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훈련, 훈련, 훈련의 반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훈련하고 점심 먹고 훈련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훈련했다.
훈련하고 회복하고 다시 훈련하고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GOTY도 얼마 남지 않았고 재배지 섬에 게이트도 다시 연결해야 했고 훈련을 할 명분은 차고 넘쳤다.
GOTY 때까지는 창천 길드에서 보유하고 있는 약초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다시 공급을 해줘야 했다.
이후 신대륙 탐험도 해야 했기에 게이트 연결은 필수불가결했다. 서준은 자칭 황제라는 혹독한 스승님 밑에서 열심히 갈고닦았다.
옆에서 따라 하면 정신비가 서준도 모르는 새에 새로운 능력들을 각성한 것은 덤이었다.
‘휴우, 오늘은 이쯤 하자. 힘들어 죽겠네. 더 이상은 못하겠어.’
-그래, 그게 좋겠어. 이 정도면 충분해! 더 하면 과부하 온다! 그만해라!
‘그래도 이제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네.’
아직 목표했던 대로 두 개의 게이트를 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목표에 다가왔다는 것을 서준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맹목적으로 사용하던 능력이 이제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그게 짐 같은 훌륭한 스승 밑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니라! 짐을 만난 걸 천운으로 여기라고!
‘예이, 전하. 전하를 만난 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사옵니다. 전하.’
-비꼬지 말거라!
‘죽여주시옵소서!’
-하지 말라고!
‘알겠어, 알겠어. 또 삐지려고?’
-됐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서준은 속으로 엄청나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저 녀석에게 배운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의식 없이 사용하던 초능력을 이제는 의식하고 사용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저절로 발동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갔다면 이제는 서준이 조절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예전보다 발동 속도 역시 현저히 빨라졌다. 이전에는 게이트 하나를 열려면 일 분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그 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노력해 발동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면 전투 시에도 사용 가능할 것 같았다.
-말했다시피 영혼과 육체, 의지와 기운 이 네 가지 요소는 모두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어.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존재야.
황제의 말대로였다. 영혼, 육체, 의지 그리고 기운 이 네 가지 요소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를 구성하는 4대 요소였다.
이들은 모두 밀접하게 엮여서 서로 영향을 주었고 단 하나라도 결핍이 생기면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떼려야 뗄 수가 없다고?’
-그래! 이 정도 했으면 너도 느꼈을 텐데? 너의 의지가 강해질수록 다른 것들도 따라온다는 것을.
‘그렇긴 한데…. 너는 육체와 기운이 없잖아? 떼려야 뗄 수 없다며? 이건 모순 아니야?’
-그건 나 정도 되는 위인이니까 가능한 거다! 내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었을 거라고! 짐의 위대함에 감복하거라!
‘흐음… 잘 모르겠는데?’
-됐다! 신경 꺼라! 무지몽매한 네놈이 말해봐야 이해하겠느냐? 어차피 네가 그 경지에 오를 일은 없을 테니 신경 끄거라.
영혼, 육체, 의지, 기운 이 네 가지 요소가 서로 얽혀있다는 것은 서준 본인의 몸으로도 느끼고 있었다. 모두 황제의 수련 덕분이었다.
서준은 황제를 만난 후 의지의 수련만 거듭했다. 영혼과 육체의 훈련은 따로 하지 않았다.
기운을 다루기는 했지만 기운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기운을 모으기 위함이었고 그를 위해서 강한 의지만이 필요했다.
해서 의지를 강하게 기르는 수련만 했다.
하지만 지금 서준의 영혼, 육체 그리고 기운까지 모두 현저히 늘어났다. 네 요소가 서로 영향을 끼치며 얽혀있기에 한 가지 요소만 끌어올려도 나머지가 따라 올라온 것이다.
해서 서준은 황제의 훈련법에 따라 의지만을 길렀으나 다른 세 요소 역시 단련되었다.
기운의 밀도는 더욱 커졌고 육체는 알게 모르게 강해졌다. 그리고 영혼 역시 단단해지고 있었다.
모두 황제의 말대로였다.
-띠리링, 띠리링.
이렇게 매일 훈련의 훈련을 거듭하는 나날 중에도 서준이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형님! 형님! 저 세근이가 왔습니다! 세근이가 또 찾아왔어요!”
오세근이었다.
“왔냐? 이제 그만 좀 오지 그래?”
“형님을 두고 어찌 안 올 수 있나요! 매일같이 문안 인사드려야죠! 이게 동생 된 도리 아니겠습니까?”
“어휴…….”
오세근이 정말 매일같이 찾아왔다. 서준도 이제는 슬슬 귀찮아 죽으려 했다.
그렇다고 착한 짓 하는 애를 앞에 두고 싫은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문에 서준은 더욱 힘들었다.
“그래 어제는 또 무슨 짓을 벌였어?”
“형님이 시키신 일은 다 하고 있어요!”
“그래, 잘했다.”
그래도 시키는 건 다 해주었다. 해서 서준도 오세근을 쳐내지 않고 이렇게 받아주고 있다.
“그래서 어떻든?”
“정말 참혹했습니다! 하지만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나요? 금세 해결될 거에요!”
역시 황금만능주의자다운 말이었다.
오세근은 지금 게이트 이재민들을 돕고 있었다. 게이트와 관련된, 괴수가 나오든 게이트에 침식이 되었든 관련된 모든 피해를 입은 자들을 게이트 이재민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중에는 정말 집도 절도 다 잃고 모여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알면서도 돕지 못했던 자들이었다. 서준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깐.
하지만 유명 그룹의 막대한 돈이 투입되니 못 할 것도 없었다.
“덕분에 할아버지한테 칭찬도 받았어요! 할아버지가 아주 좋아하시던데요?”
“그거 잘됐네, 그럼 할아버지한테 돈 좀 더 팍팍 쓰라고 바람 넣어봐.”
“제가 그렇게 안 해도 할아버지가 짱짱하게 밀어주시고 계신답니다.”
오세근의 할아버지이자 유명 그룹의 총수 오성식의 최근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철없던 손주가 드디어 철이 들은 것이다. 오성식은 손주의 기특한 행동을 보고 감동을 받아 막대한 지원을 했다.
유명 그룹의 이미지가 개선되는 것은 덤이었다.
“역시! 집에만 있다가 각성하고 사회에 나오니까 세상은 제가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래?”
“네!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돈의 힘이 훨씬 더 강했습니다! 돈으로는 정말 안 되는 게 없어요!”
이쯤 되면 일부로 이러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세근은 진심이었다.
[재벌로서 사회 지도층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단지 손주에게 좋은 가르침을 내려준 백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올리고 꼭 직접 한번 찾아뵙고 싶군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오성식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서준의 언급까지 했다.
덕분에 또 한 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서준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서준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준의 주가는 날이갈수록 높아졌고 이미지는 거의 성인군자 수준으로 좋아졌다.
그렇게 훈련의 훈련을 반복하였고, 매일같이 오세근을 만났다.
오세근은 서준이 내려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서준은 그런 세근을 보면서 오히려 서준이 마음을 다졌다.
막무가내이긴 했지만 선을 행하는 오세근의 행동이 서준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GOTY가 다가왔다.
인천공항, 이제는 아무나 올 수 없게 된 곳이다. 정확히는 올 일이 없게 된 곳이었다.
특히 초인들에게는 그랬다.
국가는 보증되지 않은 초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초인들의 소속 국가 역시 그들을 함부로 공증하지 않았다.
해외여행이란 것은 초인들에게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물론 일반인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었다. 자유롭게 다니던 하늘은 비행 가능한 괴수들에게 빼앗긴 지 오래였다.
비행에는 비행 괴수를 막아내기 위한 헌터들이 필요했고 그만큼 비행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이제 비행은 정말로 특권층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백 선생님 신발 벗고 타는 거 아시죠?”
“진짜요?”
그리고 서준은 드디어 생에 처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신발을 벗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침공 전에도 수없이 들었던 농담이었다. 속을 리가 없다.
-어흥! 어흥!
-캬아아앙!
-크르릉!
서준이 처음이듯이 호랑이들 역시 처음이었다.
이 비행기는 GOTY 측에서 창천 길드를 위해 마련해준 전세기였다. 당연히 호랑이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아저씨 저 무서워요. 갑자기 추락하면 어떡해요? 번개 맞으면 어떡해요?”
“괜찮아, 아저씨가 지켜줄게.”
“네! 아저씨만 믿을게요!”
그리고 창천 길드의 배려로 정신비도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남의 돈으로 여행하는 게 제일 좋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다. 더불어서 호랑이들 역시 난리가 났다.
인간보다 몇 배는 월등한 감각을 지닌 아이들이었다. 심지어 각성하며 영수가 된 아이들이었다.
이런 느낌이 낯설 수밖에 없었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괜찮아, 괜찮아. 이제 곧 안정될 거야.”
서준이 호랑이들을 안심시켰다. 궤도에 오르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었다. 물론 호랑이들이 느끼기엔 낯설겠지만 위험한 건 아니었다.
서준은 그를 설명하면서 호랑이들을 안심시켰다.
“어흥이 너어! 겁쟁이였구나?”
옆에 앉아있던 정신비도 거들었다. 그녀 역시 첫 비행이었지만 의젓하게 잘 견뎌주었고 오히려 호랑이들을 안심시켰다.
-어흥!
정신비가 놀리자 어흥이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짖었다.
놀란 호랑이들이 날뛰며 소리 지르자 놀라 기겁하던 승무원들도 얌전히 있는 호랑이들을 보며 조금은 안심한 듯 보였다.
사실 이륙 전부터 호랑이들을 보며 겁을 먹었었다. 안전하다며 최대한 안심시키긴 했다지만 호랑이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건 본능이었고 어쩔 수 없었다.
즐거운 비행이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것도 이루었다. 이륙 후 창문을 열어 대한민국을 한눈에 넣었다.
물론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내식 역시 맛있었다. 기내식은 별로 맛이 없다고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세기라 뭐가 다르긴 한가 보다.
정말로 맛있고 정말로 즐거운 식사였다.
독일까지의 열두 시간의 즐거운 비행은 이렇게 즐겁게 끝이 났다. 시차를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웠었는데도 너무 설레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비행 내내 피곤하지만 뜬눈으로 즐거운 상상을 하며 독일에 도착했다.
“그럼 모두 짐 풀고 1층 로비에서 모입시다. 첫날이니까 식사는 다 같이 하죠.”
“네.”
호텔 로비에서 윤희주가 길드원들을 모아놓고 얘기했다.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하면서 주의할 점을 말해주었다.
“우리 모두 초인이기 때문에 일반 여행객처럼 행동하면 안 됩니다. 국가에서 믿고 보증해준 만큼 우리 역시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합니다.”
지루한 설교였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윤희주는 책임자였기 때문에 우리를 통제할 의무가 있었다.
만약 사고라도 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윤희주가 지게 될 터였으니.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GOTY 본선이 개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