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여의도 한강공원. 그곳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들렸다.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밝은 빛이 번쩍였고 이윽고 날라오는 파편 덩어리들, 그리고 하늘을 짙게 가득 채운 뿌연 먼지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폭탄이 터졌다. 정확히는 어떤 초인에 의해 일어난 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대침공 이후 남아있는 폭탄은 없으니깐.
여의도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젊은 연인들도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도 농구를 하고 있던 청년들도 모두 죽었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잇달아 들리는 몇 번의 폭발음 이후 여의도 공원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박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도 최운혁의 짓이었다.
폭발 후 30초. 인근의 초인 경찰들과 초인 구조대가 출동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폭발을 일으킨 범인들도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폭발은 초인 경찰들과 초인 구조대가 모두 여의도 공원에 발이 묶였을 때 일어났다.
콰과과광! 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여의도에 자리 잡은 낙원 길드의 본사가 있는 7층짜리 빌딩이 그대로 폭발했다.
나름 인지도와 규모가 있는 낙원 길드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폭발은 그들이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갑작스러웠고 그것이 그들의 판단을 흐려지게 만들었다.
길드 내부에 있는 상당수가 초인인지라 폭발로 죽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그 부상 정도가 가볍지는 않았다. 그러나 초인이 아닌 일반인 직원들의 경우는 대부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폭발의 세기가 일반인이 버틸 정도로 가볍지 않았던 탓이다.
종로에서 테러가 발생한 지 정확히 3일, 오늘 여의도에서는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 시각 서준은 재배지 탐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탐험 중 정말 큰 수확을 얻은 서준은 재배지의 거점으로 돌아왔다.
“얘들아, 잠깐만 놀고 있어.”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을 잠시 풀어둔 서준은 미리 보아두었던 땅으로 향했다. 재배할만한 약초가 생긴다면 바로 심어두기 위해 마련해둔 땅이었다.
이미 잘 개간된 땅은 약초를 품어내기에 훌륭했다.
서준은 배낭에서 직전에 캐 두었던 초록 활력초의 변종을 꺼내두었다. 그리고 거기서 종자를 추출하여 적당한 간격을 두어 땅에 심어두었다.
관찰한 바로는 재배 시 초록 활력초처럼 많은 공간이 필요치 않은 것으로 보이기에 이렇게 심어둬도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한 뿌리만 온전히 배낭에 넣어둔 채 남은 모든 초록 활력초의 변종을 심어두었다. 이제 몇 번의 밤이 지나고 나면 이 밭 전체를 채울 만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름부터 지어줘야겠네.”
언제까지 초록 활력초 변종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초록 활력초의 변종임은 확실했지만 그 모양도 확연히 달라졌고 그 효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이제는 더 이상 초록 활력초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고…….’
작명 센스가 워낙 떨어지는 서준 이였기에 급하게 할 건 없었다. 뭐, 창천 길드 연구소에 맡겨두면 알아서 이름까지 지어줄 테니.
“얘들아! 가자!”
-어흥! 캬앙! 크릉!
온몸에 뒹굴고 엎어 치며 온몸에 흙을 묻혀 놀던 호랑이들이 서준의 말을 듣고 서준 옆으로 쫄래쫄래 기어왔다.
그 모습을 본 서준은 한번 싱긋 웃으며 게이트를 열었고, 호랑이들과 함께 넘어갔다.
게이트를 넘어온 서준은 곧장 뉴스를 틀었다. 재배지에 있는 동안 지구에서는 체감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흐른다.
그사이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뉴스가 최고였다. 서준은 지구에 있는 동안은 습관적으로 뉴스를 틀어두었다.
<사흘 전 종로에서 그리고 바로 오늘 여의도에서 끔찍한 테러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중상자는 셀 수도 없이 많으며 사망자 수는 지금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의료진은 부족하고 의약품 역시 모자랍니다.>
<다행히도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등 우호국들에서 구호 물품들이 전달된다고 하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상황입니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서준이 재배지를 탐사하는 사이 서울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그것도 두건이나.
사망자 수는 벌써 천이백 명을 넘어가고 있었고, 사상자의 수는 그 열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심각한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서준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많은 길드들이 자원봉사에 나섰습니다.>
<길드의 치료 헌터들과 비축해두었던 치료 약품들을 풀어서 부상자들을 치료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헌터들의 힘을 빌려 파괴된 건물들의 잔해를 빠른 속도로 치워가고 있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은 앵커의 떨리는 목소리로 마무리되었다. 앵커가 근무하고 있는 방송국 역시 여의도에 위치했다.
다행히 방송국은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여의도 내에서 외근 중이던 많은 동료들이 죽거나 다쳤다.
자주 가던 단골가게의 사장님 역시 죽었고, 즐겨가던 주점은 건물 채로 흔적이 사라졌다. 앵커 역시 이성을 유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에서도 끝까지 훌륭히 진행을 끝마쳤다.
<백 선생님!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습니다. 괜찮으신 겁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뉴스를 보고 난 후 서준은 곧장 윤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창천 길드는 어떤가요?”
<저희 길드는 여의도나 종로랑은 거리가 좀 멀어서 별다른 피해는 없었습니다.>
“뉴스 보니까 자원봉사한다고 하는데 창천 길드도 참여했나요?”
<네, 근데 일손이 조금 부족하네요.>
이것이 서준이 전화를 걸었던 이유였다. 대답을 들은 서준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말했다.
“저도 갈게요. 주소 찍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본래 약사의 의료봉사란 약을 조제하는 것과 환자들의 복약을 지도하는 데에 있었다. 치료는 의사들의 몫이었으니깐.
그 사실은 대침공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초인들을 대상으로 하면 다르겠지만 일반 환자들에게는 이전과 달리진 것이 없었다.
초인들의 병은 치료능력을 지닌 초인들이 치료해주었으나, 일반인들에게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계에서 넘어온 약초 역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 초인에게만 허용된 혜택이었다.
그러나 서준의 경우는 일반 약사와는 달랐다. 서준은 초인이었다. 다른 약사들처럼 약을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하는 데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덜컹,
지하실의 두꺼운 철문을 연 서준은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초록 활력초의 분말을 깡그리 긁어모았다.
커다란 박스에 소분 포장되어 차곡차곡 쌓여있는 초록 활력초 분말의 양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서준이 팔지 않고 보관해두었던 것이다.
<네, 백 선생님 벌써 도착하셨나요?>
“아니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박스를 다 챙긴 서준은 다시 윤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상자들 대부분 일반인인데 초록 활력초 사용해도 되는건가요?”
<혹시 재고 남는 게 있으신 건가요? 저희 길드에 있는 건 다 사용했는데 재고 있으시면 가져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윤희주에 설명에 따르면 재난 상황에서는 이계의 약초를 일반에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본래 이계의 물건의 거래도 사용도 초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했다. 그리고 당연히 이계의 약초인 초록 활력초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물론 거래는 역시 불가능했다. 하지만 금전적 이득을 보지 않고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라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준은 바로 그 초록 활력초를 국내에서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준이 그 공급을 끊으면 국내에 유통되는 초록 활력초가 사실상 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서준이 재배지 탐사를 시작하면서 당연스럽게 약초의 재배는 중단되었고 창천 길드에 공급되는 약초들 역시 끊겼다.
약초를 대리 판매하던 창천 길드가 공급을 받지 못하자 유통되고 있던 초록 활력초 역시 사라졌다.
물론 미리 이야기를 전해 들은 창천 길드의 경우는 길드에서 사용할 분량을 보존해 두었다. 판매는 불가했지만 길드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양이었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분량 역시 이번 사태로 모두 털어 넣은 모양이었다.
“제가 쌓아둔 양이 꽤 됩니다. 혼자서 운반할 수 없어요. 차량을 좀 보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섭외해서 약국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준의 이야기를 들은 윤희주는 바쁜지 재빨리 답하고 전화도 재빨리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의 집 앞으로 트럭이 한 대 도착했다. 윤희주가 보낸 트럭이었다.
“갑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럭은 서준과 초록 활력초 분말을 가득 싣고 임시 병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임시 병동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축구 경기장에 임시로 천막을 쳐 만든 임시 병동에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이 누워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케어하는 것은 소수의 의료진과 소수의 봉사자들뿐이었다.
“오셨습니까? 약초는요?”
그때 서준을 발견한 윤희주가 말했다. 상황이 급박한지 본론부터 말하는 윤희주의 모습은 매우 초췌했다.
단정했던 옷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고 핏자국이 흥건했다. 얼굴 곳곳에도 피가 튄 자국이 있었는데 그것을 닦을 시간마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입구에 트럭 세워놨어요. 양이 많아서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서두르죠.”
윤희주는 창천 길드의 길드원들을 데리고 트럭을 세워둔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트럭에 실린 박스를 내리는 트럭 운전사가 보였다.
본래 그를 고용하면서 부탁한 것은 운반까지였지만 그 역시 사람이었다. 이 참혹한 현장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서준과 창천 길드의 길드원들도 서둘러서 박스를 임시 병동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약 왔습니다! 초록 활력초 분말이에요! 이거 사용하세요!”
창천 길드의 헌터들은 임시 병동 곳곳에 박스를 내려두면서 외쳤다.
“정말입니까? 정말 써도 되는 겁니까?”
대부분이 일반인이었던 의료진들은 흥분한 채로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답조차 듣지 않은 채 박스를 뜯어 분말을 서둘러 챙기기 시작했다.
초록 활력초의 사용 경험은커녕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의료진들이었지만 이 약초의 유명세는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평소 꿈에만 그리던 의약품을 손에 얻은 의료진들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미 부상 정도가 심한 사람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은 재빨리 처치할 수 있었다.
임시 병동 역시 자리가 부족했기에 초록 활력초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초록 활력초로 치료할 수 있을 정도의 부상을 입은 환자들은 조속히 퇴원할 수 있었고 그 자리를 다른 부상자들이 채울 수 있었다.
서준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초록 활력초를 들고 다니며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본래부터 심성이 착했던 서준 이였다. 약사가 된 이유도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고 마음을 치료해주기 위함이었다.
창천 길드 소속 테이머로서 GOTY KOREA 우승의 주역이었던 서준은 오늘 다시 약사 백서준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