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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13화 (113/150)

113화.

‘여기서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랜만이네.’

련에게 강제로 짧은 휴가를 부여받은 서준은 재배지 섬으로 넘어와 있었다.

본래라면 일주일간 회복에만 전념해도 치료할 수 없는 수준의 부상이었다. 서준이 만든 특제 약을 먹고 초인의 말 그대로 초인적인 회복력으로도 다스리기 힘든 상처였다.

그러나 서준은 하룻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몸을 움직일 정도의 몸 상태로 회복되었다.

-재능은 하찮아도 회복력만큼은 정말 괴물 같군.

련과 별 역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두 사람에게 서준의 강점을 물어본다면 약초를 다스리는 법이나 게이트를 여는 능력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무식한 회복력이야말로 진정한 서준의 장점이었다.

이렇듯 무식한 회복력이 있기에 고통스러운 훈련도 말끔히 모두 소화해 낼 수 있었고, 더욱 빨리 강해질 수 있었다.

근육이란 본디 찢어진 것이 회복하면서 두꺼워지는 것이었고 이는 영혼이나 의지 그리고 기운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쉬는 게 낫지 않겠냐? 용 잡으려면 진짜 만전을 다해야 할 것 같은데…….

별의 말도 틀린 것은 없었다. 악룡은 호랑이 괴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할 것이다.

봉인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용은 용이다. 처음 마주한 그날, 서준은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 죽음을 느꼈다.

봉인되어 있어 그 이후로 용은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약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준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괜찮아, 어차피 바로 용 잡으러 갈 것도 아니고 그 전에 할 일이 있잖아?’

어차피 지금 악룡을 잡아봐야 아무 소용 없었다. 그 전에 멧돼지 괴수가 지니고 있던 별의 영혼 조각을 회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용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그 부분이 좀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여기 너무 지저분해졌어. 예전엔 종일 있었는데……. 요즘 너무 뜸했잖아? 관리할 필요가 있어.’

그보다 재배지 섬의 상태가 심각했다. 물론 훈련이 끝나면 짧은 시간이나마 넘어와 관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 넓은 범위를 그 짧은 시간에 관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거기에 최근 들어 호랑이 괴수를 잡겠다고 돌아다니느라 정말 관리 자체를 못 했다.

게다가 서준이 지구로 넘어와 게이트를 닿아놓은 시간 동안 100배 빠른 시간의 흐름으로 흘러갔으니 그 상태는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내 능력의 원점이 있는 곳 아니냐. 관리해 줘야지.’

최근 들어 서준 본신의 힘 자체가 강해지면서 약초에 의지하는 것이 적어지기는 했지만 서준의 초인 생활의 시작은 이 재배지 섬에서부터였다.

서준의 돈도 이곳에서 나왔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서준의 능력이 강해지기도 했다.

서준으로서는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었다.

‘오랜만에 타 보는데?’

-어디 한번 달려 보거라.

서준은 오랜만에 산악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동안 방치해둬서 시동을 거는 데 애를 먹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르릉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다.

‘이제는 내가 달리는 게 더 빠르겠네.’

예전에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산악 바이크를 타고 다녔는데 이제는 답답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서준이 달리는 속도가 산악 바이크의 속도를 넘어선 지 오래였고 그렇게 달린다고 해서 서준이 지칠 일도 없었다.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물건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바람도 선선하고.’

그래도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 그런가 기분은 좋았다. 서준은 산악 바이크를 천천히 몰며 주위의 경치를 눈에 담아 두었다.

본래부터 엄청난 경관을 지닌 재배지 섬이었다. 매일같이 찾아오다 보니 익숙해져 잘 몰랐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주위를 제대로 살펴보니 역시 장관이었다.

산악 바이크를 타고 재배지 섬의 중심에 도착한 서준은 바이크에서 내려 잡초들을 뽑아대기 시작했다.

‘얘네들도 밖에 가져다 팔면 비싸게 팔리는데.’

-네놈한테는 푼돈이잖아?

‘그러게……. 어느새 그렇게 됐네.’

잡초라고는 하지만 모두 이계의 식물이었다. 연구용으로도 엄청난 수요가 있는 물건들이다.

가져다 팔면 상당한 돈을 만질 수 있었다.

그러나 서준이 만지기에는 이제 정말 노력 대비 값어치가 너무 낮았다.

‘좋은 일인데……. 기분이 꼭 좋지만은 않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준은 이런 약초들까지 모두 모아서 한 번에 팔아넘겼다.

연구소 같은 곳에 모아서 팔면 상당한 돈을 만지게 해주는 물건들이었다.

호랑이들의 마당을 만들어 주기 위해 윤희주에게 큰돈을 빌린 서준은 빚쟁이였고 한 푼의 돈 역시 소중했으니까.

상황을 보면 상당히 좋아진 게 맞는데 그럼에도 서준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돈이 최고지.

‘그건 맞아. 돈이 최고야. 우울할 때 통장 잔고를 보면 다 풀어진다고.’

서준과 오랫동안 영혼의 공간을 공유했던 별 역시 서준에게 옮았는지 황금만능주의를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 역시나 돈이 최고다. 돈이면 못 하는 게 없다.

‘게이트가 닫히면 내 능력도 사라지는 걸까?’

-글쎄다. 그때 가봐야 알겠지.

게이트를 닫고 싶었다. 그것이 옳은 일이었다. 서준의 마음과 머리 역시 모두 그를 따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준은 불안했다. 게이트를 닫으면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이 장소에 다시는 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서준은 많은 돈을 벌었고 지구의 인간 중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 강해졌다. 그 괴물 같던 최운혁 역시 지금의 서준을 마주한다면 겁을 먹고 오줌을 지릴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에도 서준이 마음이 불안한 것은 여기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서준의 자신감의 근원이 되는 게이트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갑작스레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서준은 불안을 지우기 위해 더욱더 잡초 뽑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기계처럼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머리를 비우기에 무엇보다 좋았으니까.

-그래서 게이트를 안 닫으려고?

‘아니, 그럴 일은 없어.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네 영혼은 모두 모아줄게. 걱정하지 마.’

서준과 연결되어 있는 별이 그런 서준의 걱정을 눈치챈 듯 직설적으로 물었다.

-굳이 닫지 않아도 돼. 짐의 영혼이 모두 모인다고 해도 게이트가 닫히는 일은 없을 거다.

별의 영혼 조각이 모두 모인다고 해도 별의 기억이 돌아올 뿐 게이트가 닫히는 일은 없었다.

-그냥 네놈 마음 가는 대로 하거라. 어차피 주도권은 너에게 있어.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것도 너뿐이다. 네가 가만히 있으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 없고 비판할 수도 없어.

오세근과 김비서 그리고 모하메드 역시 단편적인 사실만 알뿐 모든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영혼을 모았는데 일이 잘 안 풀렸어. 같이 변명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아니, 그래도 닫아야지.’

그럼에도 서준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짐하듯 말했다. 본인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듯 다짐하며 답했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돼.

‘이미 충분히 이기적이야.’

충분히 이기적으로 살았다. 사실 서준이 지닌 약초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서준이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더 싸게, 일반인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하게 내놓아도 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서준은 공급을 제한했고 가격을 조정했다.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도 충분한 일이었다.

‘뭐, 능력이 사라진다고 해도 상관없어.’

게이트를 닫음으로써 능력이 사라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초인들이 모두 예전 일반인의 몸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내 스스로 단련한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더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차원문을 여는 일도 스스로 해낼 수 있겠지.’

게이트가 열린 날 지구인들은 본인의 능력을 벗어나는 능력들을 손쉽게 얻었다. 그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지를 단련하고 기운을 모으고 영혼을 강인하게 키운 것은 능력 밖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서준 스스로 단련해 쟁취한 것이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일군 성은 사라지지 않겠지, 뭐.’

별의 말에 따르면 차원문을 여는 것도 열심히 단련하면 가능한 기술이라고 했다.

게이트가 열림으로써 각성한 능력이 사라졌다고 해도 다시 배우면 그만이었다.

‘한 번 해본 거니까 남들보다는 수월하지 않겠어?’

물론 차원문을 여는 건 련도 할 수 없는 고차원의 기술이었다.

그러나 서준은 이미 해본 일이다. 그것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다뤄본 신비였다.

적어도 남들보다는 그 수준에 이르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겠는가.

서준은 스스로를 위안하며 다짐했다.

-그래, 네 뜻이 그런 거라면 게이트를 닫아라. 짐은 영혼만 되찾으면 그만이니.

별은 저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서준을 응원하고 있었다. 철없는 어린 황제였지만 그 역시 백성들을 다스리던 지도자였고 통치자였다.

지금 서준의 마음이 곧 예전 별의 마음이나 다름없었다.

“오래 굶었지? 많이 앙상해졌네.”

어느덧 잡초정리를 모두 끝낸 서준은 나무 앞에 섰다. 아직 그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나무다.

어쩌면 평생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서준에게 열매를 내줌으로써 서준을 강하게 해준 나무다.

고마운 녀석이었다.

-앙상하다고 하기엔……. 이미 너무 커버렸는데.

물론 앙상하다고 하기엔 그 크기가 이미 너무 컸다.

나무는 최근 들어 괴수의 시체를 공급받지도 못하고 있었다. 단지 지력을 흡수함으로써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유년기 시절 급격한 성장이 필요했을 때보다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무가 필요한 에너지에 비해 지력은 너무 모자랐다.

“그래도 오늘은 맛있는 거 가져왔다. 기대하라고.”

서준은 땅을 파며 나무에게 말했다. 예전에는 호랑이들과 한참을 파야 했던 땅인데 이제는 혼자서도 금방이었다.

서준은 그곳에 세 구의 시체를 집어 던졌다. 바로 호랑이 괴수의 시체였다.

“이건 좀 맛있을 거다.”

맛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껏 서준이 상대했던 그 어떤 괴수보다도 강력했던 놈이니까.

심지어 한 놈은 별의 영혼을 먹었던 녀석이다.

서준은 땅을 덮으며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고개를 끝까지 올려야 겨우 쳐다볼 수 있게 된 나무에는 아직 덜 자란 열매가 하나 맺혀있었다.

‘이건 좀 기대되네.’

처음 열매를 먹고 난 후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기존의 능력 역시 강화되었다.

만약 저 두 번째 열매를 먹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궁금증이 서준의 머리를 덮었다.

호랑이 괴수의 시체를 나무에게 넘겨준 것도 모두 이유가 있었다.

저 열매는 괴수의 양분을 빨아먹고 자라서 서준이 악룡을 잡을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하여간 욕심은 많아서.

‘내가 또 욕심 빼면 시체지.’

서준은 부정하지 않았다.

서준은 저 열매가 다 자라나는 날이 기대돼 콧구멍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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