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약사 백선생-63화 (63/150)

63화

<유명 길드 들어올 사람 여기 여기 모여라!>

[나 유명그룹 후계자 오세근이다!

나도 이제 초인이 됐다! 나랑 같이 길드 할 사람 댓글 달아라!

돈 많이 줄 거니까 이쁘고 잘생긴 사람 다 모여라!

약골은 안 받아!

다들 연락해! 콜 미! 콜 미!]

초인몰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어디 초등학생이 쓴 것보다 못한 수준의 글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응은 그와 달랐다.

우선 글을 쓴 오세근이란 자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유명그룹이 대한민국에 끼치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대단했고 아직도 커가고 있었다.

거기에 그 후계자가 초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 성장세가 더욱 커질 것을 의미했다.

-충성충성! 연봉 얼마나 주나요?

-저도 한자리 예약해 봅니다.

-유명그룹이면 얘기가 달라지지 ㅋㅋㅋㅋㅋㅋ

곧이어 초인계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유명그룹의 오세근이 만들 유명 길드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초인들을 영입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기존 상위 길드에 있던 헌터들도 그 엄청난 계약조건에 혹해서 이적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만큼 파격적인 조건이었고 혹할 만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 길드들에게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각각의 길드들은 헌터들의 이탈을 단속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창천 길드 역시 다르지 않았다.

“길드장님! 제삼 전투조장이 유명 길드로 이적했습니다!”

“하아… 벌써? 아무리 그래도 전투조장씩이나 돼서 이렇게 말도 없이 가는 거야?”

비서의 말을 들은 윤희주의 표정이 굳었다. 세 번째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전투조장이었다. 창천 길드의 핵심 전력 중 하나였다. 창천 길드가 공들여 키우고 있던 유망주이기도 했다. 그랬던 자가 말도 없이 이적했다.

이대로 놔두다간 이탈자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조건이 뭐였는데?”

“연봉 두 배에 인센티브까지 더 붙었답니다.”

“하아… 두 배는 무린데.”

기존의 헌터길드와 재벌그룹은 가지고 있는 재력이 차원이 달랐다. 헌터들이 게이트 탐사를 통해 돈을 벌고 보상금까지 받는다고는 하지만 정말 많아야 수백 명으로 구성된 길드와 대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였다.

두 배는 매우 큰 차이였다. 이탈을 막겠다고 돈으로 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창천 길드 역시 백여 명 남짓한 길드였다. 서준과 손을 잡아 약초 산업을 하며 그 인지도를 키웠다고는 해도 그 수익에 기적적인 변화가 있던 것은 아니다.

헌터들에게 줄 수 있는 연봉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찌 되었건 올해 한국에서 최고의 길드로 뽑힌 길드는 창천 길드였다. 창천 길드의 사정이 이러할 지원에 다른 길드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돈에서도 밀리고 명예 역시 특별할 것이 없던 길드의 핵심 전력들이 이탈하여 유명 길드로 이적하는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되었다.

“오늘부터 스케줄 풀로 잡아, 스케줄 비는 시간 GOTY 핑계 대고 강제로 훈련 시켜.”

“네! 알겠습니다.”

“딴 데 한눈팔 시간 최대한 줄이란 말야.”

“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런 치졸한 일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돈 앞에 장사 없었고 그건 헌터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으니깐.

이렇게 한눈팔 시간을 없애버리는 치졸한 짓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윤희주는 늘어나는 고민에 한숨이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그 시간 서준은 황금빛으로 가득 찬 작은 방에 있었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조금 작은 방이었지만 그 내용물은 매우 충실했던 그곳에서 강렬한 빛의 무리 속에 있었다.

강력한 빛무리 속에 작은 왕관과 단검이 공중에 떠 있었다. 서준의 눈높이 정도에 떠 있던 두 물건은 서로 공명하듯 진동했다.

서준은 저도모르게 두 물건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왼손은 왕관으로 오른손은 단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잡았다.

-…려? 들려? 들리냐고! 대답해봐?

“뭐, 뭐야? 누구야?”

서준의 머릿속으로 이상한 음성이 들렸다. 귀를 통해 들어온 음성이 아닌 뇌를 직접 때리는 듯한 음성이었다.

-아, 아, 하나둘셋! 하나둘셋! 들리나 보네?

“누구야? 나와!”

그리고 그 모습을 정신비와 호랑이들이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아저씨? 누구랑 얘기해요?”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아무소리도 안들리는데요?”

정신비와 호랑이는 이 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아무래도 서준에게만 들리는 소리 같았다.

“당신 뭐야, 정체를 밝혀!”

“아저씨 왜 그래요?”

-크릉? 크릉?

딱 병신 되기 십상이었다. 서준은 머릿속에 들려오는 음성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이봐, 그렇게 입 밖으로 소리치지 않아도 돼! 하고 싶은 얘기를 머릿속으로 차분히 떠올려봐.

‘이, 이렇게?’

-그렇지!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음성은 서준을 가르치듯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당신 누구야?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는 거지?’

-네 양손에 있는 두 물건에 내 영혼이 담겨있기에 가능한 기적이지.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서준은 대강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준은 양손에 들려있는 왕관 모양을 한 아티팩트와 단검 모양의 아티팩트를 바라보았다.

서로 공진하며 빛을 내뿜던 두 아티팩트는 어느새 조용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얌전해졌다.

-그래, 그거. 거기에 내 영혼 조작들이 나누어져 담겨있거든.

‘흑마법사라도 되는거야? 영혼 조각을 나눈다니?’

-그런 저급한것이랑은 차원이 다르지.

서준은 소설책에서 보았던 내용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대침공전 재미있게 보았던 소설 기반의 영화에 이런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

영혼을 조각내 물건에 숨겨놓은 뒤 영생을 꿈꾸는 흑마법사의 이야기. 지금 눈앞에 있는 아티팩트들이 그런 물건들과 비슷해 보였다.

서준은 괜히 불길해졌다.

-걱정 마! 걱정 마! 그런 사악한 물건이 아니니까! 애초에 내가 나눈 것도 아니라니까?

‘그럼 이게 뭔데?’

서준은 불길한 물건이 아니라는 말에 일단 안심을 하며 두 물건을 챙겼다. 왕관은 주머니에 담아 넣었고 단검은 허리춤에 패용했다. 바지의 벨트 구멍에 적당히 찰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만큼 크기도 작고 무겁지 않았다.

“아저씨 괜찮은 거 맞아요?”

-크릉? 크릉?

“괜찮아, 아저씨가 잠깐 놀랐나 봐. 어흥이랑 놀고 있어.”

“네!”

서준은 놀라서 걱정하는 정신비를 안심시켰다. 크릉이는 계속해서 걱정되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이내 서준이 안심시키자 관심 없다는 듯 멀어져서 땅바닥에 턱을 괴고 누었다.

‘그래서 당신 뭐 하는 사람인데?’

-어허! 무엄하도다! 짐을 이렇게 막 대한 사람은 네놈이 처음이니라!

‘왜 갑자기 사극체야?’

서준의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짐짓 점잖은 말투를 하며 서준을 나무랐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짐은 애런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위대한 자밀 왕국의 황제! 어... 음... 내 이름이 뭐였지?

‘황제란 놈이 지 이름도 몰라?’

황제라고 주장하던 녀석은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기억에 문제가 있는 건지 모자란 놈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서준은 그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아티팩트에서 사람 말이 흘러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으니깐.

-어쩔 수 없다고!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나뉘었는데 기억이 온전할 리가 있냐!

‘여기 왕관이랑 단검 말고도 다른 곳에 네 영혼이 담겨있다는 말이지?’

-그래! 그 영혼만 모두 찾는다면! 내 모든 소원이든 이뤄주겠다!

‘니가?’

-그 표정은 무엇이냐? 못 믿겠다는 것이냐?

귀여웠다. 점잖은 말투를 하고는 있지만 그 목소리도 어린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서준에게는 그저 생떼를 부리는 아이와 같았다.

물론 영혼을 나눠서 숨겨놨다든가 하는 것 때문에 완전히 믿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영혼이 들어있던 장소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된 아티팩트였고, 그건 이놈이 심상치 않은 놈이라는 것을 증명할만한 증거가 되었다.

‘그래, 그래서 남은 영혼들은 어디에 있는데?’

-그건! 모른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하던 목소리는 다른 영혼들이 담긴 아티팩트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왜 몰라? 네가 숨겨놓은 거 아니었어?’

-으… 기억이… 잘…. 누군가 억지로 내 영혼을 나눠놓은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잘 안 나! 나도 몰라! 그만 물어봐!

‘황제라고 하지 않았나? 누가 감히 황제 영혼을 나눠서 물건에 넣어논다고?’

말문이 막힌 목소리는 한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는듯했다. 본인 스스로도 생각이 나질 않고 기억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그래, 계속해서 생각해봐. 나는 이제 집에 가련다.’

놈이 다시 말을 꺼내길 기다리던 서준은 어느덧 시간이 늦은 것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이제 집에 갈까?”

“네! 집에 가서 울랄라숑숑 봐야 해요!”

정신비가 즐겨보던 만화가 할 시간이었다. 정신비는 이 시간을 절대 놓치지 않고 꼭 텔레비전 앞에 붙어서 울랄라숑숑을 시청했다.

“그래, 돌아가자.”

정신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서준은 게이트를 다시 열었다.

블랙홀처럼 어둠을 품고 있는 게이트가 서준의 눈앞에서 개방되었다. 언제 보아도 신비한 광경이었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이 누구보다도 게이트를 먼저 넘어갔다. 이제 슬슬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은 것이다.

서준도 정신비의 손을 잡고 게이트를 넘어왔다.

-아! 기억났다!

게이트를 넘어 약국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게이트를 이동하며 무언가 깨달았는지 서준의 머릿속에 다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뭔데?’

-내 영혼이 담긴 조각들이 서로 가까워지면 알아본다 그랬어! 그놈들이 그랬어!

‘그놈들이 누군데?’

-그건 잘…….

서준은 왕관과 단검이 서로 만났을 때 밝은 빛을 내며 공중에 떠올라 진동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놈의 말대로 서로 가까워져 공명을 한 듯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왕관이 길을 알려준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

-응? 아마도 그럴걸? 가까이에 다른 영혼 조각이 있었으니 길을 안내한 거겠지.

왕관이 대륙을 향해 길을 밝혀준 것 역시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정확한 것은 내일 다시 게이트를 넘어가 실험해봐야 하겠지만 왕관이 가리키던 방향이 단검이었을 확률이 크다.

-어찌 됐든! 내일부터 열심히 내 영혼을 찾아! 그럼 내가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줄게!

‘능력은 있고?’

-영혼만 다 모이면 된다니까!

믿기는 조금 힘든 이야기였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신대륙의 탐사는 계속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정보 하나 없는 대륙을 무작정 뒤지는 것보다는 약간의 목표 정도를 갖고 임하는 것이 훨씬 재밌고 보람찰 것이다.

서준은 왕관과 단검을 책상 위에 잘 갈무리 해둔 채 다음 탐사를 위한 물품 정리를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