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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79화 (79/150)

79화.

‘이거는…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 이불이라기엔 좀 작은 것 같은데…….’

서준은 리버스의 은신처에서 가지고 나온 아티팩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자칭 황제 놈의 영혼이 담겨있는 아티팩트였다.

‘그래도 뭔가 느껴지긴 하는 거 보니 진짜는 맞는 거 같은데?’

서준의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 GOTY를 겪으면서도 그랬고 이번 잠입을 위해 의지를 모으면서 또 한 단계 격상했다.

영혼도 육체도 의지도 기운도 모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강렬해졌다.

기감이 한층 발달한 서준은 아티팩트 속에 담긴 자칭 황제의 영혼 조각을 옅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특별한 것이 담겨있는 물건이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 서준의 수준은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당연히 진짜지! 짐이 직접 사용하던 망토니라! 이 망토를 차고 짐이 걸어나갈 때면 모두가 우러러보곤 했지!

‘망토라고?’

서준은 아티팩트를 한 손으로 쥐어 들며 물었다.

‘어린이용이야?’

처음에는 작은 무릎담요 같은 건 줄 알았다. 그 크기가 너무 작았기에 망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칭 황제의 말로는 망토란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착용했던 망토란다.

-어린이용이 아니다! 짐이 직접 착용하던 망토니라!

‘그래, 알겠어. 믿어줄게. 어린이 황제.’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해보아도 소용없다. 서준의 눈에는 이미 자칭 황제는 어린이였다.

서준의 머릿속에 작은 아이가 망토를 둘러메고 왕관을 쓰고 작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만 상상해라!

서준의 의식 속에 녹아있는 자칭 황제가 그것을 눈치챘는지 역정을 냈다. 짐의 위엄은 고작 그따위가 아니었다!

짐이 한 걸음 걸으면 온 백성이 머리를 조아렸고 두 걸음을 걸으면 겁을 먹어 벌벌 떨었다! 짐의 망토를 욕보이지 말거라!

‘너 폭군이었구나?’

-아니다! 짐은 위대한 성군이었다!

‘그나저나 너희 세계는 망토를 차고 다녔나 봐? 패션 센스가 참…. 됐다. 이해해 줄게 뭐.’

-의전용일 뿐이다. 바보처럼 평상시에 망토를 차고 다니는 놈이 어딨냐!

도장은 종이에 찍었을 때 발동했다. 그렇다면 의전용 망토는 어찌해야 발동할까? 서준은 자칭 황제에게 물었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그냥 목에 메면 되나? 너무 작은데……. 나는 어린이가 아니라서 찢어질 수도 있다고.’

-닥쳐라!

‘미안, 알려줘.’

-흐음…. 한 번만 봐주겠다. 일단 한번 해보거라. 본래는 평범한 물건이었기에 특별한 사용법 따위는 모른다.

이번 망토를 비롯한 작은 왕관, 단검, 그리고 도장까지 모두 다 본래는 평범한 물건이었다.

아티팩트 따위가 아닌 자칭 황제가 지니고 있던 물건들이었다.

애초에 본신의 능력이 출중하여 아티팩트 따위 필요치 않은 놈이었다.

그러나 자칭 황제의 영혼이 녹아들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물건들은 특별한 물건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해서, 자칭 황제도 그 사용법을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저 지난번 도장처럼 감으로 파악할 뿐이었다.

‘일단 해볼게.’

서준은 작디작은 망토를 목에 두르기 시작했다.

-조심하거라! 찢어진다! 조심! 조심!

‘걱정 마, 안 찢어져. 아티팩트잖아?’

이리 보여도 아티팩트였다. 고작 이 정도로 찢어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마 가위로 자르려고 해도 오히려 가위 날이 상할 것이다.

서준은 과감하게 망토를 목에 둘러보았다.

‘응?’

-왜 그러느냐? 뭐가 느껴지느냐?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이거 불량이네.’

-아니다!

‘불량 같은데? 진짜 이거 입고 걷는다고 머리를 조아렸어?’

-닥쳐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조건이 필요한 거 같은데?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잘 모르겠다…….

‘그럼 이건 차차 생각해보자고.’

되지도 않는 일을 붙잡고 씨름할 시간이 없었다. 할 일이 태산이었다.

이럴 시간에 다른 일들을 하는 게 백배 아니 천 배는 이득이었다.

‘미안한데 이건 좀 뒤로 미루자. 이제 슬슬 재배지 섬으로 돌아갈 때가 됐어. 모아둔 약초도 다 떨어졌고 창천 길드에서도 지원 요청이 왔어.’

-그래, 급한 불부터 끄자. 이번엔 짐이 이해해주마.

‘아마 오늘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조금만 더 힘내 보자고.’

-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동안 빼먹지 않고 수련해왔다. 자칭 황제의 수련법이 육체적으로 고된 수련법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수련법이었다.

의지를 모으는 일이란 게 그만큼 쉽지 않았고 자칭 황제의 수련법은 그 행동을 계속해서 고강도로 반복해야 했다.

서준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단 하루도 수련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 시작해라.

‘응.’

서준은 편한 자세로 앉아 의지를 모았다. 의지를 모으며 기운을 다루다 보면 기운의 성질이 더욱 세지고 그 양이 늘어났다.

그것이 곧 육체와 영혼 그리고 기운의 성장을 말했다. 그리고 이는 서준이 사용하는 능력들의 격상을 이끌어낸다.

집중을 시작한 서준은 점점 깊게 내면으로 빠져들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호랑이들이 서준의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서준이 수련을 할 때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호랑이들은 명상에 빠진 서준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서준의 주위를 돌며 서준을 관찰했다.

-어흥! 어흥!

-캬아앙! 캬앙!

-크르릉! 크릉!

지금 서준이 뭘 하고 있는지 토론하는 듯했다. 그러나 몇 달째 이어져 온 토론은 여태껏 결론짓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들 그러고 있어?”

-어흥! 캬앙! 크릉!

어느새 수련을 마치고 눈을 뜬 서준은 앞에서 얼쩡대는 호랑이들에게 물었다.

“배고파서 그래? 밥 줄까?”

-어흥! 캬앙! 크릉!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밥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호랑이들은 서준에게 달려들어 손바닥을 핥거나 몸을 세워 서준을 껴안는 등 서준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밥을 주는 사람이 최고다.

“음…. 딱히 간식으로 줄 만한 게 없네?”

-어흥…

“그럼 그냥 꿀닭이나 먹어! 꿀닭만 한 게 또 없지”

-캬앙!

-크릉!

간식거리가 없다는 소리에 실망했던 호랑이들이었지만 꿀닭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호랑이들은 서준이 던져준 꿀닭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년 시절부터 계속 먹어온 음식이었지만 질리지도 않는 듯했다.

-이제 어떡할 거야?

‘날 잡아서 재배지 섬으로 넘어가야지.’

-어휴…. 짐이 힘을 잃지만 않았으면 바로 이곳에서 차원을 열 수도 있었을 텐데……. 못난 제자 놈을 둔 짐의 죄다!

‘닥쳐.’

서준은 알 수 있었다. 게이트 능력이 한 단계 격상했다는 것을 몸으로 그리고 영혼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아직 수준이 미약해 체크포인트를 직접 지정해주러 가야 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다음 날 서준과 아이들은 요트를 타고 재배지 섬으로 돌아갔다.

“와아! 섬이다! 섬이에요! 아저씨! 섬으로 돌아왔어요!”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르릉!

정신비와 호랑이들은 재배지 섬으로 돌아오자 기분이 좋은지 막 뛰어놀기 시작했다.

“그럼 놀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네!”

-어흥! 캬앙! 크릉!

이미 정리가 다 끝난 섬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서준도 상당히 단련했다. 이제 재배지 섬에는 서준에게 위협될 요소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호랑이들과 함께하지 않아도 됐다.

서준은 그동안 홀로 두었던 산악 바이크를 타고 약초들을 심어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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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형님! 저 부르셨습니까? 형님이 이렇게 불러주시다니 아우는 너무 기뻐 죽을 것 같습니다!”

“조용히 좀 하고, 좀 앉아 봐.”

오세근이 약국으로 들어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언제봐도 적응이 안 되는 녀석이었다.

-저 녀석은 어찌 저리 매일 기분이 좋은 것이냐?

‘글쎄다. 하루하루가 하이 텐션이네.’

연구대상이었다. 언젠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마 모두를 오세근처럼 만들 수 있다면 지구 전체가 오세근처럼 웃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조금 무서웠다.

“형님! 형님!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형님!”

“전에 부탁한 거 있지?”

“뭐 말입니까? 형님이 부탁하신 게 한두 개여야지 너무 많아서 뭘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형님!”

사실 그동안 오세근에게 이것저것 부탁한 게 많긴 했다. 오세근은 서준이 하는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리버스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큰일을 비롯해 정말 사소한 일들도 많이 도와줬다.

“내가 홍보해달라고 했던 거 있잖아.”

“아! 풍성초요?”

“풍성초?”

“네! 풍성초요! 머리를 풍성하게 해줬으니 제가 풍성초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형님!”

“그래, 풍성초.”

서준의 말을 들은 오세근이 휴대전화를 꺼내며 씨익 웃었다.

“형님, 이거 보세요.”

오세근이 휴대전화에 적인 인적사항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다 풍성초 사려고 줄 선 사람들이에요. 형님이 내놓자마자 완판 확신합니다!”

“이 사람들 다 초인인 거지?”

민간인에게 팔고 싶어도 함부로 팔 수 없었다. 서준이 판매한 약초를 다른 사람에게 웃돈을 주고 몰래 구매하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서준이 직접 판매하는 건 피해야 했다.

돈을 빨리 버는 것보다는 법을 지키며 안전하게 버는 게 중요했다.

“물론이죠! 생각보다 초인 중에도 탈모인이 많더라구요! 제가 다 정리해 가져왔습니다.”

“좋아, 그럼 판매까지 맡겨도 될까?”

“물론입니다!”

이걸로 한시름 놓게 되었다. 아마 이번 판매만 잘 마무리된다면 윤희주에게 빌렸던 돈을 다 갚고도 남을 것이다.

서준은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면서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형님도…….”

“뭐가?”

“형님도 돈 앞에선 그렇게 행복하게 웃으시는군요! 역시 돈이 최곱니다!”

“최고지.”

그렇다. 돈이 최고다.

#

-조금 더 빨리 갈 수는 없겠느냐?

‘더 이상 어떻게 빨리 가? 어흥이도 지금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고.’

-끄응…

서준은 다시 게이트를 넘어 신대륙으로 넘어왔다. 이제 두 개의 포인트를 지정해 게이트를 열 수 있었기에 재배지 섬과 신대륙 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다.

-망토 속에서 귀한 짐의 영혼이 울부짖고 있잖아! 어서 빨리 움직이거라!

‘알겠어!’

자고 있던 서준을 자칭 황제가 갑작스럽게 깨웠다. 망토 속 영혼의 울부짖음이 들린다면서 서준을 깨운 자칭 황제는 서준을 게이트 너머로 밀어 넣었다.

망토를 활성화시킬 방법이라도 찾은 것인지 자칭 황제는 다짜고짜 서준을 일정한 방향을 향해 달리게 했다.

어흥이 위에 올라탄 서준은 매우 빠른 속도로 신대륙을 주파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많은 괴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따라가기에는 어흥이의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그래! 여기야! 여기라고! 빨리 가자꾸나!

“어흥아, 속도 좀 올리자.”

-어흥!

자칭 황제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물론 육체는 없었지만 이미 서준의 의식에 녹아들었기에 서준은 느낄 수 있었다.

서준을 태운 어흥이는 자칭 황제의 망토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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