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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70화 (70/150)

70화

화면 속의 남자는 진품명품에 나오는 진행자처럼 하얀 장갑을 낀 채 물건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사실 아티팩트란 것이 국보급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도 맞으니 저렇게 행동하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일반인 시선에서 보면 그랬다.

하지만 헌터들의 시선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녹이 슬지 않는 물건이다. 사람의 손길 좀 탄다고 흠집이 난다던가 훼손될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남자의 행동만큼 상품이 더욱 귀하게 여겨졌다.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저거 내 거야!

‘네 거라고?’

-내 거라고!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자칭 황제는 흥분해서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확실해?’

-확실해! 내가 쓰던 옥새야!

자세히 보니 드라마에서 보던 왕의 도장 모양과 비슷한 것 같았다. 화면 속에서 비친 물건인 데다가 그 크기가 워낙 작아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 같다.

-내 거야! 무조건 우승해서 저거 가져와!

‘꼭 필요한 거야? 저거 가져온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어차피 지금도 찢긴 영혼이기는 했지만 영혼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영혼 조각을 모두 모은다 해도 육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서준은 자칭 황제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네가 영혼을 찢겨보지 않아서 그래!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영혼 조각을 모으면 좀 괜찮아지는 거야?’

-당연하지! 나니까 견디는 거라고! 짐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정신줄을 놔버렸을 거라고!

이렇게 흥분하는 것을 보니 뭐가 있긴 있는 것 같다.

‘그래, 알겠어. 최대한 노력은 해볼게.’

-노력이 아니고 결과가 중요한 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딱 열 개의 길드를 뽑아 겨루는 대회였다.

창천 길드가 대표하는 한국은 헌터 변방국이라 불릴 정도로 이쪽 계통에서는 힘을 못 쓰는 나라였다.

미국, 브라질, 러시아 등 헌터들이 강하기로 유명한 나라들도 모두 참여했고 심지어 헌터 최강국이라 불리는 독일은 홈경기라는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무조건 우승해! 짐한테 배워놓고 이런 수준의 대회를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돼!

‘우승한다고 다가 아닌데…….’

어찌어찌 우승한다 해도 저 아티팩트를 서준이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엄연히 말하자면 창천 길드의 소유가 되었다. 한국 예선에서야 서준이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기에 우승 상품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힘들겠지만 최선은 다할게.’

이번 대회의 우승 상품을 받으려면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살이가 모두 생각한 대로 되겠는가?

-무조건! 무조건! 관심 종자처럼! 팍팍 튀란 말이야!

‘알겠어.’

이번 대회에서는 조금 튈 필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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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계획한 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준과 창천 길드의 길드장 윤희주, 전투조장 김소현, 특임대 최성원, 성해철, 김민석 여섯은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도망 다니고 있었다.

물조차도 마시지 못했다.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주최 측에서 설명했던 대로 그렇게 간단한 경기가 아니었다. 물, 식량, 무기 그 어떤 것도 들고 갈 수 있는 배틀로얄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모두 챙겼기에 다른 길드와의 전투, 괴수와의 전투만 신경 쓰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GOTY 위원회에서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식수를 구해야 합니다. 더 이상은 못 버텨요.”

“알고 있습니다. 정찰 보낸 호랑이들은 아직인가요?”

“아직입니다…….”

창천 길드의 팀원 모두 빈사 직전의 상태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사흘 내내 괴수에게 쫓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호랑이들의 체력은 아직 견딜만했다는 것이다. 서준은 식량과 식수를 찾기 위해 호랑이들을 정찰 보냈다.

“개새끼들…. 이런 건 말해줬어야지.”

“예상 못 한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후회는 나중 가서 하고 일단 이 상황부터 해결하자고요.”

경기 시작 직전 총 열 개의 참가팀은 주최 측이 정한 각각의 스타팅 포인트에 보내졌다.

물론 경기장으로 지정된 섬의 지형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시야를 가려놓은 것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가지고 있던 식량에 문제가 없었다.

창천 길드는 호랑이들을 앞세워 적을 찾아 나섰다. 먼저 공격을 받는 것보다 기습을 하는 게 월등히 유리했으니 택했던 전술이었다.

호랑이들이 있다면 브라질을 제외한 그 어느 팀보다 기습에 유리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적을 찾아 나섰을 때쯤 섬 전체에 독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도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배틀로얄 게임이나 만화 등에서 흔히 나오는 장치였다.

아티팩트의 효과인지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주최 측이 이 정도 장치를 해놓았을 거란 건 예상했어야 했다.

“씨발! 도대체 얼마나 가야 안전 구역이 나오는 건데!”

문제는 안전구역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GOTY 본선에 참가할 정도의 헌터들과 영수들은 독 안개를 차단 후 맑은 공기만 흡입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되었기에 생명의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독안개가 피는 순간 들고 있던 식량과 식수는 모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상해버렸다.

그리고 넓고 높게 퍼진 독안개는 시야를 어지럽혔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더라도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쪽 방향이 중심이 맡긴 한 거야?”

“진정해, 화낸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맞아요. 호랑이들이 곧 돌아올 거에요. 기다려봐요.”

유명한 배틀로얄 게임에서는 섬 외곽에서 섬의 중심으로 안전구역이 점점 좁혀진다. 이곳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것은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넓게 핀 독안개 때문에 그 중심을 파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해서 창천 길드는 사흘째 독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다.

-크릉크릉!

저 멀리서 크릉이가 달려왔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좋은 성과는 없는 듯했다.

-어흥! 어흥!

반대편에서 어흥이가 달려왔다. 그리고 역시 어흥이의 표정을 보니 좋은 성과는 없는 듯했다.

“남은 건 캬앙인가요?”

“네, 세 방향으로 나눠 보냈으니 그쪽에는 뭔가 있을 겁니다.”

“캬앙이가 지나간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죠.”

“네.”

캬앙이의 감지능력이라면 조금 이동한다고 해도 무리 없이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캬앙이의 뒤를 쫓아서 시간을 단축시키는 게 중요했다.

그만큼 이들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마실 것을 찾아야 했다. 조금 더 버티다가는 독안개를 막아내지 못하고 쓰러질 게 분명했다.

-크롸롸롸!

코뿔소의 모습을 한 괴수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그들 역시 독안개로 인해 먹이를 구하지 못했는지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괴수들은 서준의 일행들을 보자 흥분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먹이였을 것이다.

“방어대형으로!”

“방어대형!”

하지만 쉽사리 당해줄 창천 길드가 아니었다. 윤희주가 명했고 길드원들은 사전에 맞춰놓은 대로 방어대형을 짰다.

쿵쾅 소리를 내며 코뿔소가 거세게 달려들고 있었다. 지구의 코뿔소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개체였다.

며칠 굶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육중한 무게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창천 길드의 특수 임무대 소속 최성원이 방어막을 펼쳤다. 그의 각성 능력이었다.

-콰앙!

소리를 내며 두 마리의 코뿔소와 방어막이 충돌했다. 강력한 충돌에 방어막이 깨질 듯 금이 갔다.

그때 뒤에 서 있던 특임대 소속의 김민석이 최성원 등 뒤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방어막의 금이 메워지며 다시 단단해졌다.

-쿠웅!

소리를 내며 두 마리의 코뿔소가 튕겨 나갔다. 그리고 어흥이와 크릉이가 그대로 각자 한 마리씩 맡아 덮쳤다.

“둘씩 나눠 붙어요!”

“제가 백 선생님 쪽으로 붙을게요!”

“네!”

서준과 성해철이 어흥이 쪽으로 따라붙었고 윤희주와 김소현은 크릉이 쪽으로 따라붙었다.

거대한 코뿔소 괴수는 호랑이들이 1대1로 쓰러트리기에는 강한 적이었다.

서준은 장도리를 꺼내 들어 코뿔소의 턱을 올려쳤다.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놈의 턱이 올라가며 목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성해철이 놈의 목덜미를 스치듯 팔꿈치를 휘둘렀다. 그렇게 반 바퀴 반대쪽 팔꿈치까지 놈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르르……

놈의 입에서는 낮은 울음소리가 목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곧 쓰러지고 말았다.

성해철의 양쪽 팔꿈치에는 가느다랗고 새까만 칼날이 괴수의 피를 방울방울 흘리고 있었다.

두께 10㎝의 강철판도 베어버릴 수 있는 칼날이었다. 피부가 단단한 괴수라고는 하지만 목과 같은 약점이 노출된 이상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쿵!

소리와 함께 윤희주와 김소현이 상대하던 괴수 역시 쓰러졌다. 지칠 대로 지친 괴수가 두 명의 헌터와 크릉이를 감당하긴 힘들었다.

두 마리의 괴수를 처치했다. 그렇지만 이 괴수들을 먹을 수는 없었다. 괴수를 먹기에 찝찝하다던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사흘을 굶었다. 물도 마시지 못했다. 괴수라고 못 먹을 것도 없었다. 놈의 피라도 마셔 갈등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괴수 두 마리의 숨이 끊어지자마자 놈들의 몸은 부패했고 피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독안개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캬앙! 캬앙! 캬아앙!

그때 멀리서 캬앙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확신의 찬 울음소리였고 서준은 이를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캬앙입니다! 캬앙이가 발견한 거 같아요!”

“확실합니까?”

“네! 확실해요!”

썩은 동태눈깔처럼 풀려있던 모두의 눈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솔자였던 윤희주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를 살펴보고는 말했다.

“부상자 있습니까?”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동합니다!”

윤희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천 길드의 모든 헌터들과 서준 그리고 어흥이와 크릉이는 캬앙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무섭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상위의 헌터들의 흥분 섞인 발놀림은 매우 빨랐다. 모두들 굶주릴 만큼 굶주렸고 망설일 틈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캬앙이의 위치까지 단숨에 도달할 수 있었다.

“캬앙아! 잘했어!”

-캬앙! 캬앙!

캬앙이가 서 있는 곳은 정말 맑았다. 독안개가 끼지 않은 하늘은 푸르렀고 재잘재잘 흐르는 계곡물은 무엇보다 탐스럽게 느껴졌다.

심지어 캬앙이의 밑에는 사슴 한 마리가 목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었다.

캬앙이가 안전지대를 찾아냄과 동시에 사냥한 것이다.

“후아아…….”

그리고 모두가 안전지대에 들어왔다.

그동안 숨도 편히 쉬지 못했다. 맑은 공기 속으로 들어온 일행들은 곧이어 심호흡을 계속했다.

맑은 공기는 지금껏 먹어본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었다.

-어흥! 캬앙! 크릉!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군가 창천 길드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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