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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78화 (78/150)

78화.

서준과 어흥이는 어둠에 동화되었다.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바로 옆에 서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서준과 어흥이의 몸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신비로운 기적을 일으키며 그들을 카멜레온처럼 만들었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자연과 동화된 그들은 귀신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카멜레온처럼 실체 피부의 색이 변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방법은 비슷했다.

모든 생물체는 본인도 모르게 신체 내부에 있던 기운을 밖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것이 곧 존재감이었다.

유독 존재감이 강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기운의 양이 많아 자연스레 흘려보내는 기운이 많거나, 그 기운이 적더라도 몸에서 소화를 못 해 흘려보내는 기운이 많은 경우였다.

지금 서준과 어흥이의 경우는 그 밖으로 새어나가는 기운을 거의 차단하다시피 했다. 물론 완벽하게 차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불가능했으니깐. 하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줄일 수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조금이나마 새어나가는 기운조차 그 성질을 주변의 자연과 맞추었다. 마치 카멜레온이 피부의 색을 변화시키듯 이들은 기운의 색을 자연과 일치시켰다.

해서,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감만을 지니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침입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방비가 허술하네.

‘그만큼 은신처 위치에 자신이 있던 거겠지. 누가 알았겠어? 이런 데 은신처를 세워놓을 줄.’

-하긴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걸릴 일은 없겠지.

어떻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은신처의 위치가 기가 막혔다. 산속에 있는 작은 동굴 안에 지하 건물을 세워놨다.

동굴 속에 있었기에 위성으로도 찾을 수 없는 위치였다. 새삼 이걸 찾아낸 오세근과 유명그룹이 대단했다.

-너 따라다니는 그 정신 나간 놈, 생각보다 대단한데?

‘그러게… 진짜 돈으로는 못 하는 게 없나 보네.’

-그건 우리 세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이 최고다. 물론 짐은 돈도 많았다.

‘더 부자가 돼야겠어.’

-그래.

초인경찰 역시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퇴근도 반납하고 정말 열심히 수색했다. 과로로 쓰러지는 초인이라고 들어는 봤나?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밤낮으로 리버스를 찾아다니던 초인경찰 중 일부가 과로로 쓰러졌다. 일반인들보다 압도적으로 체력이 좋은 종자들이 초인이었다. 그런 그들이 과로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내지 못한 게 리버스의 은신처였다.

그런 리버스의 은신처는 오세근은 단 사흘 만에 찾아내었다. 은신처의 위치를 전해주던 오세근은 아주 간단한 일을 해냈다는 듯이 거들먹거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오세근이?

‘아니, 오세근이 아니고 유명그룹에서 이미 조사를 끝낸 상황이었을지도 몰라. 단지 활용할 때를 찾고 있었을 수도 있어.’

-의미 없는 고민일 뿐이다. 내 물건 가져올 궁리나 해라.

‘그래.’

실제로도 그랬다. 오세근이 몰랐을 뿐이지 유명그룹에서는 이미 리버스의 은신처를 파악하고 있었다.

단지 이를 어떻게 이용할까 궁리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오세근이 요청하자 회장인 오성식이 아무 대가 없이 넘겨준 것뿐이다.

사흘이란 시간은 단지 줄까 말까를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리버스의 은신처는 유명그룹에서도 아주 활용도가 많은 정보였다. 그러나 거리낌없이 건네주었다. 그만큼 오세근에 대한 회장 오성식의 사랑은 넘쳐흘렀다.

‘잠겼는데?’

-힘으로 열어봐.

‘그럼 들킬걸?’

동굴 바닥을 대충 쓸어내자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있었다. 이 문 너머에는 아마도 계단이 있으리란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계단의 문은 아주 철저히 잠겨있었다. 눈에 보이는 쇠사슬이 걸린 자물쇠만 여섯 개였다.

이것들 역시 이계의 광물로 만들어졌기에 부수려고 하다가는 큰 소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이놈들 자신감이 여기서 나왔나 보네?’

-어찌할 거냐?

‘기다려 봐.’

보초를 세워놓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애초에 찾아내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뿐더러 강제로 문을 열고 침입하려 하면 그 소음 때문에 안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서준에게는 별문제 되지 않는 일이었다.

서준의 손이 자물쇠 위로 올라갔다. 찰그랑거리며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서준은 혹시나 놈들이 들을까 더욱 조심하기 시작했다.

서준은 의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서준의 몸속에 잠들어있던 기운들이 손끝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기운들은 작은 게이트를 만들었다.

‘됐다. 가자.’

-오? 이런 방법을?

자물쇠 위로 작은 게이트를 열었다가 그대로 닫았다. 게이트 너머로 넘어간 사슬과 그렇지 않은 사슬은 게이트가 끊어지자 그와 마찬가지로 동시에 끊어졌다.

그 절단면은 단칼에 잘린 듯 매우 날카로웠다.

비록 발동하는 데 오래 걸려 전투 중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수법이었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는 사물을 상대하기에는 최적의 수법이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제법이야?

‘보고 있나? 재중 군… 여기 자네보다 뛰어난 인재가 있네……’

서준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싸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그것도 바로 내가…….’

의아해하는 자칭 황제를 뒤로한 채 서준과 어흥이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혹여나 소리가 날까 발소리를 죽인 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꼭 해보고 싶은 대사였어.’

-오래 살았더니 별 미친놈을 다 보는구나.

‘산 건 아니지? 죽은 거잖아.’

-닥쳐라!

계단은 길게 이어졌다. 자칭 황제와 이런저런 만담을 나누며 내려가는데도 계단은 끝없이 이어졌다.

구불구불 이어지던 계단은 5분을 넘게 걸었을 때에야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에다가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쯧쯧쯧, 그것도 모르느냐?

‘그럼 넌 알아?’

-짐은 건축에도 조예가 있느니라!

‘어떻게 한 건데?’

동굴 속을 파 지하로 요새를 만들어놓았다.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장비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숨어다니는 범죄조직이 이런 일을 해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궁금한 서준은 자칭 황제에게 물었다.

-끄응… 영혼이 찢겨나가며 짐의 기억에 구멍이 생겼구나……. 생각이 나면 말해주겠다.

‘모르면 말을 말지.’

하지만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서준은 자칭 황제를 무시하기로 한 채 계단에 끝에 다다랐다.

‘이 너머에 있는 것 같지?’

-그렇다.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열둘… 아니 열셋인가? 너무 미약해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구나.

계단 끝에 달려있는 문 너머에서 놈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신비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자 생긴 능력 중 하나였다.

보통의 헌터들 역시 기척 감지 능력이 뛰어났지만 의식적으로 신비의 힘을 다루는 서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게? 문 열고 들어가면 소리가 클 텐데?

‘다 방법이 있지. 나만 믿어. 나는 재중 군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니깐.’

-도대체 이 미친놈이 뭐라 하는 것이냐?

이번에도 서준은 의지를 모아 기운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손끝에 모인 기운은 게이트를 아주 얇게 그리고 길게 뽑아내었다.

문과 문틀 사이의 좁은 틈을 게이트로 채워낸 후 서준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면서 발생하는 마찰음은 들리지 않았다. 게이트가 모든 마찰을 흡수했고 문은 자연스럽게, 아주 조용히 열렸다.

‘재중 군… 여기 자네보다…’

-그만해!

조용히 문을 연 서준은 어흥이를 데리고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미 해가 떠 리버스의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기에 은신처의 내부는 매우 조용했다.

-너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역시 짐이 잘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닥쳐, 그냥 이대로 돌아가기 전에.’

-미안하도다…….

자칭 황제에게는 그 무엇보다 영혼 조각이 중요했다. 해서 이런 협박이 심심치 않게 먹혀들었다.

‘어딨는지 알 수 있겠어?’

-기다려 봐라. 짐의 영혼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티팩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아무리 기척을 지웠더라도 함부로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했다. 기감으로 파악한 바로는 아무리 못 해도 열 명은 있었다.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한 장소다.

-끄으응…….

자칭 황제가 신음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영혼이 찢긴 상태로 능력을 사용하려니 고통스러운 게 분명했다.

그러나 잠깐의 고통보다는 영혼 조각을 찾지 못함으로써 다가오는 지속되는 고통이 더 컸기에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찾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낼 수 있었다. 애초의 본인의 영혼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찾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다.

본디 영혼이란 하나로 묶여있어야 하는 것, 어떤 이유로든 찢겨진 영혼은 서로를 불러 모으는 성질이 있었다.

‘안내해.’

-알겠어.

서준은 자칭 황제의 안내를 따라서 미로 같은 지하 은신처를 이곳저곳 누볐다.

기척을 감추고 누군가 접근하면 숨기를 반복해가며 자칭 황제의 영혼이 잠든 곳으로 향했다.

-여기야. 이곳에서 짐의 영혼이 울부짖는 게 들린다.

이윽고 서준은 작은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 은신처에 존재하는 방이라기에는 그 모습은 매우 평범했다.

애초의 은신처 전체가 그랬다. 지하라는 점을 까먹고 보면 보통의 상가 건물과 다를 것이 없었다.

‘뒤져볼 것도 없겠네.’

-빨리 가지고 나가자꾸나. 짐은 어서 영혼을 하나로 만들고 싶구나!

뒤져볼 것도 없었다. 방 안에는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여러 개의 아티팩트들이 어질러지듯이 놓여있었다.

‘득템이네.’

인생은 템빨이다. 앞으로 서준의 인생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해줄 물건들이 이곳에 다섯 개나 있었다.

아! 황제의 영혼이 담긴 물건을 제외하면 네 개다.

‘아티팩트 네 개면 손해는 아니지.’

-됐고 빨리 가자꾸나! 어서 약국으로 돌아가 영혼을 합치자꾸나!

마음이 급해진 자칭 황제는 서준을 보채기 시작했다.

‘알겠어, 알겠어.’

서준은 아티팩트를 조심스럽게 챙긴 후 다시 조심스럽게 은신처를 빠져나갔다.

-그나저나 저놈들은 어떻게 할 셈이냐? 아주 찢어 죽일 악당이라 하지 않았느냐?

‘다 생각이 있지.’

-무슨 생각 말이냐? 지금 죽이지 않는 것이냐?

‘죽으면 그냥 끝이잖아? 이것들은 좀 더 고통스러울 필요가 있어. 그리고 지금 죽이려 들다간 저놈들 다 깨어나서 오히려 내가 당할걸?’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서준이라 해도 열 명이 넘는 초인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것도 보통의 초인들도 아니고 국가에서 제일가는 범죄자들이었다. 보통 잘 싸우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GOTY에서 강한 초인들이 얼마나 잘 싸우는지 경험한 서준이었기에 자만을 부리지 않았다.

-이제 보니 네놈이 제일 사악한 놈이로구나!

‘자꾸 헛소리하면 영혼 모으는 거 그만둔다?’

-미안하도다.

확실한 약점이 잡힌 자칭 황제는 이제 서준의 앞에서 물맞은 고양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 방법이 있다고 나만 믿어.’

자칭 황제의 물음에 대답한 서준은 사악하게 웃으며 은신처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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