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요번 게이트에서 꽤나 쓸만한 걸 주워왔다면서요?”
“쓸만한지 아닌지는 연구를 해봐야 알겠고…. 뭔가 기분 나쁘긴 한데 그래도 특이한 걸 하나 주워오긴 했습니다.”
일주일간의 재배지 탐사를 끝마친 서준은 창천 길드에 와있었다.
일주일간 휴가를 끝마친 후 수확한 약초들도 전달하면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고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휴가 복귀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창천 길드 소속은 아니었지만 서준은 저도 모르게 휴가를 끝마치자마자 창천 길드를 찾았다.
창천 길드에서도 당연스럽게 그런 서준을 받아들였다.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이었다.
“특이한 거요?”
“네. 괴수 뼈 하나를 얻어왔는데…. 좀 뭐랄까….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얻게 된 과정이 일반적인 상황이랑은 좀 다르거든요.”
“그래요?”
서준의 물음에 윤희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윤희주 역시 그날의 일이 아직도 의문스러웠다.
“분명 엄청 거대한 괴수였는데…. 갑자기 사라졌어요. 뼈만 남겨놓고……. 죽을 각오까지 했는데 참 허망하더군요.”
“허! 그래요? 현장에 있던 게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기하네요. 하여간 게이트 너머는 이해할 수가 없네요.”
연구원 하나가 윤희주와 서준을 안내하며 무언가를 가리켰다. 하얗고 엄청나게 기다란 물건이었다.
“이게 그때 얻은 뼈입니다. 엄청 크죠?”
“이야… 적어도 십 미터는 더 되겠는데요? 안 싸워서 다행이지. 전투 벌어졌으면 고생 꽤나 했을 거 같은데요?”
원래 괴수의 것이었던 기다란 뼈를 보며 서준은 감탄했다. 기다란 뼈 주위에는 여러 명의 연구원들이 달라붙어 뼈를 관찰하고 이상한 선들을 연결해 무언가를 측정하고 있었다.
아마 창천 길드만의 연구 기술이 있는 듯싶었다.
“원래는 더 컸어요. 몇 배는 더… 전투가 벌어졌다면 고생 좀 하는 거로 끝난 게 아니라 전멸까지 각오해야 할 정도였어요.”
“더 컸다는 게 무슨 소리죠?”
서준의 물음에 윤희주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라는걸.
“저도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작아졌어요.”
“갑자기요?”
“네. 놈에 입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도 갑자기 사라졌고, 피부도 서서히 옅어지더니 뼈만 남아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능력이라도 쓴 게 아닐까 했는데 뼈 크기도 점점 작아지고 부식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참…. 뭐가 뭔질 알 수 있어야지.”
“지금 연구 중이지만 아마도 그 원인을 알아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윤희주와 연구원은 서준에게 그날 있었던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주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더 이상의 정보는 없었는지 아쉬운 소리만 계속했다.
“뼈 형태를 보니까…. 뱀 비슷한 거였나 봐요?”
“맞아요. 뱀이었어요.”
“저도 뱀 한 마리 잡았는데.”
“네?”
“아, 아니에요.”
서준은 재배지 섬의 중심부에서 잡았던 뱀 모양의 괴수를 떠올리며 말했다.
참으로 힘든 전투였다. 호랑이들과 아티팩트 그리고 정신비의 치유능력이 있었음에도 정말 힘든 전투였다.
만약 그 괴수가 유아기가 아니라 좀 더 성장한 상태였다면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재배지 탐사가 정말 조금만 늦었더라면 뼈만 남은 건 바실리스크가 아니라 서준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떤 이유로건 좋은 물건 얻었으니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 정도 뼈면 무기를 만들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최대한 연구해서 최대한 결과를 뽑아내야죠, 뭐. 잘 할 수 있으시죠?”
“물론입니다. 길드장님! 맡겨만 주세요!”
서준과 윤희주를 안내하는 연구원은 윤희주에 말에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서준은 살짝 못 미더웠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저게 다예요? 아티팩트 같은 건 나온 거 없어요?”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네?”
“그런 게 있어요.”
윤희주는 갑자기 사라진 아티팩트를 떠올리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티팩트란 것이 워낙 귀한 물건이라 성공적으로 게이트 탐사를 끝마쳐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길드의 강함이 아티팩트를 몇 개 가지고 있느냐로도 판단되는 세상이었다.
눈앞에 아티팩트가 나타났는데 그것을 이유도 모른 채 놓치고 말았다. 창천 길드로서도 길드장인 윤희주 입장에서도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처음에는 아티팩트를 집어 들었던 김선광을 의심해보았으나 그가 그 자리에서 아티팩트를 숨길만 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능력은 단순한 신체 강화 능력이었을 뿐 서준처럼 창고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어…. 이게 뭔가요?”
서준은 괴수의 뼈 옆에 붙어있는 그래픽을 가리키며 물었다. 많이 익숙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저 괴수 모습이에요. 이름은 바실리스크라고 지었습니다. 무섭게 생겼죠? 저희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식겁했답니다.”
“저게 저 괴수라고요?”
“네.”
서준의 뇌리에 순간 무엇인가 스치고 지나갔다. 용암을 뿜었던 뱀 모양의 괴수, 서준도 본 적이 있었다.
“혹시 갑자기 사라졌다는 아티팩트 그래픽도 있나요?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따로 그려놓진 않았어요. 그냥 뭐, 왕관 모양이었어요.”
“하하, 그렇습니까?”
서준의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재배지에서의 일이 현실에서 열리는 게이트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창천 길드가 게이트 탐사를 나섰던 게… 어제였지?’
서준이 뱀 괴수를 잡았던 것도 휴가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였다.
서준이 뱀 괴수를 잡은 시간과 창천 길드가 게이트 탐사 임무를 한 시간이 일치했다.
서준의 예상대로라면 아마도 서준이 잡은 괴수와 바실리스크는 같은 개체였다. 서준이 잡지 않았다면 재배지에서 성장을 거친 후 게이트에서 튀어나올 개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서준에게 죽임을 당했고 그로 인해 현실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아티팩트 역시 서준의 손에 들어왔기에 미래를 투영하는 게이트에서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갑작스러운 정보에 서준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 참! 백 선생님께 드릴 말씀 있었어요.”
“뭔가요?”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던 서준에게 윤희주가 말을 걸었다. 덕분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이 일순간 흩어졌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요번 GOTY 본선은 저희끼리 나가겠습니다. 예선 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윤희주는 서준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서준 덕분에 예선통과를 할 수 있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서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는 어찌 되었건 외부인이었고 길드의 성장을 위해서는 길드원들이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본선 개최장소가 한국도 아닌데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본선에서는 저희 힘으로 해결해보겠습니다.”
“네, 저도 한국에서 지켜보면서 열심히 응원할게요! 꼭 우승하길 기원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차피 서준도 GOTY에 참석할 마음은 없었다. 서준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이곳에 와서 더욱 확실해졌다.
‘성장한 상태였으면 죽는 건 나였을 거야.’
이번 뱀 괴수, 바실리스크를 상대하면서 느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한 상태의 바실리스크는 창천 길드가 일순간 사냥을 포기하고 도망칠 궁리를 하게 만든 괴수였다. 그리고 그런 괴수가 바실리스크 하나로 끝일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괴수들을 만약 서준이 먼저 발견해서 먼저 정리한다면 이후 게이트가 열린다 해도 다른 길드들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앞으로 벌어질 게이트로 인한 피해를 확연히 줄일 수 있었다.
서준에게는 GOTY에 참여하는 것보다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괴수들을 미리 처리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앞으로 바빠지겠네요.”
“네, 본선에서도 좋은 성적 거두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야죠. 당분간은 연락이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괜찮습니다. 열심히 응원할게요.”
“꼭!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서준은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약국으로 돌아왔다.
‘우선, 뭘 해야 할지부터 정리하자.’
앞으로 서준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아직 성장하지 못한 훗날의 보스 몬스터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갈 가지고 있는 괴수들을 미리 처치하는 것이다.
바실리스크처럼 몸을 숨긴 채 성장하길 기다리는 괴수들을 미리 처치해 훗날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
‘섬을 건너가야 하겠네.’
재배지 섬은 이미 둘러볼 대로 다 둘러보았다. 거기에다 숨어서 힘을 기르고 있던 바실리스크 역시 처치했다.
이제 재배지 섬에서는 볼일이 없었다.
‘요트는 돈 주고 사면 되지만…….’
바다는 요트나 보트를 하나 구매해서 건너면 그만이었다. 뭐 운전법이야 배우면 그만이고.
문제는 지도가 없다는 것이다. 망망대해를 정보도 없이 배를 띄워 건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준이 콜럼버스도 아니고 무작정 항해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서준에게 전문적인 항해기술도 없으니 바다에서 위험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도 없었다.
‘일단 재배지로 가봐야겠어.’
요트를 사는 것도 운전법을 배우는 것도 기본적인 항해기술을 배우는 것도 모두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돈만 주면 물건을 사든 기술을 배우든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준은 돈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재배지의 지도는 돈으로 구할 수 없었다.
나무에 올라서 찾아보든 망원경을 구해서 찾아보든 재배지 주위에 다른 대륙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은 재배지로 넘어가야 했다.
서준은 잠자고 있는 호랑이들과 정신비를 그대로 놔둔 채 게이트를 넘어갔다.
어차피 이제는 게이트를 열어두기만 하면 시간 괴리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저들을 놓아두고 넘어 다니는 일도 가능했다.
“흐음…….”
해변에 높이 솟아있는 나무 위에 올라탄 서준은 주위를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역시 아무것도 안 보이네.’
서준이 볼 수 있는 것은 기다란 수평선과 끝없는 푸른 바다뿐이었다. 다른 대륙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면 진작에 서준이 찾아갔을 테지.
그때 서준 품속에서 무언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왕관 모양의 아티팩트였다. 서준은 빛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왕관을 손에 쥐었다.
밝게 빛나는 왕관이 서준의 손바닥에서 살짝 떠올랐다. 공중으로 떠오른 왕관은 뱅글뱅글 돌면서 조금씩 조금씩 하늘로 떠올랐다.
왕관에서 발하는 밝은 빛이 이내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한 공간으로 쏘아졌다.
마치 서준이 찾는 다른 대륙이 여기 있다는 듯이 빛을 한 점으로 계속 쏘아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준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왕관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서준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왕관에 남겨진 의념이 서준을 이끌었다.
마치 왕관이 저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저 자리가 내 자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준의 목적지가 정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제 나도 요트 오너가 되었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인데…….’
서준은 요트를 구매하기 위해 다시 약국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