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덜컹!
소리와 함께 돌 문이 저절로 닫혔다. 놀란 서준이 힘껏 밀어봤지만 무거운 돌문은 꼼작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굳건히 닫힌 문은 그 자리에 그대로 박혀 미동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출구를 찾아봐야 할 듯했다.
햇빛 하나 통하지 않는 지하였다. 조금이나마 외부의 광원을 끌어오면 입구는 단단히 막혀버렸다.
서준과 정신비가 들고 있는 손전등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광원도 없었다. 밝게 빛나는 두 손전등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서준의 일행은 두 개의 빛줄기에 의지한 채 길을 따라나섰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외길이라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아저씨 무서워요…….”
“괜찮아 신비야. 아저씨랑 호랑이들이 지켜줄게.”
-어흥! 캬앙! 크릉!
정신비는 겁을 먹었는지 서준의 바지춤을 꽉 잡고 서준 옆에 붙어서 걸었다.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많이 힘든 상황임은 분명했다.
서준은 정신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정신비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마음을 다스렸다. 서준 역시 이 상황이 낯선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 역시 사포같이 거친 혓바닥으로 정신비의 손바닥을 핥아주며 정신비를 안심시켰다.
정신비는 한 손으로는 서준의 바지춤을 한 손으로는 크릉이의 어깨를 꽉 쥔 채 걸었다.
크릉이는 몸을 살짝 일으켜 세우며 정신비의 앞을 막아섰다. 무엇이 오더라도 지켜주겠다는 의지였다.
좁은 외길을 지나 조금은 더 넓어진 공간에 도착했다.
서준은 손전등으로 주위를 비춰보며 지형을 살펴보았다.
“아저씨 여기 누구 집이에요? 귀신 집이에요?”
손전등의 살짝 비친 공동은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 방처럼 보였다. 이상한 계단을 지나서 들어온 지하 공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서준이 방 안으로 한 발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방이 환해졌다.
놀란 서준이 주위를 살펴보니 천장에 박혀있는 이상한 광석에서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사람이 살던 것 같은데?”
“귀신이 아닐까요? 무서워요. 아저씨… 귀신이 나오면 어떡해요?”
정신비는 여전히 무서운지 서준의 다리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다.
서준은 다시금 그런 정신비를 안심시키며 방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서준의 품속에 있는 정신비의 몸은 얕게 떨고 있었다.
가구의 형태는 지구의 것과 흡사했다. 물론 전자제품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근대 문명 수준은 되어 보이는 가구들이 즐비했다.
침대나 책상 등의 형태는 지구의 것과 같았다.
다른점이 하나 있었다면.
‘크기는 좀 작은 것 같은데…. 어린아이가 살던 곳일까?’
성인이 사용하기에는 모든 가구들의 크기가 작았던 것이다.
침대도 책상도 모두 작았다.
-어흥!
어흥이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어흥이의 육중한 몸을 받은 작은 침대는 스프링이 출렁이는 소리를 내다가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왔다.
작은 침대였지만 어흥이를 훌륭하게 받아내었다. 상당히 질이 좋은 놈인 듯했다.
“어흥아, 가만히 있어. 괜히 사고 치지 말고!”
-어흥…
서준은 침대에서 솟아오른 먼지들을 손으로 밀쳐내며 어흥이를 혼냈다. 어흥이는 풀이 죽어 축 처진 채로 침대에 머리를 박고 낮게 그르렁댔다.
서준은 책상 위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훑어봤다.
‘꽤 오래 방치된 것 같기는 한데.’
먼지가 이미 두껍게 쌓이고 단단해졌다. 게다가 그 색도 많이 검은 것이 오래된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사람이 살았던 것은 상당히 오래전으로 보인다.
‘어쩌면 수십 년 방치되었을 수도…….’
서준이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인 직감으로는 그러했다.
이 지하실은 적어도 수십 년은 방치된 듯 보였다.
서준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책 한 권을 집었다. 표지가 매우 두껍고 그 재질이 부드러운 것이 보통의 가죽으로 만든 것은 아닌듯싶었다.
‘귀족 나리라도 살던 집인가?’
서준의 상식으로는 종이란 물건은 굉장히 귀한 취급을 받던 물건이었다. 책 역시 그랬다. 게다가 이렇게 좋은 재질의 가죽으로 양장 되어있는 책이 있다는 것은 이 집에 살던 사람이 꽤나 재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곳의 상식이 지구의 상식과는 전혀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생활양식이 비슷한 것으로 보았을 때 완전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숨어지내던 걸 수도 있겠어.’
지하에 살 이유가 없었다. 밖에 위험한 동물들이 사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좋은 책에다가 방 내부의 장식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상당한 재력을 가진 자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굳이 지하에 살고 있었다.
물론 인간과 다르게 햇빛을 받으면 안 되는 그런 특성이 있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무슨 추측을 하든 상상에 불과했다.
-스르륵.
서준이 책을 펼치자 스르륵 소리를 내며 책이 펼쳐졌고 그 속에 쌓여있던 먼지들이 피어올랐다.
“어디 보자…….”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먼지들을 일일이 쳐낸 서준은 책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다.
“음…….”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모르겠군.”
하지만 역시나 읽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서준이 생전 처음 본 문자로 쓰인 책이었으니깐, 한국인인 서준이 읽을 수 있을 리 없다.
‘문자도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거네.’
적어도 문자 정도는 발명된 세계였다. 물론 지금껏 보아온 가구들과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 집합체인 아티팩트의 경우를 보았을 때 당연한 거겠지만 이곳에 살던 지성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거의 확실시되었다.
그것도 아마 인간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을 것으로 서준은 예상했다.
물론 지금 예상해봐야 틀릴 확률이 더 높았지만 달리 좋은 수가 없었다.
서준은 책상의 서랍을 열어보았다. 기다란 책상 아래에는 총 세 개의 서랍이 있었다.
왼쪽 첫 번째 칸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가운데 있는 칸에는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었다.
‘별거 아니네.’
정말 잡동사니들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칸에는 밝게 빛나는 단검이 하나 들어있었다.
‘녹이 하나도 안 슬었네. 오래되지 않은 건가? 아니면 녹이 슬지 않는 물건인가?’
서랍 속에 있어 먼지는 별로 쌓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금속물건이 이렇게 오래 방치되어 있었는데 녹이 하나도 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주위의 흔적을 보았을 때 적어도 수십 년은 지난 것처럼 보였다. 이 물건만 최근에 놓였을 확률은 없다.
그렇다는 건 녹이 슬지 않는 재질의 광물로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아티팩트와 같은 종류인가?’
아티팩트의 경우도 그랬다. 지금껏 특별한 능력을 지닌 물건이라는 생각에 다른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재배지와 현실의 게이트의 시간 차이는 상당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얻어온 그 어떤 아티팩트도 녹이 슬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아티팩트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광물이 특별하든 아티팩트의 능력이 특별하든 녹이 슬지 않는 성질이 있다고 봐야 했다.
‘이거… 아티팩트네.’
그렇다면 이 물건도 아티팩트일 확률이 높았다.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칼집이나 손잡이도 그렇고 녹이 슬지 않았다는 것도 그랬다.
백중 구십구는 아티팩트였다.
서준은 단검을 칼집에서 단숨에 뽑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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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신대륙을 탐험하고 있을 무렵 대한민국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빨리요! 빨리! 할아버지! 빨리 길드 만들어주세요!”
대한민국 재계서열 3위에 빛나는 유명그룹 오성식의 유일한 손자 오세근이 각성한 것이다.
그동안 기업인들이 각성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있었다. 그러나 이런 거대 기업의 그것도 계승권을 가진 자가 각성한 경우는 없었다.
해서 재계와 각성자들의 관계는 살짝 복잡하게 엮여있었다.
힘을 가진 자들은 각성자들이었지만 금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재벌들이었으니깐.
“할아버지! 나 길드 갖고 싶어요! 빨리! 빨리!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오성식의 하나뿐인 손자 오세근이 각성함으로써 그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을 쥐락펴락하는 재벌가에서 직접 헌터 길드를 관리하려 든 것이다.
“할아버지! 우리 길드에 센 놈들만 넣어주세요! 약한 놈들은 다 필요 없어요! 힘 세고! 잘생기고! 이쁜 애들만 넣어주세요!”
물론 오세근에게 그런 것 따위 관심 없었다. 오세근은 화려한 것만을 쫓는 사람이었고 권력투쟁 그런 건 관심 없었다.
그저 강하고 화려한 헌터들이 자기 밑에 들어와서 떠받들어주기만을 원했다.
“그래, 알겠다. 우리 아가 위해서 이 할애비가 모든 다 해주마!”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어렵게 지킨 손주였다. 많은 자식들이 대침공때 죽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대침공은 지위 여부, 재산 정도를 가리지 않고 다 죽였다.
그 과정에서 단 두 명의 아들을 제외한 모든 혈육이 죽었다. 장성해 가업을 이끌 준비를 하던 손자들도 다 죽었다.
막내 오세근을 제외한 모든 손자들이 죽었다.
아들들도 이제 나이가 많아 새로운 자식을 낳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오성식은 그 날부터 당시 열네 살이던 오세근을 엄청나게 끼고 살았다. 오세근이 저렇게 철없이 굴어도 그의 눈에는 한없이 귀여운 막냇손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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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루에는 용 모양의 그림이 각인되어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정확히 무슨 광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황금빛으로 빛나는 칼자루에 각인된 황금용은 정말 멋졌다.
누가 조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인이 만들었음은 분명했다.
검집 역시 용이 조각되어 있었다. 각각 한 면에 한 마리씩 조각된 용은 서로 몸을 꼬아 가며 검 끝으로 향해가는 형태로 되어있었다.
‘이곳에도 용이 있나 보네?’
서양용, 즉 드래곤의 경우에는 있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드레이크나 와이번같은 아룡들이 이미 등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용의 경우는 아직 발견된 적 없었다. 하지만 이 단검에 조각되어 있다는 것은 비슷한 형태의 동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서준의 시선이 검 끝에 도달했다. 칼자루 끝에 매달려 있는 수실 역시 여간 화려한 게 아니었다.
‘이걸 뭐라고 부르더라? 검술? 수실? 무협지에서 봤던 거 같은데…….’
서준은 정확한 명칭은 몰랐지만 굉장히 화려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일곱 빛깔의 질긴 줄로 이뤄진 수실 역시 서준의 마음을 빼앗기에 아주 아름다웠다.
이 정도로 아름다운 물건이라면 본래의 주인이 보통 신분인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서준은 단검을 칼집에서 단숨에 뽑아내었다.
-스르릉!
하며 뽑힌 단검의 검 자루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검 자루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색의 빛이 좁은 방안을 모두 채워 넣었다.
방안을 퀴퀴하게 만들었던 먼지들은 모두 날아갔고 녹이 슬었던 가구들 역시 전부 새것처럼 단장되었다.
심지어 녹이 슬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핑핑 소리를 내던 침대의 스프링 역시 새것처럼 탄력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윽! 눈부셔요!”
-어흥! 캬앙! 크릉!
정신비와 호랑이들은 강렬한 빛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 눈을 감거나 눈을 가렸다.
하지만 그 빛은 서준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서준의 품속에 있던 왕관 모양의 작은 아티팩트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검과 왕관 모두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