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어때? 뭐 하는 사람들인지 알겠어?’
언덕 위에서 부락을 내려다보던 서준이 별에게 물었다. 이곳은 별의 세계였으니 가장 정답에 별에게 물음으로서 가까운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글쎄다. 내 생각에는 그냥 떨거지들 같은데?
‘떨거지라고?’
-그래.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튕겨 나온 떨거지들 같구나. 수도 적고 옷 입은 꼬라지들 보니 미개한 놈들 같구나.
실제로 그랬다. 그들은 옷이라고 할 것도 없이 가죽을 찢어서 누더기를 만들어 입고 있었다.
살고 있는 집의 형태 역시 두꺼운 나뭇가지들을 엮어 세웠고 동물 가죽으로 그 주위를 둘러 구멍을 막았고 나뭇잎으로 속을 채웠다.
그밖에도 아주 낮은 수준의 주거형태와 생활 환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별이 이야기하던 왕국 어쩌고라고 하기에는 수준이 많이 낮았다.
“밥을 먹는 거 같죠?”
오세근의 말이었다. 이들은 마을 한가운데에 불을 피워놔 잡아 온 동물들을 굽고 있었다. 별은 바로 그 연기를 보고 이곳을 찾은 것이다.
마을 한가운데 아주 큰불을 질러놓고 모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듯했다. 전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고깃덩이를 어디선가 끊임없이 들고 왔고 그걸 받아든 자들은 잘 구워 쌓아놓기 시작했다.
“그래.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군. 뿔토끼를 잡아먹는 것 같은데?”
이미 가죽을 벗기고 토막을 내놓은 상태여서 정확히 원래의 형태를 알 수는 없었지만 대충 뿔토끼의 고기처럼 보였다.
고기들이 대부분 4등분 되어 있었는데 눈대중으로 합치면 토끼의 모양과 흡사했다.
“지금 가볼까?”
서준의 말이었다. 저들의 덩치는 매우 왜소했고 구석에 모아놓은 무기처럼 보이는 것들도 매우 조잡했다. 딱히 위험요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서준 혼자서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겉으로만 저렇지 엄청나게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서도 초인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잖아요.”
김비서의 말이었다. 이 말도 일리가 있었다. 신비의 힘을 끌어다 쓰는 초인들 역시 겉모습만으로 그 수준을 파악할 수 없었다.
실제로 서준의 경우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몸을 지녔으나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맞아, 조심해야 해. 이곳 사람들은 지구와 달리 태초부터 괴수에 노출된 녀석들이다. 모두 신비의 힘을 다룰 줄 안다고. 겉모습만 보고 무턱대고 달려들다간 큰일 난다.
게다가 지구와는 다르게 모두 신비의 힘을 다룰 줄 알았다. 지구에서는 초인이라고 불리는 매우 일부분의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었으나 이곳에서는 달랐다. 이제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조차 신비의 힘을 다뤘다.
게다가 지구처럼 그 원리조차 알지 못한 채 한정된 힘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여 제대로 사용했다.
물론 그것이 무조건 장점은 아니었다. 지구에서처럼 본인의 수준보다 강한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고 훈련을 통해 발전시켜야 했으니까.
-그것뿐이 아니다.
서준이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생각을 엿들은 별이 말했다.
-지금 저놈들이 먹는 게 뭐 같으냐?
‘뿔토끼잖아. 그건 왜?’
-그래. 뿔토끼, 꿀닭 이 근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지.
실제로 그랬다. 서준이 이곳으로 향하면서 가장 많이 본 동물이 뿔토끼와 꿀닭이었다.
특별한 다른 포식자의 존재는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포식자의 개체 수가 매우 적지만 위험한 녀석이거나 인육을 즐기거나 하는 거겠지.
어찌 되었건 이 주변에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 뿔토끼와 꿀닭이었다.
‘설마?’
-그래. 그 설마다.
서준이 무언갈 알아챈 듯하자 별이 말을 이었다.
-뿔토끼, 꿀닭뿐이 아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동물…. 그러니까 너희들 말로 하면 괴수를 섭식하면 신비의 힘이 늘어난다. 그건 너도 겪어서 알고 있겠지? 이놈들의 주식이 괴수다. 날 때부터 괴수를 먹고 자란다고.
‘응. 나 역시 꿀닭을 먹고 힘이 늘어남을 느꼈으니까…. 김비서님 역시 그렇게 각성을 했고.’
서준뿐만이 아니라 호랑이들 역시 그렇게 영수가 되었다.
-그래. 지구의 인류와 이곳의 인류가 뭐가 다른지 그 능력의 활용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어찌 되었건 괴수를 먹으면 강해진다. 그 사실만은 똑같다.
‘저놈들을 마냥 무시해선 안 된다는 거잖아?’
-그래, 이래 보여도 날 때부터 괴수를 먹고 자란 녀석들이다.
서준은 각성을 한 후 한참이 지나서야 꿀닭을 먹었다. 김비서의 경우는 가끔 서준의 집을 찾아왔을 때만 몇 번 먹었다.
그럼에도 각성을 했고, 상당히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꿀닭을 먹고 자란 호랑이들만 봐도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도 괴수를 먹으며 자랐고 아직 말도 못 뗀 갓난아이도 괴수를 먹은 어미의 젖을 먹었다.
모두 신비의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얕봐서는 안 됐다.
-그러고 보니 지구의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수들은 먹는 게 불가능하구나!
별의 외침이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서준의 머릿속으로 강하게 울렸다.
서준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다 아는 사실을 뭐 새삼스럽게 말해? 그게 가능했으면 지금 죄다 초인이 됐겠지.’
-나는 이제 알았다…….
지구의 괴수들은 대다수가 몸이 부식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정상적인 상태의 개체들도 있었는데 그럴 경우 대부분 비위가 상하게 생긴 녀석들이었다.
비위 상하는 모습도 부식이 되지 않은 개체들도 가끔가다 나오기는 했는데 그 이미지가 너무 부정적이어서 그 누구도 먹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 지구에는 괴수를 먹으면 병에 걸린다는 소문도 파다했기에 배곯던 거지라도 괴수를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상한데? 연구를 해볼 법은 하잖아?’
-그렇군…. 욕심 많은 너희 인간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있나.
‘누군가 일부로 그런 소문을 냈을 수도 있겠어.’
만약 누군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괴수를 먹으면 병에 걸린다는 소문을 일부러 퍼트렸다면? 하는 의문이 서준의 머릿속을 가능 채웠다.
그러나 지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서준은 잡생각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일단은 식사가 끝나길 기다려보죠.”
“맞습니다! 형님! 밥 먹을 때 건드리면 화나기 마련이죠!”
그렇게 서준의 일행은 그들이 밥을 다 먹기를 기다리며 숨죽여 관찰했다.
‘일단 강해 보이는 녀석은 없는데?’
-네놈의 감각을 맹신하지 마라. 진정한 강자라면 기척마저 숨길 수 있다.
서준은 별의 밑에서 신비의 힘 활용을 상당히 배웠고 그 재능조차 뛰어났다.
덕분에 날카로워진 서준의 감각은 상대의 수준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서준은 의지를 모아 감각을 더 날카롭게 갈았고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준에게 거슬릴 정도의 힘을 지닌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별은 경고했다.
실제로 이 세계에서는 수준을 숨기는 강자들도 있었으니까.
‘그런 강자가 이런 곳에서 살고 있을까?’
-것도 그렇군.
일행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놈들의 식사가 모두 끝마쳤을 때 함께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워어어어우우어어!”
“우우우우! 우우우우!”
“우워워! 우어어어!”
마을의 경비병이나 전사쯤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서준 일행을 보고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튀어나와 무기를 들어 서준 일행을 겨눴다.
“뭔가 잘못된 거 같죠?”
“일단 침착하게 행동합시다. 대화를 시도해봐야 합니다.”
오세근과 김비서가 속삭이며 말했다. 놈들은 그 와중에 어린아이들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 숨겨놓고 무기를 겨눈 채 서준 일행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근데 이 정도면 말도 안 통할 거 같은데요?”
사실 서준이 믿고 있던 것은 별이었다.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별과 의사소통이 되는 것도 서로의 영혼이 합쳐졌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별은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별에게 통역을 맡기려 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저들은 추임새와 몸짓으로만 의사소통을 했다.
“우우우우! 우우어어!”
“우우우! 우우우!”
그렇게 그들이 다가와 서준 일행의 앞에 서서 무기를 치켜들었다. 무기는 매우 조잡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두꺼운 나뭇가지를 적당한 길이로 잘랐고 그 끝에는 날카로운 바위를 달아서 묶어놨다. 쉽게 말하면 돌창이었다.
무기를 가까이에서 본 서준은 크게 위험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저런 무기를 쓰면서 잡는 사냥감은 고작해야 뿔토끼였다. 안전함을 확신한 서준은 무기를 내려놓았다.
“일단 무기를 내려놓읍시다. 안심시키는 게 우선입니다.”
오세근과 김비서도 무기를 내려놓은 채 그들에게 양손을 활짝 펴서 보여주었다.
“우우우? 우우우!”
“우우! 우우우!”
그 모습을 본 전사들도 서준 일행이 전투 의사가 없다는 걸 알아챘는지 자기들끼리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절반은 성공한 듯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얻을 거는 없어 보이는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말도 안 통하는데…. 뭘 물어볼 수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는걸 보면 다른 부족이나 마을과 교류도 없을 듯했다.
서준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크지 않을 거란 걸 직감했다,
“우우우! 우우우!”
“우! 우우! 우우우!”
그때 전사들이 막 흥분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서준 일행의 처분이 결정 난 듯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준 일행을 둘러싼 모두가 무기를 치켜들고 서준 일행을 겨눴다.
“아무래도…. 잘 안 풀린 것 같죠?”
“하아…….”
서준과 김비서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일이 잘못 흘러가는 듯싶었다.
“싸워야 할까요?”
오세근의 물음이었다.
“마음이 내키지는 않는데…. 길만 뚫어놓고 도망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저도 동감합니다. 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오히려 영역을 침범한 저희의 잘못이 큽니다.”
괴수도 아니고 인간이었다. 서준 일행이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평화롭게 자기들 삶을 살고 있었을 부족이었다.
피를 흘리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그때 언덕 위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던 호랑이들이 내려왔다.
위협적으로 보일까 봐 숨겨놓았었는데 서준 일행이 포위된 모습을 보고 내려온 것이었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이 아주 낮고 큰 소리를 내며 그르릉거렸다.
“우어어어! 우어! 우어어!”
“우아아아! 우아아!”
“우어어어어어어!”
그때였다. 부족의 모든 사람들이 치켜들고 있던 무기를 버리고 괴성을 지르며 호랑이들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우어어어! 우어! 우어어!”
“우아아아!”
“우어어!”
심지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우어어어어!”
그리고 그때 누군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이가 아주 지긋해 보이는 것이 부족의 제일 어른 같았다.
그 노인은 호랑이들의 앞까지 다가서더니 통곡을 하며 절을 해댔다.
“이게 뭐죠?”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서준의 일행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