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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94화 (94/150)

94화.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소리가 울리는 간격은 그렇게 짧지는 않았다.

대략 삼사 초마다 한 번 정도였다. 한 걸음에 삼 초 정도 소요되는 동물이라니 아직 보지 못했지만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했다.

쿵! 쿵! 쿵! 다시 소리가 울렸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큰 소리였다. 저 멀리서 시작된 진동으로 땅이 흔들리고 모래 구름이 피어올랐다.

아직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보이는구나!

별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서준도 알고 있었다. 별이 소리치기 전부터 서준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거대한 녀석은 저 멀리 지평선 아래에서 머리부터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소리가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놈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미 서준의 눈에는 기운이 몰려 있었다. 적어도 수 킬로미터는 떨어진 녀석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녀석이었다.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놈의 모습이 이렇게 거대하게 보인다니……. 그 실제 크기는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왓 더…….”

오세근도 당황했는지 입을 헤 벌리고 넋을 놓았다. 그 옆에 서 있던 김비서는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신 차려!”

정신 줄을 잡고 있던 서준이 소리치자 두 사람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일단 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저놈을 잡는 건 불가능합니다.”

상황 파악을 끝마친 김비서가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코끼리는 비교도 안 되는 몸집의 소유자였다. 흰수염고래가 육지로 올라온다면 저럴까? 게다가 그 길이도, 체고도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저런 몸을 감싸고 있을 그 피부의 두꺼움 역시 예상이 되었다. 과연 뚫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요. 일단 돌아갑시다.”

대충 각을 재보다 역시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서준이 서둘러 게이트를 열었다.

거대한 몸집답게 움직임이 매우 둔한 녀석이었지만 그 크기가 엄청나 한 걸음 걸어올 때마다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 서준은 모든 의지를 끌어모아 게이트를 최대한 빨리 열기 위해 애를 썼다.

서준의 손 앞에서 게이트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꾸에에에에에에엑!

그때였다. 아직 서준의 게이트가 미처 완성되지 못했을 때였다. 지금껏 상대한 멧돼지 괴수가 앞뒤로 몇 배는 늘어난 것처럼 거대한 녀석이 고통에 가득 찬 울음을 터트렸다.

“으윽!”

공기를 진동시키는 그 거대한 울음에 서준의 일행은 귀를 막아서며 얼굴은 잔뜩 찌푸렸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아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시끄러운 괴성에 호랑이들도 흥분해서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토록 커다란 소리를 내뿜는 놈의 성대가 아니었다.

놈이 괴로운 울음을 내뱉게 된 원인에 있었다. 서준은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꾸락티릭타스!”

“꾸락티릭타스!”

그것은 군대였다. 인간으로 이루어진 전쟁 혹은 괴수를 사냥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 분명한 집단이었다.

“사람! 사람이 있습니다! 형님!”

서준은 귀가 먹먹하고 이명이 계속해서 울렸지만 흥분해서 소리치는 오세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세근은 귀가 찢어질 듯한 고통보다도 인간을 발견했다는 흥분이 더 컸는지 놀란 눈을 하며 소리쳤다.

“제대로 된 사람이에요! 형님! 갑옷을 입고 있다고요! 원시인들이 아니에요!”

그랬다. 그들은 직전에 보았던 원시부락의 사람들처럼 가죽 누더기를 걸쳐 입고 있지 않았다.

잘 정돈된 철제-지구의 철과는 다른 철인 듯하다.- 갑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그 숫자가 못해도 200은 돼 보였다. 이 근방에 제대로 된 문명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미 서준의 게이트는 다시 닫혔다. 괴수의 괴성 덕분에 서준의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덕분에 게이트는 닫혀버리고 말았다.

서준은 게이트를 다시 열 생각조차 못 하고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꾸락카락타스!”

“꾸락카락타스!”

대장기를 들고 있던 녀석이 뭔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 말을 한마디씩 할 때마다 병사들은 후창을 했다. 이윽고 빠르게 그들의 대형이 변했다.

그렇게 대형을 바꾸고 바꾸고 바꾸고 계속해서 바꿔가며 거대한 괴수를 끊임없이 공격했다.

두꺼운 가죽은 계속되는 공격에 너덜너덜해지며 피를 흘리기 시작했고 뭐든지 짓이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놈의 발바닥은 이미 두 갈래로 갈라졌다.

“굉장해…….”

오세근답지 않은 말이었다. 전투를 지켜보던 오세근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진정으로 감탄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군대 자체의 전투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 하나하나의 전투력 역시 훌륭했다.

저기서 제일 약한 것처럼 보이는 녀석이 서준보다도 강했다. 그런 녀석들이 이백 명이 모였다.

그럼에도 거대 멧돼지 괴수는 밀리지 않고 있었다. 병사들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육중한 앞발을 휘둘렀다. 그렇게 죽은 병사가 벌써 스물은 넘었다.

“앗!”

그때였다.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지휘관이 서준 일행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다시 부대를 지휘해야 했기에 고개를 돌렸지만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버리는걸 서준은 확실히 보았다.

“아무래도 피해야겠어요.”

지켜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괴수가 이기든 군대가 이기든 곤란했다.

괴수가 이긴다면…. 어차피 방법은 없었고 군대가 이기는 경우에도 매우 곤란했다. 저들에게 둘러싸이면 아마 게이트를 열기 전에 붙잡히고 말 것이 분명했으니까.

서준은 의지를 모아서 게이트를 열었다. 다행히도 군대의 지휘관은 괴수와의 전투 때문에 이곳을 신경 쓰지 못했다.

“일단 넘어가서 생각합시다!”

“네!”

그 순간이었다. 그동안 무기를 꺼내 들지 않고 지휘만 하고 있던 지휘관이 괴수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괴수의 온몸에 마치 난도질을 해놓은 것처럼 많은 상처가 순식간에 생겨났다.

균형의 축이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꾸락꾸로타스!”

“꾸락꾸로타스!”

지휘관의 엄청난 공격에 힘을 얻은 병사들이 거대 멧돼지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승부의 축이 기울었다. 전투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넘어가!”

서준이 소리쳤다. 오세근과 김비서가 빠르게 게이트를 넘어갔다. 호랑이들도 머뭇거리지 않고 게이트를 넘어갔다. 남은 건 서준과 어흥이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지휘관과 서준이 다시 눈을 맞췄다.

“윽!”

그 순간 서준은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멈춰섰다. 지휘관의 압력에 바짝 쫄아버린 것이다.

-어흥! 어흥!

다행히도 어흥이가 서준의 정신을 일깨워줬다. 서준은 어흥이와 함께 서둘러 게이트를 넘어갔다.

분명 멧돼지 괴수 무리와의 전투에서 이겼는데도 불구하고 서준 일행의 모습은 패잔병과 다름없었다.

괴수와 이곳 사람들의 전투는 그만큼 큰 충격이었다.

약국으로 건너온 서준은 서둘러 게이트를 닫았다. 시간을 끌었다가는 지휘관이 이곳으로 넘어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후…. 정말 큰일 날뻔했습니다. 형님.”

“그러게 말이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괴수가 너무 강했어.”

서준이 지금껏 상대해왔던 괴수들도 강했다. 별의 영혼은 그야말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고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서준은 그 영혼을 지니고 있는 괴수들을 상대로 잘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만큼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근데 그 돼지 새끼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건 맞겠죠?”

“아마도…. 아니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강해질 수는 없지.”

이미 원류가 되는 멧돼지 괴수와 한바탕 씨름을 해봤던 서준이었다. 개체마다 크기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로 차이가 날 수는 없었다.

분명 별의 영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보다 그곳의 사람들이 더 놀라워요.”

김비서의 말이었다. 김비서는 지친 듯 숨을 헐떡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최저한으로 잡아도 이백 명이었어요. 못해도 이백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전투력이……. 말이 안 돼요. 지구의 헌터들과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해요!”

별의 지도를 받으며 힘을 길러온 서준이었다. 일전의 결사회를 이끌던 최운혁이나 모하메드 정도는 되지 못하지만 어느덧 서준도 상위권에 위치한 헌터였다.

어디 가더라도 무시당할 수준은 아니란 이야기다. 그런데 이백이 넘는 병사 중 제일 약한 녀석이 서준보다 강했다.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겠어요.”

김비서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오세근의 인생 플랜을 모두 설계했던 김비서였다.

그는 이런 방면으로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김비서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일단 아티팩트는 그들의 손으로 넘어갔겠죠?”

“그렇겠죠. 아무래도.”

“힘으로 뺏어오는 건 불가능할 거 같고…. 훔치거나 설득을 해야겠네요.”

“하아……. 앞이 깜깜하네요.”

제일 약한 병사가 서준보다 강했다. 그 말은 불침번을 서고 있는 평범한 병사1의 수준도 그 정도는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들에게서 어떻게 별의 영혼을 훔쳐낼 것이며 또 그것이 안 된다면 어떻게 설득을 해 받아낸단 말인가? 미래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우리도 숫자를 맞추는 건데…….”

“불가능한 이야기죠. 셋이 뭉친 것도 기적입니다.”

김비서의 말에 서준이 낙담하며 답했다. 더 이상 서준이 게이트를 닫으러 가자고 했을 때 반겨줄 사람은 없었다.

서준의 말대로 세 명이 뭉친 것도 기적이었다. 게다가 어떻게 사람을 모으더라도 그 수준이 문제다.

-뭔가 있다!

그때였다. 별이 별안간 소리쳤다.

‘뭔데?’

별의 소리를 듣고 서준이 주위를 두리번대보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던 호랑이들 역시 얌전했다.

‘네가 잘못 본 거 같은데?’

아무래도 별이 잘못 본 듯싶었다.

-아니야! 뭔가가 있다고!

하지만 별은 매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자 하듯이 별은 이제껏 들은 적 없었던 매우 진중한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지금 힘을 다 잃은 상태라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 어쨌거나 조심해! 낌새가 이상해! 느낌이 너무 안 좋다고!

지금껏 별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장난을 치던 녀석이었다.

별의 이상한 반응에 서준 역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찌지직!

그리고 그 순간, 별안간 허공이 갈라지더니 서준의 게이트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찢어지기 시작했다. 서준의 게이트가 열렸다 닫힌 곳이 강제로 찢기듯 벌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을 뽑아 든 남자가 한 명 건너왔다.

“카록레릭루?”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던 남자였다. 서준의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준은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분 전 눈을 마주쳤던, 단지 그것만으로 서준의 온몸을 마비시켰던 군대의 지휘관이었다.

그가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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