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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00화 (100/150)

100화.

서준의 오른손에서 피어오른 짙은 녹색의 기운이 괴수의 엄지손가락부터 시작해서 괴수의 몸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녹색의 기운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괴수의 피부를 타고 위로 끝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륵?

이질적인 기운이 본인의 몸을 타고 올라오자 괴수의 심기가 거슬렸는지 기분 나쁜 소리를 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았다.

본인의 목을 물고 있는 호랑이들의 이빨처럼 서준의 기운은 살짝 거슬리기만 했을 뿐 자신에게 그 어떤 피해를 주지도 못했다.

-크르륵!

해서 괴수는 본인의 몸을 타고 오르는 기운을 무시한 채 서준의 목을 더 강하게 조였다. 그래도 기분이 조금 더 나빠지기는 했던 모양이다.

-멈춰! 멈추라고! 더 이상하면 진짜 바닥이야! 기운을 다 쓰면 진짜 도망칠 방법이 없다고! 기회 봐서 게이트 열고 도망치는 게 최선이야!

게이트? 이미 늦었다. 그걸 열 수 있었다면 진작에 열어버렸을 것이다. 게이트를 열었다가 차단해서 괴수의 팔을 끊어버리든 도망을 치든 했을 것이다.

괴수에게 목을 붙잡힌 이후로 서준은 계속해서 시도했으나 계속해서 실패했다. 시도할 때마다 괴수가 눈치를 채고 서준의 목을 더욱 강하게 조르며 기술이 시전되기 전에 파훼해버렸던 것이다.

녹색의 기운을 신경 쓰지 않는 괴수도 게이트 능력만큼은 사전에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게이트를 열게 하는 기운은 괴수에게도 그만큼 거슬리는 기운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이것 말고는 방법도 없어!’

게이트를 여는 것은 서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계속해서 실패한 지금 서준에게 게이트를 열어낼 기운 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도박 수를 던져볼 한 줌의 에너지뿐이었다. 이게 서준이 부릴 수 있는 최대의 신비였고 발악이었다.

-크르르륵!

괴수도 이제 서준을 가지고 노는 게 질린 듯 서준의 목을 더욱 세게 조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서준의 숨통을 그대로 끊어버릴 계획이었던 듯싶었다.

그리도 그때 서준의 도박 수였던 짙은 녹색의 기운이 괴수의 머리에 씌어있는 월계관을 닮은 아티팩트에 도달했다.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서준의 기운이 아티팩트와 만나자 아티팩트는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 원숭이 괴수는 괴로운 듯 양손으로 관을 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덕분에 서준은 괴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괴물에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서준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동안 참았던 숨을 모두 몰아쉬듯 서준은 크게 심호흡하며 주위의 공기를 모두 빨아들였다.

-잘했어! 잘했다고!

서준의 도박 수가 먹혀들자 별도 기쁜 듯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소리치며 즐거워했다.

-서둘러!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끝장을 내든 도망을 치든 하란 말이야! 빨리 게이트 열어!

서준의 일격필살이 먹히지 않았던 녀석이다. 지금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고 있는 녀석에게 서준이 다시 공격을 한다 해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해서 별은 도망을 치라며 땅을 짚고 숨을 쉬고 있는 서준에게 소리쳤다.

‘못 해……. 게이트 못 연다고! 할 수 있으면 진작에 했어!’

하지만 서준에게는 이미 게이트를 열 수 있는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게이트뿐만이 아니라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태였다.

“얘들아…. 뒤를 부탁한다.”

서준은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괴수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괴수의 목 근육에 이빨을 더욱 강하게 박아놓은 호랑이들을 보며 부탁했다.

오세근은 이미 쓰러져 있는 상태였고 김비서의 전투력 또한 원숭이 괴수에게 상처입힐 정도는 되지 않았다.

지금 서준이 믿을 수 있는 건 호랑이들뿐이었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 역시 온 기운을 다 쏟아부으며 괴수의 목을 물었다. 그러자 괴수의 목에서 핏줄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호랑이들의 이빨이 괴수의 두껍고 단단한 근육을 뚫고 상처를 입히기 시작한 것이다.

-끄에에에에에에에에엑!

괴수가 괴로운 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런 괴수의 이마에는 아직도 관이 아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제천대성의 힘을 통제하는 긴고아처럼, 정말로 이전 서준이 말하던 상황처럼 된 것이다.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환하게 빛나던 아티팩트가 빛을 잃었다. 서준의 기운을 받아내고 빛을 발하기 전보다도 더욱 어둡고 칙칙한 색으로 변화했다. 아티팩트는 완전히 빛을 잃고 모든 힘을 잃은 것처럼 짙은 검은색으로 변화했다.

그와 동시에 괴수의 탄력 있던 피부가 서서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어흥! 캬앙! 크릉!

약간의 상처를 주는 것에 그쳤던 호랑이들의 이빨이 괴수의 목 근육을 물어뜯었다.

살점이 뜯겨나간 괴수의 목에서 세 줄기의 핏방울이 용천처럼 터져 나왔다.

-꾸에에에에에에엑…….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괴수의 목소리 역시 힘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괴수의 피부는 점점 더 쪼그라들며 순식간에 노화되는 듯했다.

-쿠웅!

소리를 내며 괴수의 거대한 신체가 무너졌다. 마치 모든 진기를 빨린듯한 괴수의 몸은 온통 자글자글해져 죽기 직전의 노인과도 닮았다.

괴수의 이마에 씌어있던 관이 놈의 머리에서 훌러덩 빠져나왔다. 마치 식사를 모두 끝낸 듯 다시 빛을 되찾은 관은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어 서준의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변했다.

“살았다……. 살았어!”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해 몸을 일으키지 못한 서준도 상황을 알아볼 수는 있었다.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에 서준 몸에 남아있던 미약한 힘마저 모두 빠져나갔다.

모든 힘을 소진한 서준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으…. 으윽.”

“깼어요?”

어둑한 동굴 속에서 서준이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오세근이 물었다.

“여기가…. 어디지?”

“동굴 하나 찾아서 숨어들어왔어요. 형님 쓰러져 계시는데 갑자기 습격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잖아요. 주위를 확실히 살폈으니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서준의 물음에 오세근이 답했다.

오세근의 답을 들은 서준은 눈동자를 굴리며 오세근의 몸을 살펴보았다. 분명히 큰 상처를 입었던 것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였다.

“아, 백 선생님 가방에서 약 몇 개 꺼내서 길드장님이랑 백 선생님께 강제로 먹였습니다. 두 분 다 기절해계셔서 먹이는데 애먹었다니까요?”

그 모습을 보면 김비서가 서준의 의문점을 알아차린 듯 알아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길드장님은 외상만 심했기에 금방 눈을 뜨더라고요. 백 선생님은 기운이 모두 소진되셔서 깨는 데 좀 오래 걸린 듯했지만.”

“시간이 얼마나 흘렀죠?”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세 시간…. 삼십 분 정도 흘렀네요.”

“다행이다…….”

다행이었다. 까딱 며칠을 기절해 있었다면 지구와의 시차가 상당했을 것이다.

정신비도 잠시 몸을 떼 내는 게 가능한 거였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으면 불안증세가 다시 생길 게 뻔했다.

그 외에도 시간 괴리가 심하면 심할수록 여러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 뻔했기에 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티팩트는 챙기셨나요?”

“네, 여깄습니다.”

김비서가 품속에 잘 넣어두었던 아티팩트를 서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티팩트를 직접 사용하는 괴수라니……. 그런 건 처음이었어요…….”

“그러게요, 성장을 촉진하는 거 외에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물론 지금껏 아티팩트를 사용하며 많은 헌터들을 죽인 괴수들도 몇 있었다.

김비서가 이야기한 것은 별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에 한한 것이었다. 지금껏 별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는 괴수의 성장을 촉진시켜줄 뿐 갑자기 신체능력을 강화시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뿔토끼의 경우만 재생력을 높여준 적이 있었지 그 외에는 이렇다 할 특별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상대한 거대 원숭이 괴수는 아티팩트를 완벽히 다룰 수 있었다.

그 속에 담긴 힘을 모두 뽑아내어 본인의 신체를 현격하게 강화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도 아티팩트의 원재료가 나뭇잎이었고 서준이 식물을 다루는 기운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상성이 좋았어요. 하마터면 이대로 끝장날 뻔했네요.”

“그러게요.”

대충 상황을 파악했던 김비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해요.”

서준은 무력했던 지난 전투를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서준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아주 꽉 쥐어졌다.

그만큼 서준은 분했고 또 분했다.

“일단 돌아갑시다. 몸조리는 돌아가서 해도 늦지 않아요. 더 이상 시간 괴리가 발생하기 전에 돌아가야 해요.”

김비서가 계속해서 말했다. 평소에 말 많기로 유명했던 오세근의 입은 계속해서 다물어져 있었다.

오세근 역시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각성하기 전에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살았던 녀석이다.

각성한 후에도 온갖 지원이란 지원은 다 받으며 금방 강해졌던 녀석이다. 심지어 련의 수련이라는 기연마저 얻은 녀석이었다.

오세근의 인생에서 오늘처럼 굴욕적인 날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를 열었다. 기운이 몸을 통해 흘러나오자 온몸이 쑤실 듯 아팠지만 참을 수 있었다.

오늘 낮에 겪은 굴욕감에 비하면 이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서준은 어느새 회복된 기운을 완벽하게 운용하며 게이트를 열었다.

“갑시다.”

“네.”

“네.”

-어흥! 캬앙! 크릉!

게이트를 넘어가는 서준의 오른손에는 아티팩트가 쥐어져 있었다. 목표는 달성했다.

별의 영혼을 먹고 자란 괴수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고 아티팩트 역시 얻어냈다. 죽은 사람 한 명 없이 임무를 완벽히 성공해냈다.

그러나 게이트를 넘어서는 서준 일행의 표정은 침통하고 분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서준은 승리했지만 패배했다.

“손에 쥔 걸 보니 성공한 듯싶은데 표정들이 왜 그렇지? 꼭 패잔병들 같군.”

소파에 앉아 게이트를 넘어오는 서준 일행을 바라보던 련이 말했다.

“스승님.”

두달 동안의 수련 동안 어느덧 련을 스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서준이 말을 꺼냈다.

“목소리를 들으니 드디어 각오가 선 것 같구나.”

서준의 말을 들은 련은 직감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

“네,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한참 부족합니다.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더 이상 지고 싶지 않습니다.”

서준은 랩을 하듯 속에 담긴 말을 빠르게 쏘아대기 시작했다.

서준의 이야기를 들은 련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야.”

서준 일행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뒤에 두 사람 역시 각오가 선 것 같군. 일단은 잠을 자두거라 그런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

“네.”

“내일부터 지옥이 시작될 거야. 각오 단단히 하라고. 편히 잘 수 있는 마지막 밤이 될 테니까 딴짓하지 말고 푹 자두는 걸 권한다.”

소파에서 일어나 침실로 걸어가던 련은 잠시 발을 멈춰 세우며 말했다.

이윽고 서준 일행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보더니 문을 쾅 닫고 2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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