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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14화 (114/150)

114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나 짧은 휴가는 체감으로는 매우 길었다.

아침에 일어나 재배지를 돌보고 오후에는 호랑이들과 산책을 하고 야간에는 약국 문을 열어 손님을 받았다.

단지 훈련하는 시간이 빠지고 재배지를 돌보며 호랑이들과 산책하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준의 몸은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그동안은 너무 몸을 혹사했으니까.

‘심심해서 문제지.’

문제는 너무 무료하단 점이었다. 련과의 훈련 이후 서준은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항상 직선거리로 빠르게 달려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서준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잊은 듯했다. 훈련도 전투도 없는 세상이 너무나도 지루했다.

‘예전 같으면 갑자기 문 앞에서 게이트도 열리고 했을 텐데…….’

큰일 날 생각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기를 희망하다니 미친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서준은 너무 무료한 나머지 게이트가 열리길 바라고 있었다. 예전의 서준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생각이었다.

‘아! 뭐 재밌는 거 없나?’

오세근도 찾아오질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찾아오지 못한 거다.

련의 엄명으로 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야 했다. 서로 만나는 것도 금지되었다.

못 미더운 네 사람이 만나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며 련은 서로의 만남을 금했다.

덕분에 네 사람은 모두 집에 처박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모하메드는 집이 다른 대륙에 있었기에 강제적으로 호텔 방 안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잠이나 자라.

간만의 휴식에 별은 기분이 좋은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별은 서준과 영혼이 반 정도는 합쳐져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기에 서준의 상태에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

서준이 힘들면 별 역시도 강제로 힘들어야 했다. 해서 별은 지금처럼 간만에 얻은 평화로운 날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재배지나 가봐야겠다.’

약국 안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너무 무료해진 서준은 게이트를 열고 재배지로 넘어갔다.

‘그나마 낫네.’

잔잔한 바람에 나뭇잎들이 쓸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기분 좋은 소리가 서준의 불만을 잠식시켜 주었다.

-여기 와서 뭐 하게? 딱히 정리할 것도 없을 텐데?

별의 말처럼 이미 재배지의 정리가 끝난 상태였기에 오늘은 딱히 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서준은 너무 무료했기에 무언가 일이라도 만들어 하지 않으면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다.

-예전 같으면 좋다고 누워서 잤을 녀석이……. 쓸모없이 부지런해져서 말이야.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서준은 약국 소파에 누워서 TV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긴장에 익숙해진 서준은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빨리 게이트를 닫든지 해야겠어. 이러다 병 걸린다 너?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사람이 항상 긴장한 채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다가는 별의 말처럼 정말 몸에 이상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게이트를 닫기 전까지 긴장을 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별의 말처럼 게이트를 닫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

따스한 바람과 적절한 햇볕을 즐기던 서준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보지 못했을 뿐 아마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익었네.

‘그러게? 좋은 먹일 줬으니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나무가 드디어 열매를 맺었다. 아니 맺은 건 이미 오래전부터였고 정확히 말하면 나무에 맺은 열매가 완숙하게 익었다.

첫 열매를 따고 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익은 열매였다.

-어떻게 바로 먹을 거냐?

‘남겨둘 이유도 없잖아? 몸에 좋은 건 바로 먹어야지.’

남겨둘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나눴다가는 썩어버리거나 벌레들이 꼬일 거다.

그러기 전에 먹어치우는 게 백번 나았다.

“네가 줄래? 내가 올라갈까?”

서준은 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이전부터 몸을 흔든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서준의 말에 대답하던 나무였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무는 서준의 부탁을 듣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열매가 맺힌 가지를 서준에게 내밀었다.

아마도 서준이 열매를 먹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고마워.”

서준은 나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잘 익은 열매를 땄다. 열매의 생김새는 지난번과 같이 복숭아를 닮았다.

“잘 먹을게.”

먹기 전에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서준은 곧바로 열매를 깨물었다.

-어때? 뭐가 좀 달라지는 게 느껴져?

‘아직 씹지도 못했다.’

입안에 덩어리가 들어있을 뿐 아직 제대로 씹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서준은 열매의 엄청난 당도에 황홀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서준의 입놀림이 빨라지면서 순식간에 열매를 모두 씹어먹었다.

-어때? 어때? 뭐가 좀 달라진 게 느껴져?

‘글쎄다?’

지난번 처음으로 열매를 먹었을 때는 변화를 곧장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아주 단 음식을 먹어서인지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피로가 풀렸을 뿐이다.

피로가 남아있었다는 것도 열매를 먹어서 알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최상의 상태인 줄로만 알았으니까.

‘근데……. 진짜 뭔지 모르겠네? 아무것도 안 느껴져.’

-꽝인가? 어쩐지 너무 쉽게 건네주더라. 쯧쯧쯧, 이제 나무한테도 무시당하는 꼴이네.

‘아, 몰라. 뭐 있겠지. 한숨 자고 나면 키가 쑥 크거나 하지 않겠어?’

-더 크면 과하지 않냐?

‘그러면 우리 난쟁이 왕자님이 먹었어야 했나?’

‘하지 마라!’

서준은 열매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그대로 게이트를 넘어와 약국으로 돌아왔다.

“왔냐?”

그곳에는 련이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까 이제는 진짜 지구인 같네요.”

“이 텔레비전이라는 물건은 진짜 보물이다. 우리 세계에도 이런 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칼밥도 안 먹고 살았을 텐데.”

“TV랑 칼을 안 쓰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서준이 되묻자 련은 서준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답했다.

“이런 재밌는 물건 있으면 칼 안 썼지. 심심해서 칼 들고 다닌 건데.”

심심해서 저만큼 강해졌다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생각하면서 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부님도 허세는 참…….”

“뭐라고?”

서준의 도발에 련이 화를 내며 서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련의 눈이 오백원짜리 동전만 하게 커졌다.

“왜 그래요? 뭐 있어요?”

련의 놀란 표정을 보고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뒤에는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평범한 약국의 선반이 있었을 뿐이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뭐가요?”

그제야 서준은 련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련이 왜 저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리 와봐라.”

련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파에서 날아오듯 서준에게 다가왔다. 서준이 다가오는 걸 기다릴 수 없는 눈치였다.

“내놔.”

련은 서준이 뿌리칠 겨를도 없이 서준의 손을 낚아채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서준의 몸을 더듬대기 시작했다.

“뭐해요? 미쳤어요?”

당황한 서준이 련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럴 수 있을 리 없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그제서야 련이 서준을 놓아주며 물었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뭔 소린지 어떻게 알아요? 왜 그러는데요?”

“지금껏 뭐 하다 왔는지 처음부터 설명해봐라.”

서준은 어쩔 수 없이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껏 있던 일을 모두 설명했다.

련의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서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열매라……. 영약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아무리 영약이라도 이렇게는…….”

련은 다시 소파에 앉아서 혼자 중얼대기 시작했다.

“왜요? 뭐 달라졌어요? 저는 못 느끼겠는데요?”

서준은 그제야 련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열매 이야기와 영약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련에 눈에는 서준의 변화 점이 보인 것이다.

-호오……. 짐이 보지 못한 걸 느꼈다? 저놈 허세가 참 심하구나!

몸의 주인인 서준 역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서준과 영혼을 공유하는 별 역시도 느끼지 못했다.

별의 기억에 문제가 있고 능력에 제한이 있다고 해도 별은 별이었다.

그동안 별이 서준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지금 서준의 변화는 알아채기 힘든 수준이었다.

별조차도 지금의 상태로는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변화였다. 적어도 련 정도의 수준까지는 회복해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변화였다.

그러나 련은 그 미세한 변화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왜요? 뭔데요? 저도 알아야 대응을 하죠.”

서준 몸의 변화였다. 서준도 알고 있어야 훗날 있을 일에 대응할 수 있었다.

“됐다. 어차피 곧 스스로 알게 될 건데 말해 뭐하냐? 입만 아프게.”

그러나 련은 서준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서준은 계속해서 련을 졸라봤지만 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련은 한번 결정한 일을 되돌리는 경우는 없었다. 련의 고집은 그만큼 질겼고 서준은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음 날이 밝았다. 휴가의 마지막 날은 끝났고 이제는 다시 긴장의 세계로 돌아갈 때였다.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이른 아침부터 오세근이 약국 문을 열며 들어왔다.

뒤이어 김비서가 들어왔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모하메드도 도착했다.

게이트를 닫기 위해 함께하는 동료들 모두가 약국으로 모인 것이다.

“쯧쯧, 며칠 쉬었다고 긴장이 풀어졌네. 이놈이!”

련은 못마땅한 듯이 오세근의 머리통을 한 번 쥐어박았다.

“악! 왜 맨날 저만 보면 때리세요!”

“너만 보면 화가 나서 그런다!”

련은 반항하는 오세근을 한 번 더 때리고도 모자란 듯 계속해서 씩씩거렸다.

련의 눈에는 모두 보였다. 짧은 휴가가 끝난 후 오세근은 긴장이 완전히 풀어져서 돌아왔다.

물론 그것이 그의 최고 장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긴장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련은 제자들의 긴장을 다시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사부님 적당히 하시고 이제 그만 넘어가시죠.”

서준이 적절한 때 잘 끊었다. 아마 조금만 더 갔으면 오세근은 련에게 사정없이 얻어터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게다가 애초에 서준은 긴장을 풀어놓지 않았다. 휴가 기간에도 항상 과한 긴장 상태에 있었다.

“쯧쯧, 한 명은 너무 긴장을 안 해서 탈이고 한 명은 너무 긴장해서 문제네. 영약을 먹은 게 천운이었지 큰일 날 뻔했어 정말.”

“뭘 먹어요? 사부님 혼자 뭐 맛있는 거 드셨어요?”

련의 혼잣말을 엿들은 오세근이 또 중얼대다가 기어코 련에게 한 대 더 얻어터졌다.

오세근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게이트 너머로 도망갔다.

“갔다 와서 보자고요! 복수할 거에요!”

“저 새끼는 돌아오면 죽일 거다. 정말로.”

이후 화가 난 련을 달래느라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슬슬 넘어갈 시간이 되었다.

서준은 일행들과 호랑이들을 챙겨서 게이트를 넘어갔다.

“자 가봅시다!”

게이트를 넘어간 서준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이번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그 목적지도 련이 일러주었기에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물론 련이 지구로 넘어온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기에 변했을 수도 있지만 련은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서준과 일행들은 련이 일러준 장소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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