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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11화 (111/150)

111화.

-……나!

서준의 머릿속에 조용한 외침이 울리고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뜨문뜨문 들리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눈떠!

‘별… 이냐?’

서준은 그 목소리가 별의 목소리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영혼이 융합되어 오랜 기간 함께한 사이였다.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음에도 서준은 별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 그러고 있을 때냐? 정신 차려라!

‘왜…. 그러는데?’

하지만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상황정리는 되지 않았다. 뭐 때문인지 이전의 기억이 선명하지가 않았다.

-정신 차려 새끼야!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건데!

‘내가 지금 누워 있나?’

서 있는지 누워 있는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단지 주변이 온통 깜깜한 걸 토대로 눈을 감고 있다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아니면.

‘내가 지금 자고 있는 건가?’

-자고 있긴! 처맞고 쓰러졌다! 이 새끼야!

‘어?’

처맞고 쓰러진다. 라는 말은 서준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지금껏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쓰러진 적은 거의 없었다. 쓰러지더라도 적을 먼저 처치하고 힘을 다해 쓰러졌을 뿐이다.

그런데 처맞고 쓰러졌다? 서준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호랑이한테 처맞고 쓰러졌다고!

‘호랑이? 호랑이들이 나를 왜 때려?’

호랑이, 서준이 갓 각성했을 때부터 키웠던 아이들이다. 세 마리 모두 갓난쟁이일 때부터 서준의 손을 탔다.

장난으로라도 서준을 공격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서준이 곧 아비였으니까.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호랑이 괴수랑 싸웠잖아!

‘호랑이들을 괴수라고 부르지 마…….’

상황 파악을 할 수 없는 서준은 호랑이를 괴수라 부르는 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귀여운 아이들을 어떻게 괴수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서준의 이런 반응에 별의 말투도 점점 더 단호해졌다.

-기억 안 나? 내 영혼 조각 찾으려고 호랑이 괴수랑 싸웠잖아!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워졌던 기억들이 모두 채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겉면만 스케치되는 듯싶더니 어느새 흑백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찬란하게 빛을 되찾았다.

‘결과는…. 어떻게 됐지? 분명히 내 공격도 제대로 들어간 것 같은데…….’

모든 기억이 돌아온 서준이 별에게 물었다. 서준이 기억하기로는 서준의 스트레이트 역시 제대로 들어갔다.

단지 충격량이 너무 커 서준이 튕겨 나왔고 그대로 나무에 처박혀 쓰려졌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었다. 해서 서준은 호랑이 괴수의 상태를 알 수 없었다.

-나도 몰라! 네놈이 기절해서 내 시야도 그대로 끊겼어!

하지만 별 역시 알고 있지 않았다. 별은 서준에게 기생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서준의 영혼에 본인의 영혼 조각을 심어둔 후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해서 서준이 기절함으로써 별 역시 바깥세상을 볼 방법을 잃었다. 별이 볼 수 있는 건 서준의 내면세계뿐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일어나라고!

서준이 죽으면 별 역시 그대로 끝장이다. 서준 영혼에 별의 영혼이 기생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서준이 죽으면 별의 영혼 역시 사라진다.

해서 별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기절한 서준의 내면세계에서 서준의 의식을 찾아내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통했다.

“으윽…….”

서준이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 시야가 매우 좁았다. 실눈으로 보이는 범위는 모든 것을 파악하기에는 모자랐다.

서준의 눈앞에 기다란 파란 물체가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뭐지?”

서준은 자연스럽게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파란색의 줄을 잡았다.

낯선 감촉이었다. 날카롭고 거친 감촉이 서준의 정신을 깨웠다.

-크르릉?

날카롭고 거친 것은 무언가의 꼬리였다. 짙은 파란 털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였다.

꼬리를 잡힌 생명체가 당황한 듯 서준을 바라봤다.

호랑이 괴수였다. 서준이 쓰러트린 놈보다 훨씬 더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아, 내가 더 당황스럽네?”

저도 모르게 괴수의 꼬리를 잡았다. 그 와중에 괴수가 황당한 듯 쳐다보니 서준 역시 당황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원래대로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 명의 헌터가 합심해서 제일 작은 호랑이 괴수를 한 마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서준은 기절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한 거냐?

‘나도 모르겠는데?’

그런데 그보다 훨씬 큰 호랑이 괴수였다. 당연히 훨씬 강력한 개체였고 속도 역시 훨씬 빨랐다.

서준은 기절해서 보지 못했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세 명의 창수를 농락하며 모든 공격을 피하던 녀석이다.

한데 서준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잡았다. 적의는커녕 어떤 의도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절상태에서 깨어나면서 눈앞에 흔들리는 무언가를 잡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 천운은 불리한 상황을 역전케 하기 충분했다.

-야! 방법이 뭐가 중요하냐! 일단 잡았으면 된 거지! 끝내버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괴수의 꼬리를 잡고 있는 서준의 손에서 초록색의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아아앙!

어떤 의지도 없던 서준의 손에서 적의가 피어오르자 괴수가 사납게 짖으며 서준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꼬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서준의 손에서부터 시작된 나무줄기들이 괴수의 꼬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무줄기들의 두께는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거미줄과 비견될 만큼 얇디얇은 줄기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엮이고 엮여 끊어지지 않는 질긴 줄들을 만들었고 그 줄기들이 호랑이 괴수의 온몸을 엮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와아앙!

끊어보려 노력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줄기는 계속해서 괴수의 몸을 옭아매고 있었고 서준의 손끝에서 새로운 줄기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으니까.

-그간 고생들이 개고생은 아니었나 보네?

‘그럼, 스승님이 말씀하신 건데.’

그간 힘든 훈련을 계속해가면서도 약초를 계속 다루었고 약국도 운영했다.

약초꾼으로서, 약사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왔다.

그것만으로 서준의 약초를 다루는 능력들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의지와 영혼이 서준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줄기들이 호랑이 괴수의 움직임을 완전하게 차단했다. 이것은 서준이 손에 기운을 불어넣은 후 1초 안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 명의 창수를 위기로 끌고 갔던 호랑이 괴수 한 마리가 무력화되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이제 한 마리 남았어요!”

창대를 땅에 처박고 두 손으로 창대를 지지대 삼아 겨우 서 있는 오세근이 희망찬 목소리로 말했다.

두 마리의 호랑이 괴수에 의해 세 명의 창수들과 세 마리의 호랑이들은 빈사 직전의 상황까지 몰렸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호랑이 괴수 한 마리가 무력화되며 적의 수는 줄어들었고 서준이 합류함으로써 아군의 수는 늘어났다.

-쿠와앙!

남은 한 마리의 호랑이 괴수가 서준에게 달려들었다. 동료를 두 명이나 쓰러트린 것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울음소리였다.

세 마리의 호랑이 괴수 중 가장 몸집이 큰 녀석이었다. 모두 남색에 가까운 짙은 파란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짙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운 털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세 마리의 호랑이 괴수 중 대장 격에 속한 녀석이라고 서준은 예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도 이놈이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을 것이란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구라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명백한 사항이었다.

-콰앙! 소리와 함께 서준 뒤에 서 있던 두꺼운 나무의 밑동이 그대로 뚫렸다.

날아가던 서준을 밭쳐주었던 나무다. 앉아 있던 서준을 향해 날아온 불의의 일격이었지만 서준은 가볍게 피해냈다.

이윽고 날아오는 후속타들 역시 서준은 모두 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사고 가속을 사용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뭐지? 왜 이렇게 잘 피해지지?’

심지어 피하는 와중에도 별에게 말을 걸 수 있을 정도였다. 제일 약한 호랑이 괴수를 상대로 고전하던 서준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네놈의 하찮은 재능 탓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계속해서 들어오는 후속타들을 피하며 서준은 별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서준의 동료들은 창대로 땅을 짚고 겨우 버티고 있는 수준이었다. 서준이 괴수의 이목을 끌고 있는 상황에서도 도와주지 못하고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서준과 호랑이 괴수의 전투를 지켜봤다. 물론 호랑이 괴수는 계속해서 맞지 않는 공격을 휘두르고 서준은 반격하지 않고 피할 뿐이었지만.

-이제야 의식이 몸을 따라가기 시작한 거다. 네 몸의 재능이 너무 하찮아서 몸이 완성됐음에도 의식이 몸을 따르지 못한 거야. 할 수 있었음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동안 피하지 못했을 뿐이다.

별의 말 그대로였다. 기억은 모두 일었다지만 별은 최고의 재능을 지녔던 사내였다.

이 정도는 한눈에 알아볼 능력은 되었다.

서준은 별의 말처럼 신체적으로는 이미 완성되었다. 하지만 본인의 의식이 그를 따라주지 못했기에 스스로 몸의 제약을 걸어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 것이다.

‘버퍼링 같은 건가?’

-비슷한 거지 뭐.

네트워크가 불안정할 때 동영상이 끊기며 완충작용으로 버퍼링이 걸리듯 서준의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완전한 몸 상태를 가졌지만 의식 수준은 그를 따르지 못했다.

힘겨운 훈련 후 실전에 바로 적용되지 않고 지금에서야 적응된 것이다. 훈련의 움직임을 실전에서 나타내는 것에도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근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아?

‘나도 알고 있어. 단지 좀 들떴을 뿐이야. 상황이 이렇게 쉽게 돌아간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질 않아.’

그만큼 지금의 서준은 여유로웠다. 호랑이 괴수의 대장 격 되는 놈을 상대하면서도 그 공격을 모두 여유롭게 피해냈다.

이 모든 것이 3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진 일이었지만 그사이에 날아온 호랑이 괴수의 공격은 50번이 넘었다.

서준은 그 모든 것을 피해냈다. 심지어 서준은 별과 대화를 하던 도중이었다.

-쿠와악!

계속해서 공격을 피하던 서준이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완벽한 카운터펀치였다.

서준의 완벽한 카운터를 얻어맞은 괴수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겉에서 보기에는 가벼운 주먹질이었을 뿐이다. 혼자서 연습을 하듯 가볍게 날린 잽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니, 사실 웬만한 자들은 이 공격을 알아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빠르고 날카로웠다.

단 한 방에 호랑이 괴수를 쓰러트릴 수 있을 만큼.

“형님……. 지금 뭘 한 거요?”

거의 죽기 직전이던 오세근이 깜짝 놀라 방방 뛰기 시작했다. 한 걸음도 옮기기 힘든 몸 상태였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아픈 것도 잊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음……. 글쎄? 이 형님의 위대함?”

이겼는데 이 정도 자뻑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세 마리의 호랑이 괴수 중 두 마리는 쓰러졌고 한 마리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힘든 전투였지만 모두 무사한 채로 끝마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나름 잘 풀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럼 회수해 볼까?’

서준은 방금 쓰러트린 대장 호랑이 괴수의 앞으로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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