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모하메드는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서준과 오세근 그리고 김비서는 지난 몇 개월간 련에게 수련을 받으며 한창 자신감이 생기고 있을 시절이었다.
것도 그럴 것이 매일 800kg의 무게를 달고 달렸다. 그것도 저주가 걸린 산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달렸다.
“믿을 수 없어…….”
이후에는 련의 커리큘럼에 따라 눈을 단련시켰다. 련이 던지는 돌덩이는 지금껏 상대해왔던 그 어떤 적의 공격보다도 빨랐다.
처음에는 애를 먹었지만 세 사람 모두 돌덩이의 색을 완벽하게 구별한 후 잡아챌 수 있게 되었다.
최후에는 련과의 대련이었다. 아직까지 일대일은 불가능하고 셋이 편을 먹고 삼대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련이 여유롭게 막아내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세 사람은 특별한 무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공격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낭비 없는 련의 움직임을 쫓아가기 위해선 스스로의 움직임을 관찰해야 했고 낭비를 줄여야 했으니까.
“하하하, 대단해! 지구의 사람이란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야! 여기 있는 멍청이들보다는 훨씬 좋아!”
련은 모하메드를 보자마자 김비서와 대련을 시켰다. 김비서는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창이라는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와 함께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에 딱 적절한 상대였다.
“역시…….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을 뿐인가 봅니다.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둘의 대련은 서준이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길어졌다. 서준은 김비서의 압도적인 승리로 짧게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비서가 셋 중 가장 약할 뿐이지 다른 데 가서는 큰소리 뻥뻥 칠 정도의 실력은 되었기 때문이다.
서준은 모하메드와도 김비서와도 모두 싸워봤기에 둘의 실력을 비교했을 때는 김비서의 압승이 확실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둘의 대련은 상상 이상으로 길어졌다. 일대일 대련이었다. 그러나 둘은 무려 십오 분 가까이 싸웠다.
“그래! 이래야 나도 제자 키우는 맛이 있지. 저놈들은 너무 멍청해서 재미가 없었어. 앞으로 스승님이라고 부르거라.”
“예! 스승님!”
두 사람의 대결 양상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김비서의 맹공을 모하메드가 간신히 막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김비서는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면서 강력한 찌르기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이제는 련도 보지 않고는 피하지 못하는 찌르기였다. 모하메드는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가며 몸을 날렸고 겨우겨우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비서의 창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에는 능숙하게 맞받아치게 되었다.
그렇게 십오 분이 흘렀을 때 결국 모하메드는 힘이 다해 김비서의 창을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김비서가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김비서가 승리했음에도 세 사람은 크게 당황했다. 그동안 쌓아놓았던 자신감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지구에서 홀로 단련했던 모하메드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모하메드의 재능이 뛰어났고 지닌 기술이 훌륭했던 것이다.
앞서는 건 무식하게 강력한 육체밖에 없었다.
“분명히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거죠?”
서준이 모하메드에게 물었다. GOTY에서 상대했을 때도, 이집트에서 괴수를 상대하는 영상을 보았을 때도 이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련에게 배우기 직전의 서준이라면 훌륭하게 상대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모하메드는 비록 졌지만 김비서와 대등하게 싸웠다.
서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술 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모하메드는 창신이라 불릴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창술을 구사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무식하게 단련된 김비서의 힘을 어느 정도 상대해냈다는 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티팩트 덕분입니다.”
“아티팩트요?”
“예, 아그니… 그러니까 불타는 말을 사로잡고 얻어낸 아티팩트 덕분입니다. 아티팩트를 이용해 놈을 길들일 수 있었고 함께하는 동안 제가 하루하루 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서준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별의 영혼이 적용되었다면 저렇게 강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모하메드는 이집트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괴수를 사로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죽이지 못했다는 말이 어울렸다.
모하메드가 아그니라고 이름 지은 불타는 말은 백만의 사람을 죽였다. 상대한 헌터만 해도 수만 명이었다.
결국 그들의 차륜전을 견뎌내지 못한 불타는 말은 힘을 다해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이후 모하메드가 쓰러진 녀석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했지만 놈의 가죽을 뚫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 놈에 등에 얹어진 안장 모양의 아티팩트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를 이용해 몇 개월간의 노력으로 놈을 길들일 수 있었다.
모하메드가 별의 영혼을 먹고 자란 괴수를 길들인 것이다. 물론 비난의 여론도 엄청났다. 백만의 사람을 죽인 괴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하메드의 갖은 노력으로 겨우 비난의 불씨를 끌 수 있었다.
‘가능한 거야?’
-글쎄다? 아무래도 괴수가 내 영혼을 뽑아먹으면서 저 녀석이랑 나눠 먹었나 본데?
‘흠…. 나도 네 영혼 그냥 들고 있을 걸 그랬나?’
-저놈이 운이 좋은 거지. 보통은 그냥 들고 있는다고 해도 큰 변화는 없을 거다.
‘그렇군.’
우연의 우연이 겹쳐서 발생한 행운이었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는 했지만 큰 도움이 될 동료의 합류였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육체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은 잠재력은 훨씬 컸다. 훈련을 한다면 서준보다 강력한 육체를 가지게 될 수도 있었다.
기술은 이미 완벽에 가까웠다. 창술만으로는 오세근과 김비서를 월등히 뛰어넘었다. 단지 육체의 압도적인 차이를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다. 련에게 훈련받는다면 엄청난 전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서준이 한 발 앞으로 걸어나가며 모하메드에게 손을 뻗었다.
모하메드는 서준의 손은 맞잡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 네놈들도 아직 미완성이다. 저놈의 육체를 완성 시키고 네놈들의 움직임을 조금 더 조정하면 해볼 만할 거 같구나. 앞으로 한 달이다. 한 달 후에 보내주도록 하겠다. 꾀부리지 말고 죽었다 복창하고 해보자.”
“네.”
앞날이 창창한 제자가 생겨 기분이 좋았는지 련이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한 달간의 지옥 같은 훈련이 시작되었다. 지금껏 훈련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된 훈련이었다.
한 달간의 지옥훈련을 견뎌낸 네 사람은 이전과는 다르게 그 어떤 망설임도 없는 모습이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고생했다. 이 정도면 나도 만족할 수 있겠지. 그래도 악룡은 아직 무리다. 그때는 내가 함께해야겠지.”
“이번에는 같이 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대충 계산해도 오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 그놈들의 집요함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 모든 아티팩트를 모은 후 마지막에 짧게 치고 빠지는 것이 맞다.”
“아쉽네요.”
련이 함께한다면 손쉽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쉬웠다.
그러나 서준은 련이 함께하지 않는다 해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일전의 원숭이 괴수와 다시 맞붙는다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네 사람이 함께했을 경우를 얘기한 것이다.
“밖으로 새서 딴짓하면서 기운 빼지 말고 오늘은 컨디션 관리를 해라. 그리고 내일 오전에 출발해라. 며칠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저녁때는 지구로 돌아와서 컨디션 관리를 하는 게 좋겠다.”
그동안 무뚝뚝했던 련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말투를 하고 있었다. 반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네 사람을 가르치면서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네 사람은 지금껏 련이 가르쳤던 어떤 훈련생들보다 열정적이었다. 비록 모하메드를 제외한다면 재능이 크게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결국 목표했던 것을 모두 뛰어넘었다.
하지만 련에게는 아직 애송이들일 뿐이었다. 련은 네 사람이 걱정되는지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갔다.
“그쯤 하시죠?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도 아니고.”
“쯧, 버릇없는 놈. 좋다. 내려가자.”
다섯 사람은 모두 함께 서준의 약국으로 향했다. 출전 전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말로는 컨디션 관리를 하라고 했지만 이쯤 되면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술을 마셔도 잠깐 눈을 붙이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정도로 단련되었으니까.
“게이트 럼이라니…. 저도 몇 번 못 마셔본 건데 이런 걸 항상 마시는 겁니까?”
오세근이 게이트 럼을 꺼내자 모하메드가 놀라며 물었다.
“이집트의 영웅씩이나 돼서 검소하게 살았나 봐요? 엄청 놀라시네.”
“돈이 없어서 못 구했겠습니까? 워낙 귀해서 찾을 수가 없는 것뿐이지.”
사실 돈이 없어서 못 구한 게 맞다. 웃돈을 엄청나게 얹어주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 게 게이트 럼이었다. 단지 그 금액이 이집트 영웅이라는 모하메드에게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엄청났을 뿐이다.
약초로 엄청난 돈을 벌어낸 서준 역시 게이트 럼을 자주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오로지 오세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건 됐고 이건 먹어봤죠?”
오세근이 냉장고에서 꿀닭을 꺼내며 모하메드에게 물었다.
“아, 이건 약국에서 함께 지내면서 매일같이 먹고 있습니다. 질리지도 않고 참 맛있더라고요.”
지난 한 달간 약국에서 함께 생활했던 모하메드였기에 꿀닭은 이미 먹어봤다.
“다녀왔습니다!”
그때였다. 약국 문이 종소리를 내고 울리며 정신비가 들어왔다. 창천 길드 아카데미 수업을 모두 마친 후 돌아온 것이다.
“오늘은 좀 늦었네?”
“서민이랑 놀다 왔어요!”
“밥은 먹었어?”
“네! 먹었어요! 저 텔레비전 볼 거에요! 저녁 안 먹어도 돼요!”
“그래.”
신비는 한없이 음침한 아이였는데 어느새 아카데미에서 친구도 사귀었고 평범한 아이처럼 돌아왔다.
서준은 그런 모습을 보고 기분 좋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 인분만 하면 되겠네요. 찜닭 다들 좋죠?”
“좋죠!”
꿀닭으로 만든 찜닭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찜닭이 뭐죠?”
“그런 게 있어요.”
단지 찜닭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외국인이니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제가 코리안 푸드의 위대함을 보여주겠습니다.”
“형님! 형님! 꿀닭의 위대함이 아니고요?”
“마! 한국산 꿀닭이다!”
서준은 오세근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찜닭 조리를 이어갔다.
그렇게 완성된 찜닭과 게이트럼의 궁합은 환상적이었다. 다섯 사람은 모두 얼큰하게 취해 일찍 잠에 들었다.
“자만하지 말고 항상 긴장을 놓지 말아라.”
“네, 걱정 마세요. 사부님.”
“네가 제일 걱정이다! 새키야!”
련은 자신만만해하는 오세근의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았다.
“아악! 이거 이러다가 괴수한테 죽는 게 아니고 사부님한테 죽겠어요!”
“이놈이! 뒤질려고?”
오세근은 한 번 말대꾸해봤다가 련이 화낸 모습을 보고 그대로 게이트를 넘어 도망쳤다.
“저희도 가보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넘어가면 일단 저놈 한 대 쥐어박고 시작해라.”
“네.”
“그래, 몸조심해라.”
오세근이 먼저 넘어갔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세 사람도 서둘러서 게이트를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