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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71화 (71/150)

71화

“누가 옵니다!”

호랑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서준이 외쳤다. 이쯤 되면 호랑이들이 짧게 울어도 뭐라고 얘기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서준과 호랑이들은 잘 교감 되는 상태였다.

“모두 전투준비하세요.”

“전투준비!”

윤희주는 모두를 전투태세로 돌입시켰다. 사흘간 갇혀있었던 독안개를 겨우 피해 긴장을 푸나 했더니 곧바로 전투에 돌입해야 했다.

그럼에도 길드원들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유지한 채 무기를 치켜들었다.

호랑이들이 제일 앞쪽에 섰고 그 뒤에 김소현과 성해철이 그리고 그 뒤에 김민석과 최성원이 섰다.

그리고 가장 후미에 윤희주와 서준이 앞의 둘을 지키며 섰다.

-어흥! 캬앙! 크릉!

얼마 후 호랑이들이 다시 크게 울부짖었다. 적이 더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울음의 간격으로 볼 때 적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곧 충돌할 것 같습니다!”

“젠장! 쉬지도 못했는데!”

사흘간 굶주린 상태였다. 이제 겨우 안전지대로 들어왔는데 숨 돌릴 틈도 없이 전투에 돌입해야 했다.

길드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상황이 뭔가 이상한데요?”

적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무도 없이 넓은 평원지대에 독안개도 끼지 않은 터라 시야가 넓게 보였다.

세 명으로 보이는 그룹이 이쪽으로 죽자사자 뛰어오고 있었다.

“숫자가 적습니다.”

“맞대응할까요?”

창천 길드는 현재 서준까지 여섯이었고 상대는 셋이었다. 호랑이들을 제외하고 본다고 해도 두 배의 차이가 났다.

숫자가 많더라도 이렇게 대놓고 직선 공격을 하는 일은 드물 진대 적은 수로 달려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저렇게 달리면 이곳에 도착할 때쯤에는 기운이 다 빠져 제대로 전투에 임하지도 못할 것이다.

“도와줘!”

“도와줘! 살려주면 우리도 도울게!”

놈들의 입에서 일본어로 추정되는 말이 튀어나왔다. 곧이어 각자 하나씩 차고 있던 자동 통역기에 의해 한국말로 즉각 통역되여 전달되었다.

“아시아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지!”

“도와줘 제발!”

아무래도 한국 팀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닌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일본은 헌터 약소국 중 하나였다. 이번 대회 본선에 참여한 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대진운이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고 또 그 경기장의 상성이 기가 막히게 잘 따라주었기에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사실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별한 약초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전력이 엄청나게 강하지는 않았다.

한국, 일본 모두 대침공 이전에 강력한 경제 국가였던 것과는 다르게 헌터 변방이었다.

“저 뒤에 누가 또 있다!”

“한국 같은데?”

“같이 잡아!”

그리고 그 뒤에서 따라오는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온전한 길드가 보였다. 러시아 길드였다.

러시아는 헌터들이 강하기로 유명한 국가 중 하나였으며 이번에 참여한 블라디미르 길드는 러시아 길드 중 최고의 길드였다.

길드장이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였기에 이번 대회 참여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원숭이가 셋이서 아홉이 된 거뿐이야! 그냥 다 죽여!”

러시아 팀의 리더 시리우스가 소리쳤다. 수적 열세에도 자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약하기로 유명한 동양의 두 나라였다.

시리우스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강력한 헌터였다. 최근에 경지에 올라선 시리우스는 자신감이 넘쳤다.

심지어 한쪽은 셋으로 죽어라 도망치고 있는 형국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사흘을 굶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얕보일 만했다.

“어떡할까요?”

“합류한다. 우리 전력으로 러시아와 맞붙는 건 무리다. 일본을 이용한다.”

“네!”

빠른 판단이 이루어졌다. 만전의 상태였어도 러시아와 싸우는 건 힘들었다.

허나, 지금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사흘을 굶었고 독안개를 막아내기 위해 많은 기운을 썼다.

거기에 서준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도 모두 소모된 상태였다. 독안개 속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괴수들을 끊임없이 만났고 그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모든 아티팩트가 소모되었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와 1대1로 붙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한국팀은 대형을 유지하면서 일본팀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무기를 내린 채 도와줄 것이라는 의지를 한 것을 보여주었다.

“고맙다!”

“이 은혜 꼭 갚겠다!”

일본팀은 곧바로 한국팀에 합류하여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십오 초의 시간이 흘렀다.

러시아팀이 한국 일본 연합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원숭이 둘이 손잡는다고 뭐 달라질 것 같아?”

“저기 저놈 봐! 아티팩트를 도배해놨는데?”

“일단 멈춰!”

러시아팀은 서준이 두르고 있는 아티팩트를 발견했다. 이미 모두 소진되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들이 이 사실을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전력의 차이가 아무리 크다 한들 이렇게 많은 아티팩트를 뚫고 들어가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러시아팀과 한국 일본 연합팀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마주 섰다.

서로의 호흡 소리조차 모두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반보, 단 반보만 접근해도 공격이 닿을만한 거리였다.

압도적인 기량의 러시아팀, 기량은 다소 떨어지지만 숫자가 많은 한국 일본팀이었다.

거기에 서준의 아티팩트가 균형을 맞춰주고 있었다.

“들어와! 들어와!”

일본팀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놈들을 도발했다. 놈들이 서준의 아티팩트를 보고 당황한 걸 눈치챈 듯했다.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으면 바보였다.

지친 연합팀에서는 최대한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 연합은 최대한 허세를 부리며 러시아팀을 위협했다.

서준이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손으로 쥐었다. 예전부터 사용해왔던 방어용 아티팩트였다.

“잠깐! 잠깐!”

“진정해!”

그 모습을 보고 러시아팀은 당황했다. 어떤 아티팩트인지, 사용할 수 있는지조차 알 수는 없었지만 아티팩트란 것이 그런 물건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균형을 깨트릴 수 있는 강력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그 물건을 여러 개 차고 있었고 호랑이들 역시 하나씩 차고 있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러시아팀도 신중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약팀 두 개를 잡자고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미국 독일 등의 강팀이 아직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끝까지 전투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한국과 일본 연합팀은 잠시 시간을 벌고 있을 뿐이었다.

“저거 다 허세야! 그냥 공격해!”

그렇게 일 초, 일 초 러시아팀에게는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던 도중 시리우스가 공격을 명했다. 이미 경지에 오를 대로 오른 시리우스였다. 그의 눈썰미는 서준의 아티팩트가 모두 소모되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곧바로 세 팀이 엉겨 전투가 시작되었다.

불꽃이 날아다니고 땅이 뒤집혔다. 칼날이 부딪히며 불똥이 튀겼고 호랑이들이 울었다.

서준은 그 가운데서 의지를 모으고 모았다. 이미 소진할 대로 다 소진한 기운을 조금이라도 모으기 위해 계속해서 의지를 모으고 또 모았다.

강력하게 응집된 의지는 몸속에 퍼져있는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머물며 쉬고 있던 기운도 끌어왔고 발가락 끝에 숨어있던 기운 역시 끌어올 수 있었다.

모아진 기운은 서준의 머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흩어져있던 기운들은 매우 작았지만 그것들이 모였을 때는 꽤 볼만했다.

그리고 곧바로 서준의 사고가 가속되며 주변의 모든 것들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본래 위험한 상황에 저절로 발동되었던 그 능력을 이제는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좋았어! 바로 그거야!

머릿속에서 황제가 소리쳤다. 기운을 다루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이 능력 역시 시험해봤지만 계속 실패했었다. 자의적인 발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것을 실전에 들어와서 성공할 수 있었다. 서준이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황제의 목소리는 느려지지 않고 똑바로 들렸다.

-타아앙!

윤희주의 코앞까지 왔던 시리우스의 검을 서준이 쳐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홀로 빠르게 움직이는 서준의 장도리는 매우 강력했다.

힘은 속력에 비례한다고 그랬다. 서준이 느끼기에는 매우 긴 시간이었지만 시리우스가 보는 세상에서 서준의 장도리가 휘둘러진 시간은 매우 찰나였다.

시리우스의 검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으허어억!”

시리우스의 검을 막아내기 위해서 주먹을 내지르던 윤희주의 공격이 막아낼 대상이 사라지자 그대로 쭉 밀려 나갔다.

그리고 그 주먹은 시리우스의 턱을 정확하게 찍어내렷다. 검을 막아내기 위해 질러낸 주먹이었다.

그만큼 단단하고 강력한 주먹이었다. 그것이 무방비 상태의 시리우스에게 그대로 꽂혔다.

아무리 강력한 헌터라도 급소를 공격당하면 쓰러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시리우스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나가떨어졌고 리더를 잃은 러시아팀은 곧 모두 제압되어 전투 불능상태가 되었다.

“후아!”

서준은 숨을 강하게 내쉬며 심호흡을 했다. 한 줌도 안 되는 기운들을 억지로 끌어모아 사용한 시간 가속이었다. 그만큼 무리가 컸다.

그리고 그 순간 서준의 사고속도가 다른 사람들과 맞춰지면서 느려졌던 시간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전투 불능상태가 된 러시아팀의 식별 팔찌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제 곧 주최 측에서 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헬기를 몰고 올 것이다.

이제 이놈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전 세계 생중계되는 경기에서 탈락 후에 공격할 멍청이는 없었다.

남은 건 어색하게 섞여버린 일본팀과의 정리였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이대로 꼴찌 했을 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투 중에 어느새 한 명이 더 탈락해 두 명만 남은 일본팀은 계속해서 감사 인사를 했다.

GOTY 개최 이후 처음으로 참여한 본선 경기였다. 꼴등을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이웃 나라끼리 도와야죠. 유럽 애들도 연합전선을 펼칠 게 뻔한데 우리가 싸워서 득이 될 게 뭐 있습니까?”

일본팀이 계속해서 감사 인사를 하던 중에 성해철이 말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난 GOTY를 복기해 봤을 때도 자주 있던 일이었다. 유럽팀은 유럽팀끼리 연합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덕분에 꼴찌는 면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러나 일본팀에게 중요한 건 그런 이해관계 따위가 아니었다. 꼴등은 면했다는 게 제일 중요했다.

아마 그들의 고향에서 TV를 보며 응원하던 일본 국민들도 지금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저희는 더 바라는 게 없습니다. 앞으로 남은 경기 탈락 때까지 한국팀을 돕겠습니다.”

“맞습니다. 어차피 둘밖에 남지 않아 더 뒷순위를 노리는 건 욕심입니다. 한국팀을 도우면서 일 초라도 더 살아남는 게 저희한테도 이득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둘로는 이 험난한 섬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들로서도 이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한국팀 입장에서도.

“좋아요, 마다할 이유가 없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총알받이가 두 명 생긴 것이다. 앞으로 전투 때 이들을 앞세워 좋은 포지션을 잡을 수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독안개 한가운데서 시작하셨나 보네요.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네, 사흘을 헤맸어요.”

“저런!”

일본팀은 다행히도 안전구역 근처에서 시작해 독안개를 금세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팀의 이야기를 듣더니 가방에서 식량과 식수를 꺼내 건네주었다.

“일단 안전한 장소로 이동 후에 이거라도 드세요. 저희가 구한 식량입니다.”

“식사 중에는 저희가 주위를 견제할 테니 걱정 말고 드세요.”

일본팀의 은혜 갚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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