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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12화 (112/150)

112화.

“일이 잘 풀린 모양이구나. 모자란 놈들끼리 운이 좋았어 그래.”

게이트를 넘어오던 서준의 일행을 보자마자 련이 꺼낸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련의 표정은 무언가 후련한듯한 표정이었다. 모자란 제자들을 보내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는데 무사히 돌아오니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련은 서준이 버퍼링을 극복하고 전투에서 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몰랐기에 사실 조금 힘든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넷 중 한두 명은 죽거나 크게 다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두 무사히 돌아오니 안심이 되는지 미소를 지으면서도 제자들을 타박했다.

“쯧쯧, 미개한 동물 몇 마리 잡는 거로 이렇게 긴 시간을 끌다니…….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어.”

사실 별의 영혼을 씹어먹고 자란 괴수들을 미개한 동물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많은 괴리가 있었지만 련의 입장에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련이 세 마리의 호랑이 괴수를 마주쳤다면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손쉽게 처리했을 테니까.

물론 호랑이 괴수들이 련의 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타고난 감각을 지닌 괴수들이었고 련과의 수준 차이를 스스로 알아채 숨어버렸을 테니까.

“서준 형님이 다 했습니다. 와 마지막엔 진짜 사부님이 직접 싸우는 줄 알았다니까요?”

제일 마지막에 게이트를 넘어온 오세근이 련에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서준이 마지막에 보여준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한 움직임이었다.

호랑이 괴수의 대장 격 되는 놈의 연속된 공격을 아주 손쉽게 피했고 아주 간결한 공격으로 단숨에 쓰러트렸다.

그 모습은 꼭 오세근이 보기에 네 사람을 한 번에 상대하는 련의 모습을 닮았었다.

서준이 련의 밑에서 수련한 지 어느덧 반년도 더 지났고, 그 노력도 엄청났다. 서준의 움직임에 련의 모습이 겹쳐가는 건 당연한 순리였다.

아마 앞으로는 그 싱크로율이 더욱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기엔 상처가 조금 심해 보이는데? 내상도 좀 있어 보이고.”

련이 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괴수들을 처치한 후 전리품만 챙겼고 약을 먹거나 하며 상처를 치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구로 돌아갈 것이기에 치료는 뒤로 미뤄두었다. 해서 서준은 처음 호랑이 괴수와의 격돌에서 입은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후 전투가 쉽게 끝나서 멀쩡해 보이던 감이 있지만 기절했을 정도로 큰 상처였다.

전투 중 발생한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등의 호르몬 작용으로 억지로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아마 승리의 흥분이 모두 가시고 나면 서준은 고통으로 몸부림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치료함으로써 훗날 쏟아져 올 후유증을 미리 제거할 수 있었다.

“뭐, 좀 다치긴 했지만 크게 문제는 안 될 것 같아요. 별로 아프지도 않고.”

서준은 팔을 붕붕 돌리며 답했다. 실제로도 지금은 고통을 느끼고 있지 않으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쯧쯧, 멍청한 놈. 약사라는 놈이 제 몸 하나 돌볼 줄 모르는구나.”

하지만 련의 눈에는 서준의 몸이 지니고 있는 부담을 한 번에 파악할 능력이 있었다.

해서 련은 서준의 행동이 건방지고 치기 어린 행동으로 보였다. 보통 큰 힘을 단숨에 얻게 된 놈들이 저랬다.

지금은 이렇게 대단한 련 역시도 과거에 그랬으니 서준이라고 다를 수는 없었을 거다.

나중에 크게 후회하고 날 일이 생기고서야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중2병이었다.

“지금 당장 약이나 처먹거라. 내일 자고 일어나서 후회하지 말고.”

서준의 상처들은 지연성 근육통이랑 별다를 게 없었다. 지금은 호르몬 작용 때문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강한 운동을 마친 뒤에 정리 운동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한숨 자고 난 후 온몸이 근육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서준의 상처 역시 한숨 자고 난 후에 비명을 질러댈 것이 분명했다.

“에이, 걱정도 팔자셔. 우리 사부님도 이제 다 늙었나 보네.”

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초록 활력초로 만든 약을 집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지금껏 련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었다. 지금 고통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련이 이렇게 말했다면 이게 맞는 거다.

서준의 련에 대한 믿음은 이렇듯 엄청났다.

“그래도 저보다는 애들 치료가 우선이에요. 사부님이 조금만 돌봐 주세요.”

하지만 서준의 눈에는 본인보다 다른 이들의 상처가 눈에 보였다.

서준이 기절한 사이에 세 명의 창수와 세 마리의 호랑이들은 서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한 마리로도 모두의 공격을 버텨내고 서준을 기절시켰던 호랑이 괴수다.

그런데 그보다 강한 두 마리의 괴수를 서준 없이 상대했으니 정말 힘든 일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들의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으니까.

“저렇게 눈에 보이는 상처가 오히려 돌보기 쉬운 법이지.”

약초를 다루는 능력은 서준이 월등했다. 그러나 그 상처를 돌보는 기술 자체는 련이 월등했다.

서준이 련에게 동료들을 돌봐달라 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군대를 이끌며 수많은 전투를 행해온 련은 서준이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경험이 있었다.

련은 서준이 만들어 놓은 여러 약들을 이용해 제자들과 호랑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외상보다 내상이 더욱 다스리기 힘든 법이다. 네놈도 약초꾼이니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쯧, 하여간 철이 덜 들었어.”

물론 서준도 알고 있었다. 단지 전투 후 흉흉해지고 침체된 분위기를 조금 풀어보고자 장난스레 답했을 뿐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동료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자신이 기절한 동안 목숨을 걸고 지켜준 동료들이었다.

서준이 쓰러지지만 않았더라면 저렇게 다치지 않을 수만 있었다. 단련된 몸에 적응을 조금만 더 빨리했더라면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본인은 괜찮았기에 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련이 보기에는 매우 심한 상처지만 서준은 충분히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약 몇 개만 먹으면 치료될 상처들이었다. 성장을 촉진시키는 기운을 지닌 서준의 몸은 본인 스스로에 대한 생명력 역시 충만히 채워주었고 상처의 치료 역시 보통 사람들보다는 월등한 자가 회복력으로 극복 가능했으니까.

거기에 본인이 만든 약까지 합쳐진다면 정말 자고 일어나면 극복할 수 있는 상처들이었다.

“저는 진짜 괜찮으니까 애들이나 좀 열심히 봐줘요. 하여간 노인네 나이 먹으니까 걱정만 많아졌어.”

약을 몇 개 집어먹은 서준은 그대로 소파로 몸을 집어던졌다. 아직 전투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 고통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피로감만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서준은 약 기운이 몸 안을 헤집는 걸 느끼면서 그대로 소파에 엎어져 잠에 빠져들었다.

“으으윽…….”

아침 햇살이 서준의 눈을 찔렀다. 소파에 엎어져 그대로 잠에 빠져든 서준은 해가 뜰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본래라면 아침 훈련을 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수련이 없었다.

전투를 치른 후 휴식을 하는 것도 훈련이라며 련이 사흘간의 강제 휴식을 명했기 때문이었다.

“으아압!”

서준이 엎드려 누운 채 그대로 기지개를 켜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큰 상처들은 대부분 아물었고 내상도 상당히 호전되었지만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었다.

본래는 이대로 한 달 이상을 요양해야 하는 몸이지만 서준의 자가 회복력이면 련이 부여한 사흘간의 휴식으로 충분히 완치될 것이다.

-이제 일어났냐! 빨리 짐의 영혼을 확인해 보거라!

서준이 눈을 뜨자마자 별이 보채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별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를 제대로 챙겨두지도 않은 채 잠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서준은 소파 옆에 놓인 책상 위에 놓인 목걸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거 맞지?’

-그래! 맞다! 아주 위대한 영혼의 흔적이 느껴지는 걸 보니 짐의 영혼 조각이 맞구나!

특별히 화려한 물건은 아니었다. 단순히 묵색의 줄로만 이루어진 목걸이였다.

아마도 이 묵색의 줄 자체가 특별한 줄이겠지만, 그것이 뭔지 서준이 알 도리는 없었다.

호랑이 괴수는 이 목걸이를 송곳니에 걸어두고 있었다. 사실 이 목걸이 자체가 호랑이를 어떻게 강화시켰는지 알 수는 없었다.

본래 종 자체가 강력하고 거대하고 날쌘 종족이었다. 이 목걸이를 지니고 있던 호랑이 괴수의 몸집이 다른 두 마리보다 조금 더 크긴 했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었다.

-아마 짐의 영혼을 손에 넣은 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던 거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짐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괴수가 너 따위한테 질 리가 없잖아!

그 와중에 별의 중2병이 다시 도졌다.

이럴 때는 한번 짓밟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대로 놔두면 날이 새도록 입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별과 영혼이 연결되어 강제로 별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 서준의 입장에선 그건 정신력의 소모가 무척이나 큰일이었다.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글쎄다? 네 영혼 지니고 있는 놈들 벌써 몇 놈이나 잡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손가락으로 다 셀 수는 있으려나?’

-으…….

반박할 수 없는 서준의 말에 별이 부들댔다. 하지만 별이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고 영혼이 찢겨나간 지금 상태의 별의 지능은 어린아이와 별다를 것도 없었으니까.

‘뭐, 동상 보니까 원래 그냥 애던데?.’

-짐은 애가 아니다!

‘그럼 난쟁인가?’

-아니다!

동상이나 아티팩트의 크기를 보면 실제 별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그 크기로 대륙 최강이니 뭐니 하던 소리를 들었던 게 밑지기는 않지만……. 뭐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믿어야지 별수 없었다.

‘알겠어, 알겠어. 진정해라. 어쨌든 이제 한 개 남았네?’

-맞다! 남은 한 개만 더 모으면 네놈도 이제 짐의 위대함을 알 수 있을 거야!

물론 정확히는 두 개가 남았다. 멧돼지 괴수가 지니고 있던 아티팩트는 서준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그거 다 모으면 기억 돌아오는 거 맞지? 그럼 게이트 닫을 수 있는 것도 맞고?’

-당연하지! 짐이 못 하는 건 없다!

모아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별을 믿는 수밖에 없다.

별의 기억이 돌아온 후 련과 말을 맞추다 보면 뭔가 해결책이 나오겠지.

서준이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별의 기억뿐이었다.

‘정 안되면 스승님을 잡아둔 그놈들 찾아가 봐야지 뭐.’

-안 될 일은 생각 마라! 짐의 영혼만 모두 모이면 다 된다니까!

그렇다고 서준이 그 뒷일을 생각해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

년에게 추적 장치를 달아놓고 멧돼지 괴수가 지닌 아티팩트의 회수를 명했던 집단이 있다.

아직 련은 서준의 수준이 미미하다며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게이트와 연관된 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별의 영혼 조각을 그들이 관리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어찌 된 것 확실한 건 별의 영혼 조각과 그들이 연관되어 있었고, 그것이 현재 지구에서 벌어지는 게이트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 한 발만 더 디디면 돼.’

오늘도 역시 아침부터 뉴스는 소란스러웠다. 어느 나라에서 어느 게이트가 열려서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다쳤다 하는 소식이 울려 퍼졌다.

서준은 하루라도 빨리 이 고통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정말 한 단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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