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세근이냐?”
<예! 형님! 저 세근입니다!>
“부탁한 건 어찌 됐어?”
서준은 오세근의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예, 알아봤는데요. 특별히 나온 건 없다고 합니다.>
“그래?”
<네, 피해가 너무 커서 침투조도 방위 임무에 투입돼서 그 안에는 구경도 못 했고 보스도 아무것도 안 들고 있었답니다.>
“그래, 알겠다. 고마워.”
<뭘요.>
역시 오세근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서준이 물었던 정보를 구해다 주었다.
유명 길드를 통해서 유명 그룹의 입김이 묻은 정보였다. 아마도 확실한 정보일 것이다.
그만큼 유명 그룹의 정보력은 믿을만했다.
서준 역시 그를 잘 알고 있었기에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다.
‘특별히 나온 건 없다는데? 어떻게 된 거지?’
-짐의 검을 발견했을 때 막아선 짐승 놈이 없었다 하지 않았느냐?
‘그럼… 내가 단검을 먼저 손에 넣어서 빈손으로 나왔다 이거네?’
-그렇지. 덕분에 피해는 많이 줄었군.
사실이다. 아티팩트를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 전투력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진다.
단검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속에 담긴 힘은 엄청났다.
무려 별의 영혼을 담고 있는 물건이었다.
괴수가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그 격이 상승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적어도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면 쥐 모양의 괴수는 정말 엄청난 괴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지금껏 피해가 컸던 게이트를 좀 알아봐야겠어. 그중에서도 보스가 강력했던 거 위주로.’
-그래, 그렇게 한다면 도장과 망토를 가지고 있던 놈이 누군지 파악할 수 있겠지.
‘응, 이미 죽은 놈을 알아낸다면 앞으로 남은 놈들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
-짐은 제자가 이제 생각이란 걸 하니 너무나도 기쁘구나.
‘닥쳐.’
GOTY의 우승 보상으로 받은 옥새와 리버스를 털어서 훔쳐낸 망토를 지니고 있던 괴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죽은 녀석들을 굳이 찾으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목록에서 지워두는 편이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필시 기록에 남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겠지.’
-짐의 영혼을 지닌 채 수십, 수백 년을 살아온 녀석들이다. 보통 강한 녀석이 아닐 게야.
찾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별의 아티팩트를 지닌 괴수였다면 아프리카 오지에 게이트가 열렸더라도 알려질 정도의 큰 피해를 주었을 것이다.
그만큼 별의 영혼은 굉장한 힘을 지녔다.
단지 아티팩트 스스로의 능력이 없었기에 인간들이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해서 GOTY에 상품으로 걸리고 리버스 은신처 한쪽 방에 방치되었던 것이다.
‘세근이한테 문자 하나 보내 놓을게.’
-정말 알뜰이도 부려먹는구나.
‘나중에 밥 한번 사지.’
서준은 세근에게 피해가 컸던 게이트의 정보를 모으고 게이트 보스가 12지신과 관련이 있는 경우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세근이 도와준다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백 선생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러게요, 요즘 좀 바빴어요. 잘 지내셨죠?”
“저희도 요즘 바빠서 정신없죠. GOTY 이후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어요.”
세근에게 문자를 보낸 서준은 창천 길드 본관에 찾아갔다. 창천 길드를 찾아간 서준의 가방에는 약초가 한가득이었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할 때였다.
“일단 기존 약초들은 전부 배송시켜놨으니까 곧 도착할 거에요. 분량이 꽤 돼서 반년 정도는 거뜬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등에 메고 계신 거는 새로운 약초들인가요?”
“네, 연구소에서 실험 좀 해주셨으면 해서요.”
“알겠습니다. 양을 보니 시간은 좀 걸리겠네요.”
서준은 윤희주에게 배낭을 건네주었다. 약초 종류가 다섯 개나 되니 꽤 오래 걸릴 것이다.
그래도 여유분을 두둑이 준비해뒀으니 실험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별부름탄좀 받아갈 수 있을까요? 넉넉히 좀 필요한데.”
“예, 전달해놓을게요. 이따 집에 갈 때 받아가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별부름탄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별부름탄 한 주머니면 웬만한 괴수 한 개체쯤은 그 자리에서 즉사시킬 수 있다.
거기에 서준의 능력으로 강화까지 한다면 그 위력은 한층 더 상승한다.
앞으로 괴수들과의 전투가 예정되어 있는 서준에게는 필수적인 물건이었다.
“아! 그리고 빌린 돈은 아마 요번 달 안으로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벌써요? 아직 상당히 남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새로운 자금줄이 하나 생겼거든요.”
“빌려준 돈이라 제 돈이긴 한데…. 어쨌든 돈 받는다니 기분은 좋네요.”
오세근을 통해 시작한 풍성초의 판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음 주에 판매대금을 가져온다고 했으니 이제 윤희주에게 빌린 돈은 모두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소식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이요?”
“얼마 전에 평창에서 게이트 흔적 발견됐다고 야단법석이었는데 못 들으셨어요?”
“아 들었어요.”
리버스 은신처의 이야기였다. 서준이 게이트를 열어서 바다 한가운데로 날려버린 적이 있었다.
시간 괴리를 계산해보면 못해도 몇 달은 지났을 것이다.
“알고 봤더니 거기가 사실 리버스의 은신처였다고 하더라고요.”
“네? 리버스요?”
서준은 놀라는 척 답했다.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본인이 직접 벌인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네, 그렇게 나쁜 짓 하고 다니더니 벌 받은 거죠. 어떻게 은신처에 딱 게이트가 열릴 수가 있죠?”
“진짜 운도 없는 놈들이네요.”
“네, 아마 괴수의 흔적은 없는 거로 보면 괴수는 그놈들이 다 처치한 듯해요. 마지막에 좋은 일 하고 간 거죠, 뭐. 양패구상이었거나 괴수와 싸우다 시간을 제대로 못 재서 그 안에 갇혔을 수도 있죠. 그것도 아니면 또 도망가서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뭐가 됐든 이제 앞으로는 보기 힘들겠네요.”
“그렇죠, 리버스도 이제 끝이죠.”
서준은 윤희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별부름탄을 받고 약국으로 돌아왔다.
리버스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었고 빚도 청산 직전이었다. 이제 서준의 앞을 가로막을만한 장애물은 없었다.
앞으로 재배를 열심히 하면서 남은 별의 영혼을 찾아다니기만 하면 게이트를 닫을 실마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서준은 약초를 관리하기 위해 게이트를 열었다.
“어흥이 달려라! 달려!”
-어흥! 어흥! 어흥!
재배지 섬에서 서준은 약초를 심고, 썩은 뿌리를 떼내며 약초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정신비와 호랑이들은 섬의 외곽으로 나와 해변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이제 서준 역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정도의 실력은 지니고 있었고 재배지 섬은 이미 완벽히 파악한 상태였기에 홀로 있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재배지 섬의 포식자라고 해봐야 표범이나 곰 형태의 괴수였고 모두 서준이 상대할 수 있는 개체들이었다.
“어흥아! 우리 헤엄칠까?”
-어흥! 어흥!
정신비가 바다에 들어가 놀고 싶은지 어흥이를 꼬셔봤지만 어흥이가 거세게 거부했다.
아직 수영을 하지 못하는 정신비가 바다에 들어갔다가 큰일이 날 수도 있었기에 서준이 미리 당부했었다.
“히잉…. 어흥이 나빠!”
-크릉!
크릉이는 정신비에게 혼이 나는 어흥이를 보더니 신이 나는지 콧방귀를 한 번 꼈다.
-캬앙? 캬앙?
그때 홀로 해변을 거닐던 캬앙이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캬앙!
사람의 뼈였다. 죽은 지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았지만 바닷물에 의해 많이 부식되어 있었고 살점은 물고기에게 모두 뜯겨 먹었는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뼈 무더기가 해안에 흩어져 있었다.
#
“씨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해가 떠올라 다시 뜨거워진 바위섬 위에 도저히 남아있을 수 없던 유재학이 바다로 뛰어들며 욕지거리를 했다.
그가 자는 새에 이 바위섬 위로 끌려온 지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세 달까지는 셌는데 그 이후로는 세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그를 호위하던 리버스의 병력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 죽어 바다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물고기만 도대체 몇 달째 처먹는 거냐고!”
처음 일주일은 어떻게든 버텨냈다. 해가 떠오르면 뜨거워지는 섬을 피해 바다 깊이 잠수해야 했다.
얼굴이 타고 피부가 벗겨졌지만 그것까지는 견딜만했다. 워낙에 밑바닥 인생이었으니깐.
그러나 문제는 음식과 물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떻게든 물을 받아놓고 입을 벌려 그대로 비를 마셨지만 뜨거운 바위섬 위에는 물을 보관해 놓을 장소가 없었다.
은신처 안에 넣어둔다고 해도 뜨거운 온도 때문에 결국 증발하고 말았다.
음식 역시 문제였다. 바위섬 위에는 그 어떤 동물도 식물도 살지 않았고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바다에서 잡아올린 물고기뿐이었다.
처음에는 버틸만했다. 이 세계의 생물들은 신비의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를 섭취하면 서서히 강해질 수 있었으니깐.
유재학은 강해지는 자신을 보며 탈출할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된 표류 생활에 서서히 내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싸우다가 동료들끼리 죽이기를 수차례 결국 유재학은 혼자 남고 말았다.
“푸하!”
잠수해 양손에 각각 한 마리씩의 생선을 잡아 온 유재학은 한 마리는 그대로 입에 쑤셔 넣으며 날것으로 먹었고 다른 한 마리는 바위섬 위로 집어 던졌다.
달궈진 바위섬은 천연 프라이팬이 되어서 물고기를 적당히 익혀줄 것이었다.
어느덧 이곳 삶에 익숙해진 유재학이었지만 신대륙과 재배지 섬 중앙에 위치한 바위섬에서 빠져나갈 길은 요원했다.
앞으로 유재학이 치러야 할 죗값이 많이 남았으니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
<형님! 형님! 저 세근입니다! 만수무강하셨는지요?>
“그래, 세근아 너도 잘 지냈냐?”
<저야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형님! 그나저나 형님! 김비서가 각성했지 말입니다!>
“그래? 그거 잘됐네, 앞으로 더 잘 보좌할 수 있겠는데?”
<그렇습니다! 형님! 이제 김비서도! 초인입니다! 형님!>
서준도 예상하고 있는 일이었다. 지난번 호랑이 약국에서 함께 게이트 럼을 마시면서 꿀닭을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실험한 바로는 꿀닭을 먹는다고 무조건 각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재능이 있거나 아주 많은 양을 섭취했을 때나 각성할 수 있었다.
아마도 김비서는 재능이 있었던 쪽인 것 같다.
<그나저나 형님이 부탁하셨던 거 알아봤습니다!>
“역시 정보력은 세근이가 최고네.”
<앞으로도 맡겨만 주십쇼! 형님!>
“그래.”
오세근의 정보는 이랬다. 지역 상관없이 지금껏 큰 피해를 주었던 게이트를 모두 조사했고 그 중 게이트 보스가 십이지신과 관련 있는 곳을 조사해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티에서 소의 모습을 한 게이트 보스가 나왔고 바다를 헤엄쳐가며 쿠바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망토의 모습을 한 아티팩트가 나왔으나 별다른 능력을 밝혀내지 못하고 어디론가 팔려갔다고 한다.
“그래, 그리고 또 없었나?”
<네, 큰 피해를 준 게이트 위주로 찾았을 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십이지신에 주목하니 하나가 더 걸려들었습니다.>
“뭔데?”
<닭 형태의 보스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피해는 없었다고?”
<네, 이게 좀 어이가 없어서요.>
오세근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