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뭐지?’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오는군.
동굴 제일 안쪽 벽면에 조각된 페트라를 닮은 건축물, 그리고 막혀있지만 본래는 문 역할을 하는 곳에 달려있던 구 모양의 쇳덩어리, 그리고 그 주위를 수놓은 열두 마리의 괴수 벽화를 중심으로 벽면이 갈라졌다.
조금씩 갈라진 벽면 틈 사이로 아주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아앙! 캬앙!
-크릉! 크릉! 크르릉!
호랑이들도 그 기운에 반응하여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동굴이 울릴 정도로 아주 크게 짖었다.
어느덧 기감이 상당히 발달한 서준 역시 그 기운을 느꼈다.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아주 소름 끼치는 기운이었다.
-다가오너라!
동굴 안에서 그르르 하며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서준의 머릿속에 정확히 박히며 다가오너라! 라며 번역되었다.
마치 별처럼 서준의 영혼에다 대고 직접 말하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다가오너라!
다시 한번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울어대던 호랑이들은 겁을 먹었는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낮췄다.
포식자의 울음소리였다. 그 울음소리에 노출된 서준의 다리가 굳었다.
-다가오너라!
다시 한번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리자 서준의 발이 한 발자국 앞으로 움직였다. 이미 서준은 짐승의 사로잡힌 서준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멈춰!
그때였다. 별이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비록 영혼이 찢겨나가며 대부분의 신비를 잃어버린 별이었지만 그 의지만은 확실히 남아있었다.
별은 모든 의지를 모아 외치며 서준을 멈춰 세웠다.
‘방금… 뭐였지?’
정신을 차린 서준이 별에게 물었다.
-저놈! 악룡이야! 사로잡히면 안 돼! 지금은 당해낼 수 없어!
별의 외침을 듣고 정신을 차린 서준은 멀찍이서 벽면의 균열 속을 바라보았다.
작은 균열 속에서 까맣게 물든 놈의 두 눈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말아야 할 흙색의 눈이었으나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놈의 사악함을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안쪽에서 결계가 쳐 있어서 놈 스스로 나오지 못해! 놈은 네가 결계를 깨주길 기다리는 거야!
벽면에 안쪽에는 아주 강한 결계가 쳐 있었다. 이 유적의 주인이었던 용이 친 것으로 예상되는 결계였다.
악룡은 결계에 갇힌 채 서준이 결계를 깨주길 바라며 서준을 세뇌한 것이다.
‘벽화에 그려져 있던 용이 저놈일까?’
지금은 금이 가 형태를 알아보긴 힘들지만 열두 마리의 괴수는 이미 서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놈은 별의 영혼 조각을 갖고 있는 열두 괴수 중 하나였다.
-그래, 아마도 그놈이 맞겠지. 이 유적의 주인이 무슨 짓을 어떻게 한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용이 저놈을 가둔 것 같군. 용이 죽으며 사후의지가 남아 결계는 더욱 강해졌겠고….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대로지.
어떤 이유인지는, 어떤 목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미 유적의 주인인 용이 죽었기에 물어볼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결계에 갇힌 저놈이 세상으로 나와서는 안 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잡는 건 무리지?’
-그래, 네 상대가 아니야. 아직 한참은 모자라. 이대로 두고 가자고.
서준이 판단하기에도 별이 판단하기에도 지금 악룡과 서준 사이에는 그 수준 차이가 분명했다.
싸움을 걸었다가는 필시 일격에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놓고 가도 되겠어? 이미 벽에 금이 갔는데 놈이 빠져나오지는 않을까?’
-괜찮을 거야. 결계가 상당히 단단해. 용의 사후의지가 담긴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애초에 놈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면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진작에 빠져나왔을 거야.
‘알겠어.’
다행히도 악룡은 스스로 빠져나올 힘은 없었다. 용의 사후의지가 담긴 결계는 매우 단단했고 결계 내부에서 절대로 열 수 없었다.
밖에서 서준이 열어주기 전까지는 놈이 빠져나올 방법은 없었다.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좀 더 힘을 기르고, 내 영혼도 찾고 이곳엔 마지막에 오자고.
‘알겠어.’
서준은 악룡을 뒤로한 채 정신비와 호랑이들을 데리고 약국으로 돌아갔다.
‘무서웠어.’
-이쯤인 게 다행이다. 만약 결계가 없었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내가 그놈을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는데.’
-글쎄다. 이건 나도 자신이 없군. 짐의 엄청난 지도력으로도 힘든 일이야.
‘또 시작이군.’
서준은 계속해서 헛소리를 이어놓는 별을 뒤로한 채 텔레비전 채널을 뉴스 채널로 변경했다.
지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요번 여수 게이트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각합니다.>
<요번 여수 게이트의 보스로 나온 거대 쥐 괴수의 사체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매우 거대합니다.>
<이번 보스는 이렇게 거대한 몸집을 이용해…….>
TV 화면엔 여수에 열린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매일같이 게이트가 열리는 요즘 세상에 게이트 하나 열렸다고 이렇게 대서특필되지 않았다.
한국의 경우 도심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게이트는 피해 없이 훌륭히 막아내었고 가끔 인적이 드문 시골 게이트가 경매에 실패해 막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재 여수는 대도시 중 하나였고 많은 길드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도시였다. 그럼에도 이번 게이트로 인해 여수는 아주 쑥대밭이 되었다.
‘저거… 벽화에서 본 그놈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생긴 것도 비슷하고 일단 그 크기가 범상치 않은 걸 보니… 확실하다.
‘아티팩트는 안 떨궜나? 잘하면 네 영혼 하나 금방 찾겠는걸?’
-한번 알아봐라.
‘응.’
서준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오세근에게 전화했다. 윤희주에게 할까 고민해봤지만 정보력이라면 오세근이 한 수 위였다.
직전 리버스의 은신처를 찾아낸 것만 봐도 그랬다. 아무리 거대 길드라도 대기업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아이고! 형님! 어찌한 일이십니까? 말씀만 하십쇼! 이 동생이 다 해드리겠습니다!>
“요번에 여수에 게이트 터진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형님! 안 그래도 지금 피해복구 도와주러 우리 애들이랑 내려가고 있습니다!>
서준에게 감명받은 오세근은 여전히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오세근은 서준이 신경 쓰지 않아도 매일매일 적어도 한 가지씩은 남들을 위한 일을 하며 지냈다.
덕분에 유명그룹의 이미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며 덩달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서준의 이미지 역시 같이 좋아졌다.
“그래, 잘하고 있네. 그것 때문에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
<말씀만 하십쇼! 형님!>
“혹시 요번에 잡힌 보스가 아티팩트 같은 거 하나 들고 있지 않았어?”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 일단 여수 내려가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오세근에게 연락 후 통화를 끊은 서준은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GOTY 우승과 오세근 덕분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인기 덕분에 잡힌 인터뷰였다.
어차피 오세근의 답장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기에 딱 적절한 시기에 인터뷰가 잡혔다.
서둘러 약국 정리를 대강 끝내자 기자가 서준을 인터뷰하러 호랑이 약국으로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수호 매거진의 강승윤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호랑이 약국 백서준이에요. 반갑습니다.”
강승윤을 소파로 안내한 서준은 커피를 한잔내어주며 5분여 정도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강승윤이 초인이 아니었기에 호랑이차를 내어줄 수는 없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요?”
“그러죠.”
신변잡기를 하던 중 드디어 인터뷰 본론으로 넘어갔다.
“요즘 들어 백서준 씨 이름이 들리지 않는 곳이 없는데 알고 계시나요?”
“예, 뭐… 저도 가끔 초인몰 커뮤니티를 둘러보곤 하니까요.”
“이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뭐, 감사하게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조금 부담스럽기는 해요. 사실 운이 좋았을 뿐이거든요.”
애초에 초인 대상 연예잡지다 보니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주였다.
강승윤의 주목적도 인기는 넘치지만 약사라는 정보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는 서준의 기본 신상을 파악하는 것이 주였다.
그렇게 인터뷰는 아주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세계 최대의 제약 프랜차이즈 설립? 아니면 헌터로서 대성? 둘 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어느 방향을 목표로 두고 계십니까?”
“하하하, 과찬이시네요.”
“아뇨, 진심입니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과한 칭찬을 겨우 받아들인 서준은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예전에 목표로 했던 것은 있었다.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그리고 그 목표는 입 밖으로 꺼냈을 때 큰 파문이 생길만한 생각이었다.
해서, 서준은 잠시 고민했다.
“말씀하기 어려운 이야긴가요?”
강승윤이 다시 한번 물었다. 해서, 서준은 한 번 더 고민하다 입 밖으로 생각을 꺼냈다.
“저는 게이트를 모두 닫을 생각입니다.”
“게이트를요?”
“네, 앞으로 다시는 게이트가 열리지 않게 할 겁니다. 게이트를 모두 닫아 다시 예전의 평화로운 세상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백서준 씨도 초인이자 헌터이신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누리고 계신 것들을 모두 잃을 수도 있습니다.”
“뭐, 헌터 좋죠. 돈도 잘 벌고. 근데 그런 것보다는 긴장 없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날, 서준의 인터뷰는 수호 매거진 사이트 메인에 걸리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야 백서준 이 새끼 미친 거 아님?>
<지가 뭔데 게이트를 닫아 ㅋㅋㅋㅋㅋㅋㅋ>
<자뻑이 너무 심한 듯?>
초인몰은 서준의 이야기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초인몰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도 불타올랐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초인몰과는 사뭇 달랐다.
일반인들은 피해자의 입장이었고 서준의 발언에 동의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모든 헌터들과 대부분의 초인들은 서준에게 적개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준의 발언은 그들의 기득권을 모두 뺏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야 근데 뭔가 방법을 찾았으니까 저딴 소리 지껄이는 거 아니냐?>
<말이 되냐? 지가 뭐라고 게이트 닫을 방법을 찾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너 백서준이지?>
<생각해봐! 그 새끼가 지금껏 가져온 약초들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뭐가 말이 안 되는데?>
<아니 여태껏 재배법은커녕 뭔지도 몰랐던 약초들 쑥쑥 들고 오는 게 말이 되냐? 게이트에 대해서 뭔가 특별한 걸 알고 있는 거라고!>
<글쎄다? 그건 너무 나간 듯?>
초인몰에선 서준에 대해 갑론을박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대부분이 서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서준이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부터 불만이었다. GOTY에 오세근까지 엮여서 대중들의 모든 관심을 서준이 가져갔다.
자연스레 다른 헌터들은 이슈의 중심에서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런 상황에 서준의 발언이 터지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모든 헌터들이 서준을 욕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들 화가 많이들 났나 보네…….’
-어차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 받아들여야지. 각오한 일이니까.’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초인몰 커뮤니티를 둘러보던 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초인몰을 종료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리고 그때 오세근에게 전화가 왔다. 서준이 궁금해하던 정보를 물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