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약사 백선생-84화 (84/150)

84화.

<게이트가 열리긴 열렸는데 태평양에 있는 무인도에 열렸더라구요.>

“무인도에?”

<예, 그곳에서 닭 모습을 하고 있는 게이트 보스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크기가 와….섬 하나만 했다고 하더라구요.>

오세근의 말대로라면 게이트가 다행히도 태평양 한가운데 열려서 큰 피해를 면했다고 한다.

그 크기가 섬만 하다고 하니 도심에서 단순히 달리기를 한다고 쳐도 굉장한 피해를 입혔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으니 게이트가 무인도에 열린 것은 천운이었다.

‘맞는 것 같지?’

-그래, 크기가 섬만 하다니 보통은 그렇게까지 자라기 쉽지 않지. 짐의 영혼을 곁에 두엇 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놈들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잖아?’

-개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 거지. 생명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게다가 짐의 영혼을 얼마나 품에 지니고 있었는가도 따져봐야겠지. 그나저나 크기가 섬만 하다면 수영을 못하더라도 바다를 건널 수 있지 않을까?

그랬다 그 크기가 섬만 하다면 체고 역시 엄청났을 것이다. 깊이가 깊지 않은 웬만한 바다쯤은 걸어서 건널 수도 있을 것이다.

‘태평양이 그리 호락호락한 바다는 아니지만… 어느 위치에 떨어졌나에 따라 달라지겠네.’

서준은 한번 골똘히 생각하다가 오세근에게 물었다.

“정말 크기가 섬만 하다면 바다를 건널 수 있지 않았을까? 과장된 거 아니야?”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형님! 이유는 모르겠지만 놈이 물을 무서워하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바닷물에 몸을 한 발자국도 안 담갔다고 합니다! 덕분에 피해 없이 넘길 수 있었답니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큰놈은 어떻게 잡았대?”

아무리 헌터들이 돈을 위해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전투에 나선다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크기가 섬만 한 괴수를 보고 달려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크기의 괴수를 일단 맞닥뜨리게 되면 발이 굳고 호흡이 멈추는 것이 정상이었다.

서준은 도무지 그 괴수를 잡아낼 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굶겨 죽였다고 합니다.>

“뭐?”

<놈이 바다를 못 건너니까 일단 그대로 놔뒀다고 합니다. 뭐 잡을 방법이 없으니 방도를 찾는 도중이었겠죠. 놈이 다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고…… 근데 생각해 보십쇼. 그놈 몸집 생각하면 먹는 양도 어마어마할 텐데 자기 몸만 한 섬에서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습니까? 그대로 놔두니까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허!”

어이없는 답변에 서준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무려 별의 영혼을 품고 성장한 괴수였다. 그 크기를 보아도 보통 오랜 기간 품고 있었던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놈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참으로 허망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아티팩트나 그런 건 못 찾았어?”

제일 중요한 건 이것이었다. 놈이 정말 별의 영혼 조각을 품고 있던 것이 맞는지 그리고 그 조각이 옥새 형태의 아티팩트인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서준이 찾지 못한 별의 영혼 조각이 지구에 있다는 소리였다.

<그거 형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아!”

<네, GOTY 우승 상품이 거기서 나온 거라고 하더라고요.>

천만다행이었다. 아무래도 별의 영혼 조각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지구 쪽으로 넘어온 건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불운인가?’

-그럴 수도…….

아니, 오히려 불운이었다. 한 놈은 아이티를 쑥대밭을 내고 쿠바까지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다른 한 놈은 피해를 입히진 않았지만 그 크기가 섬만 하다고 했다.

이제 서준이 상대해야 할 놈들이었다. 이런 놈들이 아직 여덟이나 남았다.

<그놈이 죽고 나서 사체를 뒤져보는데 그놈 입안에서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놈 시체에서 무슨 냄새가 났는지 아십니까?>

“왜 뭔데? 또 뭐 있어?”

<그게 있지 말입니다. 그놈 시체에서 아주 단내가 엄청 났다지 뭡니까! 꿀단지에 코 박고 있는 것처럼 단내가 엄청나서 시체 주위로 벌들이 엄청 날아왔다고 하더라니깐요!>

“그래, 고맙다….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예, 형님!>

충격에 빠진 서준은 전화를 끊으며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맞지?’

-허허허… 짐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구나.

별 역시도 어이가 없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꿀닭이 저렇게 클 수가 있는 거야?’

-그만큼 짐의 영혼이 대단하다는 뜻이지. 하하하하하!

아무리 별의 영혼 조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꿀닭이 저렇게 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강철곰과 같이 사나운 놈이 꿀닭처럼 별의 영혼을 오래 품었다면, 그리고 그놈이 지구로 넘어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하기도 두려웠다.

꿀닭은 애초에 전투능력이 없는 놈이었다. 그리고 천만다행히도 물을 무서워했다. 해서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만약 서울 한복판에 저런 게 떨어진다면 그날로 대한민국은 끝장이었다.

‘서둘러야겠어. 놈들이 다 자라나기 전에 끝내야 해.’

-그래, 놈들이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는 게 정말 천운이구나.

서준의 게이트 너머에는 과거의 시대가 비쳤다. 이것이 서준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강력한 적들이 성장하기 전에 처리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였다.

능력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놈들이 성장해 지구에 피해를 주기 전에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뜻대로 흘러가겠는가? 다음 날 아침, 경기도 안양 중심부에 게이트가 열렸다.

“그쪽 상황은 어때?”

<형님! 여기 완전히 난리 났습니다! 저놈 미쳤어요! 당해낼 수가 없어요!>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아침 일찍 일어난 서준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서준의 휴대폰에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게이트 경보 문자였다.

주에 한 번은 받다시피 할 정도로 흔히 받는 경보 문자였다. 허나 게이트의 위치를 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의 발생 위치가 경기도 안양이었다. 차로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게이트 영향권의 밖이었다. 보통은 이 정도 거리면 경보 문자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서준은 경보 문자를 받았다. 이는 게이트 관리국에서 게이트를 막을 역량이 없음을 시인한 것이고 현재 서준의 위치가 괴수의 영향권 안에 있다는 소리였다.

오늘 이 경보 메시지는 현시점 대한민국에 머물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어갔다.

“일단 나도 그쪽으로 갈게! 사람들 대피시키는 데 주력을 쏟아줘!”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팀장급만 보스 막는 데 보내고 나머지는 구조팀으로 꾸렸어요!>

오세근을 비롯한 유명 길드는 이번 게이트 방위 임무를 맡았다. 최저가 경매에서 매번 승리하던 중이었기에 이번 게이트 역시 따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나마 상황을 좋게 이끌었다. 각 길드의 정예를 끌고 와 결성한 유명 길드의 전력은 전국 최고 수준이었으니깐. 하지만 그럼에도 괴수의 진행을 막는 데에 급급했다.

당연히 수도권에 존재하는 길드란 길드는 하나도 거르지 않고 지원 요청을 보내놓은 상태였고 거점이 가까운 길드는 이미 합류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괴수의 이동을 막아 더 많은 도시가 파괴되지 않게 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어서 서두르거라!

“어흥아 조금만 더 빨리 달리자!”

-어흥! 어흥!

서준은 호랑이들을 이끌고 안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현 상황에 지원을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별의 영혼 조각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헌터 약소국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최상위 헌터들의 전력이 약할 뿐이었다. 그 시스템 자체는 세계에서 꼽을 정도로 좋았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은 보스가 규격 외의 녀석이 튀어나왔다는 것이고 그는 별의 영혼 조각이 관련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였다.

서준은 게이트를 열어 정신비를 단검 아티팩트를 발견했던 지하에 옮겨놨다. 일종의 안전가옥이었다.

물론 시간 괴리 때문에 게이트를 열어둬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지금 서준의 수준에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정도였다.

이후 전투에 도움이 될만한 약초를 모두 챙긴 채 안양으로 향한 것이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건물들은 고층, 저층 할 것 없이 죄다 부서져 있었고 도로는 이미 헤집어진 지 오래였다.

도망을 가다 사고가 났는지 수십 대의 차량이 서로 몸을 얽힌 채 멈춰 있었다.

괴수에게 당한 사람들, 도망을 치다 차량에 부딪힌 사람들,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들, 인파에 밀려 밟혀 죽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생각할 시간 없어!’

생각할 시간 따위 없었다. 부상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처치가 우선이었다. 서준은 배낭에 가득 든 약초들을 손에 쥐며 외쳤다.

“얘들아! 부상자들을 최대한 많이 나한테 데려와줘!”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서준의 말을 듣고 재빨리 뛰어나갔다. 이윽고 입으로 조심스레 부상자들을 서준의 앞으로 실어날랐다.

호랑이들이 몇 번 왔다 갔다 하자 어느새 서준 앞에는 부상자들이 산더미처럼 깔렸다.

“흐읍!”

서준은 씨앗 몇 개를 바닥에 심었다. 도로 위에 있었기에 흙바닥이 아닌 아스팔트였지만 상관없었다.

서준은 땅을 뚫고 그 속에 강제로 심어냈다. 흙바닥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서준의 능력은 더한 신비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서준의 의지가 모이고 기운이 합일되었다. 서준의 손바닥을 통해 흘러나간 청량한 녹색의 기운이 아스팔트가 품고 있는 씨앗 위에 쏘아졌다.

씨앗이 깊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영양분이 하나도 없는 아스팔트였지만 조금의 기운이라도 훔쳐내기 위해 깊고 더 깊게 파고들었다. 물론 서준의 기운에서 얻어낸 힘으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었기에 씨앗은 위로 싹을 텄다.

이미 완벽하게 품종이 개량된 초록 활력초였다. 게다가 서준의 기운을 받아 장성한 은행나무처럼 거대해지기 시작했고 가지는 널리 뻗어 부상자들에게 닿았다.

서준은 가지와 열매가 부상자들에게 닿은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선 다시 의지를 모아 또 한 번의 기적을 일으켰다.

“허억! 허억! 허억!”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그만큼 엄청난 기적이었다. 높게 자라났던 초록 활력초는 어느새 사라졌다.

초록 활력초는 제 몸에 닿아있던 모든 부상자들에게 적절히 나뉘어 그들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의식을 잃었던, 혹은 의식이 존재한 채로 고통에 몸부림치던 부상자들의 상처가 말끔히 치료되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거나 중상자를 최고의 컨디션으로 만들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는 외상만은 말끔히 돌려놓았다.

“가자, 애들아!”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어흥이 위로 올라탔다. 또 다른 피해지역으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어때? 네 몸부터 생각하거라!

서준의 지친 기색을 본 별이 말려보았지만 듣지 않았다. 지금 서준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

그랬던 서준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탄식했다. 눈앞의 괴수를 보고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감정이었다.

“말도 안 돼…….”

서준의 눈앞에는 2층짜리 건물만 한 괴수가 있었다.

그 형태는 토끼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이마에 뿔을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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