 너무 혹사하면 스트레스받아요. 쉴 때는 쉬게 해줘야죠.”
창천 길드가 운영하는 유소년 양성 프로그램이었다. 어디 일반 동네 학원과 비교하기엔 너무 급이 높은 동네였다.
창천 길드는 서준의 생각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은 육성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신비의 재능이 뛰어나고 별의 호흡법을 배우기는 했다지만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는 데에는 창천 길드의 도움도 컸다.
능력의 출력 부분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면이었다.
그러나 능력의 활용 면에서 혼자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보다는 함께 머리를 싸매는 것이 몇 배는 효율적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정신비의 시그니쳐 기술이 된 절대 치유영역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정신비의 엄청난 출력과 제어능력을 본 창천 길드의 누군가가 생각해낸 능력의 활용법이었다.
“그런가요? 흠……. 일단 알겠습니다.”
곤란하게 되었다. 이제 며칠 후면 용 잡이를 하러 가야 했다. 그럼 그 시간 동안 정신비는 혼자가 된다.
비록 예전의 아픈 상처를 많이 씻어내고 티를 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오랜 시간 혼자 두는 건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아직 식사를 혼자 차려 먹을 정도의 나이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신비랑 소풍이라도 가보세요. 오래간만에 얻은 자유시간인데.”
“그래요. 이제 신비도 멀리 나가거나 이런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트라우마도 거의 극복했고 이제는 저희 길드 애들 중에서 제일 활발하다니까요?”
“그런가요?”
소풍……. 좋은 단어다. 물론 가면 즐겁기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방학이라니,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그냥 데려가는 게 어떠냐?
‘뭐? 신비를 데려가자는 얘기야?’
-응. 안 될 것도 없잖아? 능력도 뛰어나다며.
‘그건 안 돼. 너무 위험한 일이야.’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정신비가 앞에 나서서 싸울 일은 없었다.
어차피 정신비의 포지션은 제일 후방에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데려갈 수는 없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악룡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내는 데 실패해서 정신비의 위치까지 공격의 여파가 흘러간다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정신비는 회복 능력에 있어서 스폐셜리스트인 것이지 전투 능력은 보통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일단은 사부님과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 사부님이 신비를 향해 흘러 들어가는 공격을 막아주실 방법이 있다면……. 고민해보지.’
서준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방법이 있다고 해도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였다. 비록 초인 훈련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치유사로서의 소양을 길렀을 뿐이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현장 치유사와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제 겨우 트라우마를 이겨낸 아이에게 참혹한 전투의 현장으로 데려갈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일단 거기에 유재학이 있잖아. 신비를 거기에 어떻게 데려가.’
유재학은 신비의 부모를 모두 죽게 만든 테러리스트였다. 그런 그가 있는 장소에 정신비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물론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르겠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어요. 자주 와주세요.”
“네, 저희도 시간만 있으면 매일 오고 싶죠. 근데 너무 바쁘네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저희도 신비 놓치고 싶지는 않거든요. 백 선생님께 명절마다 선물 보내드릴 테니 나중에 신비 꼭 저희 길드로 보내주세요!”
“하하, 신비가 선택할 일이죠.”
윤희주와 김소현은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해가 떨어질 때쯤 돼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기분이 참 묘하네.’
-뭐가?
‘저 두 사람, 예전에 내가 하는 일에 끌어들이려 했거든.’
오세근과 김비서를 꼬시기 전에 먼저 찾아갔던 것이 김소현과 윤희주였다.
그전까지 서준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헌터였고 서준과 친한 헌터들 중 가장 강한 헌터였다.
-근데 거절당했잖아? 근데 그게 뭐가 묘하다는 거야?
‘그렇잖아. 예전에는 그렇게 강해 보이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함께하면 오히려 방해만 되겠지?’
-조금 강해졌다고 헤세 부리긴. 네놈 정도는 짐이 힘만 찾으면…….
‘아, 시끄럽네. 정말.’
서준이 알고 있는 헌터들 중 최고로 강한 헌터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준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헌터들 중에서는 최고의 헌터들이었다.
GOTY 우승은 솔직히 온전히 서준의 역할이기는 했지만 그 전에도 창천 길드는 전투력만 보면 한국 내에서는 유명한 길드였다.
비록 전대 길드장의 암살 사건으로 휘청거리며 길드 규모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었지만 윤희주와 김소현을 필두로 한 간부들의 전투력은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지금 저 두 사람이 게이트를 닫기로 마음을 먹어 서준의 팀에 합류하게 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두 사람은 완벽한 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련의 수련을 받은 서준과 그 일행들의 성장세는 엄청나게 가팔랐다.
한참 앞서 있던 두 사람을 이제는 돌아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앞질러버렸으니까.
“다녀왔습니다!”
정신비가 돌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방학이라 기분이 좋은지 온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아저씨! 저 방학했어요! 이제부터 자유에요! 내일은 점심 먹을 때까지 잠만 잘 거예요!”
“그래, 들었어. 일단은 손부터 씻자.”
“네!”
정신비는 힘차게 대답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저 아이를 포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정신비가 2층으로 올라가자 련이 약속했다는 듯이 2층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네?”
“얘기 다 들었어. 10초간 절대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련의 감각은 서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달했다. 당연히 2층에서도 서준과 창천 길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놀라운걸?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저 정도 경지라니……. 역시 지구의 각성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로 발달된 능력을…….”
련은 정신비의 수준에 놀랐는지 혼잣말을 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정신비가 포함된 팀과 악룡의 전투를 시뮬레이션해보는 듯했다.
“꼭 넣어야 해. 넣지 않는다면……. 승산은 대략 2할 정도다. 사실상 붙으면 진다고 봐야 하지.”
시뮬레이션을 마친 것일까? 련은 아주 진지한 눈으로 서준에게 호소했다.
“넣는다면요? 10% 정도는 올라가나요?”
“6할……. 몸 성히 빠져나올 수는 없겠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붙는다면 이긴다. 팔다리 하나쯤은 떼 줘야겠지.”
2할과 6할 사실 둘 다 높은 확률은 아니었다. 전자의 경우는 사실상 진다고 봐도 되는 확률이었다.
후자의 경우도 이길 확률이 더 높기는 했지만 절반에 가까운 확률로 진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그 말은 이기더라도 몸 성히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안 돼요. 죽거나 다칠 확률이 그렇게 높은데 신비를 데려갈 수는 없어요. 아직 어린아이예요.”
“어리지. 그러나 그 능력은 어리지 않다. 10초간의 절대 회복 영역? 미친 거지 미친 거야.”
서준과 련의 의견이 강렬하게 충돌했다. 련은 정신비를 데려가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말했고 서준은 정신비를 데려가서는 안 될 이유를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6할은 유재학이라는 놈을 포함하지 않은 확률이다.”
“왜죠? 이미 그놈 얘기는 충분히 해드린 것 같은데요.”
“직접 눈으로 봐야지 네놈 동태눈깔을 어찌 믿고 전술을 짜겠어? 그리고 일단 믿을 수는 있는 놈이야?”
“믿을 수는 있어요. 그건 확실합니다.”
유재학은 범죄자였다. 믿을 수 없는 놈이었다. 그러나 이 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유재학이 간절했다.
유재학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다. 겨우 잡은 기반을 모두 포기했으며 지구에 숨겨둔 게이트 금괴의 절반을 서준에게 넘겼다.
‘뭐, 사실 내가 다 먹었지만.’
-그놈 돌아오면 충격 먹을걸?
‘아니, 돌아올 수도 없어.’
-와……. 진짜 나쁜 놈이네.
유재학의 게이트 금괴는 서준이 모두 차지했다. 물론 일행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유재학은 본래 절반을 준다고 했지만 서준이 그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유재학은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서준은 악랄한 테러리스트인 유재학을 지구로 돌려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유재학의 쓰임은 게이트를 닫으면 끝이었다. 테러리스트로서 악행을 저질렀으니 죽기 전에 좋은 일 한 가지쯤 하고 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만약 유재학이라는 놈이 네 말대로 믿을 수 있고 너를 상회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못해도 7할 5푼이다. 이 정도면 내가 그 아이를 충분히 지키며 싸울 수 있어.”
“사부님이 신비를 지킨다는 것 자체가 문제에요. 결국 악룡을 쓰러트리려면 그놈이 큰 상처를 입을만한 공격을 해야 하는데 사부님이 뒤로 빠진다는 것부터가 문제라고요.”
“쯧쯧쯧, 네놈은 나를 너무 모르는구나. 나는 네 상상 위의 사람이야. 조금 멀리 있다고 내 공격이 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어.”
모든 근거가 정신비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었다. 정신비가 없다면 유재학이 포함된다고 해도 승률은 3할이 되지 않았다.
정신비의 절대 회복 영역 그것이 악룡을 잡는데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그만큼 서준이 알아보지 못한 정신비의 재능은 엄청났다.
“일단은……. 며칠 남았으니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고민은 무슨. 무조건 가야지.”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트라우마가 잠잠해졌다고는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견디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건 걱정 없다. 전투 장면은 보지도 못할 테니까. 시야는 내가 가려두겠다. 그 정도 환술은 걸 수 있어. 저 아이는 딱 10초간 능력을 발동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상황은 끝나있을 거야.”
련의 생각은 이러했다. 환술을 이용해 신비의 눈을 속인다. 신비는 그와 동시에 능력을 발동시킨다.
이후 신비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전투 종료 후다. 이게 련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 정도 수준의 싸움이 되었을 때는 10초 안쪽으로 싸움은 끝난다.
그동안 수백, 수천 번의 공방이 오가겠지만 그 공격속도는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수천 번의 공격은 단 10초 안에 모두 이뤄질 수 있다.
지금껏 서준이 해온 전투도 그랬다. 호랑이 괴수들과의 전투도 엄청난 공방이 이어졌고 중간에 기절하기까지 했지만 모두 10초 안쪽으로 이뤄진 전투였다.
고수들의 싸움이란 게 원래 그랬다.
정신비의 능력이 엄청난 무기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전투 시작 시점부터 끝 시점까지 거의 모든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절대 영역이었다.
일격에 죽지만 않는다면 상처 없이 전투를 끝낼 수 있게 해주는 사기 기술이었다.
“하아……. 정말 모르겠다.”
서준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