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어디 보자…….”
서준 홀로 있어 조용한 약국 안에서 쿵쿵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배지에서 이것저것 가져온 약초들을 절구에 빻고 있는 소리였다.
창천 길드와 연합한 이후 서준은 약초 재배와 수확까지만 하고 이후 제약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또한 신약 개발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창천 길드의 수많은 연구원들이 모두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 효과적이었고 효율적이었다.
-야! 그건 독초잖아!
‘아 그래? 그럼 이건 빼고.’
기껏 빻아놓은 약초를 쓰레기통에 밀어 넣었다. 다루지 않았던 약초들이 많은지라 독초와 약초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서준은 기계적으로 다른 약초를 가져와서 다시 쿵쿵 소리를 내며 빻아대기 시작했다.
‘저기요, 의지만 강해지면 된다면서요?’
수련이 시작된 지도 한 달째였으니 약초를 빻기 시작한 것도 어느덧 한 달째였다. 약초 빻는 것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서준은 별과 대화하면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절구를 내리찧고 있었다.
-아니이……. 나는 몰랐지. 너처럼 평범한 애들이 뭘 해야 강해지는지 짐 같은 천재가 어떻게 알겠어?
불평불만을 하고 있었지만 서준 나름대로 친밀감의 표현이었다. 별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그래도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잖아?
그러다가 문득 성질이 났는지 가끔 큰소리를 내보기도 했다.
‘그건 그렇지. 그건 인정.’
극한에 이르는 육체 단련을 하는 것보다는 못했지만 의지를 다스리고 기운을 모으는 훈련 역시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서준은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고 GOTY 우승을 비롯한 지금까지의 결과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뭐, 육체 단련하라고 했어도 제대로 못 했을 거야. 그것도 인정.’
게다가 육체 단련이란 게 단순하게 극한의 상황만을 유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몸을 고생하게 한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강해질 수 있다면 창천 길드에서 훈련할 때 진작 강해졌을 것이다.
신체를 극한까지 사용하면서도 의지와 기운 그리고 영혼을 단련케 하는 련만의 특별한 수련법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단기간에 강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쿵! 쿵! 쿵! 쿵!
하며 규칙적인 소리가 약국을 울린다. 800kg 서준이 견뎌낸 무게다. 아니 견뎌낸 것이 아니라 이겨낸 무게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이 파여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어느덧 육체를 완전히 본인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서준에게 몇백 그램 나가지 않는 절굿공이를 다루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절굿공이가 약초를 한 번 짓이길 때마다 서준이 원하는 만큼만 정확하게 약초가 짓이겨졌다.
-그래도 이런 수련법이라니. 짐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 봐야지. 스승님 말만 잘 들어도 떡이 나온다는데.’
-끄응……. 스승을 제 맘대로 갈아치우다니. 배신자.
련을 치켜세우는 말에 별이 질투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지금껏 련의 말을 듣고 했던 행동 중에 손해 보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고된 훈련 후 이렇게 약초를 다루는 일은 매우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련의 말이니 따르는 게 옳았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중심을 잃지 않으면 기운이 변화한다라……. 영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
서준은 헌터이기 이전에 약사였다. 지금은 뭐 약사라기보다는 약초꾼처럼 돼버리기는 했지만 그는 약사였다.
게다가 게이트를 닫으면 이전처럼 진짜 약사로 돌아와야 했다. 련은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서준이 식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잘 사용하질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해서 련은 서준뿐만 아니라 오세근과 김비서에게도 일상을 잃지 않도록 주문했다.
이것 역시 훈련이었고 중구난방한 기운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약사로서의 일상을 지키는 것만으로 약초를 다루는 기운의 힘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스스로 신비의 힘을 깨우친 것이 아닌 지구인들의 경우는 본래의 직업적 능력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련은 스스로 정답을 찾아야 한다며 항상 모호하게 말했다. 해서 련이 말한 것들만 가지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한 달간의 일상 속에서 기운이 중심을 잡는 것 역시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해보려고. 안 하면 평생 모르는 거잖아?’
-그래, 오랜만에 맘에 드는구나.
그래도 서준은 해보기로 했다. 련의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서준은 근육통으로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어느새 잊은 채 규칙적으로 절구를 빻아대기 시작했다.
-야! 그것도 독초야!
‘그냥 잡초처럼 생겼는데?
-먹으면 1분 안에 죽는다에 내 남은 영혼 다 건다!
‘아, 뭔 독초가 이렇게 많아!’
-쿵! 쿵! 쿵! 쿵!
하는 규칙적인 소리가 호랑이 약국 안을 울렸다.
솜씨 좋은 드러머가 드럼을 치듯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약국 앞을 지나던 행인들은 넓은 마당을 지나 약국 입구까지 울려 퍼지는 좋은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호랑이 약국은 이미 초인 약국으로 소문이 난 터라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곧 호랑이 약국이 방문객들로 가득 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준이 초인몰에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호랑이 약국 내방하면 10% 할인해 드립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딱 두 시간만 장사합니다.
그 시간에 내방하시면 인터넷 구매가보다 10% 저렴하게 드립니다.
-호랑이약국 백선생.]
이전에는 훈련을 해야 하고 제약할 시간도 필요했기에 영업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럼에도 두 시간 동안 방문객들로 드글드글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사리 예측할 수 있었다.
이계의 약초로 만든 약들이 표현이 힘들 정도로 비싼 건 이미 유명한 일이다. 그 가격에 10%면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품질로는 세계 최고 자리를 차지한 서준의 약초였기에 서준이 글을 올리자마자 소문은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형님, 어제 글 올리셨는데 괜찮겠어요?”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해보려고. 뭐 별일 있겠어?”
불행의 산에서 몸을 풀며 훈련 준비를 하던 오세근이 물자 서준이 답했다.
“그동안 너무 날로 먹은 것 같기도 해서. 판매랑 연구랑 창천 길드랑 너한테 다 시켰잖아? 원래 내가 해야 했던 일인데 말이야.”
“사실 저는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원래 능력 있는 사람은 조금 일하고 능력 없는 사람은 몸이 고생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날 때부터 모든 일은 김비서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대신해 주던 오세근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사실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일상은 서준과 김비서에게나 해당되었지 오세근에게는 별다를 거 없었다.
“뭐 그리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더라. 이제는 약초 빻는 것도 재밌어졌어.”
“뭔 잡담들이 그렇게 길어! 서둘러 준비하지 못하고!”
멀리서 서준과 세근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련이 호통을 치며 다가왔다.
서준 일행은 금세 교관 앞에 선 훈련병처럼 굳은 표정을 하며 허겁지겁 아대를 차기 시작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윽고 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세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산 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달이나 계속해왔던 일상이었다. 머뭇거릴 이유도 없었다.
“너는 이리로 오거라.”
“네?”
그런데 련이 서준을 따로 불러 세웠다.
“너는 오늘부터 달릴 필요 없다.”
“정말요?”
“그래.”
“와후!”
련의 말에 서준은 정말 기쁜 듯이 소리치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에 800kg의 무게가 달려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뛰었다.
련은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웃다가 서준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정색하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너는 전투 훈련에 들어간다. 바로 시작할 거니까 준비해라.”
“네.”
서준은 지난날 800kg의 무게를 달고 뛰면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련이 원하는 수준의 올라선 것이다.
해서 련은 서준에게 더 이상 육체 단련을 시키지 않고 전투 훈련에 돌입했다.
“그건 왜 꺼내는 거야?”
“준비하라면서요?”
“어휴…….”
련은 서준이 꺼내든 장도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일전에 련이 무기를 바꾸라 했을 때도 고집하던 서준이었다. 그때는 련도 서준 일행을 대충 봐줄 때라 넘어가 주었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거 버려라.”
“왜요?”
서준이 묻자 련이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너는 무기를 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음…. 날카롭게 베기 위해서요. 그게 아니면 단단한 걸로 상대를 부수기 위해서?”
“그래. 거기에 또 하나가 더 있지.”
“뭔데요?”
“더 먼 거리에서 적을 공격하기 위함이다.”
오세근과 김비서가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창을 사용하는 이유기도 했다.
“근데 네 무기는 이 세 가지 이유 중에 뭐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냐?”
“단단함이요.”
“그래. 바로 그거야.”
“근데 왜 버려야 하는 겁니까?”
서준이 장난기를 빼고 진지하게 물었다. 더 이상 장난치다가는 련이 호통을 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서준도 련의 성향을 상당히 파악한 상태였다.
“지금 네 몸을 봐라.”
“봤습니다.”
“그래. 주먹 한번 쥐어 보아라.”
련의 말에 서준은 주먹을 쥐었다. 지금껏 보아온 서준의 주먹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망치 줘봐.”
“여기요.”
련은 서준에게 장도리를 건네받자마자 서준의 주먹을 그대로 내리쳤다.
까앙! 하는 굉음이 산을 울려 어느덧 저 멀리 오세근과 김비서가 놀라서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예요!”
서준은 산산 조각난 망치 조각들을 주우며 물었다.
“이거 비싼 건데!”
이계의 광물로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어 주었던 장도리였다. 당연히 그 가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이거 봐라. 네 주먹이 망치보다 단단한데 그 망치를 써야 할 이유가 어디 있지? 지금 네 수준에서는 사정거리를 늘리기 위해 긴 무기를 사용하는 게 아닌 이상 맨몸으로 싸우는 게 더 효율적이다.”
“오!”
서준은 화등잔처럼 눈이 커져 련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말로 하시지…. 그거 비싼 건데.”
“그러니까 진작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련이 말하며 손짓하자 망치 조각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서준은 련의 기행을 보며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만 놀라고 이만 시작하자꾸나.”
“네.”
“참고로 달리는 것보다 배는 고통스러울 거다. 견딜 수 있겠느냐?”
“뭐든지요.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거든요.”
서준은 약사다운 말을 하며 눈에 불을 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까지 련에게 장난을 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온 의지가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