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삑!
비프음과 함께 서준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헉! 헉! 헉!”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는 서준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짜내며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발을 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서준의 뒤를 바이크를 탄 어떤 사내가 쫓고 있었다. 그 사내의 손에는 얇은 칼이 들려있었다. 꼭 펜싱경기에서나 쓸법한 그 칼은 서준의 등 뒤에 닿을락 말락 하며 서준을 쫓고 있었다.
“앗!”
지친 서준의 발이 느려지자 펜싱 칼이 서준의 등을 살짝 찔렀고, 서준은 놀란 서준은 다시금 힘을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거 보십쇼, 아직 더 뛸 수 있다니까요? 더 빨리 뛰세요.”
서준은 혹여나 다시 칼에 찔릴세라 열심히 발을 놀렸고 땅바닥에 테이프로 그어진 경계선을 넘어서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헉! 헉! 헉!”
지친 서준은 거세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그렇게 십 초가 흐른 후 다시금 삑 하는 비프음이 들렸다.
비프음을 들은 사내는 곧바로 서준의 목덜미를 잡아 집어 던진 후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바이크를 타며 쫓기 시작했다.
“아! 좀! 그만!”
그리고 역시 서준은 칼에 찔릴세라 다시금 발을 놀리며 반대편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좋아요! 그렇게 달리는 겁니다! 이제야 좀 사람답게 달리는군요!”
평생을 공부만 하며 지내던 서준이었다. 타임 워프 후에 꾸준히 운동을 해오긴 했지만 그저 체력증진 정도를 위한 운동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격하게, 전심전력으로 운동을 해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아! 좀만 쉬자구요!”
“두 번만 더합시다!”
그런 서준의 뒤를 쫓으며 서준을 강제로 운동시키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전창진이었다.
그는 창천 길드의 훈련 교관으로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전창진 데몬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훈련생들을 훈련시키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악마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아! 길드장 불러!”
“입술 움직일 시간에 다리 한 번 더 찹니다!”
“악!”
전창진은 팔을 살짝 뻗어 서준의 등을 살짝 찔렀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은 살짝만 닿았음에도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다.
서준은 윤희주에게 빚의 절반을 탕감받는 대가로 GOTY의 본격적으로 임하기를 약속했다.
그리고 매일 오전부터 창천 길드의 훈련소에서 훈련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 약속은 서준이 훈련소에 도착하는 순간 변경되었다.
“이 사기꾼 새끼들!”
겨우겨우 도착점에 도착한 서준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소리를 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곧바로 다시 삑 하는 비프음과 함께 뒤에서 전창진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바이크를 타며 웃으며 쫓아오는 전창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 그 자체였다.
“아침에 간단하게 훈련하자며!”
“입 놀릴 시간에 발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악!”
서준이 아침 일찍 훈련소에 도착하자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윤희주와 전창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미소는 서준이 훈련소의 문지방을 넘는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서준이 훈련소의 문을 넘어 들어오는 순간 닫힌 문은 그대로 잠겨버렸고 매일 아침 가볍게 훈련이나 하며 몸을 풀어야지 하는 서준의 계획은 산산이 무너졌다.
서준은 GOTY KOREA의 개막일까지 훈련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훈련을 하게 되었다. 강제로.
“돈값은 하셔야죠? 백 선생님?”
그때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말하는 윤희주의 모습을 본 서준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훈련장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이후 계속된 훈련에 서준은 지쳐 죽어가고 있었다.
“아 언제까지 달리냐고!”
“제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전력 질주는 아주 좋은 운동입니다. 게다가 잘 달리는 건 헌터의 기본 소양입니다.”
전력 질주는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 내는 운동이다. 전력 질주를 하면 신체의 모든 부위를 자극하며 강화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심폐기능까지 향상시킬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운동이 어디 있을까?
또한 잘 달리는 것은 헌터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항상 자신보다 약한 괴수와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괴수를 맞닥뜨렸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으니깐.
해서, 창천 길드의 훈련소에서는 신입 회원이 입소하면 무조건 달리기부터 시켰다. 그것이 전창진의 지론이었고 전창진 데몬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나는 헌터가 아니라고!”
“헌터증 있잖아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서준은 윤희주에게 헌터증을 발급받은 상태였다. 일전에 게이트에 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했던 헌터증을 윤희주가 보증을 서주며 발급해주었다.
물론 GOTY는 당연히 일반 초인이 아닌 헌터들이 참여하는 대회였기에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발급받았을 테지만.
“집중하세요.”
“악!”
전창진은 서준이 집중하지 못할 때마다 팔을 살짝씩 뻗어 서준의 등을 찔렀다.
“두 번 끝났다! 이제 그만!”
그리고 전창진이 말하던 두 번이 모두 끝나자 서준은 바닥에 그대로 엎어진 채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십 초가 지난 후 버저는 다시 울리고 말았다.
“아! 버저를 안 껐네요! 한 번 더 뜁시다!”
“개새끼야!”
반항해봐야 소용없었다. 서준을 집어 던진 전창진은 펜싱 칼을 들고 서준의 뒤를 쫓았다. 달리지 않으면 칼에 찔릴 뿐이었다.
서준은 눈물을 머금고 복수를 다짐한 채 온 힘을 쥐어짜 내며 달렸다.
“으아아아아…….”
그리고 결승점에 도착한 서준의 몸은 그대로 땅바닥을 마주했다. 이번에는 정말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말대꾸할 기운마저 없었다.
“좋아요. 드디어 힘을 다 썼나 보네요. 오전 훈련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그 모습을 본 전창진은 흡족하게 웃으며 쓰러져있는 서준을 그대로 놔둔 채 훈련장에서 걸어나갔다.
-삑! 삑! 삑!
그리고 그러한 서준을 비웃듯 버저는 계속해서 삑삑삑 하는 비프음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꿀맛 같은 휴식시간은 어느덧 금세 지나가 버렸다. 잠시 배를 채울 시간만 주었던 전창진은 다시 서준을 찾아와 괴롭히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하체부터 가는 거예요!”
“힘들어요…….”
“괜찮습니다! 초인은 이 정도 해도 끄떡없습니다!”
서준은 무게가 몇 킬로나 나가는지도 모르는 바벨을 어깨에 올려놓은 채 스쿼트를 했다.
초인이었던 서준은 당연히도 일반인들보다 많은 중량을 들어낼 수 있을 테니 타임 워프 전 서준의 상식과는 차원이 다른 중량을 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전창진은 그러한 서준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땀 한 방울, 근육 한 섬유까지 다 쥐어짜 내고 있었다.
“열 개! 열 개만 더하시면 됩니다!”
열 개만 더해도 된다는 말에 서준은 힘을 내어 다리를 굽혔다 폈다.
물론 전창진은 이번에도 서준이 꾀를 부리게 두지 않았다. 서준이 다리를 굽힐 때면 서준 머리 위에서 칼이 내려왔고, 무릎을 펴야 할 때면 서준의 엉덩이를 따라 칼이 따라왔다.
서준이 조금만 꾀를 부린다면 평생 탈모와 치질 걱정을 해야 할 수도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서준도 꾀를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아호오옵…… 열!”
“좋습니다! 휴식!”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열 번의 스쿼트가 끝나자 전창진은 서준에게 휴식을 주었다.
바벨을 내려놓은 서준은 뒤로 발라당 자빠져 숨을 거세게 쉬었다. 서준은 일생 동안 해왔던 운동의 몇십, 아니 몇백 배를 오늘 하루 동안 해냈다.
“다 쉬었습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지금 회원님은 다 쉬었습니다. 레츠 고 스쿼트!”
일 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전창진은 또다시 서준을 강제로 일으켜 세워 스쿼트를 시켰다.
잠시나마 반항해보던 서준이었지만 숙달된 훈련 조교 전창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가 후진 양성에 뜻이 있어 이렇게 훈련 교관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가 진심전력을 다하면 창천 길드에서도 그를 당해낼 실력자는 몇 없었다.
당연히도 그런 전창진을 서준이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허억! 허억! 허억!”
그리고 스쿼트 역시 달리기처럼 고됐고, 가혹했다. 서준의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훈련 강도였다.
이렇게 고강도의 훈련을 장시간 시키는 훈련은 서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준이 8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동안 초인들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끊임없이 이뤄졌다.
그리고 전창진은 초인 훈련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였다. 그는 서준의 몸을 보자마자 그의 신체 능력을 한눈에 파악해냈고 전부 쥐어짜 낼 수 있는 최대의 강도로 훈련 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의 눈에는 서준의 놀라운 회복력이 한눈에 보였다. 서준도 오늘 알았던 사실이지만 서준의 근육은 끊임없이 파열되었고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를 한눈에 알아본 전창진은 당연히도 서준을 계속해서 혹사시켰다.
전창진이 한눈팔지 않고 제대로 조절하고 있는 한 서준에게 부상의 위험은 없었다.
“좋습니다. 좋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럼 저녁 먹고 푹 잔 다음에 내일 보겠습니다.”
점심 식사 후부터 저녁 식사 시간까지 계속해서 고중량의 스쿼트로 혹사당한 서준을 바라보며 전창진이 말했다.
“개새끼.”
서준은 훈련장에서 걸어나가는 전창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낮게 지껄였다. 물론 전창진은 그런 서준을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유유히 사라졌다.
“너무하십니다…….”
훈련을 끝마친 서준은 샤워를 한 뒤 창천 길드의 구내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서준의 맞은편에는 윤희주가 마주 앉아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돈값은 하셔야죠, 제가 그 건물 사는데 얼마나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그래도 퇴근은 시켜주셔야죠.”
“그럼, 도망칠 거잖아요.”
서준은 뜨끔했는지 답하지 못했다. 윤희주는 이미 서준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꼭 GOTY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여요? 내가 어디 가서 싸울 일이 뭐 있다고…….”
“최운혁 아직 못 잡은 거 아시잖아요? 언제 어디서 습격해올지 모르는데 적어도 도망은 칠 수 있어야죠.”
“하아…….”
윤희주의 말대로였다. 최운혁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계획은 서준에 의해 모두 아작났고, 충실한 수하들을 모두 잃은 채 한쪽 팔마저 잃었다.
그의 성격대로라면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서준을 공격해올 것이 분명했다.
‘게이트 열면 되는데…….’
물론 그냥 당할 서준은 아니었다. 게이트 열고 도망치면 최운혁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시간만 버텨도 현실에선 나흘의 시간이 흐른다.
수배범인 최운혁은 그 긴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서준이 나오길 기다릴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서준이었기에 꼼짝없이 윤희주에게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빚 갚으면 안 될까요?”
“이미 늦었어요. 그러니까 계약하기 전에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보셨어야죠.”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었고, 서준은 꼼짝없이 전창진의 밑에서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다.