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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61화 (61/150)

61화

지난 두 달간 서준은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새해를 맞이하여 아이들과 일출도 보러 갔다. 태백산 정상에 올라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함박눈 아래서 보는 새해 일출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새해 일출을 보며 한 살 더 먹은 정신비도 조금은 의젓해졌다.

목표했던 요트도 샀다. 이제 서준도 부자의 증표라는 요트를 갖게 되었다. 물론 돈 자랑을 하기 위해서 산 건 아니고 필요에 의해 구매했다.

이후에 요트 조종법 역시 열심히 배웠다.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이었지만 재미있는 것이 새로운 취미로 딱 맞은듯했다. 아마도 이 일이 끝나고 나더라도 계속해서 요트 조종을 할듯싶었다.

기본적인 항해지식도 배우고 낚시도 처음 해봤다.

앞으로 항해를 하며 바다를 나설 텐데 낚시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는 사이사이 아티팩트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끝나는 24시간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왕관 아티팩트도 사용해보았다.

그때마다 아티팩트는 일정한 곳을 가리켰다. 서준이 자리를 옮겨보아도 왕관이 가리키는 곳을 항상 같았다.

아무래도 저곳으로 가야 할 듯했다. 서준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서준이 해온 준비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배를 타고 다른 대륙을 찾아 나서게 되면 당분간 재배지 섬에 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해서 약초를 최대한 많이 수확해 창천 길드로 보내주었고 창천 길드에서 조제한 약품을 서준도 많이 챙겼다.

준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대비를 열심히 할수록 비상상황에 더욱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다.

창천 길드에는 휴가를 한 번 더 다녀온다고 말해두었다. 창천 길드도 GOTY 준비로 바빠 서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창천 길드도 약초 판매보다는 GOTY 준비가 우선이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이번에 건네준 약초가 많기에 창천 길드가 사용할 분량은 당분간 문제없었다.

혹시 거점을 완전히 옮기게 될 경우를 대비해 종자들도 챙겨두었다.

‘참 아쉽네. 게이트를 여러 군데 열 수 있으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될 텐데.’

아쉬운 일이었지만 현재 서준의 능력으로는 요원한 일이었다.

게이트를 포인트를 정해놓고 여러 군데 열 수 있게 된다면 모든 일이 편해졌을 텐데 할 수 없었다.

‘방법은 차차 찾아봐야지.’

하지만 못할 일은 없었다. 언젠가 능력을 발달시키다 보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 방법은 차차 찾아보면 될 일이었다.

지금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면 서준이 아니었다. 서준은 언제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준비를 끝마친 서준은 정신비와 호랑이들을 데리고 요트에 올랐다.

요트는 요란한 시동음을 내며 해안에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요트는 왕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따라 똑바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와아! 바다다!”

정신비는 처음 타는 배가 신기하기라도 한지 요트 위에 올라타서 쫄래쫄래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 크지 않은 요트였지만 어린 정신비가 놀기에는 충분한 넓이였다.

가끔씩 치는 파도에 요트가 흔들렸지만 정신비는 멀미도 하지 않는지 쉬지 않고 요트를 뱅글뱅글 돌며 놀았다.

여덟 살 인생에 힘든 일만 가득했다. 테러에 부모도 잃고 끔찍한 광경도 많이 보았다. 이제야 즐거운 일이 좀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서준은 정신비가 놀고 있는 모습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제일 신이 난 건 호랑이들이었다. 물론 요트 위는 호랑이들이 놀기에는 많이 좁았다.

호랑이들은 빠르게 달리는 요트 위에서 뛰어내려 헤엄을 치며 놀았다.

요트 옆에서 나란히 헤엄치며 수영 실력을 뽐내기도 했고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아 오기도 했다.

깊은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 처음일 텐데 겁도 먹지 않고 이렇게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서준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아! 기분 좋다!”

서준 역시 기분이 좋은지 갑판 위에 올라서서 크게 소리쳤다.

서준 역시 대침공 이전까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 이후에도 이래저래 바쁜 일이 많았다.

서준이라고 요트를 타볼 일이 살면서 뭐 얼마나 있었겠는가? 이번 일로 요트를 사고 조종 연습을 하기 시작했을 때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먼바다를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습 때도 이렇게 먼바다까지 나온 적은 없었다. 애초에 한국의 바다는 그리 깨끗하지도 않았고 바닷속 괴수들 문제도 있었기에 멀리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대양이 서준의 마음을 고양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호랑이처럼 뛰어내려 헤엄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호랑이들처럼 요트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었기에 포기했다.

대신 요번에 배운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당겨!”

-어흥! 어흥!

낚싯줄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그 반항이 너무 거세 서준 혼자서도 끌어올리기 힘든 수준이었다.

호랑이들까지 달려들어서야 겨우 끌어올릴 수 있었다.

“참치는… 아닌 것 같고… 잘 모르겠네?”

조리된 음식만 먹어봤지 직접 회를 뜨거나 해본 적은 없었다. 날것의 생선을 본다고 해도 뭔지 알 리 없었다.

심지어 지구의 생선도 아니었으니 그 생김새만으로는 그 종류를 알아낼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중간에 요트를 세워 낚시도 하고 잡은 물고기를 이용해서 밥도 해 먹고 매운탕도 해 먹고 다시 놀고 다시 운전하고 하면서 서준 일행의 요트는 서서히 목적지를 향해 다가갔다.

어차피 가는 방향은 정해져 있었고 아티팩트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조종간을 잡은 서준의 손놀림에는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어흥! 어흥!

해가 떨어질 무렵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을 구경하던 서준을 어흥이가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왜 그래? 어흥아?”

-어흥! 어흥!

어흥이의 성화에 못 이겨 어흥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흙색의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신대륙이었다.

“도착이구나! 얘들아! 일어나! 도착했어!”

다행이었다. 신대륙은 한나절 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가게 되면 곤란할 뻔했다.

게이트를 열어두어 시간 괴리를 방지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면 곤란할 뻔했다.

사실 약간의 타임워프 정도는 각오하며 출발했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조심히 내려! 물에 빠지지 말고! 밤이라 추워!”

“네!”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해변에 요트를 적당히 세워놓고 아이들을 조심히 하선시켰다. 요트가 떠내려가지 않게 잘 묶어둔 서준은 호랑이들을 앞세워 주위를 살폈다.

이미 해가 떨어졌고 별빛에만 의존하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서준은 커다란 손전등을 꺼내 정신비에게 하나, 그리고 본인이 하나 들어 주위를 밝혔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기척 감지 능력이 매우 뛰어난 호랑이들은 주위에 위험할 만한 생명체가 없다는 것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주위의 안전을 확보한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요트 여행도 즐겁기는 했지만 내내 흔들리는 배 위에 있었다. 오랜만에 단단한 지층을 밟게 되니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사륵! 사륵!

갑작스러운 부스럭 소리에 서준이 놀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휴, 놀랐네.”

뿔토끼였다. 이곳에서도 뿔토끼가 살고 있었다.

“와아! 토끼다!”

뿔토끼를 보고 신이 난 정신비는 토끼의 뒤꽁무니를 따라 뛰며 웃었다. 이미 재배지에서 뿔토끼를 접해본 정신비는 뿔토끼가 위험하지 않은 동물인 걸 잘 알고 있었다.

‘재배지 섬이랑 특별히 다를 건 없네.’

뿔토끼도 뛰어다녔다. 주위를 살펴보니 꿀닭도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이곳의 꿀닭 역시 상당히 멍청해 보였다. 자라난 풀들 역시 재배지 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 역시 섬인지 아니면 대륙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식생은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하긴 기후도 비슷한 것 같네.’

밤이라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재배지 섬이랑 기후 자체의 차이는 없어 보였다. 애초에 이동한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았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그때였다. 호랑이들이 갑자기 서준을 찾으며 울어댔다. 무언갈 발견한 듯싶었다.

“알겠어! 갈게! 신비야 가자!”

“네!”

소리를 들은 서준은 뿔토끼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놀고 있는 정신비를 챙겨 호랑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묘한 것을 발견했다. 재배지 섬에서는 본 적이 없었던 인공적인 지형이었다.

‘계단인가?’

계단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자연적인 지형지물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이것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절대 아니지…….’

서준은 왕관 모양의 아티팩트를 들어 올려 바라보았다. 섬세하고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절대로 자연적으로 이런 물건이 나올 수는 없다.

아주 고도의 세공 기술이 있어야만 이런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서 같은 모양의 물건을 만들어보려 해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세공 기술에 아주 자신이 있는 장인급은 데려와야지 가능할 일이었다. 기계로 뚝딱 만들어내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 같다.

누군가, 엄청난 기술을 가진 기술자가 이 왕관 모양의 아티팩트를 만들었고 재배지 섬에 놓고 간 것이 분명했다.

바실리스크와 아티팩트의 관계는 알지는 못했지만 어찌 되었건 자연적으로 생겨난 물건은 아니다.

‘지성체가 살고 있다.’

아주 정교한 왕관을 만들어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역시 단순히 땅을 파고 잘 다져서 만든 정도가 아니다.

단단한 기둥을 박아 세웠고 계단 역시 단단한 광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토목과 세공에 일가견이 있는 지성체가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우선은 지하에 뭐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어.’

아티팩트를 만드는 능력을 지닌 지성체였다. 엄청난 기술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재배지가 과거를 투영한다고는 하지만 이곳에서도 왕관 모양의 아티팩트가 있었다.

현시점에 적어도 이 정도의 기술은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고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야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 해야 할 것은 간단해졌다.

‘눈앞에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히 풀어나가자.’

서준은 손전등의 밝기를 최대로 올려서 계단 밑을 비추어 보았다.

‘일단 이곳부터 해결해야지.’

재배지 섬을 조금씩 정복해갔듯 이곳 신대륙도 하나씩 차근차근 정복해가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게이트 문제를 해결할 날이 오겠지.

서준은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그게 오늘일 필요는 없었다.

“애들아, 일단 돌아가자.”

“네!”

-어흥! 캬앙! 크릉!

이미 종일 게이트를 열어두느라 모든 힘을 다 쏟았다. 게다가 계속해서 배를 타고 오느라 기운도 없었다.

약국으로 돌아가 하루 푹 쉬고 오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모든 준비를 끝마친 서준과 일행들은 잘 조각된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에는 거대한 돌문이 있었다. 단순하게 힘으로 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 문을 여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쿠구구구궁!

서준이 다가가자 돌문이 저절로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문처럼 열려버렸다.

서준과 정신비 그리고 호랑이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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