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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49화 (49/150)

49화

최운혁은 도망쳤다. 구조활동 도중 서준은 지원 요청을 했다. 서준의 연락을 받은 게이트 관리국은 지체하지 않고 주변 방범 길드를 곧바로 수배해 보내주었다.

급하게 수배해오느라 최선의 전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길드의 전력이었다.

아무리 최운혁이라도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최운혁이 게이트를 넘어오는 괴수들을 모두 도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만 그도 체력이라는 것이 있었다.

길드의 지원병들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최운혁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후 그대로 사라졌다.

지원 길드는 최운혁의 모습을 보지 못한 듯했다. 폭발 자체도 괴수에 의해 일어났다고 착각하는 듯 보였다.

당장 눈앞에 게이트가 있고 괴수들이 넘어오는 상황에 다른데 정신 팔고 있을 헌터는 없었으니깐.

그렇게 길드의 지원이 오고난 후 상황은 손쉽게 마무리되었다. 최선의 전력은 아니었지만 괴수들은 최운혁과 싸우다 대부분 죽거나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긴급 지원팀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태였다. 지원병들은 괴수들은 손쉽게 막아내고 상황정리를 하고 있었다.

널브러진 괴수의 사체를 치우고, 부서지거나 위험한 잔해들을 치우는 등 그들의 할 일을 했다.

이제는 진짜 상황 종료였다. 최운혁이 큰일을 해주고 갔다. 그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 피해가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남은 건 잡혀주기만 하면 되었다.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이고 그가 했던 과거의 악행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맞죠? 맞죠? 창천 길드 테이머! GOTY에서 봤어요!”

“아, 맞습니다.”

사후 처리를 하는 길드원 중 하나가 서준을 알아보았다. 이미 서준은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스포츠 스타와 같았다.

현재 가장 인기가 많은, 아니 모든 인기를 독식한 스포츠가 GOTY였고 서준은 그 대회의 한국 예선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으니 모르는 국민이 없었다.

“와…. 팬입니다! 저 호랑이들이 그 호랑이들이에요? 신기하다…….”

“하하,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어요.”

한 길드원이 서준을 알아보자 다른 사람들도 서준의 주위로 모이기 시작했다. 피와 시체로 가득한 삭막한 도로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와! 근데 이걸 혼자 막으신 거예요? 진짜 큰일 하셨네요…. 존경합니다!”

“아…. 그런 건 아닌데…….”

그들은 약간의 사소한 오해를 하는 듯했다. 최운혁이 괴수들과 싸우고 있던 모습을 보지 못한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서준이 혼자 해냈다고 오해했다.

“뭘 아니에요? 진짜 대단하신 거예요. 그렇게 겸손하실 필요 없어요.”

“맞아요, 맞아요. 저 같았으면 진작에 도망쳤죠.”

“아, 네…….”

상황이 이쯤 되자 서준은 거의 반강제적으로 모든 공을 떠맡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와, 이거 보스 봐라. 크기가…. 미쳤네! 진짜?”

“이걸 잡으면서 시민들 대피시키고 잡졸들까지 다 잡았다고?”

“와…….”

“GOTY 우승할 정도면 뭐가 다르긴 다른 거겠지.”

“호랑이들도 싸웠겠지?”

지원 길드의 길드원들은 자기들끼리 이상한 오해에 빠져서 서준을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서준이 말릴 수 있는 상황은 예전에 벗어났다. 이제 서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의 망상이 점점 더 커져가는 걸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저희가 관리국에 말해놓을게요. 포상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포상이요?”

이윽고 지원팀을 이끄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당연하죠. 미감지 게이트 혼자 막아내신 것도 모자라서 보스까지 잡았잖아요.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런가요?”

“당연하죠!”

남자는 과장되게 몸짓을 크게 하고 침을 튀겨가면서 말했다.

“심지어 사상자가 0명이에요! 제로! 단 한 명도 없다고요! 이거 진짜 엄청난 일 하신 거예요. 정확히는 몰라도 포상금 꽤 크게 나올걸요?”

“진짜요?”

서준이 한 일은 별로 없었다. 물론 시민들도 대피시키고 보스도 잡았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일은 최운혁이 해냈다.

보스는 크기만 컸을 뿐 크게 강하지 않았다. 진짜 어려운 것은 끝을 모르고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오로지 최운혁의 몫이었다.

‘고맙다! 최운혁!’

하지만 돈을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최운혁은 범죄자였고 포상 따위 받을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서준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원팀과 함께 상황을 모두 수습한 서준은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니, 열었다기보다는 뜯고 들어갔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게이트가 약국과 워낙 가까운 곳에서 열린지라 약국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문짝은 반쯤 뜯겨나가 벽에 매달려 있었고 그 내부도 충격으로 인해 진창이 되어있었다.

“에휴…….”

그 광경을 본 서준은 저도 모르게 깊게 한숨을 쉬었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도 서준이 시무룩한 것을 알아보았는지 서준을 위로해 주었다.

“애들아, 정리는 나중에 하고 일단은 좀 쉬자!”

격력한 전투였다. 애초에 싸움 경험이라고는 거의 없던 서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보스와의 결투를 치루게 되었다. 심적으로도 신적으로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서준은 갑자기 밀려드는 피곤함에 정리할 의지를 잃고 말았다.

서준은 쓰러져 있던 소파를 일으켜 세운 후 그 위에 벌러덩 누웠다.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리링,

서준이 소파에 누워 눈을 좀 붙이려고 할 찰나 서준의 전화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여보세요?”

<백 선생님! 윤희주입니다!>

윤희주였다.

“아, 길드장님 무슨 일이세요? 활력초는 이제 다 떨어져서 없는데......”

지금 타이밍에 윤희주가 전화할 목적이라면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자라난 활력초는 모두 뜯어버린 상태였기에 더 이상의 지원은 불가했다.

<아뇨! 활력초는 아직 좀 여유 있습니다.>

다행히도 윤희주의 목적은 활력초가 아니었나보다.

<오늘 얘기 들었어요. 혼자서 미감지 게이트 막아내셨다고요?>

“소문이 참 빠르네요?”

어느새 의료봉사를 하고 있던 윤희주에게까지 그 소문이 퍼진 듯했다. 길드의 소식통이라는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서준이었다.

“근데 그게 혼자 막은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게 무슨 소리죠?>

“최운혁이 왔었어요.”

<최운혁이 말입니까?>

윤희주에게는 말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말 해야 하는 일이었다. 서준은 윤희주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 약국 앞까지 찾아왔었어요. 아마도 저를 노린 듯한데…….”

<하아…. 테러에 정신 팔려있었더니 그 틈을…… 그래서 어떻게 된 거죠?>

본래 창천 길드는 서준의 호위를 위한 병력을 약국 주변에 배치해두었었다. 그동안 최운혁이 서준을 공격하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잇따른 테러가 발생하고 많은 사상자가 나와 상당한 전력이 거기에 투입이 되었다.

그리고 테러범들의 목표로 보이는 아티팩트 연구소의 호위로 차출되었다. 최운혁은 그 틈을 노린 것이었다.

“근데 그 타이밍에 딱 게이트가 열렸어요. 최운혁 뒤통수에서요.”

<하, 뒷얘기는 안 봐도 뻔하네요.>

윤희주도 어이가 없는지 바람 빠진 웃음소릴 내며 말했다.

“네. 최운혁도 사람은 사람이더라고요. 머리 위에서 괴수들 계속 튀어나오니까 열심히 싸우더라고요. 죽기는 싫었나 봐요.”

<근데 혼자 막았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거예요? 최운혁 이야기는 없던데요?>

“지원팀이 오니까 꽁지 빠지게 도망가더라고요. 덕분에 저만 오해받았죠. 내가 저걸 어떻게 혼자 막아?”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최운혁에다가 게이트까지 터졌는데 천만다행이네요. 정말.>

그렇게 윤희주와 계속해서 상황을 이야기하고 수다도 떨던 서준은 십여 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이제는 진짜 쉬어야 할 때였다. 서준의 피로는 이미 극에 달했다. 서준은 소파에 몸을 맡긴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다음날 재배지로 넘어가는 서준은 한 가지 사소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한 시간째 서준을 잡아먹은 상태였다.

‘해보면 알겠지, 뭐.’

결심한 서준은 곧장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역시나 호랑이들과 게이트를 넘어갔다.

거기까지는 이전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면 게이트를 닫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준은 게이트를 계속 열어둔 채 재배지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로 초록 활력초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미 다 자라난 활력초는 모두 수확했기 때문에 새로 자라나는 아이들의 관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초록 활력초의 새순들이 잘 있음을 확인한 서준은 초록 활력초 변종을 살폈다.

심어 놓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지라 아직 다 자라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줄기들이 자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배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 이제 부자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과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서로 얼싸안고 뛰었다. 초록 활력초의 변종은 엄청난 회복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의 초록 활력초와 비교할 것이 못 됐다.

게다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창천 길드 연구소에서 또 다른 효능이라도 발견해주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불끈초 이후로 서준의 주머니 사정을 한껏 넉넉하게 해주고 빚더미에서 벗어나게 해줄 물건임이 분명했다.

그다음은 나무에 맺힌 열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헉! 헉! 헉!”

나무를 확인하러 가는 서준은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했다. 어흥이 위에 올라타기만 했을 뿐 실질적인 이동은 모두 어흥이가 대신하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그랬다.

게이트를 닫지 않은 채 계속 열고 있는 것이 그런 부담을 안긴 것이었다.

그만큼 게이트 능력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지금까지나마 유지하고 있는 서준이 대단한 것이었다.

“에잉, 똑같네?”

나무 열매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주 미세하게 붉은빛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 말고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수확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얘들아 집에 가자!”

-어흥! 캬앙! 크릉!

더 이상 게이트를 유지하는 건 서준의 능력으로는 무리였다. 서준은 호랑이들과 함께 게이트를 넘어간 후 곧바로 게이트를 닫았다.

“제발! 제발!”

그리고 서준은 곧장 시계를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얘들아! 됐어! 시간이 똑같이 흘렀어!”

딱 재배지에서 있었던 만큼만의 시간이 흘렀다. 이로써 서준은 시간 괴리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었다.

게이트를 닫지 않고 유지하기만 하면 되었다.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제는…. 오래 유지할 방법만 찾으면 되겠네.’

물론 그것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방금만 해도 그리 오래 있지 않았는데 서준의 온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갔다. 서준은 지금 탈진 직전의 상태였다.

“뭔 놈의 게이트가 싸우는 것보다 힘들어.”

심지어 어제의 전투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를 앗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실마리를 찾았다. 이 세상을 되돌릴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조금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준의 얼굴에는 얕은 미소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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