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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85화 (85/150)

85화.

거대한 뿔토끼였다. 체고는 대략 건물 2층 정도의 높이 정도 되었다. 그리고 이마에 달린 뿔의 길이는 제 몸통만 했다.

‘말도 안 돼…….’

-실제로 보니 더욱 믿을 수가 없구나.

이전 꿀닭의 사례로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 게다가 꿀닭에 비교하면 이번 뿔토끼의 경우는 아주 소형이었다.

섬 하나와 2층짜리 건물을 비교할 수는 없었으니깐. 하지만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와 직접 눈으로 보고 겪은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끼게 했다.

-뀌이이이이이이이이이 이이익!

헌터들의 공격을 받은 뿔토끼가 괴로움에 괴성을 질렀다. 그 크기가 워낙 커 근접전투는 할 수 없었지만 원거리 포격이 가능한 헌터들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가며 뿔토끼를 공격했다.

모두 전국에 이름을 날린, 모르면 정말 간첩 소리를 들을만한 능력을 지닌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력을 다해 공격을 쏟아붓는데도 뿔토끼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단지 발걸음을 묶어둘 뿐이었다.

“피해!”

헌터 한 명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가 채 울려 퍼지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뿔토끼는 뒷다리를 살짝 접었다가 펼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이루어진 짧은 도약에 이동 경로에 있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못 움직이게 해! 동결 능력이든 속박능력이든 다 쏟아부으라고! 이 뒤로 뚫리면 곧장 서울로 직행이야! 방향이라도 돌려! 서울이 뚫리면 다 끝장이야! 아직 도망 못 간 시민만 천만 명이라고!”

게이트 관리국의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반항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봐, 별.’

-왜?

‘방법이 없겠어?’

-지금 이 상태로는 무얼 해도 무리다. 전력 차이가 너무 커.

별의 말대로였다. 그리고 서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이것도 조금의 가능성일 뿐 확실하진 않아.

‘뭔데?’

-한데…. 너무 위험하다. 목숨을 내놓아야 해.

‘닥치고 말해! 지금이 그런 거 생각할 때야?’

서준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은 채 말했다. 어차피 못 막으면 끝이다. 이대로 두면 뿔토끼는 서울 역시 초토화시킬 것이 분명했고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파괴의 행동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도 없었다. 아마 서준은 살아남더라도 그 마음이 불편해 다시는 웃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짐의 영혼을 회수하면 된다.

‘네 영혼을? 그럼 힘을 잃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거야?’

애초에 뿔토끼가 이렇게 거대한 모습을 하게 된 데는 오직 별의 영혼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별의 영혼을 다시 회수한다면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했다. 그렇기에 서준은 별에게 되물었다.

-아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별의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영혼을 회수해도 다시 예전의 작고 얌전한 뿔토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럼 그게 무슨 소용인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뿔토끼가 지닌 본신의 힘 역시 줄어들진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짐의 영혼의 힘을 사용하지는 못하겠지.

‘네 영혼의 힘?’

-그래.

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서준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애초에 뿔토끼가 강해진 것이 별의 영혼 조각 탓이었다. 그러나 영혼을 담고 있는 아티팩트를 회수한다고 해도 원래의 모습으로는 돌아가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영혼 조각을 회수하라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놈은 짐의 영혼의 힘을 아직도 끌어다 쓰는 중이다. 짐의 영혼 조각은 품고 날을 지새는 것만으로도 그 주인을 강해지게 하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별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짐의 영혼은 적절히 끌어다 쓰는 것만으로 그 생명의 힘 그 자체를 강력하게 해준다. 그게 지금 뿔토끼가 저렇게 계속해서 타격을 받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다.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봐.’

-네 녀석이 아둔해서 짐의 영혼을 빌려 쓰지 못하는 것뿐이다. 저기 뿔토끼 놈은 짐의 영혼을 수십 년을 끌어안은 채 세월을 지새웠으니…. 저도 모르게 사용하게 된 것일 테지. 해서 짐의 영혼이 자연스럽게 놈의 생명력을 강하게 해주었고 그게 공격을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란 소리다. 쉽게 말해서 영혼 조각만 뺏으면 공격이 통한다는 얘기야.

실제로도 그랬다. 뿔토끼는 별의 영혼의 힘을 사용하려고 한 적도 없었다.

단지 우연히 영혼 조각을 손에 얻었고, 그로 인해 과성장 했으며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영혼 조각을 저도 모르게 자연스레 사용한 것이다.

마치 오른팔을 움직일 때 별다른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별의 영혼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것뿐이다.

본인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 못 한 채 말이다.

‘그렇다는 건 나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거 아냐? 영혼 조각을 네 개나 들고 있잖아.’

-무리다.

‘어째서? 토끼도 하는데 내가 못 한다고?’

-우선 네 재능이 그 정도가 되질 못 한다. 아마 수십 년을 품고 있는다면 가능해질 수도 있겠지.

아쉽지만 사실이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영혼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의 영역이었다. 별의 세계에서도 별 정도는 돼야 가능한 기예였다.

-둘째로, 네가 지닌 아티팩트에는 이제 짐의 영혼이 잠들어 있지 않아. 모두 하나로 합쳐진 상태지.

‘잠깐, 그렇다는 건 합쳐진 영혼이 내 의식 속에 있다는 이야기 아니야?’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너로서는 무리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면 모르겠지만.

별은 일 년, 이 년 정도의 짧은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십 년의 시간을 뜻했다. 지금의 서준이 애를 써봐야 이 전투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알겠어, 그 부분은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데? 네 영혼이 어딨는지 알아야 뺏든 말든 할 거 아냐.’

-그건 짐이 알고 있다. 저놈을 보았을 때부터 알 수 있었어.

다행히도 별이 알고 있었다. 본인의 영혼이니 당연히 이렇게 근접한 상황에서 공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뿔을 훔쳐와라.

‘뿔?’

-그래, 저놈의 뿔 그 안에 짐의 영혼이 녹아있다.

‘아티팩트가 아니고 뿔 속에 있다고?’

-자세히 보거라.

‘엇!’

별에 말을 듣고 놈의 뿔을 살펴본 서준은 크게 놀랐다. 뿔토끼의 뿔 밑둥 부분에 실금이 보였다.

마치 잘려나간 후 다시 붙인 것과 같은 절단면이었다.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놈의 뿔이 한번 잘려나간 후 우연히 짐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가 들러붙은 것 같구나.

‘크기는 왜 저렇게 큰 건데?’

-아마도 놈의 몸이 커지면서 뿔 역시 커질 필요가 있었겠지. 짐의 영혼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깐.

납득이 잘되지 않는 문제였지만 그런 건 추후에 생각할 일이었다. 일단은 저놈의 뿔을 떼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헌터들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도 멀쩡한 놈이었다. 하물며 저렇게 단단해 보이는 뿔을 잘라내는 건 더욱 어려워 보였다.

‘아니, 할 수는 있겠어. 거의 도박 수에 가깝지만.’

-사실 가능성은 꽤 크다고 본다. 아마 지구상에서 네놈만이 가능한 일이겠지. 그 능력의 특별함은 짐도 익히 알고 있다.

‘뿔을 떼는 것보다 접근하는 게 더 어렵겠어.’

-아티팩트를 다 쏟아부어야지. 거기에 목숨 몇 개 첨가하면 충분할 게다.

‘제 목숨 아니라고 말을 너무 쉽게 하시네.’

서준이 불평은 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이미 서준 역시 잘 알고 있었고 그대로 수행할 생각이었다.

서준은 헌터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가는 뿔토끼를 바라보며 접근의 기회를 살폈다.

사실상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아티팩트가 온전히 남아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흥아 가자.’

-어흥!

이번 일에는 어흥이를 제외한 다른 호랑이들은 제외했다. 어흥이는 아티팩트를 사용해 일시적으로 신체를 전기로 바꿀 수 있었다. 해서 뿔토끼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호랑이들이 지닌 아티팩트는 그런 능력이 아니었다. 해서 서준은 호랑이들에게 부상자들의 운반을 맡긴 후 어흥이만을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됐다!’

그렇게 실행된 이번 작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뿔토끼라는 개체 자체가 그랬다. 평화로운 개체였고 전투심 같은 걸 지니지 않은 개체였다.

우연히 별의 영혼 조각을 지녀 그 크기가 거대해진 것뿐이었고, 어쩌다 게이트에 휘말려 지구로 던져진 것뿐이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건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상하게 한 것도 헌터들의 공격이 고통스러웠기에 몸부림쳤을 뿐이었다.

뿔토끼는 서준이 접근하는데도 큰 반항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망치려 했다. 해서 놈의 공격을 피하는 것보다 접근하는 게 더욱 어려웠다.

다행히도 어흥이가 아티팩트의 능력을 사용하여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의지를 모아 손끝에 게이트를 만들어둔 서준이 놈의 뿔만 게이트 너머로 넘겨버렸다.

그렇게 놈은 별의 영혼 조각을 잃었고 이후 이어진 헌터들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생각보다 허탈한 결과로구나…….

‘그러게 이렇게 간단할 줄은 몰랐어.’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이후로도 이렇게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야.

‘알고 있어. 원래의 정체가 뿔토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야. 십이지신 중에는 호랑이도 있다고.’

-그래, 그리고 이미 봤잖아. 그 악룡.

별의 말 그대로였다. 단지 뿔토끼가 전투를 싫어하는 개체였기에 성공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준이 뛰어났다거나 그 작전이 훌륭했다거나 해서 성공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용의 유적에서 보았던 그 악룡 역시 별의 영혼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매우 험난했다.

“얘들아, 일단 넘어가자.”

-어흥! 캬앙! 크릉!

뿔토끼가 죽은 것을 확인한 서준은 호랑이들과 함께 게이트를 넘어갔다.

헌터들은 뿔토끼를 쓰러트렸으면서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했다.

아티팩트를 사용한 어흥이는 매우 빨랐고 헌터들은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그들은 뿔토끼의 뿔이 잘린 원인도 이유도 알지 못했다.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뭐.’

하지만 서준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거 몸에서 떼 냈다고 다시 작아진 거야?’

-그런 듯하구나.

뿔토끼의 뿔의 길이는 뿔토끼 본인의 몸체만 했다. 그 길이가 건물 2층 높이와 비슷했다는 소리다.

그러나 잘려나간 뿔은 다시 본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서준의 새끼손가락 반 마디 정도 되는 작은 크기였다.

‘이건 어디 쓰는 물건이냐?’

-짐의 귀걸이다. 기사들의 날카로운 돌격용 창을 본뜬 물건이지. 짐의 호쾌한 성격을 뜻하기도 한다.

‘사설은 됐고. 흡수할 수 있겠어?’

-아니, 아마 그 동상을 다시 한번 찾아야겠구나.

‘귀찮게 됐네.’

서준은 어흥이의 등 위에 올라타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동상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우선은 정신비를 데리러 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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