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서준과 세 마리의 호랑이 그리고 미국 팀의 리더 칼 코이그니는 짧은 거리를 둔 채 대치 중이었다.
조금의 빈틈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물어뜯기리라.
‘젠장, 뭔 놈의 미친놈이 영수를 세 마리나 끌고 다녀? 그것도 호랑이를.’
칼 코이그니는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티팩트만 잘 쓰면 못해도 둘, 잘하면 셋은 보낼 수 있다. 그럼 해볼 만해.’
하지만 그에 손에 쥐어있는 아티팩트는 그가 생각하기에도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가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던 이유다.
‘좋아, 이제 슬슬 움직일 만하군.’
칼 코이그니는 손목을 돌리고 자세를 낮췄다. 전투 후유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신체 구석구석이 이제야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 코이그니가 서준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그 순간 보름달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GOTY에서 칼 코이그니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살아계셨군요…….”
“네, 겨우 그림자 속으로 몸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어요. 덕분에 과분한 자리에 남았네요.”
일본팀 리더였다. 미국팀에게 쫓기던 그는 미국팀이 한국팀의 리더 윤희주에게 시선이 끌린 사이 그는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껏 끊임없이 그림자 사이를 쏘다니며 적들을 피해 다녔다.
“잠시만요, 챙길 게 있어서…….”
서준은 그런 그를 뒤로한 채 기절한 칼 코이그니의 주먹을 강제로 폈다. 그리고 그가 쥐고 있던 보석을 챙겼다.
“철저하시네요.”
“인생은 템빨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쓰려면 챙겨 둬야죠.”
그렇다. 인생은 템빨이다.
“시간 끌어봐야 뭐 좋겠습니까? 이제 여기서 끝냅시다.”
일본팀 리더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이 차고 있던 식별 팔찌를 끊었다. 질긴 팔찌는 그의 손아귀 힘에 손쉽게 끊어졌다.
“우승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네요.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일전에 한 번 구해준 것으로 그는 한국팀을 위해 계속해서 헌신했다.
그의 헌신은 그 은혜를 갚고도 넘쳤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서준만 잡으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식별 팔찌를 끊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것으로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입니다. 한국팀의 우승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일본팀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언젠가 만날 일이 있다면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GOTY가 종료되었다.
섬에 가득 낀 독안개는 조금씩 사라져갔으며 미리 장치해놓았던 것인지 섬 전체에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탈락한 칼 코이그니와 서준 그리고 일본팀 리더를 데려가기 위한 헬기도 날아왔다.
이제 완전히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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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저씨! 저 저기서 사진 찍어 주세요!”
“그래.”
GOTY가 종료된 후 서준은 독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한껏 여행 기분을 내고 있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독일이었다. 이번 기회에 뽕을 뽑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만큼 해외여행이 힘들어진 시대였으니까…….
"저기 봐! 백서준이야!"
"와 어흥이 멋있다!"
"사진 찍어달라고 할까?"
GOTY의 우승자였다. 최종 생존자였다. 서준은 이미 전 세계적인 인기스타가 되었다.
연고도 없는 외국이었지만 서준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크릉! 크릉! 크르릉!
호랑이들도 자신들을 향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한껏 가슴을 내밀며 멋진 척을 하며 걸었다.
그들도 이런 관심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얘들아 저쪽으로 가볼까?”
“네!”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이 걸어가면 그 주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다행히 그들도 서준을 존중해주는지 서준이 걸어가면 그곳에 길이 났다.
“신비야, 저기 서볼래?”
“네!”
“하나… 두울… 셋!”
중세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축물이었다. 그 아래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신비와 호랑이들의 모습을 서준은 카메라에 담았다.
“크으… 사진작가나 할 걸 그랬어.”
모델과 배경이 뛰어나니 정말 대충 찍어도 좋은 사진이 나왔다.
‘이 사진은 집에 걸어놔야지.’
사진을 보며 감탄하던 서준은 크게 현상해서 액자에 걸어놓을 생각을 했다.
중세시대의 멋들어진 건축물과 그 아래 모여있는 신비와 호랑이들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호랑이 약국의 한편을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넘쳤다.
서준은 약국에 걸릴 사진을 상상해보며 뿌듯해했다.
-이곳은 좋구나.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아주 좋은 실력을 가졌구나!
자칭 황제도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서울은 정말 기괴하게 높은 건물들로만 가득 차 있었는데… 이곳은 정말로 아름답구나! 짐은 이곳에서 살고 싶다네!
‘서울도 더 살아보면 나쁘지 않을걸?’
자칭 황제는 서울보다는 독일이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서준의 짧지만 행복했던 독일 여행도 종료되었다.
“아! 독일 또 가고 싶다!”
“저두요!”
-어흥! 캬앙! 크릉!
한국에 돌아온 서준은 이전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자칭 황제에게 훈련을 받고 신비와 호랑이들과 함께 놀다가 다시 훈련을 하기를 반복했다.
아직 게이트를 두 개 열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훈련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
‘응, 아마도… 요번 주 안에는 끝날 것 같아.’
폭포 속에서 의지를 모으고 또 모았다. 기운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곳에서의 반나절이 지금껏 해왔던 그 어떤 훈련을 다 합친 것보다 효과적이었고 성공적이었다.
서준은 그날 이후로 정말 많은 성장을 했다. 이제 서준이 목표했던 경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서준은 그 끝이 이번 주가 지나기 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지!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긴장 풀지 말라고!
‘알겠어, 소리 좀 지르지 마. 골 울려.’
-어허! 짐의 말에 토 달지 말지어다!
그렇다고 자칭 황제의 잔소리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자칭 황제는 여전히 혹독하고 엄격한 스승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그때였다. 서준이 다시 의지를 모아 집중하려 할 때 누군가 약국을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백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아! 길드장님! 들어오세요.”
윤희주였다. GOTY 종료 후 한국으로 돌아온 윤희주는 이래저래 할 일이 매우 많았다.
예전 식으로 말하면 세계 최대 인기 스포츠의 우승팀 감독이었다.
GOTY 우승 이후 윤희주는 정말 이리로 저리로 많이 불려 다녔다. 인터뷰도 했고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길드 내부적으로 정리할 것도 매우 많았다.
“좀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는데 시간이 안 났어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도 좀 더 쉬고 싶었는걸요. 일단 앉으세요.”
그리고 이제서야 대강 정리가 끝이 난 참이었다. 그녀는 길드를 정리하자마자 서준을 찾아 호랑이 약국에 왔다.
서준은 멀뚱멀뚱 서 있는 윤희주를 소파로 안내했다.
“우선 저희가 수확했던 아티팩트를 모두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백 선생님 몫으로는 이걸 드리기로 했어요.”
한국팀은 러시아와 이집트를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팀의 리더 칼 코이그니도 탈락시켰다.
그렇게 얻어낸 아티팩트가 총 아홉 개였다. 그리고 그 아티팩트들을 서준의 게이트에 보관해왔다.
혹여 다른 길드에게 패배하더라도 아티팩트만은 지키기 위함이었다.
전 세계 최고들만 모인 자리다 보니 수확한 아티팩트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이것을 취하는 것만으로 창천 길드의 전력은 적어도 한 단계는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윤희주는 칼 코이그니가 지니고 있던 붉은 보석을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미국팀 리더가 지니고 있던 거네요?”
“네, 이번에 수확한 아티팩트들의 능력은 모두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이게 백 선생님께 가장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서 백 선생님 몫으로 남겨놨어요.”
윤희주는 서준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 종이에는 붉은 보석 모양을 하고 있는 아티팩트의 사진과 그 능력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서준은 그 내용을 읽어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꽤 훌륭한 아티팩트였다.
“그리고 이것도 백 선생님 몫입니다.”
윤희주는 이어서 잘 포장된 상자를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죠?”
“우승 상품이에요. 백 선생님 덕에 우승했으니 이건 백 선생님이 가져가는 게 맞아요.”
서준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두 마리의 동양용이 서로 몸을 꼬고 있는 모양의 장식을 달고 있는 옥새가 들어있었다.
아! 정확히는 그 소재가 옥이 아닌 이계의 광물이었으니 옥새라는 표현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네, 근데 이 아티팩트의 사용법은 알아내지 못했어요. GOTY 주최 측에 물어봤는데 거기서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저 외관만으로도 훌륭한 물건이라 판단해 상품으로 걸었다고 하네요.”
“흠… 그런가요? 제가 한번 연구해 볼게요.”
“네.”
아쉽게도 윤희주는 옥새의 사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왕관과 단검도 특별한 능력은 없었지?’
왕관과 단검 모양을 한 아티팩트도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서로의 위치를 찾아주고 둘이 만나 공명했을 때 주위를 깨끗한 기운으로 환기시켜 준 정도였다.
이번에 얻은 옥새 역시 특별한 능력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럼 전해드릴 건 다 드렸으니 이만 일어나 볼게요. 제가 일이 너무 많이 밀려서요.”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밑에 사람들 좀 부려먹으시고요.”
“하하,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제가 직접 안 하면 다 엉망이 되는 터라.”
일이 많이 밀린 윤희주는 대충 인사를 하며 길드로 돌아갔다.
-빨리! 빨리! 빨리! 발동시켜!
윤희주가 돌아가자 몸이 달아오른 자칭 황제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골 울려! 조용히 말해!’
-급하다! 빨리 빨리! 아파 죽겠다고!
‘알았어! 근데 어떻게 하는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방법을 알지 못했으니깐. 하지만 서준에게는 그 물건의 원주인인 자칭 황제의 영혼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사용법을 모르면 그 주인에게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도장을 어디다 쓰겠어! 종이에 가져다 대고 찍으면 되잖아!
‘아!’
서준은 A4용지 하나를 대충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도장을 찍으려 하자 자칭 황제가 소리쳤다.
-잠깐! 다른 물건들도 옆에 올려놔야지! 그래야 공명을 하며 발동된다고!
‘그동안 사용법을 알아내지 못할 만도 했네.’
아마도 옥새 하나만으로는 발동시킬 수 없는 듯했다. GOTY 주최 측이나 창천 길드가 사용법을 발견하지 못할 만도 했다.
서준은 테이블 위에 작은 왕관과 단검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도장을 찍었다.
“윽!”
도장이 찍힌 곳에서 강력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눈부심에 서준은 순간 신음이 나왔다.
빛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서준이 눈을 뜨자 흰 종이 위에 찍힌 도장 위로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