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유명 그룹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연일 상한가를 계속 치고 있었다.
특별한 이슈가 있던 것은 아니다. 신제품을 발매했다든가 새로운 기술을 발견했다든가 한 것이 아니다.
단지 오세근 덕분이었다. 오세근이 벌인 기행 때문이었다.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명 그룹의 후계자 오세근이 각성한 후 유명 길드를 창설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재벌이 각성을 했으니 할 일이야 뻔하죠.>
<하지만 그 후 행보가 매우 놀랍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시골의 게이트부터 비싼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도심의 게이트까지 모두 무상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뉴스 화면은 유명 길드가 처리한 게이트가 있던 지역들을 순차적으로 비춰주었다.
별다른 피해 없이 딱 괴수들만을 처치해 깔끔한 거리의 풍경들이 비쳤다. 카메라의 시점이 계속해서 바뀌는데도 끝없이 이어졌다.
그만큼 많은 게이트를 처리한 것이다.
“유명 길드가 정말 최곱니다! 이년 전에도 우리 마을에 게이트가 열렸었는데 정말…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았거든요.”
“맞아요!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 이렇게 유명 길드가 와서 도와주니 정말 좋습니다. 유명 길드 만세입니다!”
허리가 굽어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할아버지들이었다. 그러나 유명 길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니 허리를 활짝 펴며 만세를 불렀다.
아마도 방금 한 행동 때문에 오늘 집에 돌아가서 허리 때문에 꽤 고생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만큼 유명 길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컸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시골, 길드도 정부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장소의 평화를 오세근을 필두로 한 유명 길드가 지켜주었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에 큰 감명을 주었다.
“아!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야죠!”
“이 모든 게 오세근 길드장님의 할아버지이자 유명 그룹 오너이신 오성식 회장님의 가르침을 따르신 건가요?”
“할아버지요? 할아버지도 훌륭하신 분인데 이건 다른 분한테 배웠어요.”
“그렇습니까? 혹시 누군지 가르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세근을 취재하는 아침방송 리포터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물었다.
그는 시골 마을을 취재하러 갔다가 어젯밤 게이트 방위 임무를 마친 후 하룻밤 묶은 오세근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고 운 좋게 취재를 할 수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이슈의 중심인 오세근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꼭 살리겠다고 마음먹으며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서준이 형님에게 배웠습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에요. 이 모든 게 그분 가르침 덕분입니다.”
“서준이 형님이요? 그분이 누구신가요? 시청자분들도 알 수 있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오세근이 한번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호랑이 약국의 백서준 형님이요! 왜 얼마 전에 GOTY에 호랑이 끌고 나오신 형님 있잖아요!”
“아! 창천 길드의 백서준씨 말씀하시는 거군요!”
다음 날 아침 이 인터뷰는 TV를 타고 흘러갔고 서준은 다시 한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난 예전부터 알아봤다니까? GOTY 때도 완전 멋졌자농 ㅋㅋㅋㅋㅋㅋ
-테러 때도 약초 기부했다며?
-ㅇㅇ 그게 수억 원어치 된다고 함
-와 멋지다 진짜
인터넷 커뮤니티도 온통 서준의 이야기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테러 이후 잠시간 잠잠했었는데 오세근으로 인해 다시 서준의 이야기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훈련에 집중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끊은 서준은 이 사실을 모른 채 혹독한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좋아! 바로 그거야!
그리고 훈련의 성과 역시 나쁘지 않았다. 정신비와 비교했을 때는 초라해 보였지만 그건 정신비가 워낙 뛰어났을 뿐이고 서준의 재능 역시 상급 재능에 속했다.
-근데 네 몸속에 그건 뭐냐? 뭐가 있는 거 같은데?
‘뭔 소리야?’
-네 기운 증폭시켜주는 뭔가가 있는 거 같은데?
황제 놈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서준이 기운을 다스리려 할 때마다 몸속에 장치된 무언가가 기운을 압축시키고 증폭시켜주었다.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기운의 제어가 힘들었다.
하지만 서준은 재능으로 극복해냈고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자 그 장치는 서준이 기운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남들이 100의 힘을 사용해야 가능한 것을 서준은 10 정도의 힘만을 사용해도 가능했고 더 적은 기운을 사용하는 만큼 더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했다.
‘설마?’
-왜 뭔지 알겠어? 뭔데? 말해 봐.
서준의 머릿속에 갑작스레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냥 힘이 강해졌구나 정도로 끝을 냈는데 그게 끝이 아닌 듯싶었다.
‘무슨 열매를 한 번 먹은 적이 있거든?’
-뭐 영약이라도 먹은 거야?
‘비슷한 거 같아. 정확한 정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보여줄게. 섬에 가면 보여줄 수 있어.’
-그래.
능력을 발달시켜 게이트를 여러 개 열 수 있게 되면 보여줄 수 있을 터였다. 그때 가면 아직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나무의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있겠지.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더 이상은 몸에 무리가 가서 안 돼.
‘그래, 앞으로 얼마나 더 하면 가능할까?’
-얼마 안 남았어. 짐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알겠어.’
서준의 훈련 성과가 좋자 자칭 황제 역시 많이 누그러졌다. 영혼이 조각나서 뱀의 머리에나 씌워져 있던 처지었다. 심심했던 찰나에 서준이 발견해주어 즐거운 일이 많아졌다.
거기에 훌륭한 제자가 생겼으니 여간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띠리링, 띠리링.
그리고 그때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아! 길드장님 어서 오세요!”
“언니! 언니! 오랜만에요!”
윤희주였다. 오랜만에 윤희주를 본 정신비는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뛰쳐나가 윤희주에게 덥석 안겼다.
윤희주는 그런 정신비를 받아주면서도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길드장님 표정이 많이 안 좋으세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
“후우…. 네, 사실 그 일 때문에 찾아왔어요.”
윤희주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마음고생이 꽤 심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인데요?”
서준은 윤희주에게 호랑이차를 건네주며 말했다.
호랑이 약국의 스테디셀러였다. 언제나 사선을 넘나드는 헌터에게 이보다 좋은 약은 없었다.
헌터들은 알게 모르게 호랑이차를 구해 마셨다.
“요즘 들어 길드원들을 좀 빡세게 굴렸거든요.”
윤희주는 호랑이차를 한 모금 호로록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유명 길드에서 길드원들을 자꾸 빼가려 하니까…. 그거 막아보려고 그런 거거든요.”
“저런…. 안 그러셔도 됐을 텐데. 이제 다른 일 하느라 바빠 보이던데요?”
“휴우…….”
윤희주도 요즘 들어 오세근이 헌터들을 빼 오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게요. 이미 늦었죠. 뭐.”
“그래서요? 어떻게 됐는데요?”
“그러다 보니 일이 터졌죠. 애들 불만은 쌓일 대로 쌓였지. 거기에 힘들지…. 그러다가 대규모 게이트 방위 임무를 하나 따냈습니다.”
윤희주는 남은 호랑이차를 바닥까지 모두 마신 후 다시 말했다.
“애들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어요. 차라리 쉬게 해줬어야 했는데…. 욕심이 과했죠.”
“설마 죽었습니까?”
게이트 관련 임무 중 사고가 터지면 헌터들이 죽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물론 창천 길드같이 정돈이 잘 된 길드의 경우는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전력 파악이 정확했기 때문에 어떤 위협이 있을지 모르는 게이트 침투 임무가 아닌 이상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뇨, 죽은 사람은 없었어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크게 다친 애들이 너무 많아요.”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애초에 창천 길드 정도 되는 길드에서 방위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자가 나는 경우는 매우 큰 사고였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미 언론에 대서특필됐을 것이다.
“죽지만 않았다면 치료하면 그만 아닌가요? 헌터들이 다치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혹시 약초가 부족하세요?”
헌터들이 다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있는 일이었다. 길드의 고민거리라고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약초가 부족하다든가 해서 치료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서준은 고민하며 말했다.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아 재배지 섬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물론 약초의 여유분이 있긴 했지만 서준이 사용할 비상용이었다.
남에게 줄 처지가 아니었다.
“아뇨, 저희도 약초 관리는 철저히 해서 여유분은 남아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죠?”
“애들 마음이 많이 심란한가 봐요. 당분간은 못 뛰겠다고 휴가 요청한 대원들이 많아요.”
목숨 걸고 하는 일이었다. 돈을 원했다면 말했다시피 진작에 유명 길드로 향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믿지 못한 채 강행군을 지속했다.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믿음에 배신받고 상처받은 길드원들은 이런 식으로 시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이참에 휴가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요?”
“그런 거라면 저희도 잠시 쉴 수 있고 좋죠.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윤희주는 호랑이차를 한잔 리필한 후 다시 호로록 마셨다.
“GOTY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휴가 신청한 대원들 중에 핵심 멤버들도 몇 있거든요. 사실 대체가 불가능해요.”
“그 말씀은 혹시?”
“네, 정말 염치없는 말씀이지만 한 번만 도와주세요.”
올 것이 왔다.
“흐음…. 제가 도와드린다 해도 이전처럼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서준 역시 따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훈련이라면 지금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것도 더 좋은 방법으로.
창천 길드에서 훈련할 이유가 없었다.
“그 부분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필요한 건 호랑이들이에요. 아마 따로 훈련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냥 본선 때만 맞춰서 합류해주시면 돼요.”
서준은 고민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기회였다. GOTY라는 것이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서준에게 큰 경험이 되었다.
지난 GOTY KOREA에 참석한 것도 서준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GOTY가 독일에서 열렸다. 그 점이 서준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좋아요. 저도 해외여행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고민하던 서준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윤희주는 떨리는 손으로 잡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침공 이전 불행한 삶을 살았던 서준은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약사가 되어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을 때도 일하느라 바빠 국외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대침공 이후 해외 출국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특히 초인의 경우 더욱 어려웠다.
현대무기가 사라진 세상이었다. 초인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손쉽게 테러를 벌일 수 있는 세상이었다.
타국의 헌터가 자국을 밟는 것은 어떤 정부라도 싫어하는 일이었고 확실한 보증이 없으면 입국을 허용해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준이 해외로 나가는 방법은 사실상 GOTY 말고는 없었다.
윤희주가 돌아간 후 서준은 인터넷으로 여행 가방을 비롯한 여행용품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오! 국외로 나가는 것이냐!
‘그래, 너 비행기 타봤어?’
-그게 무엇이냐!
‘몰라, 나도 안 타봤어!’
서준과 황제 그리고 정신비 모두 비행기는 처음이었다. 물론 호랑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랑이 약국의 일원들은 모두 설레는 마음을 품으며 서둘러 GOTY가 개막하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