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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87화 (87/150)

87화.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는군.

‘상황이 너무 안 좋잖아. 어쩔 수 없지. 기다려야지.’

예상보다 길어진 준비 기간 때문에 서준은 다음 목표를 처치하러 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별부름탄은 모두 소모했다. 창천 길드에서 지니고 있던 별부름탄 역시 지난번 토끼잡이를 할 때 모두 사용했다.

창천 길드의 제작팀에서 필사적으로 생산을 해내고 있었지만 워낙 예민하고 위험한 물건인 만큼 그 속도는 더뎠다.

게다가 요번에 안양도 그렇고 이집트도 그렇고 강력한 괴수들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만일을 대비해야 했기에 길드에서 보관해 둘 여분의 별부름탄이 더 필요했다. 해서 서준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참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이구나.

‘뭐가?’

-백성들이 저렇게 길거리로 나와서 소리를 치다니…. 짐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애초에 너네는 인간의 영역이 좁잖아. 우리랑 다를 수밖에 없지.’

서준은 도로를 활보하며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별의 세계는 인간의 영역이 매우 좁았다.

태초부터 괴수와 함께했던 세상이었고 인간들의 영역이 넓어지기 전부터 괴수들은 강했다.

지금껏 서준이 그곳에 살고 있는 인간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한 것도 그 이유다.

그리고 실제로 건물 밖 도로 상황은 매우 혼잡했다.

“투쟁! 투쟁! 단결 투쟁!

“투재애앵! 투재애앵! 단결! 투재앵!”

앞선 사람이 죽창을 위로 치켜들며 크게 외쳤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목이 찢어 저라 외쳤다.

현재 계절은 한여름이었다. 8월의 폭염을 직격으로 맞고 있었다. 실외온도는 38도에 다다랐고 도로 위 아스팔트는 더욱 달궈져 아지랑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위대들은 그런 더위 따위 보란 듯이 이겨내며 투쟁을 외쳤다.

“게이트 현상을 방관하는 헌터들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시위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동안 초인들과 헌터들의 위세에 밀려 입을 굳게 다물고 자세를 낮췄던 일반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한국의 안양에서 목격되었던 거대 토끼 괴수와 이집트에서 목격된 붉게 타오르는 말 괴수가 원인이었다.

그동안 헌터들이 게이트를 이용해 부를 착복하고 일반인들을 핍박한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왔었지만 술자리 뒷담의 수준이었지 이렇게 대놓고 목소리를 내놓지는 못했었다.

그만큼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층, 초인들은 엄청난 힘과 권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그들이 마음이 상해 게이트에서 지켜주지 않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해서 일반인들은 몸을 낮춘 채 초인들에게 벌벌 기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터질 것이 터졌다.

“밀어버려!”

“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초인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시위 진압을 나선 초인경찰들은 시위대들이 다치는 걸 신경 쓰지도 않는지 각자의 능력을 맘껏 활용해가며 시위대를 과격하게 진압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위치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던 평범한 시위대였다. 하지만 초인경찰은 정해진 법과 규칙 따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냥 밀어버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가능해진 게 오히려 최근에 나타난 강력한 괴수들 덕분이었다. 그 전에도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긴 했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는 못했다.

“반항하면 그냥 후려쳐! 잡히는 대로 전부 다 연행하란 말야!”

“네! 알겠습니다!”

강력한 괴수들이 나타나고 일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력한 괴수가 힘을 실어준 곳은 초인 집단이었다.

괴수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초인, 헌터들의 활약이 필요했다. 그들이 아니라면 괴수들을 물리칠 수 없었다.

해서 역설적이게도 게이트를 닫으려는 일반인 집단보다 게이트를 이용해 돈을 버는 초인 집단의 힘이 더욱 커졌다.

“신비야 위험하니까 들어와서 놀아!”

“네에!”

서준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신비를 약국 안으로 불러들였다. 밖은 매우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서준의 약국은 그렇지 않았다. 매우 평화로웠다.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배를 채우고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서준의 마당 앞 대문과 그 대문 너머의 도로를 경계로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서둘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

‘꼭 그렇지도 않지. 게이트가 사라지면 그로 인한 문제 역시 생겨날 테니…….’

게이트가 사라지면 발생할 문제 역시 많았다. 게이트 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 역시 매우 많았다.

서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게이트를 닫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심 역시 엄청 했다.

인터뷰 당시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서준을 욕하고 깎아내리는 사람들 역시 그곳에 있었다.

‘그래도…. 닫아야지. 무조건.’

하지만 서준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게이트는 닫아야 했다. 그 이후의 문제는 게이트를 닫고 나서 생각할 문제였다.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아직도 서준은 타임 워프를 하기 전, 그때의 평화롭던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늦은 밤 자유롭게 거리를 나돌고 편의점 앞에서 친구와 맥주를 마시는 평범한 일상이 그리웠다.

“형님! 형님! 세근이 왔습니다! 형님!”

그리고 그때 오세근이 호랑이 약국에 놀러 왔다. 요즘 뜸하다 싶더니 불쑥 튀어나왔다.

“오! 세근이! 오랜만이네? 무슨 일 있었어?”

“아, 말도 마십쇼! 요즘 바빠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안양 게이트 문제로 아직도 시끌벅적하잖아요.”

오세근의 유명 길드는 안양 길드를 따냈던 담당 길드였다. 서준 덕에 잘 해결되기는 했지만 사상자도 매우 많았고 피해도 매우 컸다.

물론 세근과 유명 길드가 잘못해서 피해가 컸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대처했기에 이 정도로 끝났다.

그렇다고 그들이 면책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세근은 안양 게이트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피해자들을 위해 지원과 봉사를 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나날을 보냈다.

“하여간 형님 말도 마십쇼. 이제 겨우 일 끝내놓고 좀 쉬러 왔습니다.”

“그래, 알겠다. 근데 어떻게 밖에 시위대 뚫고 들어왔네? 도로가 완전 난장판이라 힘들었을 텐데.”

서준은 약국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준의 마당에 쳐져 있는 담장 너머로는 아직도 시위대들과 초인경찰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아유, 형님 이래 봬도 저도 헌텁니다. 저 정도는 점프해서 간단히 뛰어넘을 수 있어요!”

“하하! 잊었네, 미안. 그나저나 빨리 상황이 해결돼야 할 텐데…. 저러다 진짜 크게 다치겠어.”

서준은 계속해서 시위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준이 나간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약국 안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차라리 서준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 일이었다면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서준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

“이미 크게 다친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김비서는 떨궈놓고 왔어요. 부상자들 치료는 김비서가 잘해줄 거에요.”

“어쩐지. 매일 붙어 다니더니 오늘은 혼자라서 이상하다 했어.”

김비서 역시 최근에 각성한 헌터였고 유명 길드에서 훈련받았다. 저런 혼잡한 상황에서도 제 몸 지키며 부상자들을 빼낼 수 있을 만한 능력 정도는 지니고 있었다.

“그나저나 재들은 왜 형님 집 앞에서 저런대요? 오히려 역효과 날 거 같은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 그만큼 일반인들은 힘들잖아.”

“그래도…. 저러면 형님만 힘들어지는 걸 왜 모를까요? 저들을 편들어주는 건 형님밖에 없는데…….”

“이해해야지.”

서준의 약국에서 시위가 시작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서준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게이트를 닫겠다고 나선 헌터는 서준이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유명 헌터 중에 그런 발언을 한 건 서준이 처음이었다.

그 능력이 별 볼 일 없는 헌터나 초인들 중에 그런 말을 술자리 안주 삼아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궤도에 오른 자들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본인들의 밥벌이 방법이었고 그를 잘 활용해 잘 먹고 잘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시민단체들은 서준의 약국 앞에서 모인 것이다.

더 전면으로 나와서 우리를 지지해라! 나쁜 헌터들을 몰아내고 게이트를 닫자! 하며 말이다.

하지만 서준이 그것까지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준이 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더 노력해서 게이트를 조금이라도 빨리 닫아주는 것뿐이었다.

그게 서준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아무튼, 형님 오늘 밤새도록 마시는 겁니다. 저 오늘 진짜 간만에 쉬는 거예요.”

“알겠어, 가져온 거나 꺼내봐.”

오세근은 메고 온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 게이트 럼이었다. 정말 고가의 술이었지만 가격은 오세근에게 있어서 문제 되지 않았다.

오세근은 이렇듯 가끔 서준을 찾아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서준도 게이트 럼이 매우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세근이 찾아올 때마다 반겨주었다.

보통은 김비서도 함께였는데 오늘은 단둘이라는 게 달랐다.

“그나저나… 오늘 안주는 뭐로 할까? 상황이 이래서 배달도 못 올 텐데.”

서준은 문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혼란한 상황을 뚫고 음식을 배달해 줄 사람은 없다.

초인이 배달대행을 뛰고 있는 게 아닌 이상 말이다.

“그… 있잖아요? 꿀닭. 그거 먹고 싶은데요?”

“역시 그게 목적이었구나?”

사실 오세근의 진짜 목적은 꿀닭이었다. 꿀닭을 한번 맛본 이상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만큼 천상의 맛이었고 엄청난 진미였다.

“잠깐! 형님 저 엄청난 생각이 났는데요!”

“뭔데?”

그때 오세근이 무언가를 번뜩인 듯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말이 되는 생각을 해야지.”

“왜? 말해 봐.”

오세근은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약간 창피한 듯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제가 전에 조사해드린 거 있잖아요.”

“어떤 거 말하는 거야?”

오세근이 물어다 준 정보가 한둘이 아니었다. 저렇게 말하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십이지신 얘기요. 태평양에 거대한 닭 한 마리 나왔다고 말했잖아요.”

“아! 그랬지!”

별의 영혼을 먹고 거대하게 자란 꿀닭의 이야기였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놈 시체에서 향긋한 꿀 냄새가 아주 강하게 났다는데…. 그거 꿀닭 아니었을까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차마 맞다고 얘기할 수 없던 서준은 웃어넘겼다. 매일매일 대충 살아가는 거 같은 놈이었는데 의외로 날카로운 모습이 있었다. 서준은 새삼 감탄했다.

“근데 그놈 시체는 어떻게 했대? 진짜 꿀닭이었으면 작은 나라 하나쯤은 족히 먹이고도 남을 것 같은데.”

“글쎄요? 저도 거기까진 안 알아봤네요.”

서준과 세근은 꿀닭을 안주 삼아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도 꿀닭이었고 입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도 꿀닭의 이야기였다. 물론 당연히도 태평양의 거대한 꿀닭 이야기였다.

꿀닭은 음식으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했고 이야깃거리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 최고의 술자리 안줏감이었다.

“하하하! 그래서 있지 말입니다! 그때 김비서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했는데? 도망이라도 쳤나?”

“에이, 김비서가 저 두고 도망칠 위인은 아니죠!”

술이 조금씩 들어가자 살짝 취기가 오른 서준과 세근은 그렇게 날이 저무는 것도 모른 채 이야기꽃을 피웠다.

물론 시위가 잠잠해지자 어느덧 약국을 찾아온 김비서도 그 옆에 함께했다.

세 사람은 그렇게 웃고 떠들며 어수선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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