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크릉! 크릉! 크릉!
크릉이가 에메랄드빛이 나는 보석이 달린 초커 위에 발을 올리고 계속해서 짖어대고 있었다.
“크릉아 이거 갖구 싶어?”
-크릉! 크릉! 크르릉!
검정색의 탄력 있는 줄에 잘 조각된 에메랄드빛의 보석이 한 가운데 박혀있는 초커였다. 액세서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누구라도 갖고 싶어 안달이 날 만한 물건이었다.
어떻게 게이트 너머에서 저런 물건을 채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구에서 누군가 가공한 상태가 아니라 원래부터 저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되었건 저 물건은 아티팩트였다.
“동물도 아티팩트를 쓸 수 있나?”
그리고 서준이 듣기로는 동물이 아티팩트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었다.
물론 서준이 아직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상태였기는 했지만 만약에 가능하다 하더라도 귀한 아티팩트를 동물에게 주는 괴짜가 얼마나 있을까?
억만금을 가진 부자라도 아티팩트 하나 구하는 것이 힘든 세상이었다. 아마도 동물이 아티팩트를 사용했던 역사는 지금껏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준은 까짓거 하나 주기로 했다.
“그래 크릉아, 이거 너 해.”
서준은 초커를 크릉이의 오른쪽 앞발에 잘 걸어주었다.
크릉이의 발목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진한 녹색의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크릉이는 맘에 드는지 앞발을 쭉 내밀어 눈앞에 가져다 대고 눈을 반짝이며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무슨 효관지는 알아야지? 크릉아 그거 한번 써봐.”
-크릉?
“그거 써보라니까?”
-크릉? 크릉?
서준이 써보란다고 써지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아티팩트란 것을 어떻게 해야 사용할 수 있는 건지 참 애매했다.
자동으로 발동되는 아티팩트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또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사용되는 아티팩트도 있었다. 또 어떤 아티팩트는 아직까지 그 사용 효과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일단 줬으니 크릉이가 최대한 활용하기를 바라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릉이의 발목에 걸려있는 아티팩트가 일단 어떠한 종류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다시 줘볼래? 크릉아?”
-크릉! 크릉! 크르릉!
하지만 크릉이는 아티팩트가 맘에 들었는지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절대 줄 수 없다는 듯이 사나운 표정을 하며 낮게 그르렁거렸다.
“잠깐만 가져갔다가 다시 줄게.”
-크릉!
서준이 강제로 뺏으려 하자 순간적으로 크릉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순간 크릉이가 사라져 서준이 주위를 둘러보니 크릉이는 이미 서준의 뒤쪽에 있었다.
아무리 호랑이들이 날쌔졌다고 해도 지금의 속도는 비정상적이었다.
아무래도 크릉이의 이동속도를 올려주는 아티팩트인듯싶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어찌 되었건 운이 좋았다. 크릉이가 고른 것이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아티팩트였다.
“이리 와봐! 크릉아!”
-크릉! 크릉! 크르릉!
서준은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크릉이를 잡아보려 했지만 아티팩트로 인해 빨라진 크릉이를 잡을 수는 없었다.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효과는 확실했다.
‘흐음…. 역시 비싼 값은 하는 거 같은데, 지속 시간이 문제네?’
본래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최운혁에게서 강탈해온 물건이었다. 제대로 된 효과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평범한 헌터가 아티팩트 하나를 장착하는 것만으로 상위의 헌터와 싸울 수 있게 된다고 하니 크릉이의 전투력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할 것이란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준은 이 상황이 매우 흡족했다.
“얘들아! 너희도 하나씩 골라 볼래?”
서준은 아티팩트들을 바닥에 쫙 깔아놓고 어흥이와 캬앙이에게도 고르게 해주었다.
어차피 사용법을 모르는 물건들이었다. 호랑이들의 감을 믿고 싶었다.
크릉이 역시 본인이 고른 물건을 저렇게 잘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서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감각을 지닌 아이들이었다. 서준은 그 감각을 믿기기로 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어흥이와 캬앙이는 아티팩트에 코를 박아 냄새도 맡아보고 앞발로 툭툭 건드려도 보고 거친 혓바닥으로 한번 쓱 핥아보는 등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호랑이들도 크릉이의 몸놀림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것을 눈으로 보았다.
본인들도 크릉이처럼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던 어흥이와 캬앙이는 아티팩트를 매우 신중하게 살폈다.
-어흥! 어흥!
-캬앙!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흥이와 캬앙이 역시 자신의 맘에 쏙 드는 물건을 고를 수 있었다.
“이게 맘에 드는 거지? 알았어.”
서준 역시 호랑이들에게는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기에 흔쾌히 넘겨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착용 방법이 문제였다. 크릉이에 경우는 운 좋게도 발목에 딱 들어맞았다.
그러나 아티팩트란 것이 본래 인간이 착용하는 장신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고양잇과 동물인 호랑이가 착용하기에는 불편한 형태들이 매우 많았다. 예를 들면 반지라든지 팔찌 같은 아티팩트들은 그 크기 때문에 착용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그나저나 저희도 연구하면서 놀랐어요. 생각보다 양이 많네요? 그 짧은 새에 이만큼이나 챙기셨다니…… 놀라울 따름이네요.”
“제가 손이 좀 빨라서요. 힘들게 싸웠는데 이런 거라도 주워가야죠, 뭐.”
“와, 백 선생님 욕심쟁이네요!”
서준은 창천 길드에서 윤희주와 김소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번에 받은 성게 모양을 한 약초의 재배에 성공한 서준은 이를 전달해 주기 위해 창천 길드에 왔다.
재배방법 같은 것은 이제 상관없었다. 나무 열매를 먹은 이후 서준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그 어떠한 식물이든 서준 몸속에 잠들어있는 신비한 기운을 통하면 금방 자라났다.
물론 약초마다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 달랐기에 모든 약초를 한 번에 길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게 모양의 약초는 그리 큰 에너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역시 백 선생님께 부탁하길 잘 했네요. 이제 약초의 효능은 최대한 빨리 알아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정도 양이면 연구용으론 충분할 것 같아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 급한 것도 아닌데. 그나저나 아티팩트 대신 연구해주신 것은 감사합니다.”
“뭘요, 저희도 데이터 얻을 수 있고 좋았죠.”
서준은 최운혁에게서 빼앗은 아티팩트의 조사를 창천 길드에 일임했다. 이들은 서준이 뭘 맡겨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우방이었다.
최운혁에게 아티팩트를 빼앗아 숨긴 일? 그런 일 따위는 이들에게 알려도 아무 문제 없었다.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이들에게 연구를 맡기는 것이 속 편했다.
아티팩트중 폭발을 일으키거나 불을 내뿜는 아티팩트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위험한 조사를 서준이 혼자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나저나 어떻게 빼돌리신 거예요? 초인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았을 텐데? 몸수색 안 당하셨어요?”
“능력 사용했겠죠, 그거 뭐냐? 창고 능력이라고 했었잖아요?”
“아!”
“맞아요. 창고 능력으로 쏙 숨겨놨죠.”
서준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 약초 재배와 전투 쪽에 치중되어 있었다. 해서 윤희주도 서준이 창고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던 것을 잊고 있는 듯했다.
“소현이 기억력이 좋네?”
“그 정도는 기억해야죠! 이래 봬도 전투조장이라구요! 전투원들 특성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거든요?”
“어이구 그랬어요? 내가 전투조장 하나는 잘 뽑았네?”
어느덧 서준을 전투조원으로 인식하고 있던 김소현이었다.
“하하, 저는 전투조원이 아닌데요?”
“어쨌든요!”
서준이 게이트를 넘나들지 않아서 티가 나지 않았을 뿐이지 창고 능력이란 것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한 능력이었다.
특히 나쁜 마음을 먹었을 경우 이보다 실용적인 능력은 없었다. 게이트 내부의 물건을 빼돌리고자 하면 마음껏 혼자 독식할 수도 있었다.
물론 게이트 탐사 임무를 하는 서준에게는 별로 필요치 않은 물건이기도 했다.
“나중에 이 능력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언제든지 달려와서 도와드릴게요.”
“말이라도 고맙네요.”
“창천 길드가 도와준 게 몇 갠데 이 정도는 해야죠, 뭐.”
서준이 창천 길드에게 받은 도움을 모두 갚으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물론 창천 길드 역시 서준 덕분에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서준의 약초를 공급받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게이트 내부에서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서준이 창천 길드에 대해 고마워하는 만큼 그들도 서준에 대해 엄청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대신 죽어달라는 것만 아니면 아마도 다 들어줄 것이다.
“그나저나 일주일간 휴가 가신다고요?”
“네, 내일부터 일주일간은 좀 쉬려구요. 그동안 너무 급히 달려온 것 같아서요.”
“흐음… 부탁드릴 약초가 아직 많은데……. 알겠습니다. 그럼 일주일 후 뵙겠습니다.”
말로는 일주일간의 휴가라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히려 지금부터 더욱 힘든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창천 길드의 연구로 아티팩트의 능력도 전부 파악한 상태였기에 지금이 적기였다.
“히잉… 둘리랑 또치 데리고 호랑이 약국 놀러 가려구 했는데.”
“다음에 오세요. 미리 말해주시면 시간 비워놓을게요.”
“네에…….”
서준은 그렇게 창천 길드에 일주일간의 짧은 이별을 고하고 약국으로 돌아왔다.
“그럼 모두 준비됐지?”
“네에!”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의 물음에 정신비와 호랑이들은 우렁차게 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정신비의 몸에는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반짝거리는 장신구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정신비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형 아티팩트를 바리바리 모아서 채워준 것이었다. 최운혁이 들고 있던 아티팩트의 수가 상당해서 저렇게 하고도 서준과 호랑이가 사용할 아티팩트가 남았다.
‘최운혁 그놈도 운도 없지. 저것들 다 써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잡힐 줄이야…….’
저 아티팩트들만 적재적소에 활용했어도 최운혁이 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뭐, 그것이 서준에게는 행운이 되었으니 서준도 불만은 없었다.
“그럼 가자!”
“네!”
-어흥! 캬앙! 크릉!
서준과 아이들은 힘차게 게이트를 넘어 재배지로 넘어갔다.
아티팩트로 인해 정신비의 안전도 확보했다. 게다가 서준과 호랑이들의 전투력 또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다.
아마 이 상태로 다시 최운혁과 싸운다면……. 서준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아티팩트란 것이 엄청난 물건이었고 또 그만큼 아티팩트를 활용하지 못한 최운혁이 멍청한 것이었다.
물론 최운혁은 서준에게 당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심이 패배를 불러왔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아티팩트를 사용해 서준을 죽이려 들었다면 서준은 단 5초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아티팩트가 없었더라도 최운혁이 서준한테 지는 일은 백번 중 한 번꼴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었다. 최운혁은 방심했고 서준은 철저히 준비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그 결과로 그는 지하 깊은 곳에 처박혀 있었다.
“그럼 가볼까?”
-어흥! 캬앙! 크릉!
서준과 호랑이 그리고 정신비의 목표는 요번 일주일 동안 재배지 섬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발걸음이 지금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