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다음날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더 빨리 달립니다. 이래서는 어제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악!”
전창진은 여전히 바이크를 타며 서준을 쫓았고, 서준은 펜싱 칼에 찔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발을 놀렸다.
지옥이란 게 따로 있을까? 바로 이게 지옥이지. 서준에게 전창진은 악마, 여기 훈련소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자! 이번에는 높이 뜁니다! 매우 빠르게 뜁니다!”
이번에는 계속 점프하게 만들었다. 서준은 전창진이 바닥을 훑으며 휘두르는 밧줄을 피하며 계속해서 점프했다.
타이밍이 조금만 늦는다면 굉장한 고통이 전해지리란 것은 틀림없었다.
“더 높이 뜁니다!”
그리고 그 밧줄은 점점 바닥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서준은 하는 수없이 더 높이 뛸 수밖에 없었다.
“에이씨! 더 이상은 못하겠네!”
서준은 신경질을 부리면서도 몸은 자연스럽게 전창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거고 아픈 건 아픈 거였으니깐.
점프하고 점프하고 점프하고 계속해서 고된 훈련을 반복하는 동안 서준의 허벅지 근육은 서준이 모르는 사이에 더욱더 탄탄해지고 쫀쫀해져 갔다.
불과 하루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아도 서준의 근육은 더욱더 밀도 있고 짜임새 있어졌다.
물론 그를 느끼지 못하는 서준은 억울한 마음뿐이었다.
어디 불민한 제자가 스승의 하늘 높은 뜻을 알 수 있으랴. 훗날에야 체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서준의 탈출이 감행되었다.
서준은 더는 이 지옥 같은 훈련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고,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일어났다.
혹여나 누가 들을까 조심스레 침대 아래에 발을 내디딘 서준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섰다.
물론 정말로 탈출하여 훈련을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원래 협상을 하려면 그 극단을 내보이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서준은 이 탈출로 약간의 소득을 얻기만 해도 만족이었다.
-어흐으응?
방문을 열고 훈련장을 찾아간 서준은 어흥이를 비롯한 호랑이들은 조심스레 깨웠다. 혹여나 호랑이들이 큰 소리를 낼까 봐 서준이 슬며시 입을 막자 호랑이들은 의아한 눈으로 서준을 바라봤다.
“얘들아, 조용히 따라와.”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이 속삭이듯 말하자 호랑이들 역시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혹여라도 발자국 소리가 날까 조심조심 걷는 서준 뒤로 호랑이들도 조용히 따라왔다. 애당초 타고나기를 맹수였던 아이들에게서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성인 남성 한 명과 호랑이 세 마리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훈련장을 벗어났다.
-철컥.
그리고 도착한 훈련소의 정문에서 서준과 호랑이들은 고난을 맞이했다.
서준이 조심스레 문을 밀었으나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문은 역시나 안에서 손쉽게 열 수 있는 문은 아니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문을 열 수 있었는데 전창진은 서준에게 비밀번호를 보이는 그런 허점 따위를 보여준 적 없었다.
‘어떡하지…….’
서준은 잠시 고민하다 결단을 내렸다.
‘부수자.’
열리지 않는다면 뚫으면 되는 법, 서준은 도어락 위에 손을 얹고 능력을 발동했다.
손바닥 아래서 자그맣게 열렸다가 곧바로 닫힌 게이트는 그대로 도어락을 삼켜버렸다.
한쪽이 그대로 사라져버린 도어락은 그대로 제 기능을 잃어버렸고, 문이 스르륵 열렸다.
-삐! 삐! 삐! 삐!
그리고 그 순간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튀어!”
조용히 도망치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비밀번호를 모르는 이상 부술 수밖에 없었다.
도어락을 부숴버리기 전 충분히 몸을 풀었던 서준은 앞장서서 달렸고, 호랑이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1분 후, 서준은 붙잡혔다. 물론 서준 역시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다.
어차피 훈련을 완전히 끝낼 생각은 없었고 조용히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한 이상 이쯤에서 잡히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려 했다면 게이트를 열고 도망쳤겠지.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전창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창천 길드에는 당연히 길드 사옥을 지키고 있는 헌터들이 24시간 상주했다.
서준이 그들 모두를 피해 도망갈 확률은 0에 수렴했다.
아무리 며칠간 훈련했다 하더라도 전문 헌터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서준 입장에서는 일부로 잡혀준 거라고는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리 없었다.
“아이고, 백 선생님…. 생각보다 무모하시네요?”
소식을 들은 윤희주도 퇴근했다 돌아왔는지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아니, 제가 원래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인데 이건 좀 그래요.”
윤희주를 본 서준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는지 입을 열었다. 무뚝뚝하고 사나운 전창진보다는 그래도 오래 본 윤희주가 나았다.
이제 진짜 협상의 시작이었다.
“훈련이 많이 힘드신가요? 신입 헌터들 다 하는 건데…….”
“훈련까지는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집에는 보내주셔야죠. 저도 제 일이 있는데.”
사실 훈련조차도 매우 힘들었지만 서준도 거기까지는 해줄 수 있었다.
이왕 GOTY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 서준 역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훈련은 필수였다.
다른 참여자들은 오랜 기간 단련해왔지만 서준은 이제부터 시작하는 초보자였으니깐 남들보다 열심히 할 필요가 있었고, 서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서준의 몸은 하루하루 강해지고 있었다. 비록 짧은 훈련이었지만 서준 역시 그를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전창진처럼 객관화된 데이터를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직접 체감하는 것이기에 기적적인 발전이 없는 것처럼은 느껴지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본인의 몸이 기민해지고 더욱 강해졌다는 건 바보가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서준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강해지는 것도 좋고 GOTY KOREA? 그런 대회에 나가서 좋은 활약을 하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그전에 서준은 약사였고 약초 재배꾼이었다. 본래의 삶이 있었다.
“훈련이 빡세서 길드에서 몸 관리해드리려고 못 가게 한 거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매일 아침 길드 찾아오는 것도 고생일 텐데.”
“그것보다는 제가 약초 관리를 해야 해서요.”
서준에게 중요한 것은 재배지였다. 다른 약초들이야 사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며칠 재배하지 못한다고 그것들이 다 죽지는 않는다. 약초들이 자연스레 시들고 다시 피어날 테니 아무 상관 없었다.
시중에서야 비싸게 팔린다지만 서준에게는 흔하디흔한 잡초와 사실 다를 것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무였다.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나무였다. 서준은 이전보다 더 세심히 신경 쓰며 나무를 관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무 그 녀석은 매우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자신의 몸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면 주위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쓸 준비가 된 아이였다.
해서 서준은 나무의 영양 공급에 더욱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었다.
그러나 서준이 훈련에 묶여 더 이상의 영양공급을 해주지 못한다면, 나무는 재배지의 모든 지력을 끌어다 흡수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재배지는 끝장이었다.
“그 부분은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이제라도 아셨으면 됐죠.”
윤희주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서준은 먹혀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럼 매일 오전 9시까지 훈련장으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역시 그 극단을 보여주니 적당히 중간쯤에서 협상할 수 있었다. 윤희주 역시 서준을 존중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서준과 윤희주의 적절한 합의가 끝난 후, 서준 역시 훈련에 집중했고 전창진 역시 열심히 훈련시켰다.
“다섯 개 더!”
“하나아! 두우우울!”
무게도 적혀있지 않았으나 그 무게를 재지 않더라도 그 두께만으로 엄청나게 무거우리라는 것이 보이는 무서운 바벨이었다. 그 엄청나게 무거운 바벨을 짊어진 서준은 힘겹게 앉았다 일어나며 개수를 셌다.
“다서어엇!”
“좋습니다! 회원님은 오늘 하루도 더 어제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그런 의미로 다섯 개 더!”
“개새끼야!”
물론 전창진은 여전히 악랄했다. 전창진 데몬, 괜히 그런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어흥아… 형 너무 힘들어.”
-어흐응…
어흥이와 호랑이들 역시 창천 길드에서 훈련을 받았다. 물론 테이머가 없는 창천 길드이기에 영수를 훈련시키는 커리큘럼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해서, 창천 길드는 외부에서 영수 전문 트레이너를 초빙해 호랑이들을 훈련시켰다.
“이 아이들 대단한데요? 훈련 조금 받고, 성장 조금만 더 하면 진짜 유명한 영수 될 수도 있겠는데요?”
그리고 영수 전문 트레이너 강길중은 호랑이들에게 가능성을 느꼈는지 더 열심히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한 달간의 고된 훈련을 견뎌낸 서준은 GOTY 전 마지막 일주일의 휴가를 얻어냈다.
“자유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매일 저녁에 약국에 돌아온 서준은 재배지를 대강 살펴보고 그대로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당연히 호랑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호랑이들도 오랜만에 서준과 마당에 나오니 기분이 좋은 듯 방방 뛰며 울었다.
“얍!”
서준은 있는 힘껏 꿀닭을 던졌다. 그동안 훈련으로 강해진 서준의 어깨에선 대포가 쏘아지듯 꿀닭이 날아갔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재빠르게 달려 꿀닭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꿀닭을 잡아챘다.
그동안 호랑이들 역시 창천 길드에서 훈련을 받았기에 이전보다 많이 날렵해진 모습이었다.
“잘했어!”
-어흥!
꿀닭을 잡아낸 어흥이가 서준에게 쫄랑쫄랑 다가와서 얼굴을 비볐다.
서준은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어흥이를 끌어안고 목부분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흐으응!
어흥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목소리를 떨었다. 진짜 기분 좋을 때만 하는 표현이었다.
“이것도 먹어 얘들아.”
오랜만의 만끽하는 자유에 기분이 좋아진 서준은 간식 보따리를 풀었다.
호랑이들 역시 고된 훈련을 마치고 맞이한 여유에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서준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호랑이들과 달리기 시합을 하고, 먹이를 주고, 껴안고 쓰다듬으며 지내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자유를 만끽한 서준과 호랑이들은 드디어 GOTY KOREA 경기장에 도착했다.
“드으으~ 디이이~ 어어! GOTY KOREA! Guild of the Year 한국 예선 시작합니다!”
크레인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간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대회의 개막을 알리자 가득 찬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참가 길드 입장 시자아악! 하겠습니다!”
대침공 이전에 열렸던 올림픽 개막식처럼 참가 길드들이 하나씩 줄지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대한민국의 최고 길드를 가리는 대회 GOTY KOREA는 만원 관중은 물론이고, 모든 방송사에서 이 대회만을 송출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준과 호랑이들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