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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01화 (101/150)

101화.

“헉! 헉! 헉! 헉!”

서준은 약국 인근의 산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서준의 팔과 다리에는 무거운 쇳덩이들 가득 품은 아대가 달려 있었다.

“고작 그 속도로 되겠느냐? 이런 훈련 지난번에 해봤다면서 우습게 보지 않았느냐?”

련이 자신의 곁을 지나치는 서준을 향해 느긋하게 말했다.

서준은 GOTY 이전 창천 길드에서 훈련을 하며 무거운 무게를 지고 달리는 경험도 해보았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탈출을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끝까지 해냈고 여러 행운이 겹쳤지만 GOTY 우승이라 기적적인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우선 달리는 장소가 잘 정돈된 체육관이 아니었다.

서준이 지금 달리고 있는 산은 게이트가 수십 번 열렸던 경험이 있는 이른바 불행의 산이다.

이전에 게이트가 열렸던 장소에 게이트가 열리는 경우가 전 세계적으로 가끔씩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준이 달리고 있는 산은 한두 번도 아닌 서른 번이 넘는 횟수의 게이트를 받아내었다. 해서 불행의 산이라는 이명이 붙었다.

불행의 산은 게이트를 수십 번 받아내며 그 산세는 매우 거칠어졌고 사특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불행의 산에 발을 디디는 순간 숨은 잘 쉬어지지 않았고 온통 나태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한 소문이 퍼지고 불행의 산은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지구인도 아닌 련이 어떻게 이런 장소를 알아냈는지 련은 서준과 오세근 그리고 김비서를 데려와 이곳에서 훈련시키고 있었다.

“이건 너무 무겁습니다!”

서준의 뒤를 따라서 련의 옆을 스치며 지나가는 오세근이 불평을 쏟아내었다.

입으로는 불평이 가득했지만 그 표정만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지금 상태로는 게이트를 닫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오세근은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강해지고 싶다고 한 것은 너희들이었다. 내 고통스러울 거라고 미리 말해두었을 텐데?”

서준 일행의 팔과 다리에는 각각 200kg의 무게가 달려 있었다. 게이트 너머의 광석으로 강도는 약하고 금세 부식되지만 질량에 비해 엄청난 무게를 지니는 광물이었다.

이 물질은 그 부피가 작아 팔과 다리에 달아도 착용자의 움직임에 제한을 주지 않았다.

단 그 무게가 무척이나 무거울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김비서가 비명을 지르며 련을 스쳐 지나갔다. 셋 중 김비서의 수준이 가장 떨어졌기에 김비서는 제일 뒤에서 쫓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김비서 역시 앞에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총 800kg의 믿을 수 없는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김비서가 땅에 발을 디딜 때면 땅이 푹푹 파여 들어갔다.

800kg의 무게를 이겨내고 발을 앞으로 떼어내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했고 땅이 파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흐흐, 저 모질이 놈도 무게를 모두 소화해내기 시작한 거 보면 수련의 성과가 슬슬 드러나기 시작하는구나.”

뭐가 그리 즐거운지 련은 세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싱글벙글 웃어대었다.

처음에는 각각 10kg의 무게로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준 일행은 비웃었다. 40kg의 무게는 헌터들에게 아주 우스운 무게였고 모두 각자 훈련하면서 그의 배 이상 가는 무게를 달아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불행의 산의 저주가 문제였지 그 무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무게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처음에는 “그래! 이게 훈련이지!” 하며 즐거워하던 세근도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졌고 훈련을 잘 소화하던 서준의 입에서도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훈련이 시작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지금 세 사람은 총합 800kg의 무게를 달고 달리고 있었다.

“스승님! 한 달째 달리기만 하고 있는데 괜찮은 거 맞나요?”

다시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며 반대편에서 련을 스치고 지나치는 서준이 물었다.

그렇다. 이들은 한 달째 불행의 산을 달리고만 있었다. 숨도 쉬어지질 않고 정신력을 갉아먹는 산을 한 달째 달리니 이들 역시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불안한 건 전투 훈련을 하지 않고 단순히 육체 단련만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몸도 제대로 못 만든 놈들이 불만은 많구나, 뭐? 의지를 다스리고 기운을 키우면 육체가 강해져? 틀린 말은 아닌데! 네놈들이 할 소리는 아니구나.”

계속해서 육체 단련만 하고 있자 서준은 별에게 들었던 내용을 련에게 말해주었다.

의지, 기운, 영혼 그리고 육체 이 네 가지 요소는 서로 얽혀있어 한 가지를 키우면 다른 요소들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껏 의지와 기운을 집중적으로 키워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련은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네 가지 요소가 서로 얽혀있고 앞선 요소를 뒤따른다는 것도 동의했지만 의지와 기운을 길러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했다.

“어느 놈에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참, 그건 천재들에게나 적용되는 경우다!”

련의 반응은 이랬다. “의지, 기운, 영혼, 육체 중 제일 키우기 어려운 것이 영혼이다. 그리고 제일 쉬운 것이 육체다.”라고 말했다.

어느 놈에게 그런 수련법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은 타고난 천재로 의지와 기운을 잘 다스렸을 것이라며 서준 일행의 수준으로는 턱도 없는 수련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별은 서준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천재였고 그런 천재였던 별은 둔재들의 수련법을 알지 못했다.

해서 별은 서준에게 본인의 수련법을 그대로 알려주었던 것이다.

“죽겠습니다! 사부님!”

뒤따라오던 오세근이 소리쳤다.

“그럼 그냥 죽어! 이 정도도 못 견뎌서야 영혼이 단련되겠느냐!”

련의 수련법은 이랬다. 그가 지도하던 병사들 중에는 천재는 없었다. 모두 평범한 무장들이었다.

해서 가장 키우기 쉬운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시켰고 그 과정 속에서 굳센 의지를 얻었으며 강인한 기운을 끌어내었고 영혼을 질기게 만들었다.

“언제까지 뛰어야 합니까?”

“얼마 안 남았다! 조금만 힘내거라!”

련은 아직 기본 중의 기본 수련을 하는 서준 일행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즐거운 듯이 웃었다. 지난 경력을 생각해보면 그의 입에서 격려의 말이 나온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외로 제자들이 수련을 잘 따라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단련시켰던 병사들이 이 수준까지 오는 데에는 최소 오 년이 걸렸다.

하지만 서준 일행은 단 한 달 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이 이미 뛰어난 헌터였다는 이유도 있고 지구의 각성자들이 수준보다 강력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질적인 존재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800kg이라는 무게는 한 달 만에 해낼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게다가 불행의 산이라는 고난의 장소에서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련은 불가능을 이겨낸 제자들이 조금씩은 자랑스러워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김비서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고 있었다. 본래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에는 힘이 더 들어가기 마련이다.

중력을 타고 내려가기에 바닥을 더 강하게 내리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비서가 밟는 길에 파이는 구덩이의 깊이가 이전에 오르막을 오를 때보다 얕아졌다.

그새 무게에 더욱더 적응하게 된 것이다.

김비서의 앞을 달리는 오세근의 발자국은 희미했고 그 앞을 달리는 서준은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모질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제법이구나. 좋아! 더 빠르게 달려보거라! 하하하!”

서준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는 련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단순히 근력만 강해서는 800kg의 무게를 이고 달리지 못한다. 육체에 가해지는 무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요소요소에 정확하게 기운을 내주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김비서는 아직 그 운용이 미숙한 것뿐이었고 서준은 800kg 아래로는 완벽하게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서 서준의 움직임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그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만하거라.”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서준이 다시 산을 올라 련의 시야에 들어오자 련이 말했다. 서준은 련의 앞까지 달려간 후 그대로 엎어지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사이에 팔과 다리에 매달린 육중한 아대를 풀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뒤이어 오세근과 김비서가 차례로 와서 서준과 마찬가지로 아대를 풀고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떠냐? 세상이 아주 가볍게 느껴지지 않느냐?”

“아니요.”

“전혀요!”

“죽을 거…… 가…….”

김비서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800kg의 무게를 달고 있다가 풀어냈으면 응당 허전해야 마땅했다.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기분이 들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서준 일행은 전혀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불행의 산의 영향이었다. 수십 번의 게이트를 받아낸 불행의 산, 그곳에 퍼진 저주의 힘은 산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불쾌감을 심어주었다.

해서 이 산은 인간도, 지능이 낮은 동물도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그럼 모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네에…….”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련의 말에 모두가 말을 늘이며 답했다. 힘든 훈련이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가라! 이 얼마나 기쁜 말인가.

하지만 서준 일행은 오히려 기운이 빠진 듯 답했다. 불행의 산의 저주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영혼을 단련하고 의지를 다스리고 기운을 정순하게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알겠습니다.”

지옥 같은 훈련 그 뒤에는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얘들아, 나 왔어.”

어느덧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온 서준은 인사를 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약국 안은 휑하니 썰렁했다. 호랑이들은 련에게 또 다른 수련을 받고 있었고 정신비는 창천 길드 창립일을 맞아 길드원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후우…….”

힘든 훈련을 마치고 와 썰렁함에 잠긴 약국에서 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약초 정리에 들어갔다.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일상이었다.

서준은 각성 초창기를 생각하며 약초를 빻았다. 창천 길드에 모든 것을 떠맡기기 전, 홀로 신약을 개발하고 약초를 판매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약초를 빻았다.

서준뿐만이 아니었다. 오세근과 김비서 역시 본래의 일상을 다시금 시작했다.

서준과 함께 게이트 탐사를 시작하며 일선에서 물러났던 오세근은 길드를 지휘하기 시작했으며 김비서는 오세근을 수행하며 전반적인 행정업무를 다시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일상처럼 하던 쉬운 일이었지만 고된 수행 후에 하려니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련에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착실하게 수행했다.

일상을 보내면서 세 사람은 스스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기운이 더욱 정순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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