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어서 오세요!”
띠리링 소리를 울리며 호랑이 약국의 문이 열렸다. 오프라인 판매를 시작하고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맑은 종소리였다.
처음에는 어색함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서준이였다. 그러나 타임 워프 전, 각성 이후에도 초반에는 오프라인 장사를 했던 경험 때문인지 금세 익숙해진 서준은 능숙하게 손님 응대를 하고 있었다.
“와, 좋다. 오빠 초록 활력초 살 거지?”
“그것도 사고 둘러보고 좋은 거 있으면 더 사려구.”
커플로 보이는 두 헌터가 들어왔다. 서준이 이 두 사람이 헌터임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두 사람이 패용하고 있던 검 때문이었다.
모든 헌터들이 이렇듯 무기를 들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듯 무기를 들고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헌터였다.
“자유롭게 둘러보시고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네, 일단 좀 둘러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사실 미감지 게이트가 열리는 일은 진짜 백만 분의 일의 확률도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겪었던 서준이 매우 희귀케이스였을 뿐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헌터들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다.
그만큼 한국의 게이트 감지 시스템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최상위 헌터가 부족할 뿐이지 인프라는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왜 헌터들은 무기를 차고 다니는가? 한다면 허세라고 말할 수 있다.
99%는 과시용이었다. 나는 헌터다. 너희와 같이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 아닌 마음만 먹으면 이곳에 있는 모두를 다 죽일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라는 과시의 의미였다.
별의 영혼을 품은 괴수들이 지구로 넘어와 큰 피해를 끼친 이후로 그 현상은 더욱더 심해졌다.
헌터들의 권력은 더욱 세졌고 일반인들은 그럴수록 헌터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까.
“와, 품질 좋은 거 봐. 그동안 내가 쓰던 거는 비교도 안 되게 좋네.”
“오빠! 이것 좀 봐! 가격도 거의 반값 수준인 거 같은데?”
“아냐, 10% 할인까지 더 하면 진짜 반값이야!”
덕분에 각성자들과 일반인들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전 세계적인 반헌터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서준의 호랑이 약국 앞에서 일어났던 게이트 폐쇄 운동도 그중 하나였다.
매주 목요일 수개월째 지속되며 호랑이 약국을 소란스럽게 했던 그 시위는 최근에서야 잠잠해졌다.
서준도 덕분에 오프라인 판매를 재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만약 계속해서 시위가 지속되었다면 판매 재개에 큰 골치를 썩였을 것이 틀림없다.
“호랑이 차도 한 세트 사볼까?”
“글쎄, 나는 이건 잘 못 믿겠더라. 이거 먹는다고 진짜 PTSD 증상이 완화될까?”
“게이트 식물로 만든 차잖아. 상식으로만 보면 안 돼.”
“그런가? 나는 각성한 지 얼마 안 돼서 솔직히 잘 모르겠어. 후유증 같은 것도 사실 못 느끼겠고.”
“너도 이제 열 번, 스무 번 임무 수행하다 보면 슬슬 올라올걸?”
“그런가? 모르겠다. 차라리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막내 취급받는 것도 지겨워.”
“나중엔 오늘이 그리울 거다.”
두 연인은 호랑이 차 앞에 서서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물론 헌터는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큰 액수를 벌어들였다. 목숨을 담보로 일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신입 헌터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그들은 중견 헌터들처럼 정말 큰 액수를 만지지도 못할뿐더러 유지비 역시 상당했다.
게다가 서준의 약국에서 파는 약초들이 시중가보다 상당히 저렴하다지만 차 한잔으로 소모하기에는 매우 높은 가격이었다. 고민할 만했다.
“고민되시면 시음 한번 해보실래요? 녹차 티백 타 마시는 것처럼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되는 거라 금방 타요.”
“아! 정말요?”
“네! 네! 저 마셔볼래요!”
고민하고 있던 커플에게 다가간 서준이 시음을 권했다. 애초에 시음해보라고 따로 빼놓기도 했기 때문에 특별한 호의는 아니었다.
두 헌터가 계속 약국 구경을 하는 사이 서준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종이컵 하나를 준비했다.
이전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처럼 찻잔에 따라줄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여기 있습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와…. 냄새 좋다. 이거 쓴맛 나요?”
“아뇨, 달콤할 거예요. 호랑이 약국 특제 비법으로 만든 거라 쓴맛은 안 날 거예요.”
사실 그냥 빻아서 말렸을 뿐이다. 안정초를 이렇게 수급할 수 있는 게 서준뿐이니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잡초처럼 뜯어온 걸 비싸게 파는 게 찔렸던 서준이 면책용으로 만든 구실이었다. 뭐, 사람들이 좋아하니 죄책감은 없었다.
“와, 진짜 맛있는데? 물 대신 마시라고 해도 마실 수 있겠어!”
“들어보니까 너무 많이 마시는 건 안 좋다고 하더라. 하루에 세 잔 정도가 적당하다는데?”
“하루에 세 잔…. 너무 비싸긴 하다.”
“그래도 돈 많이 버는 중견 헌터들은 이거 끼고 산다더라. 처음에는 자존심 때문에 몰래몰래 마시고 그랬다던데 지금은 없어서 못 마신대.”
“그래?”
사실이었다. 처음 호랑이 차를 시중에 내놓았을 때 악평을 하는 헌터들이 상당했다.
당시에는 PTSD라고 밝히는 것이 창피한 일이었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것은 서준이 매우 유명해진 것도 한몫했다. 엄청난 인지도를 가진 데다가 GOTY 우승자인 서준이 판매하는 상품이었다.
이 상품을 구매하는 게 창피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였다. 지금의 헌터들에게 호랑이 차는 커피보다도 자주 마시는 최고의 음료였다.
“예,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다음에 또 올게요!”
초록 활력초와 호랑이 차를 구매해간 두 헌터를 배웅한 서준은 문을 걸어 잠그고 텔레비전을 켰다.
어느덧 마감 시간이 다 되었다. 2시간의 짧은 장사 후 드디어 얻은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고된 훈련과 곧바로 이어지는 장사 이후 10시나 돼서야 서준은 쉴 수 있었다.
서준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 소식을 듣기 위해 시사프로를 틀었다.
<이집트의 영웅 창신 모하메드가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게이트를 닫아 세계의 평화를 찾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아마도 지난 이집트 게이트 사태가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고위 헌터로서 게이트가 닫히면 큰 손해를 입을 게 분명한데도 이런 말은 꺼낸 것 보면 충격이 컸던 것 같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백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으니까요. 벌써 반년이나 흘렀지만 이집트는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하메드의 발언은 용기가 매우 필요한 발언이었을 텐데요. 모하메드의 용기와 소신 멀리서나마 존경을 표합니다.]
<일단은 화면 보고 가시죠.>
[네.]
텔레비전 화면이 모하메드의 인터뷰 장면으로 넘어갔다.
모하메드는 폐허가 된 마을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었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괴수가 파괴한 마을은 아직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절반 이상의 집들이 무너졌다. 농경지는 쑥대밭이 되었고 일부의 땅은 다시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
모하메드는 그곳에서 본인의 지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가장 더럽고 낮은 곳에서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었다.
<멋지네요. 이게 정말 국민 영웅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 아닙니까?>
[그렇죠. 한국의 헌터들은 저런 모습을 좀 본받아야 해요. 돈만 좇지 말고 아픈 사람들도 돌볼 줄 알아야 해요!]
패널들이 목을 높여가며 울분을 토했다.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며 그들 역시 느낀 고통이 매우 컸을 것이다.
‘와 편집 안 당한 게 용하네.’
-그러게? 방송국이 미쳤나?
서준의 반응은 당연한 결과였다. 헌터와 초인들의 권력은 비상식적으로 강했다. 이런 상황에 각성자들을 비판하는 방송이 TV에 방영될 리 없었다.
그러나 오늘 방송은 지금까지의 방송과 결을 달리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헌터 시위도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헌터들도 이제는 정신 차려야 돼요. 왜 반헌터 시위가 일어나고 있겠습니까? 헌터들이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만큼 모하메드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각성자들에게 벌벌 떨며 아양 떨기 바쁘던 방송국의 태도마저 반전시켜버린 것이다.
사실 모하메드는 이집트의 국민 영웅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영웅이나 마찬가지였다. 백만을 죽인 괴수를 잡은 모하메드는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목소리를 냈던 헌터가 있었죠?>
[그렇죠. 바로 백서준 헌터가 일전에 게이트를 닫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백서준 헌터가 요즘 활동이 뜸해서 지금은 좀 시들해졌다고 하지만 GOTY 우승 직후의 인기는 엄청났거든요.>
[그렇습니다. 게이트 폐쇄 발언도 그 직후에 나온 발언이라 파장이 엄청났었죠. 호랑이 약국 앞에서 시위대와 초인 경찰 간의 충돌도 상당했고요.]
‘아, 또 내 얘기 하네. 차라리 안 했으면 좋겠는데.’
-껄껄걸, 또 약국 앞에서 시위하겠구나!
‘장사 좀 편하게 하나 했는데. 짜증 나네.’
방송국에서 저렇게 떠들어 대는 건 서준에게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저들 중에 서준을 도와 괴수를 잡을 수 있는 놈도 없었고 오히려 과한 관심을 받아 행동에 제약이 걸릴 뿐이다.
약국 앞에서 폭력 시위가 일어날 때면 정신비가 불안에 떨기도 했다. 서준이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두문불출하던 백서준 헌터가 최근에 다시 약국을 오픈했다고 하죠?>
[아, 그동안 약국을 완전히 폐쇄했던 건 아니고요. 온라인 판매만 하다가 지금은 하루 두 시간씩 오프라인 판매를 곁들인다고 하네요?]
<그렇습니까? 어찌 되었든……. 모하메드의 이번 발언에 백서준 헌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네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서준은 텔레비전의 전원을 내렸다. 더 이상은 스트레스를 받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또 기자들 찾아오겠구만. 그냥 게이트 들어가서 일주일쯤 놀다 나올까? 어차피 이제 다시 괴수 잡으러 갈 때도 됐는데.’
-신비는 어쩌려고.
‘하아아……. 답이 없네. 답이 없어.’
신경질적으로 텔레비전 전원을 내린 서준은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고된 훈련으로 이 층으로 올라가서 잘 기운도 없었다.
짧은 시간의 꿀맛 같은 휴식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그 피로감 때문인지 서준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쿵! 쿵! 쿵!
“으응?”
-쿵! 쿵! 쿵!
“아, 새벽부터 뭔데?”
잠긴 약국 문을 누군가가 계속해서 두드리는 소리에 서준은 잠에서 깨고 말았다.
이미 짧은 잠에 익숙해진 서준은 얼마 자지 못했음에도 별로 피곤해하지는 않았다.
“누구세요?”
“여기가 백서준 헌터가 지내는 곳입니까?”
약국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을 찾는 것을 보니 잘못 찾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아, 기잔가? 새벽부터 뭔 지랄이래?’
어제 방송이 떠올라 기자가 찾아왔나 생각하며 기자를 돌려보내려고 약국 입구로 간 서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모하메드입니다. 일전에 본 적 있는데 알아보시겠습니까?”
창신 모하메드였다. 그의 손에는 서준의 것과는 다르게 생긴 통역 아티팩트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