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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16화 (116/150)

116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서준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있어선 안 됐다.

믿을 수 없는 목소리에 서준을 포함한 일행 전원이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백서준……. 맞지?”

그곳에는 웬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정확한 나이는 가늠하지 못하겠지만 외관으로만 보면 못해도 70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노인의 얼굴을 어째서인지 심한 화상을 입은듯한 상처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지 알아보겠어?

‘아니, 처음 보는데? 너도 모르지?’

-응, 나도 잘 모르겠는데?

기억을 되짚어봐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별에게 물어보았지만 별 역시 알고 있지 않았다.

별은 영혼이 찢긴 영향으로 지난 기억을 대부분 상실했지만 서준을 만난 이후의 기억은 모두 온전하게 가지고 있었다.

본래 엄청난 천재여서 그런 것인지 별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엄청난 기억력에 서준 역시 감탄할 정도였다.

그런 별이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고 난 후 서준은 더욱 심란해졌다.

“백서준! 맞잖아! 네 얼굴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고!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

하지만 노인은 서준의 어깨를 강하게 쥐고 흔들며 소리쳤다.

심지어 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왜 이러세요! 누구신데 그러시죠?”

노인이 우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 서준이 노인을 달래며 물었다. 그러나 노인은 엉엉 울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많이 벅차오른 듯했다.

“네놈이 한 짓인 거 다 알고 있어! 진짜 오랫동안 생각해봤다고! 네놈 말고는 이런 짓 할 사람 아무도 없어!”

노인은 흥분한 듯 횡설수설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일단 나가시죠. 나가서 얘기해요.”

서준의 일행은 몰래 잠입한 처지였다. 괜히 소란을 일으켜 이목을 끌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서준은 노인을 최대한 잘 달래며 주점 밖으로 이끌었다.

“여기서 얘기해요. 우리. 누구신데 이러시는 거예요? 절 어떻게 아시는 거죠?”

주점 밖을 나와 조용한 장소를 찾아낸 서준은 노인을 세워놓고 물었다.

서준 역시 많이 당황하고 황당한 상황인 데다 궁금한 점이 많았기에 말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왔다.

“그 말은 백서준이 맞다는 거군……. 그런데도 날 기억 못 하는 거야? 허!”

하지만 노인은 백서준이 본인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상황에 더욱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나를 까맣게 잊어? 이 새끼는 진짜 한 치의 양심도 없는 새끼구나!”

노인은 화가 났는지 욕을 하며 서준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모하메드가 노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노인이 소리치며 또다시 이목이 주목되기 시작된 것이다.

“조용히 좀 하세요! 조용히 말해도 다 말할 수 있잖아요!”

“이거 치워!”

하지만 노인은 모하메드의 손을 가볍게 쳐내며 모하메드를 뿌리쳤다.

놀라운 기예였다. 나이를 먹어 온몸에 근육도 다 빠지고 허리도 굽은 것처럼 보이는 노인이 모하메드를 뿌리쳐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믿기 힘든 일이 참 많이 일어나는군.

‘뭐 하는 분이지?’

저도 모르게 태도가 공손해지는 서준이었다.

“어르신, 어르신이 저를 어떻게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제가 어르신께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제발 조금만 진정하고 차분히 말씀해 주세요.”

모하메드를 손쉽게 뿌리친 노인에게 서준은 공손하게 물었다.

저 정도 능력을 지닌 자라면 젊었을 적 련처럼 뛰어난 무예를 지닌 자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 정도로 뛰어난 자에게는 존중을 해줄 이유가 충분했다.

“하! 정말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나 보군…….”

노인은 옷의 소매들 걷으며 자신의 팔뚝을 서준의 눈앞으로 가져다 대었다.

노인의 팔뚝 역시 얼굴처럼 온통 화상의 흉터로 가득했다.

“혹시 제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서준은 노인의 행동이 꼭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팔뚝과 얼굴의 화상이 서준 때문에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것뿐만이 아니지.”

노인은 몸 구석구석을 서준에게 보여주었다. 손등부터 시작해서 배와 등까지 화상을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노인은 그 상처를 서준이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짜야? 너 완전 쓰레기네!

별이 기함을 하며 서준에게 말했다.

‘아니야! 난 진짜 저런 적 없어! 내가 뭐가 좋아서 저런 짓을 해! 그것도 저런 할아버지한테!’

하지만 서준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노인이었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게 한 기억조차 없었다. 서준은 너무 억울해서 물었다.

“어째서 이 상처들을 제가 만들었다고 하시는 거죠? 알아듣기 쉽게 좀 말씀해 주세요!”

공손했던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서준의 말투는 조금 전보다 조금은 더 사나워졌다.

“허!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더니! 지금 네가 딱 그 꼴이구나!”

노인은 화가 난 듯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화상을 입은 얼굴이 구겨지니 그 모습이 꼭 악마와 같아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 적당히 하세요!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냐고요! 할아버지 이름은 뭔데요!”

서준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서준은 신경질을 부리며 노인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놔라!”

노인은 서준의 손을 가볍게 뿌리쳤다. 서준의 얼굴에 이채가 스쳤다. 모하메드를 튕겨낸 것이 우연은 아닌 듯싶다.

“내 이름은 유재학이다. 이제 알아보겠냐? 새끼야.”

노인은 서준의 손을 뿌리친 것이 별일 아니라는 듯 옷매무시를 고치며 이름을 말해주었다.

“유재학이요? 음…….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뭐라?”

하지만 서준은 그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김비서가 비명을 질렀다.

“아! 유재학이라면!”

“왜요? 뭔데요?”

하지만 김비서는 곧장 답하지 않고 살짝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에이, 아니에요. 그럴 리 없죠.”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별이 말했다.

-그놈 이름이 유재학이다! 최운혁이랑 같이 다니던 놈 있잖아! 네가 아지트 통째로 날려 보낸 놈!

‘아! 설마!’

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김비서가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

“리버스라는 범죄조직 두목 이름이 유재학이에요. 그런데 실종된 걸로 알고 있는데…….”

“허! 웬 이상한 안경잡이 놈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고 정작 네놈은 날 잊었구나!”

노인의 반응을 보니 노인은 리버스의 두목인 유재학이 맞는듯싶었다.

“아!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순간 놀란 서준은 생각으로만 할 것을 실수로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런 네놈은 어떻게 아직 그렇게 젊은 거지? 분명히 백 년 가까이 흐른 것 같은데…….”

-그렇게 된 거였군.

유재학은 무인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서준과 마주친 것이었다.

“그러면 그쪽은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 백 년 가까이 흘렀다고 한 것치고는 꽤 젊어 보이는데?”

유재학이 이곳으로 보내진 후 흐른 정확한 시간을 서준이 알지는 못했다.

게이트를 열어두었던 적도 상당했기에 시간의 흐름을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유재학의 말대로라면 백 년 가까이 흘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었지만 대충 계산해보아도 그 정도는 흘렀다.

그럼에도 유재학의 몸은 상당히 젊었다. 게다가 모하메드와 서준을 가볍게 뿌리칠 정도의 몸놀림을 지니고 있었다.

“정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 바다를 빠져나가는 게 제일 힘들었어…….”

유재학은 지난날을 회상하자 분노는 잠시 잊은 듯 추억을 떠올리듯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곳은 참으로 신기한 세상이더군. 나름 최상위에 위치한 초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따위는 우스울 정도의 강자들도 수두룩하거든. 아니, 그들은 강자 취급도 받지 못했지.”

사실이었다. 련에게 수련받기 전의 서준과 비슷한 수준의 병사가 훈련병이라고 들었다. 유재학이 그 당시의 서준보다는 강했겠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유재학 역시 잘 쳐줘야 훈련병 수준이었다.

“신기한 것이 이곳의 생물을 먹으면 힘이 강해지는 게 느껴지더군. 심지어 이곳의 원주민보다도 월등히 말이야. 덕분에 나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고 노화를 늦출 수 있었다.”

노인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괴로움이 도졌는지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서준은 별 감정 없이 이야기를 들으며 정보를 조립하고 있었다.

노인에게는 눈물 없이 말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서준에게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흥, 나도 나이를 먹으니 주책이 심해지는군. 어쨌든 네놈이 날 이곳으로 보낸 게 맞지?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사실이 궁금하다.”

“뭐, 제가 보낸 건 맞는데요.”

서준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서준을 끊임없이 죽이려 했던 범죄조직의 일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테러를 일으키며 무고한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했던 자였다.

액면으로 보이는 나이 차이 때문에 말에 존대가 섞였지만 실제로 존중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늙지 않은 네 모습을 보니 지구와 이곳은 시간의 흐름에 차이가 있는 거구나!”

서준의 답을 들은 유재학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챘다는 듯 환희의 표정을 지었다.

“나를 돌려보내 줘라! 내 무슨 짓이든 하겠다! 이곳은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제발 나 좀 돌려 보내줘!”

그러더니 이윽고 서준을 붙잡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변화였다. 유재학의 계속되는 감정변화는 서준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급작스러웠다.

-이해해라. 나이가 많아지면 원래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법이야. 심지어 백 살이 넘었다며? 원래 저 정도 나이 먹으면 다 저래.

별의 말이 사실인 걸까? 유재학은 갑자기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네가 여기 온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필요했기에 왔겠지. 내가 도울 수 있다! 뭐든 말만 해라! 내가 지금 여기 경비대장이야! 내 말 한마디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그 말 사실인가요?”

서준은 놀라며 물었다. 외지인인 유재학이 이곳에서 경비대장을 하고 있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유재학은 정말로 서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좀 전에 말했잖아! 여기 사람들보다 금방 강해질 수 있었다고! 출신이 불분명하다고 수십 년 동안 멸시받았지만 그래도 아부란 아부는 다 해가며 버텼다!”

게다가 그 힘도 이제는 강한 편에 속했을 테니 경비대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높다고 보면 높은 낮다고 보면 낮은 자리였지만 입김은 상당한 자리였다. 유재학을 회유하기만 한다면 서준은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근데 왜 돌아가려고 하는 거죠? 이곳에서 자리도 잡았고 돌아가면 오히려 쫓길 텐데요?”

“숨어 살면 그만이다. 그곳에 나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헌터가 있을 거라 생각하냐? 그리고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동일인이라고 생각하는 놈도 없을걸?”

맞는 말이었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돌아갈 이유가 되지는 않잖아요?”

“여기도 다 좋다 이 말이야. 범죄자로 숨어 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고! 좋은 집에 하인들 부려먹으며 사는 것도 좋다 이 말이야! 그런데 여기는 너무 낙후됐어! 화장실 갈 때마다 얼마나 고역인 줄 알아? 나는 비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지구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도시였다. 당연히 화장실의 수준도 중세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예전부터 깔끔함을 최고로 중시했던 유재학은 이 같은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고작이 아니야!”

“어쨌든 경비 대장이라고 했죠? 좋아요. 도와만 주신다면 돌려보내 드리죠.”

서준은 속내와 다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서준이 분노케 했던 테러조직의 리더였다.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단지 무고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그가 그 빚을 갚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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