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일본팀은 정말로 헌신적이었다.
"이것 좀 드셔보세요! 제가 잡아 온 사슴입니다."
"여기 물도 좀 마셔보세요."
솔직히 처음에는 의심이 가기도 했다. 아무리 도와줬다지만 경쟁자였기에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잘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봤다.
그러나 일본팀은 그러지 않았다.
진심은 통한다 했던가? 결국 서준을 비롯한 한국팀의 마음도 움직였고 일본팀을 믿기 시작했다.
"편히 주무세요. 경계는 저희가 서겠습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덕분에 지금껏 탈락하지 않고 남아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전지대는 점점 더 좁아졌다.
독안개는 점점 더 영역을 넓혀가며 참가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좁아지는 안전구역에 참가자들은 확보했던 은신처를 버려두고 계속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팀은 그 와중에 한국팀을 위해 은신처를 찾아주었다.
이미 전투는 포기한 생태였기에 그들은 한국팀의 생존을 위해 모든 체력을 다 소비했다.
식량이 부족하면 밤새도록 사냥감을 찾아다니며 식량을 확보했고 그들의 능력 중 하나인 화염 능력을 이용해 고기를 적당히 구워줬다.
식수 역시 열심히 정찰하여 깨끗한 수원을 찾아내어 공급해줬음은 물론이고 은신처 주위의 경계까지 도맡아주었기에 창천 길드는 편히 쉴 수 있었다.
다른 국가의 길드들은 안전 확보와 식량 확보를 위해 에너지를 쏟고 있었지만 한국팀은 일본팀의 도움으로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전력이 약한 한국팀의 돌출점이 되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에너지가 보다 강한 다른 국가를 겨눌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이집트팀 발견했습니다.”
정찰을 나섰던 일본팀의 리더가 말했다.
“6명 전원 생존했나요?”
“아뇨, 일단 눈에 보이는 건 네 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럼 남은 두 명은 정찰을 나섰을 수도 있겠네요.”
“네, 경계가 삼엄해 더 이상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위치는요?”
“여기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집트팀의 은신처가 한국팀의 은신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일본팀의 남은 두 멤버는 각각 북과 남으로 정찰을 나섰고 그중 북쪽으로 나섰던 리더가 이집트팀을 발견한 것이다.
이집트팀의 보이지 않는 두 명이 이미 탈락한 것인지 아니면 정찰 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먼저 발견한 것만으로도 한국팀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저희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이제 탈락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닌데 뭐 위험할 게 있겠습니까?”
윤희주는 고심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들이 미끼가 되어준다면 승기를 잡기에는 매우 유리했다.
이집트팀이 허점을 보이고 탈락 직전처럼 위장한 일본팀을 공격할 때에 뒤에서 기습을 해 선공을 잡을 수만 있다면 손쉽게 이길 수 있었다.
개개인의 전력 차이는 기습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 거기에 서준의 아티팩트까지 모두 재사용 대기시간이 끝나 사용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대로는 일본팀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아마도 이번 작전이 끝나면 못해도 한 명 많으면 두 명 전부 탈락할 가능성이 컸다.
비록 그들이 직접 만족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랬다.
지난번 도와주었던 만큼 그들도 충분히 갚았다.
“저희 생각은 마세요. 어차피 남은 두 명으로는 더 오래 버티기 힘듭니다. 계속 짐만 되는 것보다는 크게 한탕 하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게 나아요.”
“저희도 요번에 한국 뉴스에 크게 나겠네요. 기분 좋네요, 뭐.”
일본 특유의 과장된 허세와 제스처를 하면서 그들은 우리를 설득했다.
그들은 미끼가 되겠다고 하고 우리는 망설였다. 보통의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좋아요. 두 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희도 따를게요.”
“감사합니다.”
고심의 고심을 거듭하던 윤희주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별다른 수가 없기도 했다.
“근데 이집트라면 창왕이 있는 곳 아닙니까?”
“맞아요. King of spear, 모하메드가 있는 곳입니다. 저희 일본도 처음에 그를 만나서 전력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상대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미끼가 되어 그를 유인한다면 가능할 겁니다. 그사이에 나머지 셋을 처치하고 나면 창왕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아무리 창왕이라도 혼자서 여덟을 상대하는 건 무립니다.”
이집트에는 창왕이라고 불리는 헌터가 있었다. 모하메드는 대침공 당일부터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던 초인이었다.
그는 본래부터 이집트의 전통창술을 수련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다 대침공이 발발했고 각성을 하며 엄청난 육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다른 헌터들처럼 불을 뿜는다거나 바람을 부리는 등의 초능력은 사용하지 못했으나 그는 뛰어난 창술과 강력한 육체 능력만으로 창왕의 칭호를 따냈다.
지난 GOTY의 본선은 1 대 1 배틀이었다. 모하메드는 지난 GOTY 결승에서 창 하나로 상대들을 모두 무찌르며 결국 우승컵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때 그에게 창왕이라는 칭호가 붙었고 아무도 의의를 갖지 않았다.
일본팀은 대회 첫날부터 창왕과 조우했다. 당시 창왕은 팀원들을 안전한 곳에 숨겨놓고 홀로 정찰 중이었다.
그리고 조우한 일본팀의 헌터 셋을 홀로 무찔렀다. 일본팀에게는 천만다행으로 그 시점에 독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남은 셋은 그를 이용해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전투력은 어마어마했다.
“저희 여덟에 한국팀의 호랑이 셋까지 하면 열하나입니다. 아무리 창왕이라도 그 인원은 홀로 무찌르지 못할 겁니다.”
일본팀 리더의 말이었다. 그는 이미 창왕과 한 번의 전투를 치러냈기 때문에 그의 전력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팀과 함께하면서 파악한 전력을 비교했을 테니 아마도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의 예상대로 들어맞을 것이다.
“근데 굳이 지금 싸우는 게 맞을까요?”
서준의 말이었다.
“우리가 싸우는 것보다는 다른 팀이 서로 싸우다 자멸하기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숨어서 버티는 것도 배틀로얄 게임의 공략 방식 중 하나였다. 보는 사람은 재미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 최고의 공략법 중 하나였다.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안전지대가 점점 좁아지는 이상 결국에는 맞붙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처리하는 게 더 좋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소현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전구역이 좁아지면 전투 중 다른 길드가 끼어들게 될 확률이 점점 더 커집니다. 변수가 생기면 겨우 만든 이점을 그대로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일본팀이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을 때 처리하는 게 낫습니다.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요.”
그녀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한국팀은 일본팀이라는 미끼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팀을 이용해 그들을 유인하고 분리시킬 수만 있다면 승산은 있었다.
하지만 안전구역이 좁아진다면 겨우 만든 이점을 잃을 수도 있었다. 변수란 것이 항상 좋은 쪽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서준이 윤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결국에 최종 결정권자는 윤희주였다.
“여기서 이집트를 배제하고 가겠습니다.”
결국 윤희주는 일본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결국 이 방법이 최선이었으니깐.
얼마 후 일본 팀의 두 멤버는 이집트의 은신처 앞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도망친 쥐새끼들이 또 왔구나.”
“어차피 탈락한 거 동료들 복수는 하고 고춧가루 정도는 뿌려놓고 가야지 않겠어?”
정면돌파였다. 창왕의 성격을 완벽하게 파악한 작전이었다. 사실 작전이랄 것도 없었다.
창왕은 호기로운 성격으로 매우 유명했다. 그는 그 성격 탓에 본래 몰려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본인이 놓쳤던 약한 적들이었다. 주위에 동료들이 있다고 해도 그 성격상 절대 같이 싸우지 않았다. 그는 게이트가 열리더라도 홀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자였다.
혼자서 둘을 상대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홀로 나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이런 엄청난 무력을 지닌 창왕을 보유하고 있는 이집트가 GOTY에서 단 한 번밖에 우승하지 못한 이유였다. 그것도 작년 본선이 1 대 1로 결정되었기에 가능했다.
“죽어!”
일본팀의 멤버가 닌자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입에서 불을 뿜어대며 공격했다. 아마도 일 초 후 그는 전투 불능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 역시 예상하고 있는 결과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모하메드는 창을 가볍게 휘둘러 강한 바람을 일으켰고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을 그대로 증발시켰다.
그리고 가볍게 도약해 그를 기절시켰다.
“젠장! 이건 말도 안 되잖아!”
그 모습을 지켜본 일본팀 리더는 최대한 당황한 척을 하며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그림자 속을 달리는 일본팀 리더는 아무리 창왕이라도 단숨에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여기까지는 시나리오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 창왕이 일본팀 리더를 쫓는 새에 이집트팀을 처치하면 되었다.
단순한 만큼 변수도 적은 그런 작전이었다. 창왕의 단순한 성격이 도움이 됐다.
“최대한 빨리 처치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본팀 리더가 쓰러지기 전에 창왕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네.”
일본팀 리더가 쓰러지더라도 창왕을 잡을 자신은 있었다. 호랑이까지 하면 구 대 일의 상황이었다. 게다가 서준의 아티팩트도 온전했다. 아무리 일본팀을 홀로 상대했던 창왕이라도 이건 무리였다.
그러나 윤희주는 일본팀의 등수를 하나라도 더 올려주고 싶었다. 이대로 탈락시킬 수는 없었다. 해서 속도가 관건이었다.
“지금 돌입합니다.”
“네!”
타이밍을 재던 윤희주는 창왕과의 거리를 가늠한 후 공격을 명령했다.
전투소음을 들은 창왕이 고개를 돌려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에 남은 셋을 처치하면 되었다. 호랑이까지 포함해서 셋당 하나만 처치하면 되었다.
간단한 문제였다.
“습격이다!”
“습격이다!”
눈치를 챈 이집트팀이 무기를 들고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창왕이 빠진 이집트팀은 한국팀에게 그 어떤 위협이 되지 못했다.
사실상 전력의 절반인 창왕과 실제로 남은 두 명의 멤버까지 빠진 상황에서 이집트팀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모두 그대로 전투 불능상태가 되었다.
“이런 개자식들이! 동양의 원숭이 놈들이 손을 잡고 함정을 팠구나!”
창왕은 올곧은 무인이었다. 그의 사전에는 함정이란 비겁한 단어는 들어있지 않았다.
일본팀 리더를 쫓던 창왕은 팀원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은신처로 급하게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비겁한 새끼들…. 너희는 긍지라는 것도 없는 거냐?”
분노한 창왕이 한국팀을 바라보며 물었다.
“창왕… 이미 상황은 끝났습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 많은 인원을 상대할 수는 없어요. 그만 포기하세요.”
“흥! 내가 이미 일본팀을 홀로 도륙 냈던 사실을 벌써 잊었나 보군. 이제 너희들의 차례다.”
윤희주는 항복을 권유했지만 분노한 창왕이 들어먹을 리 없었다.
살기로 가득 찬 창왕이 내뿜는 기운은 점점 더 팽창했다. 그리고 그 기운은 그의 모습을 두 배는 더 커 보이게 만들었다.
비록 실제로 그의 신체가 커진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팀에게 위압감을 주기에는 충분한 기적이었다.
“하압!”
창왕이 기함을 내지르며 윤희주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