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금년도 GOTY 한국 예선에서 창천 길드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작년 성적이 8강인 것을 보았을 때 엄청난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텔레비전에는 온통 창천 길드의 GOTY KOREA 우승에 관련된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만큼 GOTY KOREA는 대한민국 전체의 축제였고, 창천 길드의 우승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오늘 하루는 창천 길드가 대한민국 이슈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창천 길드는 올해의 길드에 선정되어 시드권을 받아 결승 직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화면에서 보셨다시피 결승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기자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길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많았습니다.>
<전문성 없는 기자들이 투표를 해 제대로 된 길드가 시드권을 받지 못한다고 말이죠.>
<그러나 어제 창천 길드가 우승함으로써 이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면에는 목소리와 함께 GOTY KOREA 결승전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그곳에는 원숭이 괴수를 상대하는 서준의 모습도 있었고 열심히 땅굴을 파고 있는 호랑이들의 모습도 있었다.
<이번 창천 길드의 우승에는 호랑이 영수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창천 길드는 호랑이 영수를 세 마리나 기르고 있는 테이머를 영입했는데요. 이번 대회에서 호랑이 영수를 활용한 전략이 돋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호랑이 영수가 발견된 적 없었는데요. 호랑이 영수를 셋이나 영입한 창천 길드의 앞으로 성장치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뭐 내가 창천 길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지 뭐.'
말 그대로 서준은 창천 길드 소속은 아니었다. 잠시 GOTY KOREA를 위해 도움을 줬을 뿐이다.
그러나 함께 우승컵을 든 사이끼리 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국 예선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창천 길드가 GOTY 본선에서 어떠한 좋은 성적을 보일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많은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위상을 널리 알릴 수 있길 기대합니다.>
"얘들아 봤지? 너희 TV에 나왔어!"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도 방금 텔레비전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자신들의 이야기인걸 알아들은 양 우렁차게 울었다.
"그럼 이제 일하러 가자!"
-어흥! 캬앙! 크릉!
자축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서준은 호랑이들을 데리고 게이트를 넘어갔다.
그런 서준의 목에는 약하게 빛나는 목걸이가 하나 걸려 있었다.
“하아…. 근데 왜 이렇게 씁쓸하냐.”
GOTY KOREA에서 우승도 했고 주목도 받았다. 게다가 약초 사업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고 아티팩트까지 얻었다.
그러나 서준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무언가 불편한 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8년의 타임 워프로 인해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진 탓일 것이다. 타임 워프 후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들어냈다.
게다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서준의 마음속에 쌓인 울분을 털어내지는 못했다.
-크르응! 크르응!
크릉이가 서준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평소에 애교를 부리지 않던 크릉이가 서준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낮게 울었다.
“고마워, 크릉아.”
서준도 자신을 생각해주는 크릉이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조심스럽게 앉아서 크릉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었다.
‘흠…. 거의 안 자랐네?’
크릉이의 위로를 받고 정신을 차린 서준은 곧바로 할 일을 시작했다.
뭐 별거 있는 건 아니었다. 나무에 맺힌 열매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열매는 처음 발견했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크기가 조금 커지긴 했지만 아직 색깔이 푸른 것이 덜 익은 것이 확실했다.
그동안 GOTY를 준비하며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영양을 공급해줬다.
시간 괴리를 생각하면 10년이 훌쩍 뛰어넘는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열매는 다 자라지 않았다.
깊게 생각해 볼 문제였다.
‘얼마나 놀라게 해 주려고 10년을 넘겨?’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아직까지 다 자라지 않은 건지 궁금해지는 서준이었다.
점점 더 열매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간다.
“끄응차!”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열매에 대한 감상은 이쯤 해서 뒤로 밀어두고 호랑이들과 함께 땅을 파 괴수의 시체를 묻어뒀다.
창천 길드는 아직도 서준에게 괴수의 시체를 지급해주고 있었다.
오히려 GOTY 예선 통과 후 서준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는지 더 많은 양을 보내주고 있었다.
속으로는 매우 감사함을 느끼는 서준이었다.
“으아아! 오늘 할 일 끝!”
-어흥! 캬앙! 크릉!
헤집어놨던 땅을 전부 다져둔 서준은 기지개를 켜며 호랑이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선 어흥이의 등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가자!”
-어흥! 캬앙! 크릉!
아직 어흥이는 완전히 성체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크기였다. 애초에 영수화 하면서 보통의 호랑이들보다는 빠른 속도로 자랐으니깐.
게다가 그 힘조차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해서 이제 사람 몇 정도는 태우고 다닐 정도는 되었다.
물론 캬앙이와 크릉이도 다를 건 없었다. 서준은 재배지에서 바이크를 대체할 더 좋은 이동수단을 얻은 셈이었다.
오늘 서준이 열매의 성장상태를 확인하고 시체를 묻어둔 것 외에 약초를 캔다거나 관리하는 등 다른 일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아마 당분간은 약초관리를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이미 창천 길드와도 GOTY 예선이 끝났으니 잠시 휴식을 갖겠다며 합의를 끝마친 상태였다.
서준은 재배지에서 최대한 멀리까지 탐험할 예정이었다. 이것은 서준에게 약초의 재배를 포기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그동안 시간 괴리의 문제와 포식자를 만날 위험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GOTY를 준비하면서 서준은 강해질 수 있었다.
지난번 만났던 강철곰을 만난다 해도 큰 어려움 없이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서준은 허리춤에 달린 장도리를 매만지며 확신했다.
-부웅! 부웅!
한번 뽑아서 휘둘러 보기도 했다. 한껏 강해진 서준의 팔 근육은 바람소리가 강하게 날 만큼 장도리를 강하게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어흥!
서준을 태우고 있는 어흥이는 서준이 괜히 움직이자 불편했는지 성질을 내었다.
“알겠어, 미안해.”
서준은 사과를 하면서 장도리를 다시 허리춤에 메었다.
앞으로 서준과 오랜 시간을 함께할 무기였다. 물론 평범한 장도리는 아니었다.
게이트 너머의 세계에서 가져온 광물로 만든 장도리였다. 윤희주가 창천 길드 장인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물건이었다.
물론 서준이 장도리를 만들어 달라 했을 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이유가 명확했기에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처음 창천 길드에서 준비했던 검과 창 그리고 도끼 등의 무기는 날붙이였다. 날붙이는 숙달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본인을 해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서준이 전문 헌터들처럼 긴 시간 훈련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최운혁이 언제 다시 노려올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서준은 항상 무기를 패용하고 다닐 필요가 있었는데 그때 날카로운 날붙이들은 오히려 서준을 상하게 할 위험이 있었다.
그때 서준이 떠올린 것이 장도리였다. 길이도 적당해 지니고 다니는데에도 별문제 없고 괜히 들고 다니다 다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특별한 무기술을 배우지 않고도 그냥 잘 휘둘러 맞추기만 하면 되니 서준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서준의 장도리는 이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만큼 매우 튼튼했다. 원숭이 괴수의 골반과 두개골을 손쉽게 박살 내었고, 아무런 흠집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서준은 이 무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흥아! 잠깐 멈춰볼래?”
서준은 어흥이를 멈춰 세웠다. 어흥이가 멈추자 뒤따라오던 캬앙이와 크릉이도 멈추었다.
재배지를 떠나서 무작정 한 방향을 찍고 달려온 서준과 호랑이들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멀리 온 것 같은데?”
생각보다 호랑이들이 너무 빨랐다. 잠시 장도리를 휘두르며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너무 멀리 와버렸다.
본래 계획은 조금씩 영역을 넓혀갈 생각이었는데 너무 멀리 와버렸다.
‘뭐, 중간에 아무것도 없었으니 그것도 아닌가?’
오는 길목이 내내 허허벌판이었기에 사실 조사할 거리가 없긴 했다. 그래도 서준은 어흥이의 등에서 내려와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 서준이 있는 위치는 밀밭이었다. 물론 누군가 정말 밭을 만들어 경작한 것은 아니고 야생의 밀이었지만.
여기 이렇게 빽빽하게 자란 밀들이 지구의 밀과 똑같은 종인지는 확인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서준은 어깨까지 올라온 커다란 밀을 뿌리째 뽑아 들고 온 자루에 넣었다.
지구로 돌아가 창천 길드 연구소에 맡겨볼 요량이었다.
“얘들아 어딨니?”
자루 정리를 끝마친 서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호랑이들을 찾았다. 워낙 밀이 촘촘하고 길게 자란데다가 호랑이들의 피부색과 비슷하니 호랑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이 부르자 호랑이들이 밀 위로 얼굴을 쏙 빼 내밀며 울었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 여기서 누가 공격이라도 하면 큰일 나겠어.”
서준은 어깨높이까지 올라온 밀을 보며 말했다. 밀밭에 숨어 누군가 공격해온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서준의 시간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서준의 목숨이 위험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하아…. 입이 방정이지.’
서준은 잘 움직이지 않는 목을 움직여가며 주위를 살폈다. 그동안 고된 훈련으로 강화된 서준의 근육은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좀 더 몸을 잘 컨트롤 할 수 있게 도왔다.
서준의 눈에 어흥이와 크릉이가 들어왔다. 두 호랑이는 위협을 느끼지 못했는지 해맑은 표정으로 서로 뒤엉켜서 놀고 있었다. 서준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매우 천천히 보였다.
서준은 서둘러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탐지 능력이 엄청난 호랑이들이 감지하지 못한 위협이었다. 한눈팔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서준의 시야에 웬 생명체 하나가 들어왔다.
‘표범?’
표범의 형상을 한 괴수였다. 그 크기 역시 동물원에서 보던 일반 표범과 다를 바 없어 특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도는 엄청났다. 느려진 서준의 시간 속에서도 표범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아마도 저 엄청난 속도와 호랑이들의 감지 능력을 속인 것이 저 표범의 능력이리라.
‘이건…. 못 피하겠는데?’
표범의 앞발은 이미 서준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이미 몸을 날려봐야 늦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피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서준은 허리춤에 있는 장도리를 향해 손을 옮겼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장도리를 향하는 손의 움직임은 거북이처럼 느렸다.
그리고 표범의 앞발이 드디어 서준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깡! 하는 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졌다.
표범은 공격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준의 목에 걸려 있는 아티팩트에서 강력한 푸른 빛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