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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47화 (47/150)

47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편히 쉬세요.”

서준에게 치료받고 있는 환자가 감사 인사를 했다. 뭐, 치료라고 할 것까진 없고 환부에 분말을 살짝 뿌려줬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외상은 모두 치료되었다.

물론 골절 등의 상처는 치료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매우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환자를 눕힐 자리가 없어 바글바글했던 임시병동은 이제 어느 정도는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워낙에 중상자가 많은지라 아직도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내려왔다.

의사들도 초록 활력초 분말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치료해나가고 있었다. 모름지기 의사란 새로운 의료기계가 출시되면 써보고 싶고 신약이 나오면 사용해보고 싶어했다.

대침공 이후 8년, 초록 활력초는 초기 때부터 사용하던 약초였으나 일반에겐 허용되지 않았다.

의사들은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막강한 신약을 손에 얻게 되자 힘든 마음도 잊은 채 생기 넘치는 얼굴로 치료 활동에 전념했다.

의사들의 의학지식과 막강한 신약이 만나니 물 만난 고기처럼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이제는 임시병동도 어느덧 평화를 찾아가고 있었다. 앞으로 또 다른 테러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곧 상황이 종료될 것이 분명했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큰일 났습니다! 저희 길드 아티팩트 연구소가 털렸답니다!”

그때 일순간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상처 입은 길드원들을 돌보느라 피폐해진 낙원 길드 길드장 조상현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칠게 일어서며 소리쳤다.

“놈들의 목적이 아티팩트였던 모양입니다! 3일 전 종로 테러 때는 국립 아티팩트 연구소가 목적이었어요!”

“확실한 거야?”

“확실합니다! 국립 아티팩트 연구소 털렸다고 우리도 확인해보라고 연락 와서 애들 시켜 알아봤는데 싹 다 털렸답니다!”

“아아…….”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조상현은 온몸의 힘이 탁하고 풀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아티팩트라는 물건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길드의 전력은 곧 강한 헌터가 몇 명이나 소속되어 있느냐로 판단되었다.

그리고 아티팩트라는 물건은 평범한 헌터도 단숨에 강한 헌터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강력한 신비를 지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아티팩트를 연구하고 보관하는 연구소가 털렸다는 것은 길드의 전력이 반은 날아갔다는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사상자가 많았던 낙원 길드에 아티팩트까지 모조리 털렸다니 이건 거의 재기불능 판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길드의 사망 선고를 들은 낙원 길드의 길드장은 동공의 초점이 풀린 상태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아티팩트가 목적인 건가?”

“그런 것 같은데?”

“다들 길드 창고 잘 지키자고.”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길드의 일원들은 딴 세상 얘기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낙원 길드가 털리고 많은 사상자들이 나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경쟁 길드 하나가 탈락했다는 뜻과도 같았다.

당장 지금 하는 의료봉사 역시 길드의 이미지를 위함이었을 뿐 진심으로 행하는 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낙원 길드는 여의도에 적을 둘 정도로 자본이 빵빵한 길드였고 당연히 그 세력도 상당한 길드였다.

낙원 길드와 경쟁 관계에 있던 길드는 이제는 경쟁 없이 독식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아래에 있던 길드들은 낙원 길드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상처로 남은 테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씁쓸한 이야기였다.

“길드장님 이것 좀 분석해주세요.”

물론 서준과 창천 길드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서준은 진심으로 피해자들을 위해 봉사에 나선 것이었으며 창천 길드는 저런 저급한 다툼 따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강대한 길드였다.

게다가 이번 GOTY KOREA에서 그 위력을 확실히 보여줌으로써 최고 길드 중 하나로 완벽히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윤희주는 길드의 연구 시설들의 경계 강화만을 지시한 채 다시 부상자들 관리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이게 뭐죠?”

서준은 윤희주에게 따로 챙겨왔던 초록 활력초 변종을 건네주며 얘기했다.

본래는 바로 전달해 주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테러 소식에 잠시 미뤄두었다. 잠깐 틈이 난 서준은 기분 전환이라도 시킬 겸 윤희주에게 배낭에서 꺼낸 초록 활력초 변종을 건네주었다.

“새로 얻은 약초에요. 정확한 효능이나 활용법이 필요해서요. 창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제 예상으로는 초록 활력초를 월등히 뛰어넘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렇습니까? 곧바로 연구실로 보낼게요.”

서준이 알고 있는 사실은 열매를 먹으면 몸이 회복된다. 이게 다였다. 이파리는 어떻게 쓰는지, 줄기는 어떻게 쓰고 또 뿌리는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열매조차도 그냥 먹는 것보다 더 좋은 효능을 낼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다.

서준이 약방 구석에 앉아서 혼자 낑낑대는 것보다는 전문가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그 방면에서는 창천 길드가 제일 믿음직스러운 서준의 우방이었으니 서준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윤희주에게 변종을 건네준 서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황은 대강 다 정리된 듯싶었다.

그러나 새로 들어오는 피해자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여러 임시병동 중 그나마 이곳이 상황이 나을 뿐인거지 전체적인 상황은 아직 열약했다.

경상을 입은 피해자들을 모두 돌려보내 자리가 남았다는 소문이 듣자 다른 병동에 자리 잡지 못한 피해자들이 대거 몰려드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결국 초록 활력초는 바닥을 보였다.

다시 서준이 움직일 때였다.

“백 선생님 혹시 초록 활력초 재고가 더 없을까요? 상황을 보니 더 필요할 듯합니다.”

윤희주가 조심스레 서준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서준은 지하 창고에 있던 모든 재고를 다 챙겨온 상태였다. 그러나,

“아까 가져온 정도로 많이는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더 챙겨올 수 있어요.”

“그럼 여기는 저희가 맡을 테니 약초좀 더 챙겨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뭐 어려울 거 없죠. 알겠습니다.”

윤희주의 부탁을 들은 서준은 서둘러 약국으로 돌아가 재배지를 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약초의 판매를 중단해놓았던 상황이었다. 본래 초록 활력초는 잘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말려놓은 이파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뭐.”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이 대신 잇몸이라도 써야 하지 않겠는가? 서준은 잘 자란 초록 활력초들을 모조리 뽑았다.

비록 말리지는 못했지만 이 상태로도 즙을 내 사용해도 치료 효과는 있었다. 그 백 퍼센트의 효능을 내지 못할 뿐이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약품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모조리 뽑아서 약국입구에 쌓아둔 서준은 윤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드장님 접니다.”

<네, 백 선생님 말씀하세요.>

“남는 초록 활력초는 꽤 되는데 아직 건조도 못 했어요. 이거라도 어떻게 가져다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하나가 아쉬운 참에 오히려 감사합니다. 사례는 꼭 해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좋은 일에 쓰는 건데요. 창천 길드가 이득 보는 것도 아니고. 보상은 괜찮습니다. 저도 이게 마음이 편해요.”

서준과 통화를 마친 윤희주는 역시 트럭을 한 대 보내주었다. 서준은 트럭 기사와 힘을 합쳐 열심히 초록 활력초를 실어 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할 수 있는 지원은 모두 해뒀다. 쟁여둔 분말도 모두 털어놓았고, 재배지에 남은 초록 활력초도 모두 다 넘겼다.

이제 서준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창천 길드의 테이머 백서준 씨를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의도치 않았지만 서준은 또 한 번 뉴스에 나왔다.

<세 마리의 호랑이 영수를 끌고 다니며 GOTY KOREA 결승 배틀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테이머로 기억하실 겁니다.>

<그 백서준 씨가 이번 테러 사건에서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TV 화면은 서준이 봉사를 나갔던 임시병동으로 전환되었다. 그곳은 절망적이고 괴로운 비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때,

<부상자들로 가득한 임시병동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망자가 늘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백서준 씨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백서준 씨와 함께 도착한 상자들이 있었는데요, 그 안에는 초록 활력초 분말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저 작은 분말 한 포가 30만 원 정도로 거래되는 것으로 볼 때 저 양을 다 합치면 10억을 훌쩍 넘는 양입니다.>

<백서준 씨는 그 어떤 보상도 받지 않고 흔쾌히 이 많은 초록 활력초 분말을 기증했습니다.>

<일반인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헌터의 귀감이 되는 그런 행동입니다.>

<초인 관리 협회에서는 이번 일에 감명받았다고 밝히며 표창장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저런 상황을 예상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로 단순히 피해자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벌인 일이었다.

물론 충동적이기도 했다. 그동안 비축해둔 초록 활력초를 전부 팔아버리면 큰돈을 많질 수 있음은 확실했다.

테러로 인한 사상자가 많은 이러한 상황에 정부에서는 초록 활력초와 같은 즉효를 보이는 치료제의 구매 의사를 밝혔다.

많은 약초꾼들이 큰돈을 만지는 상황이었고, 서준 역시 평소보다 배는 비싼 가격에 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초인 관리 협회의 표창으로 돌아왔다.

물론 명예뿐인 표창이었지만 서준의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짝짝짝짝작작!

그리고 표창을 수여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니 기분은 더욱 좋아졌다. 서준은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표창의 수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뉴스가 나고 이틀 후 곧바로 이어졌다.

그렇게 표창 수여식에 도착한 서준과 호랑이들의 모습은 생중계가 되었다. 현장 객석에 앉아있는 수많은 정치인들은 기립 박수를 치면서 어떻게든 서준과 한 앵글에 나오려고 애를 썼다.

단순한 혈기로 벌인 일로 인해 표창을 수여 받았고 전국에 생중계 되었다. 정말 기분 좋은 나날이었다.

서준의 미담에 마음을 움직여 다른 기부자들도 많이 나타났다. 임시병동의 상황도 느리지마는 조금씩 좋아졌다.

“어! 백서준 맞죠? TV에서 봤어요!”

“아! 맞아요. 안녕하세요?”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서준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도 서준을 바라보며 칭찬 일색이었고 아이들과 산책을 하던 어머님도 서준을 본받으라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서준도 이러한 관심은 처음인지라 묘한 느낌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서준의 시간이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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