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오세근이 서준을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던 그 무렵이었다.
많은 길드들은 오세근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길드원들의 처우를 개선해주고 연봉을 올려주기도 해봤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애초에 오세근과 머니게임이 될 리가 없었다. 그의 뒤에는 유명 그룹이 있었다.
창천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지?”
“1조와 2조는 게이트 방위 임무 3조는 GOTY 대비 훈련 중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 파견을 보냈습니다.”
“좋아, 다들 한눈팔지 못하게 하자고. 한 달, 한 달만 버티면 될 거야. GOTY 시작하고 나서는 다른데 한눈팔 여유 없을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텨보자.”
“네.”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길드를 바쁘게 굴리고 있었다. 이미 몇몇 중요 인사들이 이적을 한 상황이라 더 이상은 길드에 피해가 컸다.
이런 치졸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막아야 했다.
심지어 3조는 GOTY에 참여하지 않는 예비조였다. 그럼에도 GOTY 대비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빡센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너무 거센 거 아닐까요? 이러다 큰일 나겠습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과한 훈련은 부상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대침공 이전의 스포츠 선수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헌터가 그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헌터들 역시 특별한 능력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똑같은 인간이었다. 능력 이상의 힘을 계속 쓰다 보면 과부하가 오고 탈이냐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창천 길드도 그 한계에 다가가고 있었다.
윤희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 역시 꽤 오랜 기간 동안 한 길드를 관리해왔고 정상급에 올려놓은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길드 관리 능력이 뛰어났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도 방법이 없었다. 압도적인 재력으로 찍어누르는 오세근에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과격한 방법 말고는 없었다.
“일정 끝날 때마다 확실하게 관리해줘. 힐러들 붙여서 몸 확실히 치료해주고 호랑이차 자주 마시게 해줘. 심리적인 불안감이라도 덜어줘야지.”
“네.”
그리고 그 균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창천 길드의 헌터들은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게이트를 많이 뛰는 만큼 돈은 더 벌 수 있었다. 인센티브는 확실하게 지급되고 있었으니깐.
하지만 돈을 원했더라면 진작에 유명 길드로 투신했을 것이다. 물론 그 급이 되지 않는 헌터들도 있었지만 창천 길드의 헌터들은 대부분 정예였고 이미 스카우트를 받은 상태였다.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명예였다. 윤희주는 그 부분을 간과했다.
“애들 불만 많지?”
“네, 슬슬 터질 것 같습니다.”
“에휴…. 힘드네 정말. 한 달만, 딱 한 달만 버텨보자고.”
“네. 저도 더 노력할게요. 길드장님 혼자 다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녀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서준과 이야기 하고 난 후 오세근은 더 이상 무리한 영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미 뿌려놓은 명함을 보고 연락을 해온다면 받아주기는 하겠지만 그 외에 오세근이 먼저 접근하는 경우는 이제 없었다.
“역시…. 형님 말씀이 다 맞았어. 그렇지 김비서?”
“네! 맞습니다. 더 이상은 관리하기도 힘들고 지금이 딱 적당합니다.”
“역시 김비서는 나랑 뜻이 통한다니까? 이래서 내가 김비서 좋아하잖아.”
“감사합니다! 저도 존경합니다! 길드장님!”
서준에게 큰 감명을 받은 오세근의 행보가 이전과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째로 오세근은 더 이상의 영입 활동을 그만두었다. 서준이 지적했던 대로 이미 길드를 굴리기에 충분할 만큼 인재들을 모았다.
여느 길드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신생 길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재원들을 모았다. 더 이상은 과욕이었다.
“김비서!”
“네! 길드장님!”
“지금부터 올라오는 게이트 경매 전부 0원 배팅 해!”
“네! 알겠습니다!”
길드의 구성을 대강 정리한 오세근은 곧장 게이트 방위 임무 경매에 나섰다. 본래 방위 임무란 등록된 길드들에게 순차적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게이트 방위 임무는 최저가 경매형식으로 변질되었다.
방위 임무를 끝마치고 나면 시체 처리비용과 포상금을 받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금액을 길드에서 결정하였다.
“길드장님! 전부 따냈습니다!”
“하하하! 잘했어! 잘했어! 역시 돈 앞에는 장사 없지!”
“맞습니다! 돈이 최고입니다!”
“그래 맞아! 돈이 최고야! 정말 짜릿하구만!”
정부는 포상 금액을 가장 적게 책정한 길드에게 게이트를 배정해주며 돈을 주었다. 결국 돈을 가장 적게 받는 길드가 방위 임무를 따내게 된 것이다.
길드는 헌터들의 연봉 및 인센티브 등의 활동비를 계산하며 적절한 포상금을 측정했고 그 금액을 게이트 관리부에 전달했다.
게이트 관리부는 그 금액들을 모두 확인한 후 가장 낮은 포상금을 원하는 길드에게 게이트 방위 임무를 주었다.
“길드장님!”
“왜?”
“주변 지역은 시간 맞는 대로 전부 배팅했습니다.”
“잘했어! 근데 왜!”
“지방 게이트들은 어떻게 할까요? 놀고 있는 게이트들이 많습니다! 완전 노다지 밭이에요!”
“당연히 해야지! 힘든 사람들은 모두 돕는 거랬어! 그러면 행복해진다고! 다 공짜로 해주자고!”
그러다 보니 지방에 있는 게이트의 경우는 인기가 적었다. 길드들은 지방 게이트에는 높은 포상금을 원했고 정부는 하는 수 없이 수준 낮은 길드들을 강제 배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편성된 길드의 실력이 형편없음은 두말할 것 없었다.
하지만 오세근에게는 돈이 많았다. 그것도 아주 많았다. 애초에 길드를 만든 것도 돈을 벌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개인의 취미 생활이었다.
오세근은 모든 게이트 방위에 무상으로 나섰다.
수도권에 있든 지방에 있든 상관없었다. 오세근은 틈나는 대로 모든 게이트 임무를 따내며 무상으로 게이트를 막아냈다.
어차피 헌터들의 월급은 모두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갔다. 포상금? 그런 건 필요 없다. 헌터들에게 주는 월급 따위 유명 그룹에게는 푼돈이었다.
중동의 재벌이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듯 오세근 역시 단지 취미로 헌터 길드를 운영할 뿐이었다.
헌터들 역시 길드에서 포상금을 얼마를 받든 관심 없었다. 어차피 통장에 꽂히는 돈은 그런 것과는 관련 없이 오세근이 알아서 잘 챙겨주었다.
헌터들은 늘어난 연봉에 행복해하며 게이트가 열리는 족족 처리하러 다녔다.
“길드장님 우선 편성된 전투조들을 나눠서 각각의 게이트로 뿌리겠습니다.”
“그래! 역시 김비서가 최고야! 아니지! 우리 할아버지랑 서준이 형님 다음으로 최고야!”
“맞습니다! 저는 세 번째도 좋습니다!”
오세근은 김비서의 말을 들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지갑에서 수표 뭉치를 두둑이 꺼냈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통닭이나 사 먹으라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활약이 계속되자 점점 오세근의 활약이 민간에도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집중!
하지만 아직 서준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 서준은 바깥 세상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서준은 자칭 황제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아니 몸속에서 날뛰는 기운도 갈무리 못 하면서 어떻게 신비의 힘을 사용하는 거야?
‘그냥 되는데 어떡하라고!’
-닥쳐! 집중해!
서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속의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몸속을 떠다니는 이질적인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느끼고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기운이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정해진 통로가 있었고 그 흐름에 따라 움직였으며 능력이 발동되었을 뿐이다.
이 기운을 조금 잘 제어하는 자들이 좀 더 능력을 활용할 수 있을 뿐 그게 다였다.
-일단 하나로 모아! 그렇게 퍼트려놓고 뭘 할 수 있겠어! 네 의지대로 통제하라고!
‘안 되는데? 말로만 하지 말고 방법을 알려줘야지!’
-집중하라고! 집중! 의지가 중요한 거야!
‘영혼, 육체, 의지, 기운이라고 했지?’
-그래! 넷 모두 한 세트야! 그중에서도 기운은 네 의지에 반응한다!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좋아! 의지를 모아!
서준은 눈을 감고 몸속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의지라는 것이 마음 먹는다고 모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해서 재능이 중요했다. 그리고 서준은 그 재능이 모자라지 않았다. 충분하다 못해 사실 넘치는 정도였다.
의지를 모으고 모으다 보니 외부의 자극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외부의 자극은 모두 차단되자 신체 내부의 움직임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피부의 감각 세포들이 몸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기운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뭐해요? 저도 할래요!”
종일 호랑이들과 놀던 정신비는 질리기 시작했는지 서준을 찾았다.
정신비가 옆에서 서준을 재잘재잘 불러보았지만 서준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만큼 집중에 집중을 쌓고 있었다.
“힝… 심심한데…….”
정신비는 심심했는지 서준 옆에 앉아서 서준의 자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재밌는 건가?”
가부좌를 틀었고 눈을 감았다.
“후! 하! 후! 하!”
그리고 서준처럼 깊게 심호흡을 시작했다.
-저 아이, 재능이 좋군!
서준의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칭 황제는 놀라고 말았다. 옆에서 서준이 하는 것만을 보고 따라 하는 것뿐이었는데도 그 습득력이 엄청났다.
오히려 서준이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자칭 황제가 보기에는 서준 역시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러나 정신비의 옆에 서니 그조차 초라하게 보였다.
-쯧쯧, 이놈 말고 저놈이 날 찾았어야 했거늘…….
서준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슬슬 배가 고픈지 서준 옆에서 그르렁댔다. 그러나 이미 외부의 자극을 모두 차단한 서준에게 들리지 않았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르릉! 크르릉!
호랑이들 역시 서준과 정신비 주위에 앉아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주인이 이상한 자세를 하고 있으니 한번 따라 해본 것이다.
-어흥? 캬앙? 크릉?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질리는지 눈을 뜨고 그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애초에 맹수인 호랑이들은 저런 훈련 따위 필요 없었다. 이들은 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어떻게 힘을 사용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어흥! 캬앙! 크릉!
해서 호랑이들은 서준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날 때부터 강한 힘을 가졌고 서준과 함께 지내면서 더욱 강한 힘을 가졌다.
훈련 같은 건 필요 없었다. 해서 서준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서준이 하는 행동은 믿었다.
그들에게 서준은 부모와 같은 존재였고 하늘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외부의 자극을 모두 차단한 채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서준 곁에 누웠다.
하품을 하며 자는듯한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서준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감각을 느슨하게 풀어놓았지만 넓게 펼쳐놓았다. 서준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사냥하리라 마음을 먹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