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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96화 (96/150)

96화.

“그래서 차원을 넘어서 깽판을 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남자의 질문이 서준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남자의 눈빛이 서준을 샅샅이 훑어보고 있었다. 거짓을 말한다면 분명히 알아차릴 것이다.

서준 역시 그 사실을 정확히 통감하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세밀하게 서준을 관찰하고 있었고 거짓을 고하는 순간 서준에게서 나타나는 위화감 따위는 단숨에 잡아낼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을 그대로 고하기도 애매했다.

당신의 세상에서 우리의 세상으로 침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있을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남자가 게이트를 열어 지구를 공격하는 놈들과 한패라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서준의 목이 이 자리에서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거지? 숨기는 거라도 있는가?”

“…….”

서준의 일행은 입을 다문 채 침묵했다.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실을 고해도 죽고 거짓을 고해도 죽었다. 외통수였다.

“흐음…. 과성장 한 돼지 새끼랑 관련된 건가? 어때 내 예상이 틀린가?”

남자가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서준의 일행은 갑작스러운 말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모두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아무래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 표정을 읽어낸 남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로구나. 그래 이제 이유를 말해 볼까? 더 이상은 내 인내심이 바닥나서 말이야……. 올 때 석 달이나 걸렸는데 돌아가면 몇 년이나 더 흘렀을라나?”

남자는 시간 괴리로 인해 자신의 세상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유롭게 말했다.

본래 세계의 시간이 십 년 아니 백 년이 흘러도 별 상관없는 듯한 태도였다. 서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가지 않으셔도 괜찮으신 건가요? 벌써 세 달이나 차이가 생겼습니다.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혼란이 찾아왔을 거예요. 한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잖아요.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 시간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거예요. 더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돌아가시는 게 어떨까요?"

서준은 남자를 돌려보내기 위해 최대한 공손한 말투를 하며 말했다.

사실 남자가 이곳에 찾아온 건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해서 시간이 흘러봐야 몇 시간 흘렀을 뿐이다.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다.

물론 남자가 또 다른 시간 축을 거슬러 와 오해를 하고 있었기에 그를 이용했을 뿐이다.

실제로 남자는 세 달이라는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기에 서준의 말을 믿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나? 실종 처리해준다면 오히려 고마울 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계속 말했다. 오히려 시간 괴리를 반기는 듯한 미소를 보여주며 더욱 여유를 부렸다.

“미친것들에 놀아나는 것도 슬슬 질리던 참이다. 이렇게 빠져나올 수 있으니 오히려 좋구나! 하하하! 다른 차원이라……. 좋구나! 들킬 염려도 없고!”

남자의 말을 듣던 서준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무언가에 쫓기거나 혹은 도망치고 싶어 하고 했던 것 같았다.

만약 원래 세상에 불만이 많았더라면……. 혹시 나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서준은 깊이 고민했다.

“제가 사실을 말하면 절 어떻게 하실 건가요? 죽이실 건가요?”

깊이 고민하던 서준이 물었다.

“그 사실이란 거에 따라 내 행동이 달라지겠지? 알면서 뭘 묻고 그러나.”

사실을 말하기 전에 목숨을 보장받으려 해봤지만 그 역시 실패했다.

그러나 서준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침묵으로 일관해봤자 같은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단지 이 남자가 서준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롭게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미래의 당신의 세계에서 저희 세계를 공격했습니다.”

서준은 마음을 단단히 굳히고 결심한 듯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무슨 소리죠?”

서준의 말을 듣던 남자가 의혹을 제기했다.

“네 말대로 미래의 우리 세계가 너희를 침략했다고 치자. 그런데 미래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거지? 침략할 것입니다. 도 아니고 침략했습니다. 라면서 말이지. 네놈이 예언자라도 되나? 그럴만한 자질은 보이지 않는데?”

가질법한 의혹이었다. 서준이 드나드는 세계는 과거를 투영한 세계, 지구를 침략한 세계는 미래의 세계였으니까. 시간의 축이 달랐다.

“제가 드나들 수 있는 세계는 현재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다 아는 소리를 왜 어렵게 하나? 우리가 그곳에서 만났는데 당연한 소릴!”

남자가 일갈했다. 하지만 서준은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저희 세계, 즉 지구를 침략한 것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미래의 모습이라고? 무슨 소리지?”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과거의 세계를 들락거릴 수 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서준은 뒤이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동안 겪었던 이야기들을 설명해주었다.

과거의 괴수를 처치했더니 지구를 침략한 괴수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나 아티팩트 역시 과거의 세계에서 손에 얻자 미래의 세계에서 사라졌던 점을 설명했다.

별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에 대해 말해주면서도 십이지신의 모습을 본뜬 열두 마리에 괴수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그렇군…. 돼지새끼를 쫓다가 만나게 된 게 맞았어. 이건 기적인 건가 아니면 악연일 수도…….”

남자는 한참을 생각하며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시간의 괴리가 생긴 이유는 미래의 시간을 쫓았기 때문인가?”

“그게 무슨 소리죠?”

시간 괴리는 서준도 아직 풀지 못한 현상이었다. 남자가 무언가를 안다는 듯 중얼거리자 서준은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미래의 세계가 진짜 현실이고 과거의 세계는 네가 미래를 바꿀 수 있게 하는 신적인 존재의 안배라 한다면 과거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지. 가짜가 진짜를 쫓기 위해 빨리 달리는 것뿐이니까. 언젠가 겹쳐질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뭐 내 망상일 뿐이다. 신경 쓸 것 없다.”

그럴법한 이야기였다. 또 허황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의 말처럼 신경 쓸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저 이야기가 거짓이라면 이전과 별다를 바 없이 행동하면 끝이었고 사실이라 해도 서준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과거의 세계가 진짜 세계를 쫓아 빨리 흐르겠다는데 서준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지금 중요한 것은 저런 사실이 아니고 남자의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 가였다.

서준을 도울지 죽일지 그것은 오로지 남자의 변덕에 달렸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였어. 본디 미약하디 미약한 돼지새끼가 그만한 힘을 갖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구나.”

남자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조립하고 있었다. 사실 남자에게도 그동안 의문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 의문들이 지금 서준의 말을 단서로 삼아 하나씩 조립되어 풀어지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조각이 들어맞는군.”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죠?”

남자의 혼잣말을 듣고 있던 서준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 남자는 살기를 모두 거둔 채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서준 일행은 일이 잘 풀려가는 것 같아 안심하면서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럼 지금까지 몇 마리나 처리했지?”

혼자서 중얼거리던 남자가 서준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서준의 물음에 답해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남자는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다.

서준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이것이 십이지신의 모습을 한 괴수들의 이야기란 것을 바로 알아채었다.

“뱀, 닭, 소, 토끼, 말, 돼지, 양 이렇게 일곱 마리입니다. 말의 경우는 다른 사람이 처리했기에 영혼을 회수하지 못했고 돼지의 경우는 당신이 더 잘 알겠죠.”

서준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어찌하다 보니 벌써 절반 이상을 해냈다.

열두 마리 중 일곱 마리를 해냈으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상당하군…. 고작 그런 실력으로 일곱이나 해치우다니. 기적에 가까운 일이야”

“제가 직접 한 것 몇 안 됩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죠.”

사실이었다. 서준이 직접 잡은 괴수는 뱀과 양뿐이었고 토끼의 경우는 뿔만 자르고 도망쳤다.

나머지는 지구의 헌터들과 남자의 군대가 잡았을 뿐이다.

서준은 자신을 비꼬는 남자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사실을 말해주었다.

“십이지신이란 거 말이야. 네놈이 말한 대로라면 용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군?”

“네, 그렇습니다. 심지어 놈의 현 위치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서준은 죽은 용의 유적에 봉인되어 있는 악룡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놈이 별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까지 이야기했다.

놈은 별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열두 괴수에 대해 예언해 놓은 용의 유적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런 놈이 별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을 확률은 낮았다.

“하하하! 용이라. 이 나이 먹고 용잡이나 하게 생겼군. 어릴 적 꿈만 같던 이야긴데?”

남자의 말을 들은 서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말은 저희를 돕겠다는 이야긴가요?”

“돕는다라… 말에 어폐가 있군.”

“네?”

남자의 용을 잡는다는 말을 듣고 반색하던 서준이 급격히 당황하며 되물었다.

용을 잡는다기에 서준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로 알아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고작 네놈 수준으로 날 돕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설령 우리 둘이 뭔가를 같이한다 해도 사실상 나 혼자 하는 게 아닌가?”

다행히도 남자는 서준을 돕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수준 차이를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나 혼자 용잡이는 무리지.”

남자는 골똘히 생각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꾸 혼잣말 중얼거리는 게 미친놈 같지?’

-그래.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석 달이나 타임워프 되었다는데 오히려 좋다는 놈이 어디 있겠어? 그냥 미친놈이다. 알아서 잘 처신해라. 미친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긴장이 풀린 서준은 별과 실없는 농담 따먹기를 아래도 했다.

“좋다. 오늘부터 고생길 좀 열리겠구나? 아니지, 오히려 가문의 영광이겠구나. 영광으로 알아라.”

남자가 서준과 오세근 그리고 김비서를 한 번씩 바라보며 영문 모를 말을 했다.

서준은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저기 수호수들 덕분에 일은 좀 수월해지겠어.”

그러면서 이번에는 호랑이들을 훑어보았다. 서준과 오세근 그리고 김비서를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표정이었다.

호랑이들을 바라볼 때는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쯧쯧, 어찌 저런 놈에게 저런 훌륭한 수호수들이 붙었을꼬.”

호랑이들은 남자가 보기에도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것 같았다. 그럴 법도 했다.

호랑이는 지구에 존재하는 맹수들 중 최상위권에 위치하는 동물이었다.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는 단연 최강이었다.

그런 호랑이가 괴수를 먹어치우며 힘을 쌓았으니 여간 대단한 게 아니었다.

별의 세계에서 힘 좀 쓴다는 남자가 보기에도 탐스러운 영물이었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영문 모를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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