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천만다행히도 일이 잘 풀렸다. 서준의 일행을 둘러싼 부족민들이 모두 무기를 버렸다.
죽일 것처럼 노려보던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시선은 경의로 바뀌었다.
부족 사람들을 호랑이들을 보자마자 절을 해대며 방언을 터트렸다. 마치 신이라도 본 것처럼.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 부족 사람들은 호랑이를 섬기는 듯했다.
-게다가 이 주위에 호랑이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니…. 아마도 실제로는 처음 봤을 게다. 호랑이를 섬기지 않았더라도 놀랄 수밖에 없지. 애들 덩치가 조금 큰 것도 아니고.
이 주변에서 호랑이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발자국도 배설물도 찾지 못했다. 이미 오랜 시간을 호랑이와 보냈던 서준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부족 사람들은 호랑이들을 섬겼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원래 살던 곳에 호랑이가 서식했거나 이곳에도 예전에는 호랑이가 살았다거나 했을 것이다.
해서 이 부족 사람들은 그 힘에 매료되어 호랑이를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서준의 추측이었다. 실제로 지구에서도 강한 동물을 신으로 섬기던 역사가 있었다.
이곳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의 호랑이도 한번 만나 보고는 싶네. 지구와는 또 다르게 생겼을 거 아냐.’
-그러다 죽을걸?
‘것도 그렇지. 진짜 괴수일 테니까.’
호랑이 괴수라니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분명히 매우 날래고 용맹할 것이다.
이미 서준은 호랑이 빠돌이였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덕분에 전투를 피할 수 있었어요. 싸웠으면 괜히 마음만 불편해졌을 것 같은데……. 이렇게 끝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는 지금도 충분히 불편합니다. 김비서님.”
부족 사람들은 호랑이를 부리는 서준의 일행을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다.
모아두었던 식량을 나눠주기도 했고 심지어 여자아이를 데리고 와 결혼하라는 듯이 떠밀기도 했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눈빛과 몸짓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서준은 이 상황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불편하세요? 형님? 전 잘 모르겠는데요?”
오세근은 이런 대접이 이미 익숙했는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주는 음식을 맛있게 받아먹고 그 외에도 여러 도움을 받으며 왕 대접을 받고 있었다.
역시 재벌 3세…….
해서 서준은 모든 일을 오세근에게 떠맡겼다.
서준도 김비서도 이 상황이 매우 불편하여 제대로 행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오세근만이 오직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부족 내부를 활개 치며 다녔다.
“그래서 뭐 좀 알아냈고?”
“아이, 형님. 제가 누굽니까? 시키면 다 하는 오세근입니다! 이미 알아냈죠!”
오세근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역시 오세근……. 서준이 부탁하면 뭐든 다 들어주었다.
“제가 진짜 몸짓 발짓 다 쓰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물어봤거든요? 여기서 한 달 정도 가면 찾을 수 있다는데요?”
“정말이야?”
세근의 말에 서준이 놀라며 물었다.
“네, 한 달 정도만 가면 큰 도시가 나온답니다. 그림으로 표현한 걸 보니까 그곳을 꽤 무서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왠지 물어보니까 알려주긴 하는 데 가지 말라며 말리는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곳은 거의 원시 부족 수준이니까.”
서준이 놀랄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서 한 달만 가면 큰 도시가 나온다.
이게 바로 서준이 세근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세근은 부족민들에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사는지 손짓 발짓을 다 써가며 물어보았고 그 결과를 가져왔다.
“와, 진짜 말이 안 통하니까 미치는 줄 알았다니깐요? 얘네들 한 달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아요?”
“어떻게 하는데?”
세근의 물음에 서준이 되물었다.
“해랑 달이랑 30개씩 그려놨어요! 땅바닥에다가. 와…. 진짜 저 아니었으면 못 알아냈어요. 정말.”
그렇게 투덜거리는 세근을 서준과 김비서가 잘 달래주었다.
그리고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어낸 그들은 부족민들의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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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킁! 킁! 킁!
-킁! 킁! 킁! 킁!
서준 일행이 목적지 인근에 거의 다 도착했다.
그곳에서 서준 일행은 새로운 괴수를 볼 수 있었다.
“형님! 그쪽으로 두 마리 더 갑니다!”
“괜찮아! 걱정 마! 이 정도는 처리할 수 있어!”
멧돼지를 닮은 괴수 두 마리가 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지구의 멧돼지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멧돼지의 어금니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고 투명했다. 그 날카로움은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무를 갈라낼 정도였다.
게다가 그 몸집은 어흥이와 맞먹을 정도였으니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쉬익! 쉬익!
멧돼지들은 자신들의 힘을 뽐내며 서준에게 달려들었다.
-어흥! 어흥!
-캬아아앙!
-크릉! 크르릉!
물론 서준이 직접 상대할 일은 없었다. 서준의 주위로 접근하는 멧돼지 괴수는 호랑이들이 모두 처리했다.
아무리 날카롭고 단단한 어금니에 거대한 몸집을 가졌다고 해도 멧돼지는 멧돼지였다.
고작 멧돼지가 호랑이를 잡을 수는 없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였다.
“잘했어!”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잘 해낸 호랑이들을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멧돼지 괴수는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었고 오세근과 김비서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도와주러 가자 얘들아!”
-어흥! 캬앙! 크릉!
서준도 결국 장도리를 뽑아 들었고 호랑이들도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수십의 멧돼지 괴수와 서준 일행은 이렇게 얽혀서 한참 동안 계속해서 싸웠다.
서준은 장도리를 휘두르고 넝쿨을 심어서 멧돼지를 넘어트렸으며 호랑이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의 목을 물어뜯었다.
오세근과 김비서 역시 서로 호흡을 많이 맞춰본 듯 멋진 합격술을 보여주면서 괴수를 상대해냈다.
각성 기간은 짧았지만 최고의 트레이너에게 훈련받은 이들이었다. 이미 이들은 얕볼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저 둘 생각보다 잘 싸우는데?
‘그러게, 기대 이상이야.’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서준은 기대 이상의 모습에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냥 도움 조금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생각보다 일이 수월해지겠어.’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야. 이 순간에도 적은 강해지고 있다. 짐의 영혼은 그만큼 위대하거든!
그 와중에도 별은 자기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서준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대응하지 않고 무시로 일관하며 멧돼지를 처리해나갔다.
“허억! 허억! 허억!”
오세근과 김비서가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세근이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에는 멧돼지의 시체가 못해도 100구 이상 널려있었다.
날카롭고 단단한 어금니와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서준이 길러낸 넝쿨과 호랑이들이 아니었다면 누워있는 건 자신들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요…….”
김비서의 말이었다. 지쳤는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요. 지금껏 이렇게까지 많은 수를 상대해 본 적은 없었는데…….”
서준 역시 이곳에서 오랜 기간 지냈지만 이 정도의 수를 상대했던 적은 없었다.
그만큼 적들은 많았고 강력했다.
“일단 이거 하나씩 드세요.”
서준은 들고 있던 환약에 기운을 모아 한번 강화시킨 후 오세근과 김비서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죠?”
“김비서! 형님이 주는 건 그냥 바로 먹으면 돼! 물어볼 것 없어!”
역시 오세근이었다. 서준이라면 철석같이 믿는다.
“제가 재배한 약초로 만든 약이에요. 먹으면 상처가 치료되고 기운이 날 거예요."
초록 활력초 변종으로 만들어낸 약이었다. 창천 길드에서는 변종 약초를 모두 분석해냈고 아주 효과 좋은 약을 만들었다.
한 알 복용하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가벼운 상처는 모두 회복되었다. 찢긴 근육도 마찬가지였고 피로 역시 말끔히 회복되었다.
전투 후 이거 한 알이면 웬만한 부상은 모두 말끔히 회복되었다.
“으…. 너무 쓴대요?”
“원래 몸에 좋을수록 맛이 쓴 거야, 인마.”
본래 변종 약초의 열매는 아주 달콤한 맛이었다. 해서 그 열매로 만든 약 또한 충분히 먹을 만했다.
그러나 줄기와 뿌리 그리고 이파리까지 하나같이 버릴 게 없는 약초였다. 모두 다 피로 해소, 근육 보강, 기운 회복 등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모든 효과를 한 번에 보게 하기 위해 모두 합쳐서 약을 만들었고 그 결과 맛은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쓴데요? 윽, 두 번은 못 먹을 거 같아요!”
“언제는 내가 주는 건 뭐든 먹을 것처럼 말하더니만, 아파서 피 철철 흘리다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
“그래도 이건 너무 써요!”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오세근의 허벅지에는 깊은 상처가 났고 피도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상처는 메꿔졌고 피도 멎었다. 물론 그 흔적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피부도 말끔해질 것이다.
입에는 쓸지 몰라도 아픈 것보다는 나았다.
언제 다시 전투가 시작될지 모르기에 대비는 해야 옳았다.
“이 시체들은 어떻게 할까요?”
“흠…. 모두 옮기기에는 양이 너무 많은데…….”
서준 일행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주위에는 백여 구의 멧돼지 사체가 있었다.
“이빨만 뽑아서 팔아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김비서의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돼지의 어금니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 시장에 내놓는다면 큰 이목을 끌 것이 분명했다.
“고기도 맛있을 거 같은데요?”
오세근의 말이었다. 재벌답게 저런 잔잔바리들은 관심 없어 보였다.
그의 관심은 오직 괴수 고기의 맛이었다. 이미 꿀닭으로 길들여진 그의 혀는 일반고기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하지만 서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지금은 저렇게 웃고 떠들 때가 아니었다.
“전투 준비해!”
서준이 소리쳤다.
그의 기감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아주 강력한 기운이었다. 아직 거리는 상당했으나 순간순간 거리가 좁혀졌다.
매우 빠른 녀석이거나……. 보폭이 엄청난 녀석임이 분명했다.
“왜 그러세요? 형님?”
오세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김비서는 일단 서준의 말을 듣고 일어서며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 역시 어리둥절했다.
-상당한 녀석이구나. 긴장해야겠어.
‘응,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
서준의 감각을 공유하는 별이었기에 그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커다란 존재감은 한순간, 한순간 가까워졌다.
-속도가 빠르다기보다는 그 몸집이 엄청난 녀석이다.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어.
별의 말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 무렵 오세근과 김비서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오세근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송 올라왔으며 김비서의 등이 흠뻑 젖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아직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쿵! 쿵! 쿵! 쿵!
거대한 존재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지진이 나듯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