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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58화 (58/150)

58화

서준은 재배지 탐사 시 대원칙을 하나 세웠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 대원칙이었다.

그것은 바로 ‘아티팩트를 사용하면 아티팩트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끝나는 24시간 동안 지구에 머문다.’였다.

서준과 그 일행들은 모두 충분히 많은 아티팩트를 장착하고 있었다. 지금 이들의 전투능력으로 볼 때 굳이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재배지 환경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준이 이제 탐사하려는 곳은 재배지 섬의 정중앙 부근이었다. 가시덤불로 막혀있어 단 한 번도 들어갈 생각조차 했던 적 없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 정신비를 데리고 가게 되었다. 물론 정신비에게도 방어형 아티팩트를 착용시켜놨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티팩트가 비활성화되었을 때였다. 모든 아티팩트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용 후 24시간 동안 잠들었다.

그렇다는 건 만 하루 동안 정신비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이야기였다.

해서 서준은 대원칙을 세웠고, 그에 따라 탐사를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서준이 재배지 탐사의 기한으로 두었던 마지막 일곱째 날이 되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네? 조금만 더 힘내자 얘들아.”

-어흥! 캬앙! 크릉!

“네! 아저씨!”

그동안 탐사 중에 큰 위험은 없었다. 강철곰도 만났고 표범을 비롯한 여러 맹수들도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강해질 대로 강해진 호랑이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물론 가끔 위험에 처했던 적도 있었다. 일대일로는 절대 질 수 없는 전력이었지만 가끔가다 괴수들이 집단으로 출몰하곤 했다.

특히 오십이 넘는 강철곰이 튀어나왔을 때는 서준도 식겁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티팩트를 잘 활용하여 넘어갔다.

그리고 당연히도 대원칙에 따라서 지구로 돌아갔다.

“헉, 헉, 헉, 힘들어 죽겠네…….”

“아저씨 약골!”

서준도 정신비도 모두 어흥이의 등위에 올라탄 채 이동 중이었다. 정신비가 서준을 약골로 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서준은 게이트를 항시 개방해놓은 상태였다. 시간 괴리를 막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체력소모가 되었다.

이것은 강철곰 무리의 습격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서준은 전투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모든 걸 호랑이들에게 맡겼다.

만약 서준이 전투에 제대로 임할 수 있었다면 아티팩트를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갈까?”

“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은 꺼림칙한 낌새에 호랑이들을 잠시 멈춰 세웠다. 지금까지 오는 길에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었다.

물론 전력 차가 워낙 크기에 큰 손실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호랑이들의 체력은 깎여나갔다.

만약 이 앞에 서준의 느낌처럼 무언가 있다면 호랑이들을 만전의 상태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봐.”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게이트를 다시 열어 약국으로 넘어갔다 돌아왔다. 그런 서준의 손에는 호랑이들이 먹을 수 있게 잘 손질된 꿀닭이 쥐여있었다.

“이거 먹고 힘내서 가자!”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도 배가 고팠는지 꿀닭에 입을 박고 정신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 물 마실래요!”

“그래.”

정신비는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목이 탔는지 서준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 서준은 메고 있던 배낭에서 물 한 병을 꺼내 정신비에게 건네주었다.

“신비는 배 안 고파?”

“안 고파요! 아까 배 터지게 먹었는걸요?”

“그래.”

미지의 숲속을 탐험한다고 해서 이들이 숲속에서 먹고 자는 것은 아니었다. 서준은 언제든 약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이트를 열 능력이 있었고 이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알았다.

밥 시간이 되면 잠시 약국으로 돌아가 밥을 먹었고, 역시 잘 시간이 되면 약국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오로지 서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어흥! 어흥!

-크릉! 크릉!

먼저 밥을 다 먹을 어흥이가 크릉이의 것을 빼앗아 먹으려 하자 크릉이가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캬앙이는 자기 몫의 닭을 구석으로 가져가 몸으로 완전히 가린 후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돋보였다.

“아, 또 왜 싸우고 그래? 하나 더 줄 테니까 사이좋게 먹어.”

-어흥! 어흥!

어차피 남아도는 게 꿀닭이었다. 호랑이들의 활동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꿀닭 하나 더 먹는다고 몸이 둔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된 탐사일정을 견디기 위해서라면 더 먹어둬야 할 판이었다.

“이거 다 먹어!”

서준은 아예 꿀닭을 보따리 채로 들고 와서 호랑이들에게 던져줬다.

“와아!”

-어흥! 어흐응!

-캬앙! 캬아앙!

-크릉! 크르릉!

영롱하게 빛나는 꿀닭이 숲속에 뿌려진 모습은 장관이었다. 정신비도 놀라서 감탄을 할 정도였다.

호랑이들은 기분이 좋은지 골골 소리를 내며 자루에 입을 처박고 입을 바쁘게 놀렸다.

“질리지도 않나 봐? 난 이제 못 먹겠던데.”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었는데 호랑이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꿀닭을 매일매일 먹으면서도 언제나 행복하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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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에서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이미 게이트 관리국에서 사전 예고와 함께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민간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괴수의 형태는 곰과 표범 등 우리와 친숙한 동물형으로 모두 살점이 썩어있는 상태입니다.>

<도심을 지키는 방위 임무는 피직스 김효광이 이끄는 그래비티 길드가 맡았습니다.>

<평소 철저한 관리능력을 보이는 그래비티 길드가 이번 임무를 맡은 만큼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뉴스의 화면은 그래비티 길드와 괴수가 맞붙고 있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현재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헬기가 촬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김효광과 그를 따르는 길드원들은 훌륭하게 괴수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좀비화가 된 괴수들은 베고 찌르고 박살을 내도 죽지 않았다. 오로지 머리를 잘랐을 때만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비티 길드는 이를 어렵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모두 김효광이 전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아! 지금 창천 길드가 게이트 내부로 진입합니다!>

<요번 게이트 탐사 임무를 맡은 창천 길드가 또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올해의 길드, GOTY KOREA 우승 등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창천 길드의 향후 행보가 기대됩니다.>

그래비티 길드가 괴수들을 처치하며 게이트로 가는 길목을 열었다. 김소현을 필두로 한 창천 길드의 전투조는 곧게 난 길을 그대로 질주하며 달렸고 게이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투조가 먼저 진입한 후 10분이 지나자 윤희주와 보급조는 뒤이어 게이트에 진입했다.

#

“어흥아, 속도 좀 줄이자.”

-어흥!

서준과 일행들은 빽빽이 들어선 가시덤불을 헤치며 나아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스산한 기운과 츳츳츳츳 하는 음습한 소리가 계속해서 낮게 울려 퍼졌다.

“아저씨… 무서워요…….”

“괜찮아 신비야. 별일 아닐 거야.”

서준의 앞에 앉아있는 정신비는 어흥이의 털을 꽉 쥐어 잡으며 어흥이의 목을 끌어안았다.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는지 정신비는 어흥이와 최대한 몸을 밀착시켰다.

선두에 서고 있던 어흥이는 속도를 늦춘 후 주위를 경계하며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그 뒤를 따르던 캬앙이와 크릉이 역시 어흥이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중심으로 갈수록 점점 음침해지는데?’

재배지 섬의 최중심부로 가는 길이었다. 온통 가시덤불로 가득 차 있는 데다가 바닥마저 울퉁불퉁해서 이동 속도가 점점 더뎌졌다.

그리고 중심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음습한 기운이 점점 더 강해져 왔다. 최중심부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츳츳츳, 츳츳츳, 츳츳츳츳츳츳츳.

무언가 츳츳 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중심부를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혀 차는 소리 같은데? 뭔지 알겠어 어흥아?”

-어흥!

서준보다 수십 배는 감각이 예민한 어흥이에게 물어보았지만 어흥이 역시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괴상한 소리가 가져다주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나아갈 수밖에.

“그만!”

-어흥!

계속해서 중심을 향해 다가가는 중 서준이 어흥이를 멈춰 세웠다.

멈춰선 서준 일행 앞에는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입구의 크기는 지름이 오 미터는 돼 보였다.

“누군가 일부로 뚫은 거 같은데? 맞지?”

-어흥! 어흥!

서준이 동굴이라 생각한 그것은 본래부터 동굴이었다기 보다는 엄청나게 거대한 암석을 누군가 일부로 뚫은 것처럼 생겼다.

살짝 비스듬한 타원의 형태로 뚫려있는 동굴은 그 폭이 입구부터 서준의 시야에 보이는 곳까지 모두 일정했다. 마치 인위적으로 뚫어놓은 것처럼.

“가보자.”

-어흥! 캬앙! 크릉!

두렵지만 가야 했다. 언제까지 재배지를 미지의 세계로 놔둘 수는 없었다. 재배지 섬뿐만이 아니라 전체를 파악해 게이트 현상을 멈추고 싶은 서준에게 이 일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어흥!

“미! 미안.”

정신비가 두려운지 어흥이의 목덜미를 너무 세게 잡았다. 어흥이가 순간 놀라 소리쳤고 그 소리는 동굴 속에서 계속 메아리치며 울렸다.

“어차피 외길이니까 좀 속도를 올려볼래?”

-어흥! 어흥!

어차피 한 길로 쭉 뚫려있었다. 뒤쪽은 서준이 지나온 길이었고 좌우에서 적이 튀어나올 공간은 없었다.

적이 나온다면 정면밖에 없었다. 속도를 늦출 이유는 없다.

-딸깍!

서준이 배낭에서 커다란 손전등을 꺼내서 전원을 켰다. 그 밝기가 상당해서 햇빛이 통하지 않는 동굴도 환하게 비출 정도였다.

어흥이는 서준의 손전등에 의지해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고작 이런 거에 겁먹을 어흥이가 아니었다.

-츳츳츳, 츳츳츳, 츳츳츳츳츳츳!

츳츳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혀를 차는듯한 그 소리는 점점 더 짧은 주기로 울렸고 그 음높이도 더 높아졌다.

마치 이 안에 있는 누군가가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며 경고하듯이 말이다.

“괜찮아. 계속 가.”

-어흥! 어흥!

하지만 멈춰설 서준이 아니었다. 이 앞에 무엇이 있든 서준은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대침공 전 평화로웠던 세상으로 돌아갈 실낱같은 희망이 오로지 서준에게 있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서준은 이루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전 여자친구가 죽은 날 확고해졌다.

‘더 이상 신비 같은 아이가 나와선 안 돼.’

물론 정신비의 부모는 괴수가 아닌 테러범들에 의해 죽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테러범들보다 많은 수를 죽인 것은 괴수였고 그것은 아직 현재진행형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정신비처럼 부모를 잃고 버려지는 아이는 계속해서 나타났고 나타날 것이었다.

모든 나라가 대한민국처럼 좋은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준은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싶었다.

-쿠콰콰콰콰콰쾅!

서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올 바로 그때 큰 굉음과 함께 동굴 속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츳츳츳! 츳츳츳! 츳츳츳츳츳츳츳!

서준의 앞에 커다란 눈 두 개와 두 갈래로 갈라진 기다란 혓바닥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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