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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19화 (119/150)

119화.

“좋다. 믿는 자가 한 명 더 있는 모양이군.”

련의 이야기를 들은 유재학이 말했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서준이 저렇게 자신할 정도니 마냥 헛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러면 용을 치는 건 언제지? 최대한 서둘러주면 좋겠는데.”

“준비가 필요합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용, 섣불리 볼 수 없습니다.”

“그건 동의한다. 그러니 나도 함께 지구로 돌아가 같이 준비를 하는 건 어때?”

몸이 달아오른 유재학이 서준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준이 거기에 넘어갈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유재학을 못 믿어서? 아니었다. 그냥 유재학이 싫어서였다.

단지 유재학이 혐오스러울 뿐이었다. 지금 서준에게 가장 큰 재미는 유재학이 고통받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그건 어렵겠는데요?”

“왜? 같이 준비하는 게 더 좋지 않아?”

“예, 준비는 같이할 거예요.”

“그치? 같이할 거지?”

서준의 말에 유재학의 기분이 또 금세 좋아져 싱글벙글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래도 100세가 넘은 나이다 보니 감정의 굴곡이 생각보다 더 격했다.

“당신은 여기서 준비해줘야겠습니다.”

“여기서? 뭔 소리야? 여기서 무슨 준비를 해?”

지구로 데려가지 않겠다는 서준의 말에 유재학은 금세 또 얼굴이 붉어져 화를 내며 따지고 들었다.

“여기 주위를 한 번 둘러보세요.”

서준의 말에 유재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가 보이시죠?”

“음…. 약초들?”

재배지 섬의 한복판이었다. 당연히 주위를 둘러보면 서준이 길러낸 약초밭들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구의 사람이라면 모두 다 입이 쩍 벌어질 만큼의 규모였다. 한 번 보기도 힘든 고급 약초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그러나 유재학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이곳에서 한 세기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게다가 어깨 뽕 좀 찰 수 있는 자리에도 올라갔다.

유재학에 눈에 들어오는 약초의 가치는 지구인의 눈에 보이는 약초의 가치보다 상당히 낮았다.

“이게 왜?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약초들 아냐?”

“그렇죠. 이 약초들을 좀 관리해주셔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유재학은 어이가 없는지 바람 빠지는 목소리를 하며 물었다.

“제가 용 잡을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약초들을 관리할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걸 당신이 좀 메꿔주셔야겠습니다.”

이후 유재학은 극구 반대했고 절대 하기 싫다는 뜻을 펼쳤다.

그러나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곳과의 인연은 완전히 끊겼다. 경비대장에서 도망자의 신분으로 바뀌었다. 남아있을 수 없었다.

지구로 돌려 보내줄 수 있는 건 서준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서준을 거스르는 것은 자살행위다.

“아, 한가하네. 그렇지 어흥아?”

-어흥! 어흥!

약국으로 돌아온 서준은 어흥이의 등 위에 올라타서 마당을 산책하고 있었다.

유재학이 약초관리를 모두 맡아둔 이상 괜히 다른 일에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련은 서준 일행에게 한 번 더 휴식을 권했다. 어차피 며칠 수련해봐야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냥 사흘 정도 푹 쉬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두라 명했다.

“그놈은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물론 서준에게는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재학에게는 달랐다.

재배지의 시간의 흐름은 이곳과는 달랐다. 유재학이 거기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일 년 가까이 되는 긴 시간이었다.

지금 유재학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홀로 남겨져 약초를 캐고 있었다.

“백 선생님! 백 선생님!”

그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서준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백 선생님.”

두 사람이었다.

“백 선생님! 유명 길드랑 친해졌다고 요즘 너무 뜸하신 거 아니에요?”

창천 길드의 길드장 윤희주와 제1 전투조장 김소현이었다.

“아, 길드장님, 조장님! 오랜만이네요!”

“백 선생님, 요즘 두문불출하시고 약국에만 계신다던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약국 오픈 시간도 줄이시고…….”

저녁에 잠깐 약국을 오픈하는 것 외에는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서준을 걱정하는 듯이 윤희주가 물었다.

서준이 항상 련과 함께 훈련하거나 게이트 너머에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서준이 외부 활동을 줄인 것이라고 보았다.

련에게 훈련받는 장소가 저주받은 땅이라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었으니 더욱 그럴 만했다.

“아뇨, 요즘 훈련에 맛이 들어버려서요. 그냥 단련 좀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까……. 백 선생님 몸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김소현이 눈을 반짝이며 서준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몸의 밸런스가 좋아졌고 근육도 단단해졌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거……. 이제 제가 질 수도 있겠는데요?”

모하메드나 최운혁처럼 최상위 초인 정도는 아니었지만 김소현도 한가락 하던 헌터였다.

무려 창천 길드의 제1 전투조장직을 맡은 헌터였다.

당연히 이전의 서준은 김소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저런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사고 가속을 발동한다면 어떻게 쓰러트릴 수는 있었겠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서준은 일격으로 김소현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두 사람의 수준 차이가 너무 벌어져 김소현이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에이, 제가 어떻게 전투조장님을 이깁니까.”

그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서준은 말을 돌렸다.

련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급격히 강해질 수는 없었다. 훈련법 자체가 지구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 많았다.

하루에 소화해야 하는 훈련 내용만 서른 가지가 넘었다. 모두 기상천외한 방법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두 말해줄 수는 없었기에 서준은 힘을 숨기기로 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 그냥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서 차나 한잔 얻어 마시러 왔습니다.”

서준의 말에 윤희주가 답했다. GOTY 우승 직후 주가가 급격히 오른 창천 길드는 눈 붙일 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GOTY 우승 이후 많은 시간들이 흘렀으나 이제야 겨우 정리가 되던 참이었다.

모자란 직원은 보충했고 높은 명성에 이끌려 고급 인력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창천 길드는 웬만해선 고꾸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요? 들어가시죠.”

서준은 웃는 얼굴을 하며 두 사람을 약국 안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뭐가 그렇게 우울해? 너답지 않게.

‘그냥…….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내가 무너뜨리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되나?

웬만한 공격에는 이제 끄떡도 안 하는 창천 길드였다. 그러나 이번에 서준이 가하는 공격은 창천 길드의 상상 범위를 넘어서는 거센 공격이었다.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서준이 게이트를 닫는다면……. 창천 길드의 밥줄은 그대로 끊긴다.

현재 창천 길드는 게이트 방위 임무와 침투 임무를 제외하고도 제조업 같은 여러 방면의 일을 함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게이트 너머의 물건과 관련된 일이었다. 만약 게이트가 닫히게 되면 특별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창천 길드는 그대로 끝장날 것이다.

“음…. 길드에서 마시면 이 맛이 안 나던데……. 역시 여기가 호랑이 차 맛집이네요!”

김소현이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말했다.

“저도 같은 티백 썼는걸요?”

호랑이 약국에서 먹는다고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그렇지만 뭐 기분이라는 게 있는 법 아니겠는가? 김소현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거겠지.

“그나저나 신비는 요즘 잘하고 있답니까?”

신비를 창천 길드에 맡긴 후 신경을 쓰지 못했다. 요즘 들어 계속해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다 보니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신비가 워낙 성격도 좋고 재능이 뛰어나다 보니 알아서 잘할 테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신비요? 말할 것도 없죠. 너무 잘하고 있어요.”

“그래요?”

“예, 신비는 진짜……. 천재예요.”

“그런가요?”

별 역시도 말했었다. 정신비는 천재라고 서준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서준이 별의 수련법을 홀로 연습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만으로 서준보다 뛰어난 효율을 보여준 적도 있었다.

그런 아이가 길드의 유소년 양성 프로그램에서 어린 초인들과 경쟁이 될 리가 없었다. 신비는 굳이 서준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창천 길드에서도 특별관리하고 있는 유망주였다.

“아마 치료 능력만 본다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적수가 없을걸요?”

“그 정도예요?”

“네,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아마 백 선생님도 한번 보시면 놀랄 겁니다. 출력이 너무 강해서 오래갈 수 없는 게 문제지만……. 나이를 좀 먹으면 그 문제도 완전히 해결될 겁니다.”

나이가 많든 어리든 신비를 일으키는데 사용되는 기운의 양은 같았다. 물론 그 제어 능력이 뛰어나면 기운의 사용량을 줄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현장 자체가 원하는 최소한의 기운만은 어쩔 수 없었다.

작은 몸에는 작은 기운만이 담길 수 있는 법이다. 아직 어린아이인 정신비가 담고 있는 기운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 정도로 능력이 강력합니까?”

“예, 한 10초 정도는 일정 범위 내의 상처를 모두 치료하는 절대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도예요?”

“네?”

윤희주의 대답이 너무나도 허무맹랑했다. 범위 내의 모든 상처를 치료한다. 게다가 그 지속시간이 10초나 된다. 믿기 힘든 말이었다.

“저희도 처음에 보고 믿을 수 없었어요. 백 선생님이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고 했을 때는 그냥 팔불출인 줄로만 알았어요. 초인이기도 하고……. 백 선생님 부탁이니까 사실 받아준 거거든요. 근데 진짜 미친 재능이에요.”

“그러면……. 아까 한국에서 최고라고 하셨는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신비보다 뛰어난 치유 능력을 지닌 초인이 있다는 겁니까?”

만약에 있다면 섭외 1순위였다. 용과의 싸움에서 그런 치유 능력을 지닌 동료가 있다면 전력의 상승률은 단순히 두 배 세 배 수준이 아닌 열 배 이상의 수준이 될 것이다.

“아뇨, 알려진 바로는 없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어떤 기인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김소현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신비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이레귤러였다. 그런 존재가 이 세상에 또 있을 거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부모의 죽음으로 강한 열망을 가졌으며 별의 훈련을 받는 서준을 따라 하며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았다.

육체 능력이 필요 없는 능력이었다. 서준과 그 일행들처럼 무식하게 육체를 단련할 필요 없이 별의 훈련법에 따라 기운과 의지 그리고 영혼만 키우면 능력은 절로 강해진다.

이 모든 우연의 결실이 정신비였다. 이런 존재가 이 세상에 또 있을 거라고는 보기 힘들다.

“아쉽네요. 그런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될 텐데.”

“뭐 아쉬울 게 있나요? 신비도 조금 더 크면 게이트 다닐 테고……. 그럼 사망률은 뭐 현저히 낮아지겠죠.”

“그거뿐인가요? 나중에 백 선생님 약국 운영할 때도 도움 될걸요?”

“하하, 신비가 빨리 컸으면 좋겠네요.”

신비 정도의 치료 능력자가 없는 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고 정신비의 재능이 마냥 기쁜 서준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길드를 이끄는 자들이 저렇게 말할 정도니 신비 걱정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듯했다.

마음이 놓인 서준은 호랑이 차를 홀짝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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