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아저씨 이것두 먹을래요! 이거 사주세요!”
“그래, 아저씨랑 같이 나눠 먹자.”
“네!”
서준은 노점에서 솜사탕 하나를 사 정신비에게 건네주었다. GOTY 본선도 예선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길드의 퍼포먼스 팀들이 화려한 공연을 했고 역시 노점을 깔고 특산품을 팔기도 했다.
그리고 GOTY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길드 배틀도 그대로였다. 물론 그 규모의 차이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GOTY 경기장에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 축제를 즐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독일에선 이런 게 인기구나.”
“저는 한국이 좋아요! 한국에 평생 살 거예요!”
차이점이 있다면 퍼포먼스를 하거나 특산품을 파는 길드는 모두 독일 현지 길드라는 점이었다.
GOTY KOREA에서는 참가 길드에서 퍼포먼스도 특산품도 출품했는데 본선에서는 달랐다.
창천 길드를 비롯한 각국의 대표 길드들은 배틀 참가자 자격으로 독일에 와 있었고 오직 배틀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현지의 길드가 모든 것을 일임했다.
해서 많은 국가들은 GOTY 본선을 개최하기 위해 엄청난 정치적 공세와 물량 공세를 쉬지 않았다.
GOTY는 현시점에서 가장 큰 행사였으며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발판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저기서 재밌는 거 해요! 저거 보러 가요!”
“그래.”
독일의 어느 길드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GOTY 본선 일정에 맞춰 일 년 내내 준비해온 공연이었다.
당연히 그 퀄리티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예선에서 보던 공연과는 차원이 달랐다.
“와아…….”
이러한 초인들의 퍼포먼스를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이었던 정신비는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럴 수밖에, 싸우라고 준 초능력을 뽐내기 위해서만 사용하니 화려할 수밖에 없었다.
-어흥! 캬앙! 크릉!
어릴 적 GOTY KOREA에서 이미 공연을 본 적 있는 호랑이들이었지만 새로운 공연에 금세 빠져들었다.
게다가 공연팀에 늑대 영수를 기르는 테이머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애들아 진정해!”
맹수 영수를 처음 본 호랑이들은 호승심이 생기는 듯 눈에 불을 켜고 무대를 노려보았다.
늑대 영수가 공연 중에 살짝 쪽은 듯은 모습을 보인 건 아마 착각이겠지…….
“재밌어요?”
“볼만하네요?”
“우리 길드가 훨씬 잘하는데. 한국에서 열렸으면 정말 전 세계가 뒤집혔을걸요?”
“그런가요?”
구경하고 있던 서준 옆으로 윤희주와 김소현을 비롯한 창천 길드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정말요? 저도 보고 싶어요!”
“한국 돌아가면 보여줄게.”
“꼭이요!”
“그래.”
그들 역시 GOTY의 참가자들이었지만 배틀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렇듯 GOTY의 첫날은 모두에게 축제였다. 주최 측도 배틀 참가자도 관람객들도 모두 다 하나 되어 즐길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축제였다.
물론 역시 전 세계 생중계가 되고 있었다. 현장에 직접 오지 못했더라도 TV, 인터넷 등을 통해 전 세계의 모두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
올림픽 때만 되면 지루한 마라톤이 전 세계 생중계되듯 GOTY가 개최되면 골목골목마다 설치된 카메라가 전국 생중계되었다.
직접 현장에 찾아오지 못한 팬들은 그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에 배틀 사전 공지가 있어요. 내일 있을 배틀의 개요와 상품을 발표할 거에요.”
“저도 참가하나요?”
“아뇨. 길드장들만 참여합니다. 하지만 역시 전국 생중계되니까 방에서 TV로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나중에 가서 다시 설명해줄 테지만 미리 알고 있는 게 좋겠죠.”
“알겠습니다. 시간 맞춰서 호텔로 돌아갈게요.”
드디어 내일이었다. 내일 오전부터 전 세계 상위 10 길드가 벌이는 GOTY 배틀 결승이 치러진다.
GOTY의 각국 예선을 통과한 길드들은 이후에도 치열한 예선을 계속해서 치러왔다.
창천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들은 엄청난 노력으로 10개 길드 안에 뽑힐 수 있었다. 헌터 변방국인 한국에서 뽑힐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 했다.
여기에는 서준이 발견한 초록 활력초 변종이 큰 활약을 했다. 고수들 사이에선 작은 차이가 그 승패를 갈랐는데 이 정도면 꽤 큰 차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얻게 된 본선 티켓 중 한 장을 서준이 갖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여보세요?”
호텔로 돌아온 서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형님! 형님! 저 세근입니다! 문안 인사 여쭙니다!>
오세근이었다. 서준이 국외로 피하자 이제는 전화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휴… 너는 질리지도 않냐? 어떻게 매일매일 이래?”
<동생이 형님한테 인사 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죠! 힘들다고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그래 무슨 일인데?”
이쯤이면 서준도 체념했다. 오세근은 애초에 막무가내에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성격이었다.
그게 지금 우연히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졌을 뿐이었다. 서준이 말린다고 안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서준에게 꽂혀있었다.
<제가 재단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재단?”
<네! 이왕 사람들 도우며 살 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거 나쁘지 않네. 잘했어.”
재단을 만들든 법인을 만들든 그냥 개인의 이름으로 하던 사실 상관없었다. 오세근 정도의 부자가 마음먹는다면 뭘 못하겠는가? 어차피 서준이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사람도 아니었다.
어쨌든 서준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진지하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오세근이 기특했다.
첫인상은 멍청하고 오만한 재벌 3세였는데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도 인기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재단 이름은 어떻게 했어?”
<당연하지 않습니까! 호랑이 재단으로 했습니다!>
“뭐? 호랑이 재단?”
<네! 형님 약국 이름 따서 호랑이 재단으로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놈이었다. 보통 본인의 이름을 넣거나 유명 그룹의 이름을 넣었을 텐데 그냥 서준만을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재벌들이 사회 공헌을 하는 이유는 99% 이미지 때문이었다. 노동을 착취하고 부를 쌓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함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정말 큰 뜻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으나 극히 일부였다.
오세근이 영악해서 멍청한 척 연기를 했다면 재단 이름을 이렇게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서준 말에 감명받아 힘을 쓰고 있었다.
“조금 부담스러운데?”
<아직 안 끝났는데 벌써 부담스러워하시면 안 되죠! 이제 시작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심지어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명예회장 자리에 형님 이름 적어놨습니다!>
“뭐?”
<한국 돌아오시면 출근하시죠.>
“바빠, 끊어.”
끔찍한 일이었다. 서준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오세근한테 코가 꿰어 강제로 출근하게 생겼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서준이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재단 출범 행사가 준비 중이었다. 많은 기자들이 몰릴 예정이었고 거기서 명예회장 서준의 이름이 공표될 예정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길드장님.”
“아! 형님 기분이 아주 좋아 보여. 이제부터 우리 형님도 이제 회장님 소리 듣는다는 거 아니냐! 캬! 내가 기분이 다 좋다!”
“역시 돈과 권력이 최고입니다!”
“그렇지! 그렇지!”
오세근과 김비서는 새벽부터 기분이 좋았다.
“좋아! 기분이다.”
오세근은 지갑에서 수표 뭉치를 꺼내 김비서에게 건넸다.
“퇴근하면서 콜라나 한잔 사 먹으라고!”
“감사합니다!”
김비서는 수표를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크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시각 독일의 호텔에선 서준이 심란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으로 배틀 사전 공지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이번 배틀은 열 개의 길드 간의 배틀로얄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배틀로얄,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인기와 재미는 식지 않는 대결형식이었다.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긴장감 하나만큼은 진짜였으니깐.
[규칙은 없습니다. 저희가 수배해놓은 섬에 10개의 길드를 랜덤하게 위치시킨 후 일주일간의 생존경쟁을 펼치시면 됩니다.]
[한 길드의 참가 인원은 여섯으로 제외하며 영수는 참가 인원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영수가 몇 마리든 테이머에 종속된 무기로 취급합니다.]
서준과 창천 길드에 유리한 규칙이었다. 서준에게는 영수가 세 마리나 있었다. 창천 길드의 실직적인 참가 인원이 아홉이나 된다는 소리였다.
보통 테이머들이 한 마리의 영수만 데리고 다닌다는 점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유리한 규칙이었다.
물론 브라질의 대표 길드처럼 길드원 전원이 테이머인 경우도 있었지만 그다음으로 유리한 입장인 건 변함없었다.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아티팩트를 가지고 참가하는 것은 허용됩니다. 식량 역시 마음껏 가지고 가셔도 됩니다.]
[대신 전투 중 약탈당한 아티팩트나 물품들은 경기가 끝나도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충격적인 대목이었다. 전투 중 아티팩트를 빼앗기면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참가 길드 중 일부는 이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아티팩트 약탈만을 목표로 한 팀도 생겨났다.
꼴찌를 하더라도 아티팩트 몇 개만 뺏어오기만 한다면 일등 부럽지 않은 결과였다.
그리고 이 규칙은 다시 말하면 영수 역시 빼앗아 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대회에서는 영수 역시 무기로 취급되었다.
물론 데려온다고 해서 말을 듣고 안 듣고는 별개의 문제지만…….
[섬에는 많은 괴수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인간이 살지 않고 버려졌던 섬이기에 게이트에서 나온 괴수들이 서로 먹고 먹히며 새로운 생태계를 이룬 섬입니다.]
[모두들 훌륭한 길드라는 걸 감안해서 괴수에게 죽고 사는 문제는 노터치하겠습니다.]
[단, 살인행위는 엄금합니다. 살인을 행한 길드원이 속한 길드는 즉시 실격 처리하며 초인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될 것을 공지합니다.]
헌터가 괴수 잡다 죽는 일이 하루 이틀 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는 말이었다.
단 인간끼리의 살해행위는 금지되었다. 이것 역시 당연한 규칙이었다. 살인이 허용된 스포츠 따위 TV 중계가 가능할 리 없었다.
사실상 무규칙이나 다름없는 대회였다. 서로 여섯씩 총 육십 명의 사람이 일주일간 생존경쟁을 하는 것 그게 전부인 대회였다.
[포기를 선언하고 싶은 길드는 시작 전 나눠주는 조명탄을 터트려 주십시오.]
[주최 측에서 전투 불능으로 판단한 참가자는 즉각 배제하겠습니다.]
[일주일 후 경기가 종료된 후 가장 많은 길드원이 살아남은 길드가 우승입니다.]
[동점자가 있다면 추후 연장전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많이 살아남아라. 그게 전부인 대회였다.
그리고 규칙이 간단한 만큼 시청자들은 더욱 치열하고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되리란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회 우승 상품을 공개하겠습니다.]
규칙 발표를 하던 GOTY 운영팀장은 잘 포장된 물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 어! 어!
그리고 그것을 본 자칭 황제는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왜 그래?’
-너! 꼭! 꼭! 우, 우승해라! 짐의 며, 명령이다!
자칭 황제는 말을 더듬을 정도로 흥분해서 서준에게 소리쳤다.
-꼭 우승하라고! 못 하면 죽여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