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신기하군요.”
“뭐가요?”
“아, 백서준 헌터 능력 얘기로만 들었지 게이트 안에 실제로 들어온 건 처음이라서요. 지구에 열리는 게이트들이랑 진짜 비슷하네요.”
비슷한 정도가 아니다. 둘 사이의 시대적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장소였다.
서준이 예상하기로는 둘 사이의 시간적 차이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엄청나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지형적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구의 게이트와 서준의 능력으로 연 게이트 양쪽으로 같은 장소를 가본 것은 재배지 섬뿐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단지 나무들이 조금 더 자라거나 땅이 황폐해졌거나 했을 뿐이다. 서준의 상식대로 수천 년이 흘러 지형이 완전히 변하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방향으로 쭉 가면 되는 겁니까?”
“네, 지금까지 틀린 적은 없었으니 분명할 겁니다.”
별의 모습을 닮은 석상이 가리킨 방향이었다. 지금껏 석상의 인도를 따랐을 경우 한 번도 빠짐 없이 별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를 찾을 수 있었다.
아티팩트의 위치가 갑자기 옮겨가지만 않았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예상되는 괴수는 호랑이라고 했죠?”
“네, 이제 그거 하나 남았으니까요…….”
악룡의 위치는 이미 파악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호랑이 하나였다.
원숭이만 해도 상당히 강력한 상대였다. 그런데 이제는 고양잇과 동물의 최정점인 호랑이를 상대해야 했다.
벌써 긴장되기 시작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자신감이 넘치는지 전투적으로 울어댔다. 아무래도 동족의 모습을 한 괴수가 궁금하기는 할 것이다.
표범의 형태를 한 괴수는 본적이 있었지만 그 외의 고양잇과 동물의 형태를 한 괴수는 본 적이 없었다.
호랑이들은 투쟁심이 넘치는지 어느 때보다 사나운 얼굴을 하며 앞장서 걷고 있었다.
“기대되네요. 백서준 헌터의 호랑이들과 그 괴물 호랑이 중 누가 더 강할지.”
“그래도 우리 애들이 더 강할 겁니다.”
서준은 모하메드의 말에 답하며 어흥이의 목덜미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어흥!
그러나 서준의 표정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리 쉽지는 않을 거다.
‘알고 있어. 호랑이 괴수라……. 가만히 있어도 셀 것 같은데.’
-거기에 내 영혼을 흡수했다면 진짜 괴물이 있을 거다. 못해도 용을 상대한다는 각오 정도는 해야 할 거야.
‘용…….’
서준은 악룡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공포감을 떠올렸다. 물론 악룡 역시 별의 영혼을 집어먹은 상태였기에 본래의 용보다는 더욱 강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래도 서준이 지금껏 만나본 용은 악룡이 유일했기에 떠올릴 수 있는 건 악룡밖에 없었다.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는데?’
-그래도 용까지는 아닐 거야.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한다는 이야기지.
별도 서준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긴장을 풀어주려 이번에는 호랑이 괴수의 평가를 낮춰주었다.
-어쨌든 이번에는 저놈까지 합류했으니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다.
별이 모하메드를 의식하며 말했다.
‘그치, 정말 괴물 같은 사람이야.’
모하메드는 정말 괴물 같은 사람이었다. 모하메드가 서준의 팀에 합류한 지 딱 한 달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의 훈련으로 모하메드는 서준의 수준을 따라잡다 못해 넘어섰다.
애초에 기술은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 상태에서 자신보다 기술이 완벽한 련과 대련하면서 기술을 더욱더 완벽에 가깝게 다듬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단련이었다. 련의 가르침에 따르며 모하메드는 순식간에 육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서준 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였다. 서준이 김비서와 오세근보다도 훨씬 빨랐으니 저 두사람과 모하메드를 비교하면 차이가 더 심해졌다.
완벽한 기술에 강인한 육체가 합쳐지자 모하메드는 서준 혼자서는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진짜 괴물을 상대하는 줄 알았다니까?’
-쯧쯧, 너는 자존심도 없냐? 먼저 훈련 시작해놓고, 그것도 짐에게 배워놓고 지는 게 말이나 되냐?
‘다음에 이기면 그만이지, 뭐. 나도 그 이후로 더 연습하고 있다니까?’
훈련의 마지막 날, 서준은 모하메드와 처음으로 대련을 했다. 그동안은 련이 대련을 막아왔는데 마지막 날은 오히려 련이 주도했다.
그리고 결과는 처참했다. 서준의 공격은 단 하나도 먹혀들어 가지 않았고 모하메드의 공격은 모두 다 손쉽게 서준을 맞췄다.
기술의 차이가 역력했다.
‘그래도 난 내 힘 전부 다 쓴 건 아니라고. 진짜로 하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하긴, 그게 동료와 대전을 할 때 할 짓은 아니긴 하지.
물론 서준은 사고 가속을 사용하지 않았다. 모하메드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사용한 반면 서준은 오로지 육체 능력으로만 상대했다.
사고 가속을 사용했다면 첫 방에 공격을 피하고 곧장 끝낼 수도 있었다.
사고 가속까지 가지 않더라도 식물들을 사용했다면 승부를 더 질질 끌 수 있었다. 그러나 서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호랑이들도 있잖아?’
그리고 세 마리의 호랑이가 있었다. 영수를 부리는 것도 헌터의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서준은 팔다리 다 자르고 모하메드를 상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근데 왜 나한테는 변명하는 소리로 들리지?
‘네가 속이 뒤틀려서 그래.’
서준은 별과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석상이 가리킨 곳과는 아직 거리가 한참 남았다.
지루함을 달래는 데에는 별과 이야기하는 게 최고였다.
“벌써 날이 어두워졌네요.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김비서가 하늘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흐음…. 얼마 오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형님,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쩔 수 없지. 지형이 너무 험해서 호랑이들을 타고 달릴 수도 없고. 조금만 더 어두워지면 보이지도 않겠다. 돌아가자.”
“네.”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 험했다. 불행의 산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날카로운 암석들이 바닥에 즐비했으며 급격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었다.
거의 절벽을 등반했다 내려갔다 하는 수준이었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을 여기다 던져놓으면 아마 천국이라 할 테지.
길이 너무 험해 호랑이들을 타고 다닐 수도 없었기에 오늘의 이동 거리는 계획했던 것에 반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어두워지면 앞뒤 분간도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여기서 야영을 할 수도 없었다.
시간 괴리의 문제도 있고 안전의 문제도 있었다.
서준은 게이트를 열어 곧장 약국으로 돌아갔다.
“왔네?”
“네, 스승님. 다녀왔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과자를 까먹던 련이 서준을 보며 말했다.
“수확은 있었고?”
“아니요. 길이 너무 험해서 얼마 가지도 못했습니다. 절벽만 타다가 돌아왔어요.”
“흐음……. 바세린 협곡을 지나는가 보다.”
“아는 길이에요?”
“그럼 아는 길이지. 제국 내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련이 알고 있는 장소였다. 이렇게 되면 내일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질 수도 있다.
그곳에 출몰하는 위험한 괴수라던가 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둘 수 있게 되었다.
경계를 하느라 쏟는 긴장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근데 왜 그리로 가냐?”
서준이 주의사항을 물어보려 했는데 련이 먼저 선수를 쳤다.
“석상이 그 방향을 가리켰으니까요.”
“그러니까 옆으로 돌아가면 편한 걸 왜 무식하게 직선으로 갈 생각만 하느냐고 물었다.”
“아…….”
순간 서준은 말문을 잃었다.
“바세린 협곡이 위로는 엄청나게 험한데 옆으로 조금만 가면 평지가 나온다. 뭐 워낙에 큰 협곡이라 돌아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기는 하겠지만 직선으로 뚫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을걸?”
“하아…….”
지금까지의 고생이 헛수고가 되었다. 말만 안 했을 뿐이지 길이 워낙 험해 서준도 일행들도 호랑이들도 매우 고생하며 올랐다.
불행의 산에서 800kg을 달고 산을 타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그만큼 지형이 험했다.
“뭐, 이미 하루 종일 협곡을 올랐다니 내려가서 돌아가는 것보다는 직선으로 뚫는 게 빠를 거다.”
“미리 좀 말씀해 주시지…….”
“내가 네놈들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알고? 그냥 훈련이다 생각하고 넘어가라. 거기 어차피 지형도 워낙 험해서 살고 있는 괴수들도 없으니까.”
“네.”
그나마 위안거리일까? 다행히 협곡에 살고 있는 괴수는 없는 듯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땅이 워낙 험해서 제 몸 하나 누울 곳도 없는 곳이 바세린 협곡이었다.
게다가 이미 사막화가 완전하게 되어서 식물도 자라지 않았고 작은 벌레들조차 그곳을 떠났다.
동물도, 식물도 그 어떤 벌레도 없는 곳이라 조류들 역시 그곳에 둥지를 틀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는 곳에 둥지를 틀어 무얼 하겠는가?
“그래도 훈련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합니다. 앞으로 협곡을 넘을 때 무게를 달아놓고 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너희도 저놈 좀 본받아라. 저렇게 열심히 훈련하니까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거야!”
련이 모하메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짜 미쳤어, 미쳤어. 훈련에 미친 놈이야. 어디가 좀 이상한 놈은 아닐까?
‘난 이미 GOTY에서 알아차렸어.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이 저렇게 강할 수가 있겠어?’
모하메드는 진심으로 훈련에 미친 사람이었다. 서준도 원숭이 괴수와의 전투 이후 충격을 받아 상당히 열심히 한 편에 속했다.
아니, 죽도록 열심히 했다. 그런데 모하메드와 함께 훈련하기 시작한 첫날 서준은 자신이 게으른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모하메드의 훈련량은 엄청났다. 련이 시킨 것보다 항상 두 배를 소화해냈다. 무게든 거리든 시간이든…….
‘뭐, 난 저런 사람이 우리 편이라 좋다.’
-이게 지구 말로 버스 탄다. 뭐 그런 거지?
‘그렇지, 뭐.’
서준은 왠지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하메드가 먼저 서준을 찾아와 함께하자고 했다. 서준의 잘못은 없었다.
“어쨌든 오늘 고생했다. 바세린 협곡을 올랐다면 피로가 장난이 아닐 거다. 빨리 씻고 자라. 니들한테 모래 냄새 난다.”
“네.”
안 그래도 잠이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게다가 련의 말대로 협곡의 모래를 이미 온몸으로 뒤집어쓴 상태라 온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서준은 서둘러 온수를 틀어 몸을 지진 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모하메드, 무게는 달지 말아라. 대신 오늘 안에 협곡을 빠져나가는 걸 목표로 해라.”
“알겠습니다.”
게이트를 넘어가려던 서준 일행을 잡아 세운 련이 말했다.
“오늘 안에는 힘들지 않을까요? 사부님?”
오세근이 말했다.
“걸어가면 힘들겠지. 근데 뛰어가면 되잖아? 왜 달리는 법을 잊었나? 기억나게 해줘?”
련이 주머니에서 주먹을 꺼내 들며 말했다.
“아니요! 아니요! 기억났습니다! 재빠르게 달려서 오늘 안에 협곡을 넘어갈게요!”
“그래, 가봐라.”
당황한 오세근이 허겁지겁 게이트를 넘어갔다. 언제부턴가 항상 오세근이 먼저 게이트를 넘는 것 같다.
서준 일행은 오세근의 뒤를 따라 다시 게이트를 넘어 바세린 협곡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