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와아…. 멋있다! 아저씨 나도 박사님 될래요!”
“그럼 공부 열심히 해야 되는데?”
“공부 열심히 할래요!”
“그러면 학교 다시 가야 하는데?”
“잉…… 무서운데…….”
서준은 호랑이들과 정신비를 데리고 창천 길드 연구소에 와 있었다.
윤희주에게 새로운 약초를 받아가라는 연락이 왔는데 정신비를 데려가도 되냐 묻자 윤희주는 흔쾌히 승낙했다.
서준은 서준 나름대로 연구실을 견학시키며 나름대로의 조기교육을 시켜볼 생각이었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는 것 같다.
정신비는 신이 나서 연구소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연구원들을 괴롭혔다.
“박사님! 박사님! 이건 뭐예요?”
“이거? 이거는 이렇게 하면… 어때? 신기하지?”
“와! 멋있다!”
연구원들도 삭막한 연구실에 어린아이가 들어와 재롱을 부리고 어려운 연구에 관심을 가져주니 신이 나서 정신비의 질문을 받아주었다.
본래 무언갈 발명하고 나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기 마련이었다. 그런 와중에 귀여운 아이가 다가와 먼저 물어봐 주니 연구원들이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이거 봐요! 완전 신기해요!”
“정말? 정말 신기한데?”
-어흥! 캬앙! 크릉!
서준과 호랑이들도 우울해하던 정신비가 신이 난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 웃음을 띠었다.
“이거는! 이거는! 뭐에요?”
정신비는 한 곳에 진득하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연구원들을 귀찮게 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그럼에도 따듯하게 정신비를 대해주었다.
“길드장님 오늘 주시기로 한 약초는 어디 있죠?”
“아! 잠시만요.”
정신비가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서준은 이제 어느 정도 안심이 됐는지 정신비에게서 시선을 떼고 윤희주에게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특이하게 생겼네요? 이게 뭐죠?”
윤희주가 건네준 약초를 받은 서준은 그 특이한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 약초는 성게처럼 생긴 것이 이게 정말 약초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 움직였는데요?”
윤희주에 손에서 서준의 손으로 약초가 옮겨지는 순간 약초는 꿈틀하며 살짝 움직였다. 서준의 착각이 아니었다.
“네, 맞아요. 저희가 이번 탐사 때 찾은 약초에요.”
“이게 정말 약초가 맞아요? 그냥 성게 닮은 괴수 아닌가요?”
토끼를 닮은 뿔토끼도 있고 닭을 닮은 꿀닭 그리고 강철곰도 보았다. 게이트가 재배지의 미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성게를 닮은 괴수가 있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음…. 저희도 사실 애매하긴 했는데 어쨌든 땅속에 심겨 있는걸 채취해 온 거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약초로 구분하기는 했습니다.”
“어렵네요. 그래서 효능은요?”
“사실 아직 모릅니다. 표본이 너무 적어서 연구에 어려움이 있어요. 그렇다고 이 특이한 걸 그냥 버리기에는 찜찜해서요. 그래서 백 선생님께 재배를 부탁드린 겁니다.”
“아! 표본을 늘려달라?”
“네, 이게 독초가 될지 약초가 될지는 백 선생님 손에 달린 셈이죠.”
“뭐 맡겨주세요.”
서준은 꿈틀거리는 성게 모양의 약초를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가방에 넣었다. 살아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평소의 다른 약초들보다 저도 모르게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었다.
“근데 갑자기든 생각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그때 갑작스러운 궁금증이 서준의 뇌리를 스쳤다.
“지구의 동물들이랑 비슷한 괴수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물론 그렇지 않은 놈들이 더 많긴 하지만.”
“네, 그렇죠. 그래서 대침공 초반에는 지구와 이계가 같은 행성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설도 있었죠. 뭐 헛소리지만.”
뭐, 그런 이야기도 있었나 보다. 타임워프를 한 서준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 식물들도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네?”
“그러니까 약초들도 사실은 괴수인 거죠!”
서준의 천진무구한 발언에 윤희주도 살짝은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나 서준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지구의 동물을 닮은 괴수들이 있듯이 지구의 식물과 비슷한 약초도 있고 아닌 약초도 있고 어쨌든 동물형 괴수가 있듯이 약초들도 사실은 식물형 괴수가 아닐까요?”
“무슨 얘기 하시는지는 잘 알겠어요.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아뇨,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괴수란 것이 본래 이계에 사는 동물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물론 너무 허접한 건 괴수 취급을 안 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냉정히 본다면 괴수는 괴수였다.
“백 선생님, 정말 대침공 이후 8년 동안 산속에 계셨던 거에요? 보통 이계의 동물을 괴수라 하고 이계의 식물을 약초로 통칭하는 건데…….”
이계의 동물들을 괴수라 하듯 이계의 식물들을 모두 약초라 칭했다. 거기에 별 의미는 없었다. 그냥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이 그렇게 붙였고 그 이후로 별 생각 없이 사용되는 단어였을 뿐이다.
서준은 8년간의 타임워프로 인해 게이트 상식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아직 그 괴리를 모두 회복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었다.
“어쨌든 이 성게 약초는 제가 한번 잘 길러볼게요.”
“네, 잘 부탁드려요. 백 선생님만 믿어요!”
“맡겨만 주세요.”
서준도 살짝은 이 상황이 민망했는지 대충 웃어넘겼다. 그동안 인터넷과 뉴스로 상식을 많이 채워 넣었다고 생각은 했는데 아직은 살짝 부족했나 보다.
“그럼 이쯤하고 오늘 식사하고 가시죠?”
“어디서요?”
“저희 구내식당에서 매주 수요일날엔 특식이 나오거든요.”
오늘이 바로 수요일이었다. 창천 길드의 구내식당은 평소에도 음식이 훌륭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평소보다 더 특별한 음식을 준다고 하니 서준 역시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 좋네요. 훈련 받을 때는 첫날 제외하고는 식단관리 시킨다면서 맛있는 거 못 먹게 했잖아요?”
“하하, 그랬나요?”
“네. 진짜 부러웠었는데 드디어 먹어보네요. 얘들아! 밥 먹으러 가자!”
“네!”
-어흥! 캬앙! 크릉!
드디어 창천 길드의 특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신이 난 서준은 정신비와 호랑이들을 불렀다. 빨리 가고 싶었던 것이다.
-띠링!
그때 서준의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초인몰 게시글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람이었다.
“오! 드디어?”
서준은 초인몰에 아티팩트와 불끈초의 물물거래를 요청하는 게시글을 올렸는데 사실 아직 까지 거래요청이 없었다.
불끈초 역시 물론 귀한 물건이었지만 신나는 성생활을 위해 귀한 아티팩트를 포기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거래요청이 들어왔다.
‘어떤 멍청한 놈이 댓글을 달았을까?’
신이 난 서준은 설레는 마음으로 댓글창을 열어보았다.
[거래 가능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물건 설명 좀 해주세요.
[방어형 아티팩트입니다. 배리어 기능 담겨 있습니다. 웬만한 공격은 다 막아내요.]
서준의 목걸이도 일종의 배리어 아티팩트였다. 그 어떤 공격이든 단 1회에 한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막아주는 배리어였다.
-좋네요. 불끈초 10뿌리랑 바꾸실래요?
[10뿌리는 너무 적네요.]
불끈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티팩트역시 만만치 않은 물건이었다.
그 가격은 정말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판매자가 원하는 가격이 시세가 되었다.
-얼마나 원하시나요?
[25뿌리는 주셔야죠?]
-과한데요? 20뿌리까진 가능합니다.
[콜!]
서준도 사실 20뿌리까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불끈초는 그 재배 시간도, 재배법도 복잡해서 다른 약초처럼 무한히 뽑아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서준도 불끈초는 함부로 막 쓰기에는 부담이 되는 물건이었다.
마침 구매자의 위치도 이 근처였다. 서준은 이렇게 된 거 지금 당장 구매하고자 했다.
아티팩트를 구하는 이유는 역시 신비를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그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저 잠시 일이 있어서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신비 데리고 밥 좀 먹어주실래요?”
“갑자기요? 뭐,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아직 밥도 먹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거래장소가 근처라고는 하지만 성장기 때의 밥때는 매우 중요했다.
“아저씨 어디 가요?”
“잠깐 요 앞에 다녀올게. 언니 말 잘 듣고 있어.”
“으음…….”
그러나 정신비는 서준과 떨어지는 게 불안한지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다.
“아저씨, 금방 올게. 신비야. 밥 다 먹기 전에 올게.”
“그럼…. 대신 이거 가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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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놈이 드디어 물었습니다!”
“줘 봐.”
한 사내가 외팔의 사내, 최운혁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강남? 시간 맞추려면 서둘러야겠군.”
“네! 지금 바로 가면 시간 얼추 맞을 듯합니다!”
최운혁은 한쪽 팔로 외투를 대충 걸치며 말했다.
“지금 몇 명이나 움직일 수 있지?”
“지금 본부에 있는 놈들 다 움직이면 저랑 대장까지 여섯입니다.”
“흐음…….”
최운혁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다들 준비 단단히 하라고 일러둬. 얕볼 놈이 아니다.”
“그냥 약초꾼이 운 좋게 영수 몇 마리 얻은 거 아닌가요? 왜 그렇게 의식을 하세요?”
“그놈 죽이려고 몇 번을 시도했는지 아냐? 너희들 잡혀있을 때도 꾸준히 시도했었다. 그런데도 아직 살아있는 건 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동안 최운혁은 끊임없이 서준의 목숨을 노려왔다. 물론 그 시도 중 서준이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이 상당수였다.
최운혁이 서준을 습격하려 할 때마다 주위에서 하나둘씩 사건이 터졌고 그로 인해 초인 경찰이 튀어나오는 등 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최운혁은 습격을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단지 운이 좋아서라고 하기에는 그 횟수가 매우 많았기에 최운혁은 매우 신중해져 있었다.
“그럼 가자!”
“네!”
한쪽 소매가 텅 비어있어 펄럭이는 가죽 재킷을 입은 최운혁을 필두로 총 여섯 명의 결사회 멤버가 서준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읍! 읍!”
그리고 그곳에는 초인몰의 계정을 결사회에 빼앗기고 온몸이 결박된 불쌍한 한 초인만이 남아있었다.
#
“가자!”
-어흥!
서준은 캬앙이와 크릉이를 정신비 옆에 남겨두고 어흥이만 데리고 길드를 나왔다.
거래장소와의 거리가 애매해 차 보다는 어흥이를 타고 가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정신비를 혼자 두기에는 정신비가 너무 불안해했기에 캬앙이와 크릉이를 곁에 남겨두었다.
서준이 없으면 불안감에 아무것도 못 하는 정신비였지만 그래도 호랑이들이 옆에 있으면 조금은 나았다.
“백서준이다!”
“와! 어흥이다! 멋있다!”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어흥이와 그 위에 타고 있는 서준은 시선 몰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라도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황금빛 호랑이를 보면 시선이 뺏길 수밖에 없으리라.
기분 좋은 바람을 가르며 서준과 어흥이는 빠른 속도로 거래장소에 도착했다.
“백서준씨! 여기에요!”
“아! 구매자님이세요?”
“네!”
백서준의 얼굴은 이미 전국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였다. GOTY 우승팀의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으니 그의 얼굴을 모르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야 할 정도였다.
백서준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을 알아본 구매자에게 별 의심 없이 다가섰다.
“물건부터 볼까요?”
“네, 여기 있어요.”
구매자는 고급스러운 주머니에서 팔찌 하나를 꺼냈다. 커다란 세 개의 보석이 박혀있는 팔찌는 누가 보더라도 아티팩트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화려하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백서준과 결사회의 전투가 펼쳐졌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지 끝이 나는, 오랜 악연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