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서준은 최운혁과 결사회 단원들과 함께 초인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먼저 공격했고를 떠나서 도심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깐.
게다가 길드의 헌터들에게는 체포권이 없었다. 오로지 초인 경찰에게만 주어진 권한이었고 이는 매우 엄격하게 다뤄지는 엄중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진술서를 작성하고 난 후 곧바로 풀려날 수 있었다.
이미 수차례 최운혁이 서준을 습격했던 정황과 그들이 이번 테러를 일으켰던 악질 범죄자란 것이 밝혀졌고 이번 싸움 역시도 최운혁의 습격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한 서준이 그동안 행했던 선행에 표창 수상까지 받은 상황에서 초인 경찰 측에서 서준을 붙잡아둘 명분 또한 부족했다.
그러한 상황에 윤희주까지 찾아와 압박을 하니 초인 경찰 측에서도 결국 서준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아저씨! 빨리 온다면서! 아저씨 미워!”
“신비야 미안해…. 아저씨가 금방 오려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흥! 미워!”
정신비는 토라져서 서준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금방 온다던 서준이 늦도록 연락이 없자 정신비의 불안증세는 다시 도졌고 길드 구내식당에 주저앉아 하늘이 떠내려갈 듯 울었다고 한다.
지금도 토라져서 서준에게서 고개를 돌린 정신비의 눈에는 눈물방울들이 맺혀있었다.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목소리도 다 갈라졌다.
“아저씨 미워! 거짓말쟁이!”
서준이 진술서만 쓰고 풀려났다고는 하나 그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지고 난 후였다.
아직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신비가 충격을 먹을만했다.
서준은 호랑이들과 함께 재롱을 부리며 정신비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아이가 많이 놀란 것 같아요. 저희 길드에 있을 때도 처음에는 얌전히 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해 하는 게 느껴지더라구요.”
“눈앞에서 부모를 잃었으니까요……. 아직 너무 어린데…….”
윤희주는 초인 경찰서까지 찾아와 서준을 꺼내준 후 호랑이 약국에 와 있었다. 최운혁이 잡혔다고는 하지만 아직 유재학을 비롯한 그 일당들이 남아있었고 언제고 서준을 습격할 가능성이 있었다.
어찌 되었건 그들의 리더를 잡은 것이 서준이었으니깐.
윤희주는 서준의 보호를 명분 삼아 호랑이 약국까지 함께 왔다.
“이제 놈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아마도 지금 잡은 놈들 심문해서 정보를 얻어내겠죠? 머리가 잡혔으니 팔다리는 금방일 겁니다.”
유재학이라는 걸출한 범죄자가 있긴 했지만 리더는 최운혁이었다. 하나같이 악명을 떨친 범죄자들이었다.
개성 넘치고 자유분방한 녀석들을 모을 수 있던 데에는 최운혁의 공이 매우 컸다. 그들은 최운혁을 구심점으로 뭉쳤을 뿐이다.
최운혁이 사로잡힌 이상 결사회와 리버스의 위상은 예전 같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놈들이 쉽게 불까요? 질긴 놈들인데.”
“그쪽은 초인 경찰들이 우리보다는 전문이니 믿어봐야죠.”
“요즘 시대에 고문이라니 믿기질 않네요…….”
“요즘 시대니까 하는 거죠. 무슨 그런 고리타분한 말씀을…….”
고문을 통한 심문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대침공 이후 각성자들이 등장함에 따라 다시금 고문이 허용되었다.
이전처럼 범죄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크지 않았던 세상이 아니다. 각성한 범죄자는 손가락 한번 까딱이는 것으로 도시 하나를 날려 보낼 수도 있었다.
지금 세상에선 게이트를 막아내는 것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빌런들의 인권까지 생각해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런 놈들 인권이니 뭐니 따져주는 것보다 시민들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윤희주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평범한 사람들도 피와 전투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까지 윤희주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빌런들의 인권을 따져 물을 시간에 정보 하나라도 더 캐서 빌런 한 명이라도 더 잡아내자는 생각이 이미 머리 깊이 자리 잡았다.
결국 고문은 부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렇게 울더니 이제 잠들었나 봐요.”
“이제 잘 시간이 지났죠, 뭐. 계속 울어서 지쳤을 수도 있고.”
서준은 소파에 누워서 새근새근 잠든 정신비에게 담요 하나를 덮어주며 말했다.
땡깡을 피며 울 때는 솔직히 조금 힘들었는데 이렇게 자는 모습을 보니 피로가 확 풀렸다.
“놈들이 마지막 발악을 할 수도 있어요.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오늘 얻은 게 좀 많아서 큰 걱정은 없어요. 괜찮습니다.”
서준은 최운혁이 차고 있던 아티팩트들이 담겨있는 가방을 바라보았다.
놈들은 그동안 테러를 하면서 아티팩트 창고와 연구소들을 털었다. 당연히 리더인 최운혁은 그 전리품들 중 제일 좋은 것만을 취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이 모두 서준의 손안에 있었다.
“본래 주인들이 알면 난리가 날 수도 있어요. 조심하세요.”
“뺏긴 놈 잘못이죠, 뭐.”
물론 본래 주인들이 있는 물건이었다. 저 물건들이 초인 경찰 손에 들어갔다면 원주인에게 돌아갔을 수도 아니면 중간에 다른 길로 샜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서준의 품 안으로 오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해서 서준은 아티팩트들을 챙긴 후 경찰에 연행되기 전에 재배지 너머로 집어 던졌다.
힘든 전투 후에 얻어낸 전리품이었고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원래 주인들이 아티팩트의 행방을 알아낸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서준에 손에 들어온 이상 다시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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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장! 이제 어떡할 겁니까?”
“대책을 세워주세요!”
“잡힌 놈들이 입 열면 우린 다 끝장이에요!”
“맞아요! 일단 위치부터 옮겨야 해요! 몸을 빨리 숨기자고요!”
결사회와 리버스의 남은 잔당들은 유재학을 둘러싸고 서로 자기 할 말들을 계속 토해냈다.
그들 역시 이런 결과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듯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이었고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닥쳐봐!”
십여 명의 단원들이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입을 계속해서 털어대자 성질이 난 유재학이 소리를 치며 말했다.
“내 그 멍청한 새끼가 사고 칠 줄 알았지! 씨발!”
유재학은 화가 난듯한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소리쳤지만 그 머릿속은 딴판이었다.
최운혁과의 서열 다툼에서 완전히 밀린 유재학이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스스로 낙오가 되어주었으니 이처럼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재학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도 역시 최악의 범죄집단을 이끌던 리더였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남자였다.
“오늘부터 내가 리더다. 앞으로 내 명에 불복하는 새끼는 다 모가지 따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 대장!”
유재학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본래부터 유재학을 따르던 리버스의 단원들은 기쁜 표정으로 답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자들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표정을 굳혔다.
“대답 안 해? 뒤지고 싶어!”
“네! 대장!”
유재학은 그런 녀석들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유치해 보일지 모르는 행동이었지만 매우 중요한 절차였다.
이제 최운혁과 결사회의 정예들은 탈락했다.
남은 빌런들은 유재학 밑에서 리버스로 통일되었다. 대한민국 빌런의 족보가 요동치는 순간이었다.
“일단 몸을 숨겨야겠다. 최운혁 그 새끼는 믿을 게 못 돼. 고문하는 시늉만 해도 다 불어버릴 새끼야 의리 없는 새끼.”
유재학은 아무렇지 않게 최운혁의 뒷담을 까댔다. 본래 최운혁을 따르는 자들은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겉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최운혁이 없는 이상 유재학을 막을 자는 없었다.
“남은 일은 일단 몸을 피하고서 생각하자고. 어차피 우리한테 남은 무기는 아직 많으니깐.”
유재학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있는 아티팩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상급 아티팩트들은 최우혁이 모두 가져갔다지만 아직 남은 것도 많았다. 본래 아티팩트란 것이 그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인간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그것마저도 매우 사기성이 짖었다.
그런 것들이 저렇게 많으니 유재학의 자신감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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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보물 수확해 볼까 얘들아?”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윤희주가 돌아간 후 서준과 호랑이들은 전리품 가방을 열어보았다. 물론 잠이든 정신비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와…….”
가방 안에는 정말 화려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물론 최운혁 몸에서 떼내면서 이미 한 번씩 확인했던 물건들이었지만 집에 와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목걸이부터 시작해서 팔찌, 반지 그리고 브로치까지 없는 종류가 없었다.
‘근데 아티팩트들이 어떻게 인간의 장신구 모양인 거야?’
문득 떠오른 궁금증이었다. 아티팩트란 이계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진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모양은 대부분 인간의 장신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물론 괴수들 중에서도 인간형 괴수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일단 인간형 괴수가 아티팩트를 사용한 모습을 봤다는 얘기는 아직 없었다.
“흐음…….”
고민해볼 문제였다. 어쩌면 게이트 현상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문제였다.
장신구란 것이 본디 뽐내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계에도 지성체가 그것도 인간형의 지성체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와도 같았다.
‘정말로 이계의 침공인 것인가?’
단순히 차원이 연결되고 포악한 괴수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것이 아닌 계획되었던 침공일 수도 있었다.
‘속도를 좀 더 올려야겠어.’
그렇다면 지금까지 열렸던 게이트는 단순히 척후병일 수도 있었다. 진짜 전력들은 아직 아껴뒀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모두 서준의 머릿속에서 갑작스레 일어난 공상에 불과했지만 그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비를 하기는 해야 했다.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닫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재배지 탐사는 아직도 지지부진했다. 서준의 현 위치는 섬으로 판단되었는데 사실 아직 그조차도 확실치 않았다.
아직 주위의 탐사조차 완벽히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만약 서준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점점 더 막아내기 어려운 괴수들이 출몰할 것이 분명했다. 게이트의 발생 빈도도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최근 들어 미감지 게이트도 점점 많아졌잖아?’
서준의 눈앞에서 발생한 미감지 게이트만 벌써 두 개였다. 게이트 현상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상이었다.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어떻게 안 좋게 일어날지 몰랐다.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내야지.’
행복한 일상을 잃기 싫었다. 타임 워프 후 위태위태했던 생활이 겨우 자리 잡았다.
워낙에 낙천적인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서준은 이제 겨우 자리 잡았는데 이것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서준은 재배지 탐사에 속도를 더욱 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실마리는 재배지에 있었으니깐.
“그러려면 준비 열심히 해야지? 얘들아! 열심히 뒤져!”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서준과 함께 가방 속 아티팩트를 모두 꺼내 들며 그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