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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76화 (76/150)

76화.

작은 왕관 모양을 하고 있는 아티팩트와 단검 모양의 아티팩트 그리고 옥새의 형태를 하고 있는 아티팩트가 서로 공명하면서 공중에 떠올랐다.

세 아티팩트는 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며 삼각형의 형태를 그렸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흰 종이에 찍힌 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홀로그램이 있었다.

-이곳이야! 이곳에 짐의 영혼이 있다!

그 홀로그램 속 영상을 바라본 자칭 황제가 소리쳤다. 홀로그램 속에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 짐의 다음 영혼이 담긴 물건이 있다고!

홀로그램은 그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10여 초 정도 영상을 투영해주더니 홀로그램은 사라졌고 세 아티팩트는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일순간 약국 전체가 강한 빛에 휩싸였다.

“윽!”

-어흥! 캬앙! 크릉!

강력한 빛에 서준은 눈을 감고 말았고 마당에서 자고 있던 정신비와 호랑이도 놀라 잠에서 깼다.

이윽고 빛이 사라지자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아티팩트들은 테이블 위에 얌전히 있었다.

‘어때? 영혼이 좀 돌아온 것 같아?’

-하하하하! 이제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다고!

그동안 주기적으로 고통을 호소했던 자칭 황제가 기뻐 날뛰었다. 옥새 아티팩트가 발동하면서 찢긴 영혼의 일부가 돌아온 듯했다.

-하하하하! 영혼이 세 조각이나 모였어! 이제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영원히 안녕이다!

‘잘된 거지?’

-하하하! 그럼! 짐이 계획한 일이 실패할 것 같아? 하하하하하하!

‘내가 다 한 건데…….’

서준은 날뛰는 자칭 황제를 뒤로한 채 테이블 위에 있는 아티팩트들을 정리했다. 그 능력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비싼 물건이니 잘 챙겨두어야 했다.

-이제 저놈들을 잡으러 가자 제자야!

‘내가 언제부터 네 제자였어?’

-어허! 짐에게 배움을 구하고 있으니 당연히 짐의 제자니라!

‘예이, 스승님.’

-비꼬지 말거라!

서준은 말을 저렇게 하면서도 홀로그램 속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언제 저놈들을 잡으러 갈 것이냐? 다음 영혼이 필요하다! 어서!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

-어째서!

서준은 홀로그램 속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민했다. 누군지는 알았으나 그들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잡는 것보다 찾아내는 것이 더 어려웠다.

유재학, 최운혁과 함께 활동하던 범죄조직 리버스의 리더였다. 홀로그램은 그와 그의 수하들이 밥을 먹는 장면을 비춰줬다.

아마도 놈이 다음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유명한 놈이긴 한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유명한 놈이냐?

‘응, 범죄조직이야. 아마도 테러를 하면서 훔쳐간 아티팩트 중에 네 영혼 조각이 있는듯싶다.’

그동안 수차례 테러를 범하면서 많은 아티팩트를 손에 넣은 리버스였다. 최운혁이 서준에게 뺏긴 아티팩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온전히 가지고 있을 테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의 수는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최운혁이 서준에게 패해 체포된 이후로 그들은 음지에서 더욱 음지로 숨어들었다.

그들이 가진 많은 아티팩트를 이용해 초인경찰을 피해 숨어들었다. 지금 그들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숨을 대로 숨어버린 놈들이야. 활동 안 한 지도 꽤 됐어.’

-그래도 찾아보거라. 아프지 않다고 했지만 아직 조금 아프다.

‘기다려 봐, 방법을 찾아볼게.’

초인경찰들도 열심히 찾고 있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국가를 뒤흔든 테러조직이었다. 체포가 늦어지자 국민들의 분노도 점점 더 커지고 초인경찰을 향한 비난도 거세졌다.

그렇지만 숨은 채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자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형님! 형님! 형님! 제가 왔습니다! 형님!”

“어휴, 또 왔니?”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오세근이 또 찾아왔다. 정말 질리지도 않나 보다.

“질리지도 않니?”

“아우가 형님에게 문안 인사드리는 게 어떻게 질리겠습니까?”

“그래… 됐다. 오늘은 무슨 일이냐?”

이제는 서준도 포기했다. 오세근이 찾아오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서준도 체념한 채 오세근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오늘은 그냥 심심해서 놀러 왔습니다. 저희 길드 애들도 휴가 가서 할 일이 없네요.”

“심심하면 나 말고 친구나 만나 제발.”

“친구 없는데요?”

“어휴…….”

하긴 저 성격에 친구가 있는 게 더 이상했다.

서준이 오세근을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는데 오세근 옆에 서 있던 김비서가 서준을 노려보았다.

제 주인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게 기분 나쁜 듯했다.

“형님 이게 뭔지 아십니까?”

오세근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물었다.

“뭔데?”

술병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액체가 가득 담겨있으니 아마도 술이 확실할 것이다. 서준은 술에 대해 잘 몰랐기에 오세근에게 되물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게이트 럼입니다.”

“게이트 럼?”

“네, 게이트 너머에서 건너온 럼이라는 소리죠. 맛이 아주 끝내줘요.”

아무래도 이계에서 가져온 술도 인기가 많은 상품인듯했다. 8년간의 시간 괴리로 빈 구멍이 많았던 서준이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사실, 술을 그리 즐기던 편도 아니었기에 관심이 없었던 게 맞다.

오세근이 가방에서 잔 세 개를 꺼내며 말했다.

“제가 오래전부터 제일 좋아하던 술인데 이거 진짜 아무나 못 구하는 거예요.”

“오래전부터?”

“네.”

“초인이 되기 전에도 마셨다는 말이야?”

이계에서 건너온 물건을 일반인이 취급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약초든 술이든 상관없었다.

게이트 너머에서 건너온 물건을 일반인이 사용하는 것은 범죄였다.

“에이, 형님도 알면서?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습니까?”

“그래?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이지?”

“그럼요.”

오세근의 말을 들을 서준은 문득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뭐, 어차피 부탁하면 바로 들어줄 놈이었으니 술이나 마시며 천천히 얘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그래, 일단 마셔나 보자. 네가 그리 말할 정도면 맛도 좋겠지.”

“그럽시다! 김비서! 너도 앉아!”

“감사합니다! 길드장님!”

오세근이 소파를 손바닥으로 팡팡 치며 말하자 김비서가 그 자리에 앉았다.

술잔을 세 개 꺼낸 것만 보아도 아무래도 같이 마실 생각인 것 같았다.

“김비서는 일반인 아니야?”

서준이 물었다. 김비서는 오래전부터 오세근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초인이 일반 기업에 속할 리 없을 테니 김비서는 일반인이 분명했다.

“에이, 형님.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다니깐요? 몰래몰래 하면 다 되는 거예요.”

“그러냐?”

어차피 제 돈 나가는 일도 아니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오세근이 다 처리해줄 터이니 별 상관없었다.

게다가 서준과 오세근은 지금 한국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두 사람이었다. 이 정도 문제를 일으켜도 큰일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술은 한 잔 두 잔 들이켜다 보니 어느덧 해가 떨어져 저녁이 되었다.

안주로 꿀닭을 좀 구워다 내주니 오세근과 김비서 역시 미친 듯이 맛있다며 극찬을 했다.

서준은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세근이 가져온 게이트 럼은 서준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간에 정신비가 찾아와서 먹고 싶다며 졸랐기에 그를 말리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형님, 이거 진짜 맛있네요? 이 닭은 어디서 샀습니까?”

“비밀이다, 새캬.”

서준도 취했는지 어느 정도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오세근을 진짜 동생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뭐, 꿀닭을 먹으면 김비서가 각성하고 오세근이 새 능력을 깨우칠 수도 있었는데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껏 보아온 오세근과 김비서는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었고 취해서 그런 사소한 일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크, 형님 나중에 은퇴하시면 닭 장사해도 되겠습니다. 이거 진짜 꿀맛 납니다.”

“너는 옆에서 술장사하고?”

“것도 좋지요!”

서준과 오세근 그리고 김비서는 거하게 취해서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그냥 생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준이 문득 생각난 듯 세근에게 물었다.

“아! 맞다. 너 돈이면 다 된다고 했지?”

“물론입니다! 형님. 돈으로는 정말 안 되는 게 없어요. 말씀만 하세요. 어떤 부탁이든 다 들어드릴게요.”

오세근은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서준은 그런 오세근의 뒤로 후광이 보였다.

과연 돈으로는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그럼 사람도 찾을 수 있어?”

서준이 완전 술에 절어 꼬부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요? 누가 형님 돈이라도 떼먹었답니까? 나쁜 새끼.”

“돈은 아니고… 내 물건 가지고 간 놈이 한 명 있어서.”

서준의 물건을 가져간 건 아니고 자칭 황제의 물건을 가져간 놈이었지만 그게 그거였다.

어차피 자칭 황제의 영혼이 서준에게 복속되어 있으니 자칭 황제가 곧 서준이었다.

“저런, 나쁜 새끼를 봤나! 어떤 놈입니까? 당장 찾아서 족쳐야죠!”

“유재학 알지? 왜 있잖아, 그 유명한 테러범.”

서준이 꼬부라진 혀를 이용해 말했다. 다행히도 오세근은 단박에 알아들었다.

“알아요, 알아요. 그놈. 그놈이 형님 물건 훔쳐갔어요?”

“응.”

“제가 찾아드릴게요! 찾아서 족쳐서 형님 앞에 대령하겠습니다!”

오세근은 자신 있게 말했다. 원체 자신감이 넘치는 놈인 데다가 취했으니 무슨 말인 듯 못하랴? 오세근은 역시나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아냐, 위치만 찾아줘. 남은 건 알아서 할게.”

“왜요? 제가 잡아다 드릴게요.”

“그건 안 돼. 놈들을 잡는 건 초인경찰이 해야 할 일이야.”

헌터가 범죄자를 잡는 건 초인경찰과의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괜찮지 않을까요? 범죄자도 잡고… 우리 이미지도 좋아서 사람들도 뭐라고 안 할 거예요.”

“그래도 그것과 이건 좀 다른 문제지.”

지키라고 나눠둔 법이었다. 정부에 속하지 않은 민간 길드의 헌터들이 과한 힘을 지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정한 규칙이었다.

일반인이 이계의 술을 마시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당장 우리는 괜찮을지 몰라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게 되면…… 그땐 다 무너지는 거야.”

서준은 술에 취해 힘 빠진 혀로 작게 말했다.

서준의 일을 넘어가 준다면 다음에 누군가 또 권한을 침범해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초인이란 존재는 어찌 되었건 큰 힘을 가진 병사였다. 개개인에게 과한 권한을 주는 것은 곧 사회 붕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은 형님 부탁이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그놈 찾아서 알려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서준은 럼을 한 잔 쭉 들이켜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냥, 아티팩트만 훔쳐 나와야지.’

-그놈들이 순순히 줄까?

서준의 생각을 모두 듣고 있던 자칭 황제가 물었다.

‘몰라, 그럼 다 그냥 때려눕히고 물건만 빼낸 다음에 경찰 부르지 뭐. 그놈들 잡혀가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냐?’

-알아서 해라. 난 내 영혼만 되찾으면 뭐든 상관없으니.

‘그래.’

남은 술을 모두 따라 마신 서준은 취기에 눈을 감으며 괴수들에게 학살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뒤이어 테러범들에게 당해 임시병동에 누워있던 피해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남에게만 맡겨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우……. 그래도 나쁜 놈들은 다 죽어야 돼. 다 벌 받아야 돼.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서준은 술 향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뱉으며 혼잣말을 했다.

눈을 감은 채 깊이 고민하는 서준을 보다 오세근과 김비서도 술에 취해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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